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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전날 모습
재현네, 소연네, 희라네 가족들이 제주도로 여행가는 날이랍니다.
배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제주도로 여행간다는 말에
우리 아이들은 한 달 전부터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마 지금쯤 소연네 아빠는 여행계획 시간표랑 준비물 점검하느라
무척 바쁠겁니다.
희라네 아빠는 별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그저 '2박 3일 여행기간동안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하며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재현네 아빠 얘기는 왜 안하냐고여?
뭐 할 말이 있어야 말이지요.
아마 잘은 몰라도 '제주도 똥돼지 어데 가서 먹으문 맛있노?" 이 생각 뿐일텐데요 머.
11월 7일. 금요일.
오늘은 재현네, 소연네, 희라네 세가족이 제주도로 여행가는 날입니다.
한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려온 여행인만큼 우리 아이들은 출발도 하기전에 신이 나서 여객선 대합실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느라 난리가 아닙니다.
오후 여섯시 30분쯤 제주행 여객선(오하마나)에 올라갑니다.
오하마나 호는 5층 규모의 대형 여객선으로 정원은 690명이라고 합니다.
저녁 7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8시에 제주항에 도착할 예정이랍니다.
우리 세가족이 예약한 방은 3층 C-3호인데, 눈짐작으로 약 12평 내외의 크기에, 정원은 48명으로 적혀있습니다. 48명이 전부 들어온다면 아마도 잠 잘 때 많이 불편할 것 같습니다.
아빠들은 여객실에 짐을 내려놓자 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객선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십니다.
대형 여객선을 처음 타보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디들이 배멀미 하기전에 일찍 잠이 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좀 피곤하더라도 강행군을 시키는 것입니다.
아빠들의 멋드러진 작전에 따라
아이들은 다행히도 저녁을 먹자마자 잠이 듭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자 엄마들은 준비해온 맥주를 꺼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현아빠가 오늘 따라 기분이 별로인지 맥주도 사양하고 기운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워낙에 맥주보다는 소주를 즐기는 건 알지만 오늘따라 이렇게 기운이 없는 건 아마도 이번 여행에 홍근네와 영현네가 함께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입니다.
그나마 이번 여행이 즐거우려면 재현아빠가 빨리 컨디션을 회복해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배도 부르고 취기도 오르고 해서
먼저 희라네 엄마 아빠가 슬쩍 갑판으로 올라갑니다.
5층으로 올라가 난간에 기대어 보니 약간 겁도 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분위기가 그럴듯해서인지
두사람이 야릇한 포즈를 취해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늦은 밤에, 그 차가운 바다 바람을 뚫고 누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게 누굴까요? 분위기 파악 못하는 그 주책없는(?) 한 쌍은 누굴까요?
슈퍼마켓 갈 때도 손잡고 다니는 사람덜, 결혼 10년차에 밥 묵다가도 뽀뽀한다는 사람덜, 괜시리 이웃에 사는 사이좋은 부부들마저 싸움시키는 사람덜, 그 닭살 커플.
간만에 분위기 좀 잡아보려던 희라네는 입맛을 다시며 갑판을 내려옵니다. (그러게, 사람은 평소에 안하던 짓 하면 안된다니깐요.)
잠을 청해 보려는데 객실이 너무 덥습니다.
아무래도 쉽게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더워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간신히 잠들었다가도 애 우는 소리에 깨고
깨고 나면 배는 여전히 출렁거리고, 더워서 들락날락 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그렇게 길고 긴 밤을 보냅니다.
<그렇게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둘째날 이야기는 좀 더 성의있게 그려보렵니다. 채널 고정>
11월 8일. 토요일
새벽 여섯시쯤 되었을까.
일찍 잠든 순서대로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 탓인지 모두들 얼굴이 부시시합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2등석이나 1등석을 예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충 세면을 하고, 짐을 챙기고 나니 벌써 일곱시 반, 멀리 제주도가 보입니다.
오하마나 호는 정확히(1분도 안틀리고) 여덟시에 제주항에 정박합니다.
선잠을 잔 탓에 어른들은 기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부두에서는 지게차들이 짐을 실어 나르느라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아이들이 다칠까봐 걱정입니다.
렌트카는 아홉시까지 오기로 예약되어 있습니다.
그 때까지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식당이 보이질 않습니다.
항구 근처에는 식당이 많을 줄 알았는데,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그렇다고 렌트카 올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부두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물어 식당을 찾아 시내쪽으로 향합니다.
배가 고파서인지 짐이 어제보다 더 무거운 것 같습니다.
5분여를 걸어가니 큰 길가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30년 해장국집'이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다들 시장했는지 무척 잘 먹습니다.
특히, 선지국을 좋아하는 우리 회장님은 너무나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다들 맛있다고 하니까, 그 집을 제일 먼저 발견한 희라아빠는 괜시리 우쭐해 합니다.
