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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학회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공동주최한 긴급토론회가 오늘 오후 2-5시까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차별금지법과 함께 전진하는 페미니즘>이란 제목으로 연분홍TV와 함께 실시간 유튜브 생중계로 송출했다.
사회는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의 이현재님이, 인사말은 한국여성학회 회장이자 경상국립대 사회학과에 계신 이혜숙님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정혜실님이 맡았다.
발제는 학문과 실천을 겸비한 쟁쟁하신 세 분이 앞장서 주셨다.
첫 연사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님의 <보호의 대상에서 연대의 주체로: 지금 페미니즘들이 차별금지법을 말해야 하는 이유>, 두 번째 연사는 경북대 사회학과 이소훈님의 <세계화 시대 차별에 맞서는 주체에 관한 이해: 트랜스내셔널 여성주의 관점에서>, 마지막 연사는 정의당 부대표이자 차별금지법제정추진운동본부 배복주님의 <주변화된 여성과 차별금지법>이었다.
토론 연사에는 서울대 사회학과의 추지현님,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김보영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님이 동참했다. 오늘은 세 분의 발제문 요지만 공유한다.
***아래 글은 세 분의 발제문에서 중요 내용만 복사해서 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첫 발제자인 김정혜님 <보호의 대상에서 연대의 주체로: 지금 페미니즘들이 차별금지법을 말해야 하는 이유>의 요지는 이렇다.
1. 지금 한국사회에서 평등이 직면한 현실
2007년 법무부가 ‘사회적 논란’을 내세우면서 성적지향, 학력, 병력 등 차별 사유 중 일부를 삭제한 차별금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후 발의된 「차별금지법안」들은 줄줄이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2013년에는 19대 국회에 발의되었던 차별금지법안 중 2건이 발의 두 달 만에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까지 했다. 이후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의 인권헌장과 인권조례들이 역시 사회적 합의 부족을 이유로 좌절되었다.
다른 집단에 대한 배타적 입장, 자신의 권리를 위해 타인의 권리가 제한되어도 무방하다는 태도, 평등을 위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변명, 평등 개념을 형식적, 기계적 평등 이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인식은 공공연하게 표현되는 혐오에 대한 두려움을 방패삼아 혐오를 자양분으로 하여 표면화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는 수많은 백래시를 목격해왔고, 무엇보다도 성적지향 차별을 중심으로 차별할 자유를 요구하는 세력이 차별금지법에 제동을 걸었다.
2. 차별의 교차성과 복합차별
두 개 이상의 차별 사유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 차별 사유를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는 이중차별, 삼중차별과 같이 중복차별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장애여성은 장애차별과 성차별의 이중차별에 직면한다는 설명이다. 비장애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서 차별을 경험하면서,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은 여성의 경험, 장애인의 경험과 같이 집단을 대표하는 보편적인 경험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나온다.
하지만 차별과 억압의 지배체계는 각기 독자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정체성들마다 작동하는 지배체계는 상호 연동하면서 서로를 지탱한다(Razack, 1994). 남성을 인간의 기준으로 삼는 관념 아래에서 여성은 불완전한 남성으로 명명되고, 여성에게 요구되는 여성적 행동은 신체적 기능의 제한을 의미하고, 강요하면서 여성을 취약하고 무능한 존재로 만들어왔다(Garland-Thomson,2002; Young, 1980). 이에 대항하여 정상성의 범주 남성이라는 범주에 속하고자 하는 전략을 취한다면, 성평등, 성적지향 평등에의 요구는 결과적으로 장애차별과 성차별에 기여하게 된다. 정상과 비정상, 우등과 열등의 이분법은 그대로 유지되며 비정상과 열등 범주로 분류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성차별에 대한 도전을 위해서는 성차별 외의 여러 차별이 서로 연동되면서 작동하는 방식에도 더욱 주목해야 한다.
