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④
* 강화 천도 (1232)
최우 무신 정권기(1219~1249)에 몽골의 침입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1231). 당시 고려는 백성들과 관군이 하나가 되어 몽골군에 맞서 싸웠다. 특히,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켰다. 충주 지방에서는, 몽골군이 침입하자 관리들은 도망했으나 관노비들은 끝까지 싸워 성을 지켰다. 정부에 반기를 들었던 초적들도 몽골군이 침입하자 맞서 싸웠다.
최씨 정권은 모든 주민이 섬이나 산성에 들어가서 몽골군에 항전하도록 하고,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다(1232). 같은 해에 몽골군이 다시 침입했으나, 광주 주민들은 이에 맞서 몽골군을 격퇴했으며, 특히 처인성(용인) 전투에서는 승려 출신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射殺)하였다. 이에 몽골군은 철수하였다.
몽골은 금을 정복한 후, 남송과 고려 정벌에 본격적으로 나서 여러 차례 고려에 침입하였다. 5차 침입(1253~1254) 때에도 충주성 방호별감으로 김윤후는 “만일 힘을 다하면 귀천 없이 모두 관작을 제수할 것이다”라 하며 마침내 관노(官奴)의 부적을 불사르고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누어주니,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나가 싸워 적을 물리쳤다(1253).
1270년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몽골과 강화가 성립되어 고려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무신정권의 중추인 삼별초는 이를 거부하고, 승화후 온(溫)을 내세워 배중손의 지휘 하에 진도에서 항쟁하였다. 김방경, 홍다구가 이끄는 여몽 연합군에 의해 배중손이 진도 전투에서 전사하고 승화후 온이 생포되어 죽자 김통정이 삼별초를 지휘하며 제주도로 옮겨가며 개경정부 및 몽골과 대항하여 항쟁하다 결국 진압되었다(1270~1273).
첫댓글 생각보다 어렵네요~
생각만큼 어렵네요 저는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