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은혜를 아는 마음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같이 지내는 대중 스님들께서 나를 경전(Sutta), 계율(Vinaya), 아비담마(Abhidhamma) 세 가지를 저장한 진리의 은행(담마 반따가리까)이라는 별칭으로 칭찬해 주신다. 평생 배우고 모셔 왔던 경전 공부 때문에 그런 칭호를 얻은 것도 사실이나, 부처님과 함께 진리의 총사령관이라고 불리는 마하 사리뿟따 존자의 은혜를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법을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너그러이 하시어 나에게 반복하여 말씀해 주셨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어려운 부분은 마하 사리뿟따 존자께서 분명하고도 깨끗하게 구분해 주셨으며, 법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듣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뛰어나지 못하고 중간 정도의 지혜를 가지고 있을 뿐인 내가 이처럼 훌륭하고 의지할 만 한 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교단에서 가장 높은 특별한 칭호를 따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던 두 분의 가장 높은 제자가 오시는 모습도 그분에게서 직접 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전해들은 말을 기초로 한 다음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만난 것 모두를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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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단의 그늘 아래에서 그와 같이 높으신 분들과 오랜 세월 같이 지내 왔던 것처럼 그분들의 은혜 역시 말로서 다 드러낼 수 없을 만큼 많다. 은혜가 무한한 가운데 내가 마음을 다해 존경하는 이유를 먼저 말하겠다.
갖가지 사상과 생각으로 각기 의지하거나 모시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더러 숲에도 예배하고, 산에 제사를 지내는 이들도 있다. 해와 달, 별 등에도 예배한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만든 주인이 있다고 생각해서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예배하고 의지하려 한다. 혹은 어느 것 하나를 지정하지 않고 사방을 향해서 절을 하며 지내는 이들도 있다.
마하 사리뿟따 존자는 마음이나 사상에 집착되어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거룩하신 부처님의 가장 큰 제자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높으신 분의 행동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였다.
우리 법랍이 적은 비구들은 이 행동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제각기 짐작과 억측을 하기도 했다. 더러는 '산자야 스승의 그릇된 견해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견문과 지식이 넓지 못하고 법랍이 적은 비구들이 생각하고 의심한 그분의 태도는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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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사리뿟따 존자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 앗사지 존자님이 계신 곳을 향해 절을 세 번 하신 다음, 그분이 계시는 곳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주무시는 것이었다. 존경하는 존자님이라 감히 그분 앞에서 말은 못했지만, 안 계시는 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퍼져 마지막에는 부처님도 아시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행동을 한 사리뿟따 존자를 부르시고 의심하는 대중들 앞에서 물으셨다. 존자께서는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 기억할 만한 게송 하나를 말씀하셨다.
삼마삼붓다 부처님의 법을
그분에게서 듣고 담마를 깨달았다.
불을 섬기는 브라만들이
날마다 불을 섬기듯이
그 은혜를 알아 언제나 머리 숙여 예경한다.
지혜 부분의 공덕이 뛰어난 큰 제자가 다른 이의 은혜를 아는 선한 일을 위하여 축원 게송을 읊으신 부처님께서는 전에도 사리뿟따 존자의 선업을 보시고 '사두, 사두.'라고 칭찬하신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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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라는 이름의 나이 많은 브라만이 교단에 들어오고 싶어서 비구들께 간절히 청을 드렸다. 먼저 비구가 된 스님들은 좋은 나이에 온 이들은 쉽게 비구를 만들어 주었지만 라다 노인을 비구로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 노인에게는 의지할 만한 것이나 힘이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쭈그러진 가지나 뭉툭한 칼'처럼 어디에도 쓸 만한 구석이 없었다. 이런 늙은이를 교단에 받아들이면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비구들이 생각한 대로 라다 노인에게는 앉아서 먹을 만한 재산도 없었으며, 자식과 아내조차도 그를 좋아하지 않아 늙어서 밥만 축낸다고 집에서 쫓아냈다.