하여튼 모두덜 어린아이 같습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제주도에 또 오게 된다면 '30년 해장국집'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습니다.
렌트카가 도착했다는 전화에 소연아빠는 밥 먹다 말고 뛰어 나갑니다.
잠도 제대로 못잤는데 아침마저 먹다 마는게 너무 안쓰러운지 소연엄마가 한마디 합니다.
"빨리 갔다 와서 다시 드세요"
자기가 조금 더 희생하고, 좀 더 양보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그러다가는 그게 천성이 되어버린,
소연아빠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가끔은 그것 땜에 속상할때도 있습니다.
재현엄마가 수소문 끝에 예약한 렌트카는 생각보다 훨씬 새 차였습니다.
워낙 싼 값에 빌리는 거라 차에 어떤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자차보험이 안 들어 있어 다소 우려되기도 하지만 우린 소연아빠의 운전솜씨를 믿습니다.
12명의 대식구가 타고 있다는 부담때문인지 우리 운전기사는 더욱 조심해 운전을 합니다.
제주공항을 지나 한림공원을 향하여 해안도로를 달립니다.
아침에 다소 흐렸던 날씨도 맑게 개어 우리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수다를 떨며 웃음소리가 그칠줄 모릅니다.
한림공원 가는 길가엔 유난히 돌담이 많이 보입니다.
제주도에는 돌이 많다지만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심지어는 밭과 밭 사이의 경계도 전부 돌담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왜 무거운 돌로 밭 경계를 표시했을까 궁금합니다.
재현아빠 말씀이
무거운 돌을 일부러 날라서 경계를 표시한 것이 아니라, 밭에 돌이 많아 그 돌들을 치우다 보니 자연히 경계표시처럼 된 것이라네요
듣고 보니 그럴 듯 하네요(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지만요)
10시쯤 한림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입구 안내판을 보니 "야자수길, 협재굴, 쌍용굴, 분재원, 민속마을, 새가 있는 정원, 수석관, 연못정원, 식물원" 순으로 관람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야자수길을 지나면서 아이들이 계속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릅니다.
하기야 처음 보는 이국적인 풍경이라 신기하기도 하겠지요.
아무래도 당초계획보다 관람시간이 많이 지체될 것 같습니다.
협재굴, 쌍용굴은 거의 논스톱으로 지나갑니다.
울진 성류굴이나 단양 고수동굴에 비해서 그 아기자기함이 덜해서인지 아이들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분재원을 지나 '새가 있는 정원'에 도착합니다.
새가 있는 정원을 지나는 동안 희라아빠는 애써 눈길을 반대쪽으로 돌립니다.
희라아빠는 새를 유난히 무서워(?)합니다.
수석관과 연못정원, 그리고 식물원을 관람하고 나자 거의 1시간 30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예정시간이 30분이나 초과되고, 한림공원 안에 있는 분재원을 관람했으니까 다음 예정지인 '분재예술원'은 그냥 지나가기로 합니다.
12시쯤, 소인국테마파크에 도착했습니다.
당초계획은 테마파크 관람후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으나, 오래도록 걸어다니느라 힘들어서인지 배도 고프고 해서 관람전에 점싱을 먹었습니다.
테마파크 안에는 '버킹검궁' '타지마할'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 100여점이 미니어처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걷기도 점점 힘들어지고 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관람을 마칩니다.
그래도 거의 1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마, 각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읽으면서 관람하려면 3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습니다.
오후 2시쯤, 용머리해안으로 향합니다.
산방산에 도착하니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붑니다.
시간상 산방굴사 관람은 생략하기로 하고 용머리해안으로 내려갑니다.
행안으로 내려가는 길에 승마장에서 아이들에게 말을 태워봅니다.
무서워 안 탈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선뜻 말에 오릅니다.
맨처음 소연이하고 희라가 말에 오릅니다.
채찍질로 말 엉덩이를 때리자 말이 다그닥 다그닥 달려갑니다.
말이 다그닥 다그닥 거릴때마다 희라와 소연이 엉덩이가 들썩 들썩합니다.
재현이를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말이 힘들었는지 똥을 쌉니다. 많이.
현정이가 탄 말도 똥을 쌉니다. 많이.
윤식이까지 타고 나니까 유라도 타고 싶답니다.
어쩔수 없이 유라아빠가 유라를 안고 탑니다.
유라아빠는 말이 무거워할까봐 괜히 미안해합니다.
용머리해안에 내려가보니 10년전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여태까지 별로 기운없던 재현아빠는 물이 고기를 만난듯 신이 납니다.
왠지 아세여?
<급한 일이 있어 일기쓰기를 잠시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행일기(둘째날) 2부 스토리(재현아빠가 신이 난 이유)는 잠시후에 계속됩니다.>
홍근네, 영현네, 재현네, 소연네, 희라네
이렇게 다섯가족이 만난지도 벌써 5년이 지났음다.
