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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잠들고 있는 산 키나발루를 가다」
2003. 8. 5(화) 새벽 3시 우리 대원들은 경찰서 부근에 집결하였다. 대원은 000 회장을 비롯한 18명이었다. 우리는 인원을 점검하고 관광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잠이 덜깬 우리들은 차장에 얼굴을 기대고 잠을 청하고 있다. 가는 도중 천안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차는 계속해서 달린다. 성남 부근을 지나자 짙은 안개가 도로를 가로막는다. 가끔 고속도로 톨게이트 주변에서 아침 청소를 하는 여직원들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새벽은 여자들이 지킨다?).
영종도 입구에 차가 다다르자 짙은 안개로 인하여 시야가 거의 가려진다. 이건 도대체 차가 구름 위를 달리는지, 바다 위를 달리는지 구분할 수 없다. 거의 모든 차들은 비상등을 켜고 달린다. 7시가 조금 못되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출발할 쿠알라롬루르행 비행기 시간은 당초 9시 15분인데 안개로 인하여 12시가 되어서야 출발한단다. 지연되는데 대한 보상차원으로 항공사에서 1만원이내의 구내식권을 주었다. 그래서 공항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12시쯤 비행기가 이륙하였다. 중간 경유지인 쿠알라롬푸르 까지는 6시간이 소요된단다. 나는 비행기의 좌석사이가 좁아서 다리를 제대로 펼 수 없어 매우 불편했다(이런 때는 키가 큰게 손해구만). 바다 위를 비행기가 날아 현지시각 오후 5시경(우리나라보다 1시간 시차가 늦음) 쿠알라롬푸르 공항에 도착했다(여섯 시간을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 버티었음). 그 곳에서 우리는 다시 6시 45분발 코타키나발루행 비행기를 갈아탔다. 3시간 정도 걸린다고 알고 탔는데 2시간 반 정도 가자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바깥의 기온은 후끈한 아열대기후가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출구를 나와 기다렸다. 먼저 온 짐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000 대원이 짐 찾는 곳을 묻던 중 여기가 코타키나발루가 아니라 중간 경유지인 라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서울에서 코타키나발루행 직항로가 있다고 하며, 10월부터는 부산에서도 항로가 개설된다고 한다). 우리는 서둘러 타고 온 비행기로 향했다. 다행이 비행기의 경유시간이 길어서 다시 탈 수 있었다. 정말 비행기를 놓쳤더라면 우리의 일정이 크게 차질이 날 뻔하였다. 20분 정도 비행기가 날아 목적지인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했다(정말 비행기가 지겹다). 마중 나온 가이드와 같이 버스를 갈아타고 숙소인 Burburry호텔로 향했다. 밤10시 30분경 호텔에서 우리는 짐을 풀었다. 함양에서 온 000선생과 같은 방을 배정 받았다. 지급 받은 소주 한 팩씩을 놓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였다. 어제 밤도 잠을 거의 자지 못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2시가 가까이 되어서야 겨우 잠을 청했다.
8. 6(수) 5시 반경에 모닝콜을 받았다. 세수를 하고 6시 30분부터 식사를 시작되었다. 현지 식사라서 빵이며, 과일, 밥 등이 나왔으나 밥은 왠지 밥알이 날아다니는 것 같고(동남아시아 쌀이 거의 다 같은 모양임) 다른 음식들도 입맛에 맞지 않았다. 몇 일 동안 음식이 안 맞아서 어쩌나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식당에는 종업원이 아무도 없다. 마치 우리가 식당 주인 같다. 아마도 더운 나라 사람들이라서 좀 게으런 것 같다. 뒤에 들은 애기지만 여기 사람들은 10시쯤이나 되어야 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호텔에서의 물가는 매우 비싸다. 호텔에서 생수 작은 것 2병을 먹었는데 미화 5달러라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3달러를 주어야 했다(우리가 뭘 부자나라 봉이라고). 아침식사를 마치자 서둘러 가져온 짐의 일부를 호텔에 맡기고 버스를 타고 우리의 목적지인 키나발루산을 향했다.
시내를 지나자 말레이자아 민속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제법 띄었다. 여자들은 주로 민속의상을 입어서 인지 잘 생긴지를 알 수 없다. 지나가는 길옆에 수상가옥이 보였다. 매우 지저분해 보였다. 정부에서 주택을 마련해 주어도 팔고는 다시 수상가옥으로 옮겨온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여기저기에 사원들도 보이고 빨간 지붕의 대학도 보인다. 도시는 한적하고 넓다. 곳곳엔 바나나나무와 야자나무가 즐비하다.