이 딱한 노인은 이제 다른 이가 주는 대로, 먹을 것이 있을 때는 먹고 없을 때는 굶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라다 노인이 비구가 되려는 것은 이러한 고통을 두려워한 것만은 아니었다. 목숨이 있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수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자기가 꼭 하고 싶었던 비구 생활, 자기가 존경하는 수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 라다 노인은 마시거나 먹지도 못할 만큼 풀이 죽어 있었다. 피부는 말라서 더욱 검어지고, 피가 모자라 누렇게 되었으며, 살이 빠져 살갗이 쭈그러지고 힘줄이 튀어나와 온 몸에 그물을 파놓았나 생각될 정도였다.
어느 날 그에게 살아갈 길이 생겼다.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그 노인이 부처님을 뵙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이 브라만 노인의 믿음을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그를 비구로 만들어 줄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실 때 누구도 머리를 들지 않았다. 그 중에 나(아난다 존자)도 들어 있었다.
부처님께서 마하 사리뿟따를 불러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이 브라만이 베푼 은혜를 어느 한 가지라도 기억하는가?"
"기억합니다, 부처님! 라자가하에서 걸식할 때 제자에게 공양 한 주걱을 보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 누구도 해주지 않는 이 노인을 제자가 책임을 지고 비구를 만들어 주겠습니다. 부처님!"
"사두(착하구나), 사두. 사리뿟따는 다른 이의 은혜를 아는구나!"
지혜 제일인 큰 제자를 부처님께서 착하다고 칭찬하신 다음 비구가 되는 일에 관한 계율 하나를 정하셨다.
"비구들이여! 전에는 삼귀의로 비구를 만들어 주는 것을 허락했었다. 그 허락을 오늘부터 버린다. 비구가 되는 의식 절차에 의해 비구를 만들어 주도록 나 여래가 허락한다."
교단 전체에 비구가 되는 의식 절차에 의해서 제일 처음 비구가 될 기회를 얻은 이가 바로 그 늙고 가난한 브라만이었다. 그 늙은 브라만을 비구로 만드는 일에는 사리뿟따 존자의 얼굴을 봐서 많은 비구들이 둘러서서 도와주었다.
그러나 비구를 만든 다음은 사리뿟따 존자 한 분의 책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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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육십, 법랍 일 년'인 만큼 라다 비구는 모든 것에서 다른 이의 뒤였다. 얻는 대로 공양을 법랍 순서대로 나눌 때도 마지막에 가장 낮은 물건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래서 마하 사리뿟따 테라께서 나이가 많은 늙은 제자를 위해 적당한 잠자리와 자신의 몫인 음식을 나누어주어야 했다. 그분은 승가로 들어오는 물건은 그 제자에게 주고 자신은 직접 걸식하여 잡수셔야 했다.
오직 혼자 남은 그 늙은 노인 한 사람을 이렇게 돌보아 준 덕택에 큰 달님 옆에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가 반짝이게 되었다. 우기가 끝난 다음 밭갈이를 시작했지만 스승을 잘 만난 라다 비구의 밭갈이는 곧바로 잘 되어 훌륭한 추수를 거두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칸다왁가 라다 상윳따를 배웠거나 들은 이는 라다 비구의 그 늦은 밭갈이의 수확에 만족함을 느낄 것이다.
라다 비구가 섬세하고 깊은 담마의 뜻을 차례차례 여쭈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자세히 대답해 주셨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가르침의 지혜를 차례차례 열도록 이익을 주셨기 때문에 먹고 마실 것조차 없는 늙은 나이에 비구가 되러 온 노인이 이익을 주는 데 첫째가는 사람이라는 특별한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밥 한 주걱의 은혜조차 잊지 않는 사리뿟따 존자께서 가장 높은 진리를 깨닫게 해준 앗사지 존자를 어떻게 잊고 그냥 지내실 수 있겠는가? 어떻게 존경을 드리지 않고 지낼 수 있겠는가?
Vinaya mahāvagga
첫댓글 고맙습니다
사두사두사두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