첨에는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 땜에 엄마들끼리 알게 되었고,
유치원 재롱잔치를 핑계로 아빠들이 처음 만나게 된건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나서였음다.
그 날 저녁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소연네 집에서 저녁식사하면서
앞으로 자주 만나 좋은 인연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늘 그렇듯이 그러다 말거라고 생각했음다.
워낙 비사교적인 성격탓에
바둑이나 두면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기에
이처럼 불필요한(?) 만남을 별로 반기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나마, 직업상 적지 않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기에 본의아니게(?)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을뿐,
그렇지 않았더라면 외딴섬에 혼자 사는 것이 딱 제격인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상으로 필자 소개를 마칩니다)
어쨋거나, 한 두 번 그러다 말거라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우리 다섯가족의 만남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모난 사람이 있어야 그걸 핑계로 만나지 않을 수 있을텐데
사람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그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색무취- 각각의 개성이야 있겠지만 우리 다섯 아빠의 공통점이랍니다.
참 멋없는 사람덜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재현아빠를 회장님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모임이든 회장님이면 남들보다 회비를 많이 낸다든지 햐여튼 뭔가 달라야 하는데, 도대체 우리회장님은 다르기는 커녕 뭐 하나 도움이 되는 게 없습니다.
매번 가족여행때마다 이것 저것 알아서 챙기시는 소연아빠나
2년전 여주 여행길에 20명의 안전을 책임지느라 쌍코피까지 쏟으며 해병대를 망신시킨 홍근아빠는 논외로 하더라도
영현아빠나 희라아빠도 뭔가 나름대로의 역할을 찾느라 애쓰기라도 하는데
도애체 우리회장님은 하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마, 우리패밀리의 알뜰한 총무 재현엄마만 아니었다면 벌써 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를 여전히 회장님이라 부릅니다.
속상한 일이 생길땐 제일먼저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술한잔 하자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습니다.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어 귀찮을 때도 있으련만 변함이 없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제일먼저 전화를 해주고 내일처럼 함께 기뻐합니다.
'요즘 별일 없지요? 크그그그극-----'
그 독특한 웃음소리는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둥글둥글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한 스타일인지라, 농담도 스스럼없이 주고 받지만, 때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습니다. 카리스마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회장님, 우리 회장님.
그 회장님이 지금 생글생글
담배 끊은 이후로 두 배나 커진 얼굴로 생글생글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드디어 용머리해안에서 싱싱한 회 한사발에다 소주를 마실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행 출발전.
엄마 아빠들 모여 '어찌 하면 아이들에게 유익한 여행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자리에서도
회장님은 그저 용머리해안에서 '싱싱한 회 안주에 소주 한 사발, 카----'
이 생각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소연아빠나 희라아빠가 어련히 알아서 하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머리해안으로 내려가면서 10년전 신혼여행때 사진사의 요청에 따라 어색한 자세를 취했던 기억들을 되살려 봅니다.
돌아오지 않을 세월이지만 다시 한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이런말 하려니 좀 쑥쓰러운걸요)
용머리해안은 산방산 기슭에서 보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멀리서 볼땐 평범한 해안인줄 알았는데 좁은 통로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니 오랜세월 층층이 쌓인 암벽들이 너무나 멋있습니다.
캠코더가 방전되어 이 웅장한 모습을 담아갈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층층이 쌓인 암벽들이 마치 변산반도의 채석강을 연상시키는데
채석강이 수만권의 책을 옆으로 길게 차곡차곡 쌓은듯 차분한 느낌인 반면
여기는 세찬 물살 탓인지 암벽들이 높게 쌓여 있어 조금은 무섭고 불안한 느낌입니다.
회장님이 안 보이시길래 어디갔나 했더니
소라, 문어, 오징어회를 썰어놓고 벌써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맛이 있는지 빙 둘러앉아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난리입니다.
유라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희라아빠한테 회장님이 한 잔 하라고 권합니다.
소연아빠한테도 권하고 싶지만 그럴수가 없는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소주가 별로 쓰지 않길래 병을 확인해보니 22.56라고 적혀 있는것 같습니다.
인천에서 먹는 소주랑 도수 차이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왠지 참 맛있습니다.
싱싱한 회 안주에 시원한 바닷바람 때문인가 봅니다.
회장님은 채 20분도 안 된 사이에 한 병 반을 마신 것 같습니다.
희라아빠도 4잔이나(?) 마셨는데 전혀 티가 나지 않습니다.
전에는 이런데서 한 잔 하는 사람들이 심난해 보였습니다.
회장님이 이런분위기 좋아한다기에 별난 취미도 다 있구나 했습니다.
바닷가에서 소주 한 잔 하는 기분이 이런건지 몰랐습니다.
