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그리는 사람들
박 종 숙
아침 신문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엿보는 통로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 안에서 일어나는 세계 곳곳의 정세까지 대충 짚을 수있는데 그 기사들을 꼼꼼히 살펴보자면 적어도 2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부담스러워서 관심 있는 분야만 읽으려 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요즘은 코로나가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으로 경제가 불안해지고 정권이 바뀌면서 물가가 오르고 당쟁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도 걱정이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중국 사이 대립 된 변수에 낀 우리나라가 나갈 길은 안개 속을 더듬는 것 같아 어떤 불똥이 튈까 신경이 쓰인다.
오늘은 신문을 넘기다 보니 고딕체로 된 활자가 눈길을 끈다. ‘아이들이 쓰레기 뒤지는 게 일상’이라는 타이틀 아래 푸른 옷의 부르카를 입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린 채 유엔난민기구 캠프로 정착 지원금을 받으러 몰려든 사진이다. 지난해 텔레반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비극의 도를 넘어섰다고 한다. 당시 탈출을 꾀하던 이민자들의 모습이 TV에 생생하게 비쳐졌는데 미국이 자국 국민들을 구출하려고 도착한 비행기가 이륙하자 외부에 매달렸던 난민들이 그 높은 고공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난다.
텔레반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약속은 커녕 강제 결혼을 시키고 자유로운 의상을 걸쳤던 여인들이 문밖 출입은 커녕 부르카를 입어야 하고 남자들은 돈을 벌겠다고 국경을 넘다가 적발되어 감금당하고 구타당하는 예가 허다하다고 한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원조를 중단하자 경제가 추락하면서 아이들은 먹을 것을 찾으려고 쓰레기장을 뒤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전쟁이 가져온 불행으로 시민들의 참혹한 생활은 끝이 없는데 자유민주주의가 붕괴된 지역에서 탈출한 이민자들은 살아갈 일이 막막한 실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다시 전쟁에 휩싸이면서 이민자들의 행렬이 국경을 넘어 세계로 번지고 있다.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 역시 미사일을 계속 쏘아대면서 불안을 조성하고 있으니 우리도 이들과 같지 않으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래전 서울 도심을 지나다가 유엔난민기구에서 사진전을 하며 후원자를 찾는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걸레쪽처럼 시궁창에 틀어박힌 시체들, 팔 다리가 성치 않은 상처를 입고 피흘리는 사진들의 비참함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하여 매달 3만원을 후원하겠다고 적은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작은 금액이지만 나의 후원금이 한 사람의 이민자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리라는 생각이다.
유엔난민 기구에서는 요즘 몇 개월에 한 번씩 세계 곳곳에서 어렵게 정착해 가는 이민자들 삶을 다룬 소식지를 보내준다. 전세계의 난민 69%가 시리아, 베네스웰라,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미얀마에서 발생했다는 보고인데 이들은 대부분 출신국 주변국에 체류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개발도상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난민들은 폭력과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강제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지만 거의 18세 미만이어서 기본적인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반세기 전에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은 후 수많은 실향민이 발생했고 그들은 고향을 떠나 살아오면서 평생 헤어진 가족을 잊지 못해 세월을 원망하며 살지 않았던가. 이제 대부분 사망하고 생존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전쟁은 인간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투명한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이번 달 소식지에는 두툼한 봉투가 들어있어서 뜯어보니 한해를 마감하면서 이민자들이 후원자들에게 보낸 코바늘뜨기 펜던트가 들어있었다. 별건 아니지만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가방이나 벽에 달 수 있게 고리가 달린 칠면조 팬던트를 뜨기 위해 한 끼 식사를 거르진 않았을까 가슴이 짠해진다. 가까스로 기근을 벗어났을 그들이 작은 정성으로 후원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고 생각하니 눈물겨웠다. 나는 그 귀중한 선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간간이 이는 내 만용을 점검하리라 생각하며 책상 앞에 걸어 놓았다.
국가의 운명은 국민에게 달려있다. 현명하지 못한 국민이 제 앞가림에 눈이 어두워 나라가 망하는 것도 모르고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며 법을 어기게 되면 무질서가 판을 치고 불법 천지가 되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다. 지혜롭게 뜻을 세우고 현안에 대처할 힘을 길러야 하는데 당장 눈앞에 이익만 생각하다 보니 외부의 침략을 받아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올바른 지도자를 뽑는데 정의롭지 못하면 나라가 휘청거리는데 그제야 땅을 치고 후회하면 무얼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물질 만능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이든지 원하면 구할 수 있고 먹고 싶거나 입고 싶은 것을 당장 사들일 수 있는 환경에 있다. 그런데도 끝없는 욕망은 하늘을 찌르는 듯 하다. 물욕에 어두워 방탕하고 타락했던 역사를 망각하고 흥청거리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참한 꼴을 면하려면 나라 잃은 이민자들의 참혹한 현실을 보며 유비무환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