3. 성차별의 근간으로서 이분법적 젠더규범에 저항하기
성평등의 방향은 여성이라는 범주를 명확히 구분하고, 그렇게 선별된 여성을 보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통제에 이르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를 통해 구현되는 차별의 구조를 발견하고 맞서는 것이어야 한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로만 제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차별 사유에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법체계에서 성차별은 성적 정체성에 따른 차별에서 독립되어 있지 않고, 다른 차별 사유들과 상호 연동하여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4. 통합적 평등 정책 마련의 시작점으로서의 평등법
모든 차별사유를 아우르는 차별금지법은 차별이 분절적이지 않고 통합적으로 발생한다는 이해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평등법이어야 한다. 취약한 집단의 요구를 몇 개 덧붙이는 방식으로 정책에 인권을 반영할 것이 아니라 평등원칙을 통해 정책 전반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평등법을 통해 한국사회에 평등의 단호한 메시지를 던지고, 사후적 법이 갖는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사회 변화를 지속적으로 도모하며, 정부의 책무를 명확히 함으로써 이후의 정책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인권위안과 장혜영의원안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5년마다 차별시정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명문화한 것은 피해사례의 구제를 넘어서 평등정책을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 보호대상에서 권리의 주체, 연대의 동료로
젠더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 피해자성을 인정받으려면 피해자로서 보호받아 마땅한 자격을 요구받는다. 젠더폭력에 대한 개입을 통해 보장하고 강화하고자 했던 성적 자기결정의 역량은 역설적으로 보호받을 자격과 멀어지도록 한다. 아내폭력 피해자가 가해남편에게 대항해서, 성폭력 피해자가 고학력이어서, 청소년이면서 성적 욕망을 드러내서, 장애가 경증이라서, 성경험이 많아서, 성을 거래해서 등등의 이유로 피해자의 지위를 부정당하는 사례는 여전히 많다. 취약한 것으로 인정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보호의 자격이란 여성을 다시 온정적 남성에게 의존하고 보호를 구하며 스스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통제의 틀 속으로 되돌려보낸다. 젠더폭력이 의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다.
권리는 기득권자가 자격을 따져가며 선심 쓰듯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생래적으로 보유한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피해자를 구제하고,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것만이 아니다. 모두에게 평등권을 그리고 평등을 통해 인간 존엄과 자유권과 사회권을, 정치적 기본권과 청구권을 즉 모든 기본권을 돌려주는 평등법이어야 한다.
두 번째 연사인 이소훈님의 <세계화 시대 차별에 맞서는 주체에 관한 이해:트랜스내셔널 여성주의 관점에서>를 정리한다.
1. 들어가며
7년의 침묵을 깨고 2020년 6월 29일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이는 2007년 17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의 정부안이 처음 발의된 후 여덟 번째로 발의된 법안이다.
장혜영안은 “성별, 장애, 병력 또는 건강상태,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 23가지 항목에서 차별금지를 규정하였다.
곧 이어 6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을 발표하였다. 시안에서 인권위는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 21개 항목을 차별금지 유형으로 발표하였다.
특히 장혜영안에서는 기존에는 없었던 ‘국적’ 항목이 차별금지사유로 추가되었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적이 국민과 비국민을 분리하는 중요한 잣대이고, 국적을 가짐으로 참정권에서부터 각종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자격이 정당화되는데, 국적이 없는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조항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발제문은 국적 없음과 불안정한 체류자격이 이주배경 주민을 향한 복합차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함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세계화시대 한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이주배경 주민에게 복합적인 차별이 어떤 의미인지를 트랜스내셔널 여성주의 관점에서 사고한다. 먼저 2장에서는 교차이론의 접근방식으로 복합차별을 조명하고, 3장에서는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복합차별의 양상을 살필 것이다. (4장에서는 이주민 여성에 대한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차별의 복합성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글의 길이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뺀다)
2. 교차성(intersectionality)으로 접근한 복합적 차별
1989년 미국의 법학자 킴벌리 크렌쇼(Kimberle Crenshaw)가 처음 사용한 교차성개념은 30 여 년 만에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유행어(buzzword)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교차성 이론이 여러 연구에서 사용되었다(신경아2017, 박미선2014, 권수빈2020). 크렌쇼는 미국의 흑인여성주의에 기반하여 흑인 및 유색인종 여성을 계급 인종 젠더(가난하며 유색인종인 여성)의 교차지점에 위치시키고, 그 교차지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억압의 고유한 모습에 관해 서술했다.
크렌쇼가 미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종 젠더 계급의 “삼중억압(triple oppression)”의 역동성에 주목했다면, 다른 나라의 학자들은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른 구조와 차별을 부각시켰다. 예를 들어 유럽지역에서는 ‘인종’이라는 개념에 대한 합의가 없고, 그 사회적 의미에 대해 아직 논의 중인 상황이라 ‘인종’보다는 ‘민족’이라는 용어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Lutz 2002).