역시 우리 회장님은 낭만을 아는 싸나이 입니다.
회장님 얼굴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보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듯 흐뭇한 얼굴입니다.
재현엄마가 스물일곱번째인가 서른여덟번째인가 만에 선택한 얼굴이랍니다. 싸모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돌아 하멜표류기념비까지 가려면 30분은 족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바닷바람이 너무 세차 무섭기도 하고, 돌고래쇼 시작시간도 얼마남지 않고 해서 그냥 발길을 돌리기로 합니다.
산방산 입구 화장실에 들러 소변을 보는데
창밖으로 멀리에 우리나라의 최남단 섬인 마라도가 보입니다.
멀리에서 보기에는 바다위에 철퍼덕 깔아놓은 부칭게 같이 평평한 모습인데
섬 가장자리의 가파른 절벽과 동굴, 바위등이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고 하니,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기왕에 돌고래쇼 보려면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겠기에
다음 예정지인 주상절리대는 내일 가기로 하고 조금 일찍 퍼시픽랜드로 향합니다.
분위기에 젖어 너무 급히 마신탓인지 차에 오르자마자 희라아빠 얼굴이 빨개집니다.
잠깐 잠든 사이에 퍼시픽랜드에 도착했습니다.
4시 30분, 돌고래쇼를 시작합니다.
1부 돌고래쇼
2부 바다사자쇼
3부 아크로바틱쇼
이렇게 50분동안 쇼가 진행된다고 예쁜 사회자 언니가 멘트를 합니다.
1부 돌고래쇼는 참 볼만합니다. 돌고래들이 무척 똑똑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돌고래들의 앙증맞은 연기에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돌고래쇼 중간무렵쯤 희라아빠가 아직도 술기운에 꾸벅꾸벅 좁니다.
갑자기 뻥 소리가 나면서 공이 우리쪽으로 날라옵니다.
돌고래가 조는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것(?) 같습니다.
잠이 번쩍 깹니다.
2부 바다사자쇼는 돌고래쇼보다 시시한 것 같습니다.
윤식이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3부 아크로바틱쇼(아로크바틱인가 헷갈리네여)가 시작되자 유라가 흥미를 잃었는지 엄마아빠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몸부림을 칩니다.
4명이 한 가족처럼 보이는 동남아 사람들이 코믹쇼를 합니다.
유라는 아마도 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란히 앉은 소연아빠랑 희라아빠는 쇼를 보는 도중에 웃음이 나면서도
연기를 너무 잘해내는 꼬마 사내 녀석이 연습하는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워 합니다.
그러고 보면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다섯시 20분쯤, 쇼가 모두 끝났습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아이들이 무척 피곤한 것 같습니다.
내일의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일찍 숙소로 향합니다.
롯데호텔을 지나 콘도에 도착하니 5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콘도 체크인을 하기위해 소연아빠가 안내데스크로 향합니다.
콘도 직원과 한참동안 무슨 얘기인가 주고 받습니다.
순간 소연아빠 얼굴이 창백해 집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가 봅니다.
소연아빠 발길이 바빠지면서 어딘가에 자꾸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대충 대충하는 스타일이 아닌걸 알기에 예약에 착오가 있지는 않았을테고,
아마도 콘도 내부 의사전달과정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그나저나 어찌됐든, 잠자리에 문제가 생긴다면 큰일입니다.
덩치만 대따 컸지 모질지 못한 성격탓에 잘 따지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작정하고 나서면 그래도 자기가 좀 낫겠다 싶었는지 희라아빠가 막 들어가려 합니다.
지난봄, 영현네하고 홍근네까지 다섯가족이 부여로 여행을 갔더랬습니다.
첫날 여행일정을 마치고 나서 물어 물어 예약한 펜션을 찾아갔습니다.
펜션은 걱정했던 것보다 아담하고 참 이뻤습니다.
마당엔 알록달록 꽃들이 활짝 피어 있고, 잔디밭도 잘 정리된 것이 아이들이 놀기에는 딱 제격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펜션을 수소문했던 희라아빠는 괜시리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것도 잠시, 집주인이 안방문을 잠그고 갔다는 걸 알고는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스무명이나 되는 인원이 몽땅 마루에서 잘 생각을 하니 아찔합니다.
다섯 엄마들 말로는 주인이 일부러 그런 것 같답니다.
살림집 어지럽힐까봐.......
아이들 보기도 미안하고, 전화로 예약할 때 미리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은 주인이 괘씸하기도 하고 해서 희라아빠가 전화로 따질려고 합니다.
그 때, 소연아빠가 희라아빠를 만류하고 나섭니다.
좋은날 좋은데 놀러와서 얼굴 붉히고 다투면 뭐하냐며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하루 저녁 섞어자는 것도 재미있지 않냐며
고의든 아니든 상대방의 실수 너그러이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우리 가족의 장점 아니냐며 희라아빠를 위로합니다.
