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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A. 연구 목적
사도시대에서 이제는 교부시대로 접어든 초대교회에서의 모습을 늘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본 연구는 성서 이외에 사도들의 틀별한 가르침이 없다는 종래의 선입견에 작은 파문을 줄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에게는 자극제가 되었으며 "12사도의 가르침"이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관심을 끌수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아직까지 번역서적이 흔하지 않고 역사서나 교리사 등에서도 잠깐 언급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깊은 연구에 몰입하기란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각 자료에 나타난 공통된 주장과 가르침에 관심을 갖고 오늘 우리의 교회에까지 미치고 있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연구목적을 두고자 한다.
B. 방법
디다케의 일반적 이해를 돕기위해 사도들의 가르침이 문서화 됨으로 각 교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그리고 역사적인 학자들 간의 견해도 언급할 것이며 디다케의 중심내용을 통해서 세개의 중요부분을 나누어 그 가르침이 교회에 미친 영향과 그 당시 선구자와 감독들, 집사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지침이 되고 있음을 말하려고 한다.마침내는 그 가르침이 예배와 교회 그리고 사도의 가르침에 큰 권위를 두고 모법서 중의 모법서임을 증명하는데 주력하겠다.
II. 디다케(Didache)의 일반적 이해
A. 12사도의 가르침
「디다케」(the Didache) 혹은 「12사도의 가르침」(the Doctrine of the twelve Apostles)이 본래의 이름이다. 희랍어로 ՄՉՄՁՇ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교육, 예배, 목회 등에 필요한 지시사항을 담고 있으며 교회의 명령집에 속한 문서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문서는 희랍어 원본을 제외하고도 라틴어, 아랍어, 곱틱어, 그루지아어, 그리고 시리아어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초대 기독교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집회를 가졌는가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 중요한 것은 마태복음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삼위일체의 이름을 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최초의 기록이라는 사실과도 부합하고 있다. 앞으로 중심내용에서 다루겠지만 그 본래 가르침의 의도는 기독교인의 습관과 생활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세례를 받은 사람과 받으려는 사람을 위하여 실제상의 훈련을 기록한 글이다.
B. 역사와 목적
이 문서의 발견 연대에 관해서는 학자들간의 상이한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1875년 이스탄불에서 발견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 문서는 발견된지 10년 후에 이스탄불에 있는 예루살렘 총대주교좌의 도서관에서 브리엔니오스에 의해서 출판되었다고 한다. 출판 후 많은 학자들의 관심과 연구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나 그 기원, 저자, 저작연대 등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학자들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이전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학자들은 이보다는 훨씬 후대라고 주장하는 등 저작연대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확실치 못하다. 이러한 어려움은 이 문서가 어떤면에서 보면 사도적 시대에 접근해 있으며, 또 다른 면에서는 사도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렴푸시 저작연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엽이라는 것과 저작장소는 기독교 사상의 주류에서 멀리 벗어난 시리아나 팔레스타인의 소규모 공동체일 것이라는 정도이다. 디다케의 구성은 바나바 서신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가 복합된 것으로 되있다. 그리고 디다케를 인용한 많은 저서들도 볼수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외경 중에 유세비우스에 의해서 기록된 「사도들의 교훈서」이며 가장 오래된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밴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III. 디다케(Didache)의 중심내용
디다케는 1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개의 주요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교리문답자와 교회를 위한 안내서로서 문답형식으로 되어있는 첫째 부분은 두 길 즉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라는 형식으로 도덕적 교훈을 나타내고 있으며 둘째 부분에서는 교회의 예배에 대한 가르침과 교회생활의 규칙을 포함하고 있다. 세번째는 일종의 훈련지침서로 선지자와 감독과 집사들의 관계에 관한 가르침이다.
