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를 바꾸자
기사승인 20-09-1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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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이 된 지 7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본풍의 화투가 만연하고 있다. 광복 이후 친일파를 색출하고 일제 잔재를 없애자고 하면서도 오히려 일본 문화의 축소판인 화투가 한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식민 지배의 아픈 기억을 지우고 왜색 문화와 일본어를 몰아내는 데 열심이었지만 정작 일제가 뿌려놓은 화투 노름은 일본보다 우리 국민들이 더 즐기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의 놀음놀이로는 윷놀이, 투전, 마작, 트럼프, 화투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시대에 따라 변천해왔다. 그중에서도 화투는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성행하고 있는 노름으로 민화투, 삼봉, 육백, 섯다, 도리짓고 땡, 나이롱 뽕 등이 있으나 고스톱(go-stop, 고도리)이 가장 인기가 많다. 고스톱은 각종 모임이나 명절에 세 사람만 모이면 할 수 있는 노름으로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도 생겼다.
일본에 화투가 들어온 것은 16세기경 포르투갈 선교사가 가져온 카드게임인 ‘가루타’였다. 그러나 막부시대에 카드놀이를 금지하자 화투의 원조인 하나후다(花札)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말 대마도 상인들에 의해 부산에 처음으로 화투가 유입되었다.
그런데 48장의 화투 속에는 일제가 조선의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저항의식을 와해시키려는 숨은 음모가 있다. 화투에 그려진 그림은 일본을 상징하는 민속화로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 기원의식, 월별 축제 등 일본혼이 그대로 담긴 축소판이다. 그래서 일제는 화투를 널리 퍼뜨려 노름판에 빠진 조선 사람들이 민족혼을 상실하여 일제에 투쟁하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러한 화투를 우리 민족이 100여 년 동안이나 즐기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없다.
화투에는 일본의 상징인 사쿠라와 후지산, 10세기 일본 서예의 창시자인 오노노도후(894~967)가 그려져 있다. 화투의 그림은 월별로 꽃나무와 짝을 이루는 동물과 인간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4월은 흑싸리가 아니라 등나무이며, 5월은 난초가 아니라 창포이다. 또한 일본의 명절인 1월 설날, 3월 사쿠라 축제, 8월 오봉과 달구경, 11월 어린이 명절, 12월 세모에는 광(光)이 들어 있다. 8월과 12월을 제외한 모든 달에 띠가 있는데, 일본 전통시인 하이쿠(俳句)를 적는데 사용하는 단자꾸(丹冊)라는 종이로 일본의 풍류를 상징한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패가망신하는 화투를 보급하고, 그들의 문화를 은연 중에 주입시키려는 의도가 100여 년에 걸쳐 실현된 셈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방관한 채 아직도 화투 노름을 즐기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화투를 치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화투 노름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화투를 한투, 개벽 화투, 홍실청실 우리화투, 독도사랑 화투 등 우리 문화와 어울리는 화투를 만들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나 사회단체에서는 일본풍의 화투를 사용하지 않도록 범국민적 운동을 펼쳐야 한다. 만약에 화투를 없앨 수 없다면 한민족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그림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문화를 정립하여 올바른 놀이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한호 박사 수필가·문학평론가·전 고등학교 교장
<자료 출처 [김한호의 에세이] 화투를 바꾸자 - 경제포커스 (economy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