기실은 그렇기도 합니다.
즐거운 여행길에 언성을 높여가면서까지 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담 이제 어찌해야 좋을까?
이생각 저생각 하는 중에 소연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잘 해결되었으니 들어오면 된답니다.
다행입니다.
잠자리가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어설프게 나서지 않은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습니다.
하마터면, 일을 더 꼬이게 만들뻔 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서너명씩 한조를 이루어 시간차를 두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행여라도 데스크에 걸릴까봐 시선은 항상 반대쪽으로 향합니다.
남들도 다 그러는줄 알면서도 이럴때는 꼭 무슨 죄를 짓는것만 같습니다.
마흔이 다 되었어도 여전히 순진하기만 합니다.
콘도에 짐을 풀자마자 우리 부지런한 엄마들은 벌써 아이들 씻기느라, 저년 준비하느라 무척 바쁩니다.
특별히 역할분담을 의논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언제나 보면 손발이 너무 잘 맞는것 같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썩 괜찮은 시스템입니다.
사우나 다녀오겠다고 씩씩하게 나간 아빠들이 잠시후 그냥 돌아옵니다.
사우나탕이 논답니다.
아니 사우나탕이 노는게 아니라, 사우나탕 주인이 논답니다. 걍 쉰답니다.
장사가 잘 안되나 봅니다.
아이들이 밥 먹는동안 아빠들이 몸무게 순서대로 씻기 시작합니다.
저녁을 먹고 나자 아이들이 피곤했는지 하나 둘씩 잠이 듭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자 엄마아빠들은 멀리서나마 구경하겠다는 마음에 불쇼를 구경하러 롯데호텔로 갑니다.
주머니 양쪽에 캔맥주 하나씩을 집어넣고 말입니다.
알뜰한 건지 궁상맞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참 재밌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쇼는 이미 끝났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1인당 48,000원이랍니다. 밥 먹으면서 구경하는 값이......
일찍왔어도 보지 못했을 겁니다. 넘 비싸서......
차라리 늦게 오길 잘한 거 같습니다.
작은연못을 지나 롯데호텔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앞쪽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호텔이 참 이쁘게 꾸며져 있습니다.
호텔에 진열되어 있는 가구들을 보며 회장님이 전문용어를 써가며 무어라 평가를 합니다.
'궁시렁 궁시렁, 어쩌구 저쩌구 ---'
역시 직업은 속일수 없나 봅니다.
호텔보다는 콘도에 익숙한 탓인지
다들 남의 집에 온 것마냥 뭔지 모르게 편치않은 분위기 입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는 걍 나오기로 합니다.
역시 호텔은 우리 패밀리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호텔에서 나와 작은 연못가 벤치에 앉아 양쪽 주머니에 숨겨온(?) 캔맥주를 마십니다.
벤치 바로 뒤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분위기 쥑이는 팝송이 연신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날씨도 적당히 추운 것이 분위기 썩 괜찮습니다.
새우깡만 있었으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말입니다.
숨겨온 맥주가 동나자 연못 건너편에 있는 풍차 레스토랑으로 들어갑니다.
드라마 '올인'에서 볼 때는 그럴 듯 하던데 직접 보니 별로입니다.
희라아빠도 이제 구질구질(?) 회장님을 닮아가나 봅니다.
이런 분위기 보다는 용머리해안 싱싱회에 소주 한 잔이 더 생각나니 말입니다.
맥주 몇 병 시켜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소연엄마가 많이 서운했나 봅니다.
허리 다친 신랑은 밤 늦게 퇴근해서도 여행스케줄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우리 아자씨덜이 너무 무관심해 보였다며, 그래서 많이 속상했답니다.
순진한(?) 희라아빠는 그게 아니라며,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며 변명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냥 좀 미안하다며, 다소 오해가 있었나 보다고 얘기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잠깐동안, 아주 잠깐동안 분위기 썰렁했습니다.
역시 우리 회장님은 대단하십니다.
분위기 썰렁하든 말든, 혼자 쥬스 빨아먹니라 정신이 없습니다.
한 터프 하신다는 양반이 어울리지 않게 빨대를 열심히 빨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닙니다.
쥬스 한 잔에 9,000원이랍니다.
그 비싼거 홀딱 마셔버리기에는 많이 아까웠을 테지요. 쯔쯔.
그치만 뭔가 좀 잘못된 거 같습니다.
사람 얼굴이 크문, 그에 비례해서 빨대라도 좀 두꺼운 걸 줘야 하는데,
회장님 빨대 빠는 모습이
마치 희라아빠 이빨쑤시는 거하고 별루 다를게 없습니다.