A. 두가지의 길(Document of the Two Ways)
"두길문서"라고 하며 이 문서는 바나바의 서신에서도 그대로 게제되어 있다.「디다케」와 「바나바 서신」은 독자적으로 존속했었는데 상호간에 서로 이용하고 수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두개의 길 즉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다. 생명의 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며, 또한 모든 행실에서 악을 피하고 기독교인의 의무를 완수하는 자들이 가는 길이다. 사망의 길은 저주받은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자들은 거짓과 악덕과 위선과 탐욕에 넘겨진 자들이다. 이러한 「두가지의 길」에 의해서 윤리적 교훈을 제시하는 방식은 유대인의 문답법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교수법은 구두에 의한 것이든 문서들에 의한 것이든 문서들에 의한 것이든 그것이 초대교회의 기독교인의 선생들에 의해서 이방인의 개종자들을 가르치는데 사용했던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두가지의 길」의 자료속에는 유대인이 용납못할 것들은 하나도 없다. 특히 디다케 3:7에서는 시37:11의 인용구에 보면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라틴어판 이 문서에서도 "온유한 자는 성스러운 따을 차지하며"라는 기록에 기인한다. 디다케의 편집자는 기독교적 자료로부터 이끌어낸 교훈들로 그 교훈을 보완시키킨다. 마5:39∼44과 눅6:30∼33, 벧전2:11 헤르마스 명령 2:4∼6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위경 등이 그 원칙들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두가지의 길」에 관한 교훈을 마무리 한다. "만일 네가 주의 모든 멍에를 질 수 잇다면 너는 온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거든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6:2)
B. 예배적 가르침
디다케의 6장 3절부터 10장 7절에 걸쳐 예배적인 가르침을 담고있다. 7장에서는 세례에 관한 가르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례란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흐르는 차가운 물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지시하고 있다.
세례(baptism)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이 행하도록 하라. 이미 전술한 모든 것(즉,윤리
적인 권면)을 모두 암송하도록 한 후 물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만약 흐르는 물이 없으면 다른 물에서도 할 수 있으며, 찬물에서 할 수 없거든
따뜻한 물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이러한 물들을 충분히 그별할 수 없거든 "성
자와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머리에 세번 물을 붓도록 한다. 그러나, 세례를 받기 전
세례 주는 이와 세례 받는 자들은 금식하도록 하고, 할 수 있으면 다른 이들도 금식
에 참가하도록 한다. 특히, 세례 자원자들은 세례 받기 전 하루, 혹은 이틀 동안 반
드시 금식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을 볼 수 있다. 세례의 진정한 의미가 형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흐르는 물이 가장 좋다라는 의미는 아마도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례식 이전의 금식을 언급한데 이어 곧 일반적인 금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대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는 외식자들과 같이 하지 말지어다. 그대들의 금
식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반드시 할 일이다. 또한 외식자들과 같이 하지 말고, 주님이
그 복음을서에서 명령하신 것같이 기도하도록 하라.
8장에서 기독교인을 "외식자", 즉 유태인으로부터 금식과 기도의 문제로 구별한다. 제9장과 10장, 그리고 14장은 디다케가 발견된 이래로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9장과 10장은 빵과 포도주만의 만찬에 대해서 언급되었는데 이것을 "성찬(eacharist)"이라고 부르며, 참석자는 배부를 때까지 먹는다고 했다. 제14장은 이와는 반대로 주의날에 거행하는 만찬을 언급했는데, 이는 먼저 죄를 고백한 다음 참여할 수 있으며 희생의 의미로 행하여졌다. 그러나 이 기도문들은 주의 만찬을 위한 것들이 아니라 애찬을 위한 기도문들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많은 비평가들은 믿고있다. 이유는 이 기도문이 「최후의 만찬」에 대한 언급이나, 빵과 포도주를 주의 몸과 피롸 동일시하는내용응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찬식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이 감사드리도록 하라. 먼저 잔을 위하여 “우리들의 아버지시여, 당신의 종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알려주신 당신의 종 다윗의 성스러운 종으로 인하여 감사드리나이다. 영광이 당신에게 영원히 영원히 있사옵나이다.”그 후, 떡을 위하여 “당신의 종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신 생명과 지식을 위하여 감사하나이다. 영광이 당신에게 영원히 영원히 함께 있나이다. 오 주여, 당신의 교회를 기억하소서. 당신께서 거룩하게 하신 교회를 기억하시고, 이를 모든 악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하소서. 이를 세계 사방으로부터 한데 모아 당신께서 이를 위하여 준비하신 당신의 왕국을 이루게 하소서.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영원히 당신께 있사옵니다. 이 세상은 끝이 나고 당신의 은혜가 임하게 하소서. 다윗의 하나님께 호산나. 누구든지 거룩하면 나오라. 만약 누구든지 그렇지 못하면 회개하라. 마라나타(Maranatha) 아멘.
