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회가 주도한 역사 공정(工程)
1) 누가 왜, 무엇을 위하여 이런 역사를 썼을까?/권현익
로마 교회가 교회의 진정한 토대를 무너뜨리고 벌였던 수많은 일들, 즉 역사 속에 드러나 있는 그들의 비성경적 신앙과 교리, 수천 년간 저지른 배교와 부도덕, 그들의 불의, 불법, 불합리와 부조리들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는 로마 교회만이 유일한 정통 교회가 되고, 유럽의 모든 개혁주의는 마니교 따위를 근간으로 하는 이단 집단의 아류 내지는 그런 이단 집단의 비루한 후예들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라면, 오늘에 와서 보게 되는 유럽의 개혁 교회에는 면면한 역사라는 것이 없다. 그들은 최근에 갑자기 유입되어 발생한 신흥 개혁 교회 집단이 되거나 ‘난데없이 출현한 사도들’의 후예들이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16세기 개혁자들도 별다른 족보가 없는 난데없는 예언자들이 된다.
이것은 참 희한하기 짝이 없는 역설이지만, 따져보니 이건 이미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놀라운 전통(!)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수 세기 동안 꾸준하게 진행되어 온 역사 조작의 산물임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목적을 갖고 조작한 프로파간다가 모든 역사적 사실의 근거가 되고, 그 근거들은 또 다른 역사 서술의 증거가 되고, 그것들이 다시 또 다른 증거들을 확정하는 사료가 되고 있음을 보게 될 때마다 소스라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놀라운 형태의 서큘레이션(역사적 순환)이 유독 개혁자들의 시대와 역사를 다루는 자료들에 더 치밀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우리 역사를 더욱 처참하게 만든다. 더 황당한 것은 개혁자들의 자랑스러운 후예로 자처하는 이들이 이런 사실들에 오히려 무심 무념하여, 아예 초연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는 정말 할 말을 다 삼키게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10세기 전후의 교회사, 그리고 그 이후 선배들의 역사를 다루면서 경험하고 있는 현실만을 말한다면, 우리는 저런 역설적 역사를 수백 년 동안 반복하여 써 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다른 쪽을 살피려는 노력은 죄다 반역이거나 무식의 소치라고 무시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이어 받은 것들만 흔들리지 아니할 역사적 사실과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상당수 개신교 역사가들의 입장이며 현실이다.
로마 교회의 이런 엄청난 공작이 가장 시범적으로, 그리고 아주 효율적으로 발휘된 역사 현장의 하나가 바로 우리가 지금 다루려는 ‘중세 후기 개혁 전 개혁 시대’임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그리고 놀랍게도 거의 전무(全無)하다. 맨 정신을 갖고 이 사실을 들여다보고 나면 기절초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증거들과 증인들은 닥치는 대로 불태우거나 다 죽여 버리고, 그들의 흔적들과 사료들은 보이는 대로 다 묻어 버렸으며, 근근이 남겨진 사실들조차 쥐 잡듯이 찾아내어 다 찢어서 덮어 버린 채, 조작(操作) 역사를 편집해서 쓰레기더미처럼 만들었다. 그러고는 복음을 위해 박해받은 자들이 아니라 ‘이들은 이단자들이고 마녀들이며 악마와 사단의 무리들’이라는 부서진 간판들과 표지판을 세워, 또 하나의 어두운 역사 흔적들이랍시고 여기저기 무더기로 쌓아 두었다. 신약 성경(요8:44,계12:10)이 단적으로 ‘참소하며 거짓말하는 영들’로 지적했던 바로 그 자와 그 자의 졸개들이 한 짓이 아니고 이게 더 무엇일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안타깝게도 여기에 보기 좋게 휘말려 버린 자들은 다 누구인가---?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35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