하여튼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희라엄마는 웃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덕분에 분위기도 한층 좋아졌습니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참 주책이다 싶었는데
역시 우리 회장님은 한 수 위십니다. 그려
아무 생각 없는척, 자연스럽게 분위기 바꾸시는 걸 보면, 참말로 대단하십니다.
한참을 얘기하다 보니 맥주가 한방울도 안 남았습니다.
분위기도 무르익고 해서, 서로들 한 잔 더하고 싶은 마음에 총무님 얼굴만 쳐다볼 뿐 먼저 일어서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흐이그, 바랠걸 바래야지,
우리 알뜰한 총무님한테 뭘 더 바라겠습니까. 풍차 귀경시켜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요.
눈치 빠른 희라아빠가 먼저 일어섭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콘도에 들어가서 한 잔 더하기로 합니다.
쌕쌕 잘도 자고 있습니다.
하긴 하루종일 무척 힘들었을테지요.
쬐그만 것덜이 거의 제주도 반을 휘젓고 다녔으니 말입니다.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니 참 이쁘기도 하구요.
큰 애들이 벌써 10살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기분 참 묘해집니다.
중학교 다닐때쯤 되면 엄마아빠랑 여행가는 것보다는
친구들이랑 어울리길 좋아할텐데 생각하니
힘들더라도
아이들 좀 더 크기전에 함께 여행하는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은 맥주 몽땅 먹고나니 11시가 넘었습니다.
이제 엄마아빠들도 잠을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불 깔고 다들 누웠는데, 희라아빠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갑니다.
1층 안내데스크에 가서 500원짜리 동전 6개를 바꾸더니 로비에 있는 PC방으로 향합니다.
씩씩하게 동전 두개를 넣고는 '논현패밀리' 홈페이지로 들어갑니다.
술기운에 자꾸만 눈이 감깁니다.
하나라도 더 잊어버리기 전에 여행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무슨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깁니다.
아무래도 우리 내무부장관님들께 고맙다는 말부터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싸모님덜, 정말 애쓰셨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한 두어줄 쯤 썼을까? 깜박 잠이 들었나 봅니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길래 눈을 떠보니 벌써 새벽1시입니다.
영업이 끝났답니다.
술집도 아니고 콘도 PC방에서 술기운에 잠이 들었으니 이게 무신 망신이랍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들 잘들 자고 있습니다.
색동이불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소연아빠는 아예 이불을 돌돌 말고 참도 잘 자고 있습니다.
발가락이 나온걸 보니 참 길긴 긴가봅니다.
3일 내내 운전하느라 힘들텐데 오늘밤이라도 푹 잤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질 않습니다.
쓸 말이 참 많은데, 이걸 어찌 다 기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억력이 별루라서 더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오늘 쓰지 못한 일기, 기억 더듬어 가며 쓰러면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담부터는 술 한 잔 하기 전에 일기부터 써야 할랑가 봅니다.
에궁, 이게 뭐랍니까?
그날 PC방에서 깜박 존 탓에 여행일기를 보름이 넘도록 끝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라도, 다음 여행 전까지는 마무리할 수 있을테지요.
'여행일기 셋째날 < 아!!!! 몽골리안마상쇼!!!! > 편'
좀 이따가 계속됩니다.
덜그럭 덜그럭, 솨아악, 솨아악
도대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일어나면 한마디 해줄 작정입니다.
잠좀 자자고요. 지발
어젯밤 실속없이 새벽1시까지 헤메인 것도 짜증나는데
대체 누가 이리도 잠을 설치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소연아빠겠지요.
어젯밤 맥주 한잔씩 하면서 몇 번이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좀만 빨리 출발하자고 말입니다.
근데 누구하나 '네' 하고 큰소리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지요.
하루종일 피곤했겄다, 맥주도 한잔씩-아니 마니마니- 걸쳤겄다,
다덜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었겠지요.
그래서 혼자 다짐했겄지요.
에이. 쌍누무화투(어린이는 따라하지 마세염)
'어디 안 일어나고 견디나 보자' 했겄지요.
그래서 저렇게 새벽같이 일어나서 난리잉가 봅니다.
덜그럭 덜그럭, 쏴아악 쏴아악........
에궁, 아무래도 포기해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좀 더 자보겠다고 끝까정 버티던 희라아빠가
결국은 어쩔수 없었는지 일어나고야 맙니다.
흐미, 벌써 8시가 넘었네여.
잠결에는 괘씸했는데, 왠지 미안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새벽1시까지 못잤다고,
그래서 젤 늦게 일어난거라고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뭐 한게 있어야 말이지요.
한쪽에서는 밥하느라, 한쪽에서는 아이들 씻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평수라도 섞여자는 거야 이골이 났는디
그래도 아침 저녁엔 좀 불편한거 같습니다.