버스로 한참을 달려 도시를 빠져나가자 산길이 시작된다. 가이드의 안내를 들으면서도 우리의 눈은 양쪽 차창을 향하고 있다. 산 하단에서부터 고사리류, 바나나나무, 각종 활엽수가 무성하다. 산길은 왕복 2차선의 포장도로로 꼬불꼬불하게 산 정상을 향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얼마를 올라가자 멀리 키나발루산의 모습이 보인다. 지나는 길옆에는 가끔씩 외딴 가옥들이 있고, 멀리서는 화전민들이 일구고 있는 밭들도 보인다. 1시간쯤 차를 달리자 산의 정상이 제법 뚜렸하게 눈에 들어온다. 멀리 건너편 산촌이며, 까마득히 깊은 계곡들이 보인다. 산은 정말 크다. 다시 30분쯤 올라가자 이젠 제법 산의 정상이 가까이 보인다. 그리고 멀리 매우 길다란 폭포가 보이는데. 가이드에 말에 의하면 높이가 400m는 된다고 한다. 정말 웅장한 폭포이다.
차를 세워 열대과일인 람브딴과 새끼바나나를 사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말레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먹는 바나나는 사료용으로 쓴단다). 과일은 맛이 괜찮았다. 멀리 산허리에 하얀 구름이 머무르고 있는데 그곳이 우리가 묵을 산장이란다. 우리가 구름 위에서 잠을 자게 되는 셈이다. 이곳은 밀림이 매우 험하고 깊어서 식인종(목 사냥부족이라 함)도 있고 몇 년 전인가 이야기하던 2차 대전 때부터 일본군이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숨어살던 곳이라고 한다.
길가에 롱하우스라고 하는 길 다란 집들이 보이는데 여기에는 원주민 부족들이 살고 있으며, 집의 한쪽 맨 끝엔 족장이 그 다음부터는 서열대로 산다고 한다. 방문이 없어 밤에 야릇한 풍경거리도 있다고 한다(똑 같은 입장인데 부끄러울 게 뭐 있나?). 키나발루산 비탈에는 Dusuns족이나 Kadazans족이 살고 있으며, 그 들은 이 산이 고인의 영혼을 위한 영원한 안식처라고 믿고 있으며, 산을 신성시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 서쪽 건너편엔 키나발루 앞산이 있는데 높이는 우리나라 백두산보다 높은데도 키나발루의 그림자에 가려서 매우 낮아 보였다. 9시경 키나발루 공원관리사무소(1,558m)에 도착했다.
키나발루공원은 넓이가 754㎢ 으로서 Sabahd주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서, 저지대에는 열대지역으로 저지대우림이고, 중간지역은 온대지역으로 저산대 참나무와 무화과나무, 철쭉나무와 야생열매들이 많고 고지대에는 침엽수림과 고산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 천국이라고 한다. 카나발루산을 정복 하는 데는 2일정도가 걸리는데 중간에 산장에서 1박을 하여야 한다. 우리는 산행신고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아마도 산행할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소형버스가 부족한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이 산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몇 개월 전에 예약을 받아 하루 200명에 한하여 입산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나라보다는 백 배 나은 것 같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렇게 기다리면 항의하고 난리피고 당장 케이블카 놓자고 할 것 같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는 건너편의 거대한 카나발루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주변에는 세게 각국의 산악인들이 모여 있었다(어떤 대원은 벌써 대만 아가씨와 e-Mail 주소를 주고받았다나). 000 산악대장과 000 총무가 수속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10시 반경이 되어서야 우리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현지가이드 3명도 배정 받았다. 등반객 8명당 1명씩의 현지가이드를 배정 받아야 하는데 1명이 초과되어도 반드시 1명을 추가로 배정 받아야 한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고용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대원들의 목에는 관리사무소에서 지급한 번호표를 매고 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주변 숲을 둘러보니 정말 대단했다. 수 미터가 넘는 고사리류, 열대우림의 나무들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버스로 10여분 오르자 산행출발지인 팀포흔게이트(해발 1,866.4m)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을 숙소인 라반라타산장까지는 7개의 휴게소가 있는데 여기는 그 첫 번째 휴게소이다. 우리들이 거쳐 갈 휴게소는 갈수록 거리가 길어진다고 한다.