3 한국사회의 이주여성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2019년 한국에 체류한 외국인은 250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4.9%에 달했다. 이 중 남성이 130만여명, 여성이 120만명 가까이 차지하여 표면적으로 비슷한 성비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외국인 남성은 비전문취업(혹은 고용허가제도,E-9,253,848), 재외동포(F-4,222,007명), 방문취업(H-2,136,533명) 등 외국인력 비자(E-9, H-2)에 높은 분포를 보인 반면, 외국인 여성은 재외동포(F-4, 242,145명), 결혼이민(F-6, 106,785명), 방문취업(H-2, 89,789명)에 집중 분포되어 있었다. 결혼이민(F-6) 사증 소지자의 81%가 여성인데 비해 고용허가제도(E-9) 사증 소지자의 92%는 남성이다. 다시 말해 외국인 남성 주민은 이주노동비자 소지자와 외국국적동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외국인 여성 주민은 결혼이민자와 외국국적동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문취업(H-2)과 재외동포(F-4) 사증은 특정 외국국적동포들에게 제공되는데,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중국동포가 대부분이다.
*이주여성은 아래 분야에서 복합적인 차별을 경험한다.
(1) 일자리 취약성
외국 인력비자를 소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주여성이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민자의 대부분이 취업활동을 하고(최윤정외 2019), 이주 여성은 돌봄 예술흥행 농업 분야에서 성별화된 고용시장을 경험한다. 중국동포여성은 아이돌보미와 요양병원 등에서 간병인으로, 돌봄노동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예인 및 공연자(유흥주점 공연자 포함)와 운동선수에게 발급되는 예술흥행(E-6) 사증소지자의 78%가 여성이다. 일반 비전문취업(E-9) 사증소지자의 단 8%만이 여성인데 비해 농축산업분야 비전문취업(E-9-3) 사증소지자 중 여성은 33%에 달한다. 노동환경이 취약하다고 알려진 돌봄. 예술흥행. 농업분야에 이주여성의 비중이 높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폭력 취약성
이주여성을 향한 폭력은 폭력상황 유발자에 대한 의존도와 관련이 높고, 그 의존성향은 체류자격의 불안정성과 크게 관련이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경제적, 사회적으로 권력우위에 있는 한국인 남성 배우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는 비단 한국인 배우자가 소득이 더 높거나 한국사회에 대해 더 잘 알아서일 뿐만 아니라 혼인유지여부와 배우자의 지원이 여성의 체류자격과 한국 국적 취득여부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노동비자를 소지한 이주여성노동자의 경우 고용주가 직장과 소득을 결정할 뿐 아니라 체류자격의 관리를 맡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우위 상황에 있다. 체류자격의 취소는 본국으로의 입국(혹은 미등록체류)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용주는 단지 현 직장과 소득을 결정할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미래의 직장과 소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3) 사회서비스 접근 취약성
2018년 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의하면 결혼이민자 중 77%가 동부에, 23%가 읍면부에 거주했다(최윤정외 2019). 전체인구의 3/4이 농촌지역보다는 도시지역에 거주하지만 내국인에 비해서는 도시지역보다 읍면부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통계청 2020). 여성 이주농업노동자의 숫자도 감안하면 특히 농촌지역에서 젊은 외국인 여성의 모습이 빈번히 보이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 여성은 언어능력과 한국의 사회제도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사회서비스 접근성에서 내국인보다 취약한 위치에 있다. 그러한 취약점에 농촌의 열악한 사회서비스 인프라까지 더해진다면 의료, 신변 안전, 경제적 위기 등 긴급한 상황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가정 내 권력 불균형과 이주여성의 체류자격 불안정성이 가정폭력에 취약한 환경을 만든다.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아내살인이나 가정폭력사건에 ‘존재하지 않는’ 신원보증제도가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체류자격의 불안과 젠더폭력의 취약성의 연결고리를 확인해준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출입국 통제와 국경수호라는 명목으로 결혼이주여성의 안전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는 것이다.
4. 나가며
2020년 발의된 장혜영안에서는 기존에는 없었던 ‘국적’ 항목이 차별금지사유로 새로 추가되었다. 성별, 출신국가, 고용상태, 피부색, 혼인상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 역학관계를 고려해야만 이주여성을 향한 복합차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성 역할, 성 기반 폭력, 성 규범을 포함한 젠더에 대한 논의, 출신국가와 고용형태, 직업 등을 포함한 계급의 의미에 대한 논의, 이러한 복잡한 요인들과 상호작용하는 인종화 과정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세 번째 연사인 배복주님의 <주변화된 여성과 차별금지법> 내용이다.
분명한 건 이 사회의 구조 환경 인식이 장애여성에게 차별을 경험하게 하거나 위축과 불안 불편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질문하게 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페미니즘을 만나고 교류해 왔다. 장애여성운동은 나에게 질문을 하고 내 삶을 이해하고 사회적 소수자들과 삶과 연결하고 연대하는 시작이었다.