평수는 좀 작더라도 화장실이 두 개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4인용 콘도에 12명이 몰래 들어와 자고선 바라는 것도 많다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나이 들어갈수록 뻔뻔해지는 거야 당연지사 아닌가요?
늦게 일어난 사람이 화장실에서까지 민폐를 끼칠수는 없었는지
희라아빠가 슬금슬금 밖으로 나갑니다.
아마도 1층 화장실로 가는거 같습니다.
볼일 다보고 10분쯤 지나서 나오려는데(너무 길었나?)
소연아빠가 손을 씻고 있습니다.
아마도 옆칸에서 일을 본 거 같습니다.
무진장 시끄러웠걸랑요.
방으로 올라가려다가는 콘도 뒤뜰로 나가봅니다. 둘이 나란히.
아침이라 그런지 날씨가 꽤나 쌀쌀합니다.
구름이 많이 껴서 해뜨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비는 올 거 같지 않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부지런한 우리 엄마들은 벌써 짐 다 꾸려놓고,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있습니다.
좀 늦게 출발하더라도 아침은 푸짐하게 먹어얄 거 같습니다.
밥먹고, 대충 씻고, 짐 들고 나오니 9시 10분입니다.
적어도 8시 반에는 출발하자며 무지 바쁘게 움직였는데
결국은 40분이나 지체되었습니다.
자기 때문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희라아빠는 참 태연합니다.
전에는 안 그런거 같았는데 워째 저리 뻔뻔해 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회장님 자주 만나문서 마니 물든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울회장님 이렇게 구박하다가는
쥐두 새도 모르게 짤릴지도 모르는데
왜 자꾸 회장님을 숭보게 되는지 모르겄음다.
에궁, 될대로 되라지요.
셋째날 첫 번째 목표지점인 주상절리대로 출발합니다.
출발한지 10분쯤 지났을까, 제주 컨벤션센터 앞에서 차가 멈춥니다.
주상절리대는 여기서 5분쯤 걸어가야 한다고
안내양이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퀴즈 1> : 제주 컨벤션센터 앞에서 주상절리대를 알려준 '친절한 안내양은 누굴까요?'
드라마 '올인'에서 본 때문일까 그리 낯설지가 않습니다.
참 멋있는 건물입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컨벤션센터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뎅그러니 그 큰 건물 하나만 서 있습니다.
이런 근사한 작품이 시내에서 동떨어져 있는게 쬐끔은 아쉽습니다.
다 이유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나저나, 우리 인천에는 왜 이런게 하나도 없을까 참 안타깝습니다.
컨벤션센터를 지나 5분쯤 내려가니 진짜로 바다가 나옵니다.
그곳에 말로만 듣던 주상절리대가 있습니다.
참말로 웅장합니다.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도록 시원하게 펼쳐있는 바다,
신이 다듬은 듯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천개의 육모꼴 돌기둥들,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글재주가 없어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너무나 신기합니다. 너무나 멋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누군가 조작(?)해 놓은것만 같습니다.
어제 들렀던 용머리해안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그저 멀리에서밖에 볼 수 없다는게 너무 아쉽습니다.
전에 왔을 때는 나무계단이 없었는데,
그 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아름다웠었는데 너무 아쉽다며
50대쯤 되어 보이시는 아저씨께서 딸인듯한 학생과
얘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딴은 그렇기도 하겠지요.
사람의 손발이 닿지 않았더라면 더욱 아름다웠을테지요.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게 좋은건지
길 닦고, 계단 놓고, 잘 정리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는게 좋은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안내양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비포장입니다.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되는지 여기 저기 공사하느라 어수선합니다.
아마도 얼마후면 여기에서도 입장료를 받을 거 같습니다.
주차장 예정지는 컨벤션센터 뒤쪽에 있답니다.
주차장 가는길에 컨벤션센터를 다시 보니 영 별로입니다.
앞에서 볼때는 멋있었는데 뒤에서 보는 컨벤션센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설계하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아마도 중문단지에서 보는 전경에만 너무 신경을 쓰셨나봅니다.
관광하는 사람이 별걸 다 시비입니다.
그러니 살이 찔 겨를이 있나요, 흐이그. 쩝.....
백곰과 아가씨가 나란히 걸어옵니다.
길가에서 팔고 있는 귤 몇 개를 사가지고 말입니다.
그중에 하나를 백곰에게 줍니다.
제대로 걸렸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신 귤은 첨 먹었습니다.
3일동안 낑낑메고 다닌 보람이 있습니다.
희라아빠가 빌려온 디카에 아주 제대로 찍혀버렸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사진을 보면 입안에서 나도모르게 침이 고이곤 한답니다.
계획보다 자꾸 지체되고 있습니다.
아줌마덜이 여그저그 선물할 귤상자 사야 한다며 또 꾸물(?)대고 있습니다.
울 안내양이 자꾸만 시계를 봅니다.