다시 인원점검을 마치고 이제부터는 걸어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산행이다. 마음이 설렌다. 날씨가 지금은 조금 무덥다(같이 가던 000 대원은 우리나라 벼 수확기의 날씨 같다고 한다). 산길은 두 사람이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로서 조금은 다듬어진 길이었다. 길가에는 이제 저산대 참나무 숲을 벗어나서 나무줄기들이 서로들 꼬여 있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이끼, 양치류 및 난 종류들이 기생하고 있으며, 이름 모를 각종 활엽수가 빽빽히 들어서 있다. 마치 영화 속의 쥬라기공원을 보는 느낌이었다. 새들도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말 말로만 듣던 정글에 오긴 왔나보다. 타잔 흉내라고 내보고 싶어진다.
가파른 길을 올라서 한참을 가니 제2휴게소가 나타났다. 휴게소에는 조그만 원두막형태의 건물이 있고 산 위에서부터 파이프를 연결시켜 내려온 물탱크가 있다. 휴게소에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길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산행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사를 나누곤 했다. 때로는 짦은 영어실력(대원 중 에는 제법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앞에서 말한 코타키나발루라는 말 중에서 '코타'는 도시라는 의미이고 '키나발루'는 신이 잠든 곳 이란다. 그래서 산에 올라서는 '야호'를 외치지 말라고 한다. 신의 잠을 깨우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정상도 묻지 말라고 가이드는 말한다. 해가 뜰 때가 되어야 정상이란다.
어째든 우리는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다.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벌써부터 자신들의 새로운 산행기록이 되고 있다. 벌써 우리의 한라산보다 높은 해발 2000m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중간에는 벌레잡이 식물인 낭상엽도 보인다(제법 큰 것은 사람 머리통 반만 하다). 그리고 이곳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꽃인 Rafflesia라는 꽃이 있는데 이 꽃은 15개월 동안 꽃 봉우리 상태로 있다가 7일간 개화한다고 하였으나 불행히도 우리들의 등산로에서는 그 꽃을 보지 못했다. 산행 길옆에는 각종 난 종류가 예쁜 꽃을 피우고 있고 몇 십 미터나 되는 나무들에는 난과 갖가지 기생식물들이 나무를 감싸고 있다. 제3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점차 우리들의 산행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대원들의 말소리가 작아지고 대신 숨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지 가이드들은 누군가의 배낭을 대신 지고 있다. 가이드는 2,500m가 넘어서면 고소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벌레잡이 식물)
제4휴게소를 지나면서 대원 중 일부는 배가 고프니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고 하였다. 우리의 일정표에는 제5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힘들어도 계획대로 하자며 산행을 계속했다. 고사리종류의 식물들이 마치 커다란 나무처럼 여기저기에 서있고, 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괴상한 새소리 등 정말 혼자라면 음산한 기분에 견딜 수 없는 그러한 분위기였다. 이 숲엔 코끼리나 기린 등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이 거의 다 살고 있다고 한다. 정말 숲속에 혼자 던져지면 도저히 자신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으스스 하다. 그 놈의 이상한 새소리는 왜 자꾸만 타잔의 이웃집 소리를 내는지···
제5휴게소인 라양라양 산장(해발 2,702.3m)에 도착하였다. 휴게소마다 등반객 들이 모여 있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가져온 점심도시락을 먹는다. 도시락은 한식으로 갖가지 반찬과 고추장까지도 들어있어 가이드가 많이 신경을 썼나보다. 가이드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가이드는 한국의 관광회사에서 3년째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말레이시아가 좋아서 한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나도 처자식만 없으면 생각을 좀 해보고 싶 구만).