초기 예배의식 가운데, 성찬 예품들을 위해 올려진 특히한 순서는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이다. 교회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던 성만찬의 언어들과 형태에는 기독교 초기부터 일정한 양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확고부동한 형태는 아니었다. 각 지방에 따라 상당한 정도의 차이가 있었으나, 이러한 차이는 어떤 기본적인 형태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형태는 오늘날까지도 여러가지 예배 순서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로 하여금 진정한 사도들의 전통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C. 훈련 지침서
제11장에서 13장까지는 거짓 선지자의 문제를 다룬다. 선지자들은 규정된 형식들을 사용하기보다는 「그들이 원할 때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지시를 디다케의 편집자는 11-13장에서 교회들이 자기들의 공동체를 갑자기 방문할지도 모르는 영감을 받은 설교자를 즉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어떻게 영접할 것이며 어떻게 시험하며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신학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이다. 다시말해서 어떻게 진실한 선지자와 구별할 수 있을까?이다. 디다케의 대답은 간단히 말해서 선지자의 행동을 통해서 알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요구한다든지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는 거짓 선지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장사꾼"이 된다. 반면에 진실한 선지자는 대접을 받기에 합당하고 공동체에서 그를 위한 비용이 합당하다고 가르친다. 15장에서는 감독과 집사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들은 공동체에서 선출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과 선지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마지막 16장에서는 주의 재림과 징조들에 관해서 쓴 묵시적 경고로 되어있다. 디다케의 기자는 이끝 맺음을 위해서 마24장, 살전4:16, 살후2:9로부터 그의 자료들을 보충하였다. 이부분을 학자들은 편집자의 편집부분으로 추측한다.
IV. 디다케(Didache)의 영향
A. 예배학
디다케의 영향과 역사는 예배학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디다케의 내용과 사도들의 사상이 예배에 있어서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례와 성찬에 관해서 매우 흥미있는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례에 관해 보면, 통상적으로 침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관수로 허용하고 있다. 디다케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관수 형태의 세례가 언급된 가장 오래된 원문이다. 성찬의 역사와 연관시켜 보면 디다케는 애찬과 성찬이 완전히 구별되지 않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이 외에 제9장에서 말하는 감사기도는 유태인들이 케도쉬(Kedosh)축제의 관례를 따라서 그대로 적용시킨 듯한데 이것은 고대 유태인의 축제가 기독교 예배의식의 근거로 이용되었는가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2세기 중반 로마 교회에서 시행된 예배 순서에 관해서는 저스틴 마터의 제 1변증서(The first Apology)가운데 어느 정도 자세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기록도 정확한 예배 보범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저스틴은 원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그 중생을 일관성 있게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는지는 대답하기가 어렵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표현은 조명(illumination)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디다케의 세례와 성찬의 영향이 초대 기독교의 예배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이 예배학이라는 중요한 기독교교리의 체계적 일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B. 교회조직
교회조직의 역사적 근거로 「디다케」는 카리스마스적인 권위를 중시하는 원시적인 체계가 교회 내에서 서서히 발전하고 있었던 계층적 조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직이 아마 1세기 후만 수리아에서 유래된 것 같다, 이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비고정적인 직분으로부터 감독들과 장로들, 그리고 집사들의 고정된 직분까지의 변천을 보여주고 있다. 디다케에 서술되어 있는 성직자들과 행13:1이하에 기술되어 있는 안디옥의 선지자 및 교사들의 명단이 서로 유사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많은 비평가들로 더불어 교회의 조직 즉 명령집의 원천이 수리아라는 가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디다케 안에서는 아직까지 존경을 받은 자가 선지자였으나, 카리스마적 은사의 순수성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가 점점 심각한 문제가 되어갔으며 감독과 집사가 선지자 다음의 직위로 부각된다. 곧 얼마 되지 않아서 선지자는 없어지고 교직제도가 교회생활을 이끌어 가게 되었다.
V. 결론
지금까지의 Didache의 역사와 목적 그리고 중심내용을 통해서 오늘의 예배와 교회내의 조직과 의식으로까지 발전해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디다케는 신학사상적 흐름속에서 예배와 교회의 조직이 도덕주의에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라한 의미에서 디다케는 초대교회 기독교의 신앙의 금자탑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신앙의 참된 모습을 깨닫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Didache의 중심내용을 보면 고립적이며, 편엽하고 융통성이 없는 가르침이 아니라 항상 이교도, 이방인을 위해 개방된 선교적 의도가 강하게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인해 후대의 많은 예배의식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감을 볼수 있다.
오늘날 교회의 문턱이 낮아질 필요가 있는 것이 지금까지 살펴본 교회와 구성원 모두가 하나님을 쉽게 더 쉽게 올바로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인해 Didache의 쓰여진 본래의 목적 즉 이방인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이 왜곡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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