1. 나는 왜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까 장애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가족 안에서도 어머니는 복잡한 감정을 갖게 한다. 나의 장애를 “당신의 죄”라고 생각했고, 평생 미안하다고 했다 어머니는 24살에 나를 출산했다. 어머니는 결혼을 했으니 임신을 했고 임신을 했으니 출산을 했고, 출산을 했으니 양육을 해야 한다는 의무만 있었다. 성교육도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보도 받아본 적 없었다. 무엇을 요구해야 하고 어떠한 결정을 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오로지 의무만 부여된 어머니에게 장애가 있는 딸은 고통의 상징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죄인처럼, 투명인간처럼 가족 곁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도 자녀의 장애에 대한 책임과 죄책감을 많은 여성이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대개 비장애남성보다 비장애여성이, 장애에 대한 긴장감이나 감각을 더 많이 경험할 것이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장애에 두려움, 불안, 불편함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녀가 장애를 갖게 되면 자신의 부주의와 부덕을 생각한다. 여성들의 이러한 감정과 인식을 갖게 되는 배경도 사회의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성별에 따른 역할규정은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하는 것이다.
2. 장애인으로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가? 장애와 환경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장애인 운동의 저항과 투쟁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긴 시간 학교에서 겪었던 차별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누적된 차별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실천이었고 생존과 존엄의 문제였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투쟁, 장애인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 투쟁, 장애인 탈시설 투쟁 등은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그 결과로 장애인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지원법 등이 제정되고 정책이 제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장애여성운동은 성인지감수성과 장애여성의 입장을 제안했다 그 중에서도 투쟁의 방식과 내용이 폭력적이고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논쟁적이었다. 지하철 점거, 쇠사슬을 이용한 신체결박, 도로점거, 노숙농성, 단식농성이 남성중심적인 투쟁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고 장애여성의 소외를 주장했다. 우리사회에서 비가시화되고 주목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삶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주장과 폭력적인 남성중심적인 방식이라는 주장이 토론되었다. 토론의 결과는 투쟁방식의 다양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젠더폭력에 대한 문제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3. 장애여성운동으로 페미니즘을 고민할 때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여성장애인 홈헬퍼서비스’는 결혼한 여성장애인의 임신, 출산, 양육, 가사 지원을 위해 도우미를 파견하는 사업이다. 여성장애인에게 만족도 높은 사업이라고 평가된다. 혼인으로 가구의 여성장애인이 가족 내에서 수행해야 하는 돌봄과 가사노동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여성장애인의 입장에서 가족구성원으로서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비장애여성과 결혼한 장애남성을 서비스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여성만의 역할로 고정되는 성차별적인 요소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성폭력피해 발달장애여성을 지원하면서 오랫동안 고민되었던 것은 평등한 관계 설정이었다. 발달장애여성을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선택과 결정을 하는 주체로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다. 이는 피해자를 지원하고 조력하는 반성폭력운동 활동가들에게도 어려운 고민이었다. 반성폭력운동 진영에서 ‘항거불능 상태의 장애를 이용하여 ~’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장애인성폭력 사건에서 ‘항거불능 상태’ 를 법원의 해석이 엄격해 가해자 처벌의 공백이 있어 항거불능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항거불능을 삭제하고 장애를 이용하여 성폭력을 한 자를 처벌하자는 요구였다. 하지만 이는 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법원의 판례태도를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하여 세력을 결집시키려 하고 있고.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공격을 가속화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상황은 처참하다. 갈등과 분열은 차별의 언어를 넘치게 하고 차별의 인지를 더디게 한다. 페미니즘의 가치는 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이고 그 감각은 모든 사회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언어는 혐오를 반대하고 페미니즘의 실천은 차별을 인지하고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차별금지법은 페미니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사람의 페미니스트로서, 정치인으로서, 장애여성으로서 페미니즘은 일상에서 차별의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페미니즘이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더 많은 영역에서 그 감각을 알려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4. 추가로 정의당에서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차별금지법은 차별사유와 차별의 영역 차별시정기구 차별구제조치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기에 기본법적인 성격을 갖는다. 정치인들은 사회적 소수자들은 혐오범죄와 괴롭힘으로 일상과 생존을 위협다고 실정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죽음의 행렬을 생각해보면 더욱 절박하다 코로나19로 장애인시설에서 집담감염으로 죽어간 장애인, 비닐하우스에서 죽어간 이주노동자, 실종된 발달장애인의 죽음,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고 변희수 하사와 고 김기홍님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면서 더욱 절실하게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차별금지법이 해결하고자 하는 불평등의 문제는 특정한 소수자 집단이 아닌 모든 사회구성원의 문제다. 무엇보다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 심각한 차별을 직면하는 소수자들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단일한 정체성으로만 살아가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중첩으로 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받는 한 사람이 있다면 차별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