식사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하자 배도 부르니 자연 산행이 쉽지 않다(내배 부른데 무엇이 아쉬우랴?). 숲의 형태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십 수 미터의 관엽(?)식물이다. 길은 다소 좁고 가파르다. 키나발루는 열대우림 기후와 4,000m를 넘는 고도의 영향으로 다양한 고산식물이 자생하는 세계3대 자연식물원에 속한다고 한다. 갈수록 경사가 심하여 숨이 차지만 그래도 역시 산은 좋다. 나는 '산에 오면 결재 받을 일 없고, 마누라 바가지 긁힐 일 없어 좋다'고(그렇다고 우리 집사람이 바가지 긁는다는 이야기는 아님)하여 주위 사람들이 한바탕 웃는다. 아무튼 숨이 차고 등에 땀이 차도 역시 나에게서 산은 좋은 친구임에 틀림이 없다. 제6휴게소에 다다르니 구름이 허리를 감고 있는 웅장한 산 정상부분이 나타났다(실제는 정상이 아니었음). 산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한참을 더 올라야 한다는 게 힘든 현실이다. 오늘 등반계획 중 마지막코스인 제7휴게소를 지나니 이제 산이 바로 내 눈앞에 다가와 있는 듯하다. 등산로 주변은 2∼3미터정도의 작은 나무들이 이루어져 있다. 힘들었지만 다 왔구나 싶어 신나게 경사진 산을 올랐다. 4시 20경 나는 일행 중 제일 먼저 숙소인 라반라타산장(해발 3,272,7m)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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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 입구에서 커다란 바위 위에 배낭을 벗고 산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산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산의 서쪽 편에는 벌써 붉게 저녁노을이 물들어가고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산마을 위엔 하얀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있다. 우리가 구름 위에 위치하고 있음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다. 주변에 영국에서 온 젊은이들도 있어서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도 한다. 우리는 피부 색깔과 언어가 다르지만 모두 친한 친구처럼 보인다. 하긴 공자님도 논어에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심성이 유순하다고(표현이 맞는지?) 하였다는데.
산장에서 우리는 뷔페식의 저녁을 먹는다. 주변에는 군팅라가단, 파나라반, 버링턴 등의 산장이 또 있으나 이들에는 식당이 따로 없어 우리가 있는 산장으로 식사를 위해 모여든다. 그래서 식당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Climber들이 저마다 정상정복을 위한 꿈을 가지고 참가하여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다. 이곳에는 생수 값도 매우 비싸서 작은 물병 하나에 2달러라고 한다(물=비 많은 나라에서 웬 물 값은 이리도 비싼지). 돈도 아깝고 해서 주방근처에서 큰 물통에 있는 것을 조금 부어넣었다. 2층으로 올라와 얼굴을 닦고 내일의 짐을 챙긴 뒤 잠자리에 들었다. 밖에는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면 관리사무소에서 산행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젠장 고생 다하고 목표달성을 못하고 마는지 정말 걱정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을 못 가다니.. 이런저런 생각도 있고 해서 몇 일째 설친 잠을 청하려고 해도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다른 대원들도 고소증세 탓인지 몰라도 머리가 아프고 잠이 안 온다고들 한다. 방음이 전혀 안된 탓으로 옆방 여자대원의 기침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있다. 감기가 심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생각하며 12시경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8. 7(목) 인기척 소리에 잠을 깨었다. 새벽2시 밖은 깜깜하다. 우리는 가져온 컵 라면을 하나씩 먹고 산을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산을 오르려면 보온의류(영하 5。c까지 내려가기도 함)와 랜턴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어제까지는 신발을 편한 것을 신었으나 오늘의 나머지 구간은 전체가 바위산이므로 반드시 등산화를 착용하게 좋을 것 같다. 어제의 힘든 산행 때문인지 같이 온 남해에서 온 여자 대원은 정상정복을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다행히 비가 거친다.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대원 17명은 머리에 헤드랜턴을 두르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깜깜한 밤이다. 오로지 불빛에 의존하고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산을 오르고 있다. 가파른 나무계단과 돌계단이 호흡을 거칠게 한다.
해발 3,000m가 넘으니 산행이 쉽지 않다. 가이드는 되도록 천천히 올라야 고소증이 덜하다고 말한다. 이를 대비하여 미리 두통을 먹은 대원들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미리부터 약을 먹지는 말라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바위절벽에 매달린 로프에 몸을 의지하여 한걸음 한걸음씩 이동하고 있다.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낭떠러지가 얼마나 깊은지 몰라 등골이 오싹하다. 3,600m지점에 이르자 내 뒤에서 오던 000대원이 갑자기 구토를 시작했다. 다른 대원들은 고소증이라고 하면서 등을 두드려 준다. 이 후에도 그 대원은 몇 차례 그러한 증세를 나타내었다. 이곳은 이틀 만에 2,300m의 고도차를 극복해야 하므로 대부분 고소증세를 느껴 두통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산행이 계속되자 뒤에서는 자꾸만 '선두 제자리'소리가 들려온다. 군대생활 후보생시절에 밤중에 100리길 완전군장으로 행군을 하여 유격장 가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뒷사람은 앞사람이 빨리 간다고 고함을 지르곤 하였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아주 다르기는 하지만 어째든 뒤에 오는 사 람들의 호흡이 거칠어지고들 있는 것은 사실인가보다. 깜깜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이어져 있는 흰색 로프에 몸을 의지하며 산행을 계속하고 있다. 새벽 4시20분경 드디어 우리는 등반기록을 측정하는 산장인 시얏시얏산장(해발 3,688.1m)에 다 달았다. 이 산장에서는 말레이지아 정부(공원관리사무소)에서 우리는 산행을 점검하여 산행증명서를 발행해주기 위하여 점검원이 나와 있었고 각자 목에 걸고 있는 인식 번호표로 본인 여부를 확인시키고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4,000m이상의 고지에 오르자 밤하늘의 별들이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유난히 크게 보인다. 누군가가 마치 알퐁스 도데의 '별'이야기와 같다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이제 새벽이 가까워져 동녘하늘이 제법 훤하게 보이면서 눈앞에는 어글리 시스트봉(4,032m), 당나귀 귀봉(4,054m), 킹에드워드봉(4,068m) 등의 웅장한 봉우리가 펼쳐진다. 그리고 멀리 산 아래에는 도시의 흐릿한 불빛이 구름사이로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자 남봉인 세인트존스봉(4,090.7m)가 나타나고 건너편 먼 곳에선 구름사이로 번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번개는 마치 부싯돌로 불을 만드는 형상이다. 결국 번개도 우리와 비슷한 높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번개도 알고 보니 별거 아니 구만).
동녘하늘이 차츰 붉으스레하게 물들고 있다. 오늘은 일출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우리는 헤드랜턴을 벗고 널따란 바위 언덕을 오르고 있다. 산등성이를 넘으니 우리의 목적지인 로우스봉(4,095.2m)이 보이기 시작한다. 벌써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불빛이 저 멀리 보인다. 널 다란 바위 벌판이 끝없이 펼쳐진 가운데 우뚝하게 정상(바위산)이 솟아있다. 거의 다 왔다는 생각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지친 줄도 모르고 최대한의 산행실력을 발휘하여 험난한 바위산을 기어오르고 있다.
6시가 가까워진 무렵에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산 정상은 150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대량의 화강암이 약한 암반을 뚫고 위로 상승하고 있어 지금도 매년 5㎜가량씩 솟아오르고 있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산은 빙하의 침식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끝내고 자리를 잡은 뒤 일출을 기다린다. 기온이 매우 낮다. 우리는 방한복의 옷자락을 더욱 여민다. 산 아래는 아열대 기후로 30도를 넘고 있건만 산 정상은 영하의 기온이다. 산정상은 보통 영하 5도에서 10도 사이 정도란다. 동녘하늘과 시계를 응시하고 있을 즈음 정확하게 6시7분 하늘 끝에서 드디어 찬란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일출이야 어디서 보건 비슷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고생하고 특히 어젯밤 비가 오는 것을 보면서 걱정하던 생각 끝에 보는 일출은 더욱더 기분이 좋다. 여기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건 일 년에 1달이 채 안 된다고 하니 우리는 매우 운이 좋은 편이다. 일출과 아울러 보이는 정상 아래의 현기증 나게 깊은 계곡 또한 장관이다. 천길 아래의 계곡으로부터 솟아오른 돌기둥, 돌무덤 사이로 솟아난 기이한 나무들 정말 황홀한 기분이다. 해가 한뼘 정도 떠오른 뒤에야 우리는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을 하면서 둘러보는 산의 정경 또한 너무나도 웅장하다. 이 커다란 산이 하나의 통 바위로 형성되어 있단다. 그 위에 각각의 형상들이 어루어져 있고 산을 정복했다고 흡족해하는 우리 인간은 한낱 모래에 불과한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산을 내려오는 것도 쉽지는 않다. 산장에서 아침을 먹는다.
짐을 정리하여 9시에 산장을 출발 하산을 시작한다. 날씨가 매우 쾌청하다. 어저께 올라온 산길을 우리는 다시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산장에서 산 아래까지는 3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하산 길도 매우 힘이 든다. 다들 다리가 아픈 모양이다. 산을 오르는 외국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올라갔던 6개의 산장을 거쳐 내려왔다(오늘은 내려올수록 산장간의 거리가 짧아서 좋았다). 어제의 출발지점인 팀포흔게이트에서 버스를 타고 공원관리 사무소로 돌아와 각자 산행증서를 발급 받았다. - 키나발루산 4,095.2m 등반, 말레이시아 사바주 - 모두들 기분이 좋다. 다음 평생에 이렇게 높은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들 한다.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버스를 타고 근처 산 아래의 중국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산행완주기념 맥주를 마셨다. 우리의 기본목표를 달성한 듯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오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정말 또 다시 운이 좋다는 말들을 아끼지 않는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비를 피할 수 없었을 텐데···. 2시간동안을 차를 타고 산악도로을 내려왔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다가 시내에 다 달아서야 그친다. 마치 우리를 배려하는 듯하다. 그저께 묵었던 호텔에서 맡겨둔 짐을 찾은 후 또 다른 숙소인 이스타나호텔로 향한다.
이스타나호텔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었고 가이드는 특급호텔이라고 말한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시간까지 시간이 있어서 주변을 관광하였다. 정말 지금까지는 TV나 영화에서만 보아온 그림 같은 해변이다. 멀리 바다 한가운데는 산호섬이 떠있고 호텔 풀장 여기저기서는 가족단위, 또는 친구들과 같이 온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가끔 우리나라 사람들도 보인다. 가족들과 같이 오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시내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제법 우리음식과 비슷해서 좋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주변엔 고기가 엄청 많았다)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풀장부근 벤치에서 바다 바람을 쏘이며 소주잔을 기우렸다. 이곳은 회교권으로서 밤11시가 넘으면 사람들의 왕래가 뜸하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은 정서에 벗어나 보였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시원한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밤바람도 정말 기분이 상쾌했다(한국 사람들은 어디가도 다르다. 그냥 조용하게는 못 지낸다니까). 한사람이 웃옷을 벗어 던지자 모두다 옷을 벗었다. 마음들이 하나로 통일된 것이다. 남들이 보면 어떨지 몰라도. 12시경 호텔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8. 8(금) 5시경 잠이 깨었다. 오랜만에 잠을 제대로 잔 것 같다. 함양의 도사님 같은 000선생과 같이 해변 가로 조깅을 나왔다가 골프장이 막혀있어 중단하고 바닷가를 거닐었다. 바닷가에는 아침 일찍부터 조그만 배로 그물을 치고 있었다. 우리가 거니는 바닷가 해변에는 고기가 정말 많았다. 가이드의 말처럼 고기 반 물 반인가 싶다. 7시경 호텔 1층에서 아침밥을 먹고 9시에 로비에 집결하여 산호섬(사피)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쾌속정을 모는 말레이지아인은 배를 옆으로 기우뚱하게 눕히는 등 장난을 쳤다. 그 때마다 여자 대원들은 괴성을 질러댄다. 10여분 만에 배는 산호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자 정말 고기가 많았다. 사람들이 먹이를 주어서 그런지 고개 떼들이 수족관처럼 많았다. 우리는 예약된 해변가에다 짐을 풀었다. 옆에서는 현지인들이 우리들의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돈이 좋기는 좋다. 그림 같은 해변에서 폼 잡으며 해수욕도 즐기고 맛있는 걸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 여자 대원중 Police Women이 있었는데 색깔 나는 고기를 잡으려 엄청 따라 다녔다나 그 고기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겠다. 다른 사람들은 해수욕장으로 향하고 000선생과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하여 해변가를 걸었다. 해수욕장 맞은편에 이르자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해안이 있었다. 우리는 팬티차림으로 물에 들어갔다. 물이 매우 깨끗했다. 해수욕장은 물이 미지근한데 비하여 여기는 제법 차가웠다. 남태평양의 세찬 파도가 여기까지 전해오는 것 같다. 12시쯤에 우리는 물에서 나와 식사를 하였다. 메뉴는 주로 고기와 해물로서 그 중 단연 인기가 있는 것은 게인데 알이 많이 차지 않아서 먹어도 배가 안찼다. 나는 아마도 7∼8마리는 먹었으리라 생각된다. 2시쯤에 우리는 배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배낭을 정리하여 버스를 타고 쿠알라롬푸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출발했다.
코타키나발루 공항에서 쿠알라롬푸로 공항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호텔에 가는 도중에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완전 한국스타일의 음식이라서 매우 좋다. 밥도 한국에서 가져온 쌀로 밥을 지어서 오랜만에 날아다니지 않는 맛있는 쌀밥을 먹었다. 된장찌개, 김치 등 정말 맛좋았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와 잠을 잦다. 밖으로 나가자는 전화가 왔지만 참기로 했다(그날 저녁 몇 사람은 새벽 4시까지 술잔으로 기합을 받았다고 한다. 작년 황산에서는 나도 주전 멤버였는데).
8. 9(토) 아침에 일어나서 밖을 보니 도시는 조용했다. 오고가는 차들만이 움직이고 있다. 멀리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쌍둥이빌딩이 보인다. 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현대건설이 만들었단다. 아침밥을 먹고 말레이시아 왕궁으로 향했다. 말레이시아에는 14개주가 있는데 그 중에서 9개의 주에서 45년간 번갈아 가며 왕으로 추대된단다. 왕궁은 매우 웅장하고 특히 정원이 아름다웠다.
구경을 마치고 다음은 주석공장으로 향했다. 말레이시아는 주석이 주산물이다. 주석공장에서 컵을 샀다. 다음은 켄팅 하일랜드로 향한다. 가는 길은 우리나라의 대관령 같은 산길을 한참동안 가니 멀리 구름 위에 건물들이 보인다. 켄팅은 카지노로서 오래전 중국인인 '인고통'이라는 사람이 생활이 어려워 말레이시아로 들어와서 카지노 등을 세웠는데 지금은 세계적인 부자라고 한다(나는 돈을 많이 벌려면 고통이 따른다고 이야기했다).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른다. 이 케이블카는 동양에서 제일 길다고 하는데 중국황산의 케이블카보다는 스릴이 덜하다. 18분이 소요되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밀림 또한 원시림이다. 이 곳 또한 온갖 동·식물들이 서식한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내려 카지노를 구경하였다. 카지노엔 짧은 바지나 목 없는 티를 입을 수 없고 모자도 못 쓴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도박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복장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입장도 못했다. 여자대원 3사람 중 2명은 돈을 땃 단다.
관광을 마치고 다시 산을 내려온다. 버스를 타고 중국전문 음식점에 들러서 점심을 먹은 후 말레이시아 원주민 생활 전시관과 신비의 식물인 '통갓 알리' 홍보관을 둘러보았다. 통갓 알리의 효능은 대단한 것 같다. 한 통 사오고 싶지만 제법 비싸서 마음이 안 내킨다. 조금 전 한 차례의 스콜이 지나가서 날씨가 조금은 시원하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바투동굴이다. 석회암 동굴로서 그 규모가 매우 크다. 안에는 원숭이와 새들이 살고 있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인들이 얼굴을 온통 가린 채 관광을 하고 있다(얼굴이 예쁜지 안 예쁜지 알 수가 없구만). 입구에는 한국말을 제법 하는(돈 벌이를 잘하는?) 말레이인이 우리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동아 바티크공장 이었다. 말레이시아는 실크가 유명하단다. 그곳의 지배인은 한국인 여자여서 그곳의 현지 종업원들도 우리말을 매우 잘한다. 달러가 없어서 한국 돈으로 스카프를 사고 나니 잔돈을 거슬러 준다. 마지막으로 메르베카광장으로 향한다. 메르베카라는 말은 축구시합 때(비가 많이 와서 우리나라가 졌음)들은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우리는 말레이시아 청년들과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 저녁식사를 위하여 한국관으로 갔다. 시내 중심가의 제법 큰 식당인데 현지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져간 소주를 많이 마셨다.
저녁을 먹은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밤 1시 10분에 비행기에 올랐다. 피곤하여 잠을 자가면서 또 다시 지루한 비행기는 8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아오다가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 도중 신문에서 어제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를 등반하던 우리나라 등산가가 고도 3,800m 지점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사람도 평소 건강하고 산행에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라고 하니 고소증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낮이 익은 고속도로를 달려 오후 2시 가까이 진주에 도착했다. 진정한 산악인은 '산이 좋아서, 보다는 '산이 그기에 있기에 오른다' 는 것이란다. 정말 보람 있는 산행이었다. 더 좋은 산행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함께한 대원들에게도 항상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사진은 당시엔 디지털이 없어 재구성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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