빨리 서둘러얄 거 같습니다.
다음 목적지인 천지연으로 향합니다. 정확히 10시 5분입니다.
천지연 가는 길에 제주 월드컵경기장에 잠깐 들르기로 합니다.
거기에 귤로 만든 돌하루방이 있답니다.
태풍에 지붕이 찢겨졌는지 월드컵경기장은 지붕공사가 한창입니다.
세상에서 10번째 안에 드는 아름다운 경기장이라는데 참 망신입니다.
운동장 만드느라 애쓰신 분덜-특히 설계하신분-을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
셋째날 스케쥴은 다소 여유있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빠듯합니다.
돌하루방 앞에서 사진 몇장 찍고는 바로 출발하기로 합니다.
맘은 바빠 죽겄는디 아이들 말로 그누무 꼬진 이정표땜에
자꾸만 길을 잘못 듭니다.
둘째날, 한림공원 갈 때도 느낀거지만
제주도 도로표지판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한참을 지나가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청 공무원들께는 죄송하지만 관광명소에 어울리게
이정표 관리에도 좀 신경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관광안내 표지판은 관광버스 기사땜에 있는게 아니니깐요.
오전내내 흐렸었는데 천지연에 도착하니 햇볕이 쨍쨍합니다.
주차장에서 폭포까지 10여분은 걸어가야 한답니다.
추울지 알고 겹겹이 옷을 껴입은 아이들이 하나둘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 약간은 흐린날씨가 관광하기에는 좋은거 같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다녀간 탓인지, 깊은 산속 폭포처럼 시원한 맛은 없습니다.
하기는 높지 않은 곳에 있기에 우리 막내 유라도 힘들이지 않고 폭포를 구경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 동네에 사는 듯한 젊은 부부 말하길
폭포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서 저녁에 오면 훨씬 멋있다고 귀띰해 줍니다.
그야말로 염장이지요. 이제와서 그라문 우리보고 어쩌라구요.
여기저기서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 사람덜 피해가며 어렵사리 사진 몇 장 찍고는 서둘러 발길을 돌리기로 합니다.
근데, 내리 3일동안 붙어다니던 희라랑 소연이가
어째 천지연에 와서는 따로 다니고 있습니다.
무슨일이 있냐고, 싸운거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습니다.
엄마들은 신경도 안씁니다. 자주 그런다나요.
금방 삐졌다가 또 금방 같이 놀구,
그렇게 단짝으로 지낸지가 벌써 5년이나 지났네여.
자꾸 지체되면 안되는데 또 엄마들이 기념품을 사야한다며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안내양이 자꾸만 시계보고 계획표보고 하늘 쳐다보며 쩝쩝거립니다.
그리고는 결정을 했는지 희라아빠에게 물어봅니다.
아무래도 몽골리안 마상쇼를 보려면
정방폭포를 생략해야 할 것 같답니다.
심사숙고 끝에 일정을 약간 변경하기로 합니다.
'정방폭포를 거쳐, 마상쇼(성읍리)를 구경한후, 도깨비도로를 보고, 공항으로 가기로' 했던 일정을
'도깨비도로를 보고, 마상쇼(코끼리랜드 옆)를 구경한후 공항으로 잽싸게 가기로' 바꿉니다.
요거이 제주도 여행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실수란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몇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어쨌든, 아쉽지만 정방폭포를 뒤로하고 다시 오던 길로 향합니다.
1100도로를 타려면 오던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답니다.
에궁, 벌써 11시 50분입니다.
오다가 보니깐 '귤로 만든 돌하루방'이 옮겨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그 전날 옮길려고 했는데 논현패밀리 온다는 말에 하루 연기했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나자 곧바로 철거에 들어간거 같습니다.
쌩구렁(신트리 사투립니다)....큭큭....
드디어 1100도로에 들어섭니다.
여전히 귤밭이 많이 보입니다.
서서히 오르막입니다.
아직 한라산 밑자락도 아닌 것 같은데 집들이 별로 없습니다.
제주도는 현무암이라 물이 잘 샌다더니,
그래서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다 스며든다고 하더니,
그래서 사람덜이 물 구하기 쉬운 바닷쪽에 많이 산다더니
그말이 참말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에는 논농사 하는것도 별루 못본거 같습니다.
그게 다 그런 연유인가 봅니다.
1100도로에 진입한지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아니 서서히, 야금야금
안개가 무지하게 몰려옵니다.
제주도 날씨 변하는 거 귀신도 모르다더니만
좀 전까지만 해도 맑았었는데 이렇게 안개가 자욱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10미터 앞도 보기가 어렵습니다.
큰 등치 만큼이나 겁도 맣은 우리의 안내양은 더욱 더 조심운전을 합니다.
가뜩이나 초행길이라 조심스러운데
난생 처음 이렇게 짙은안개속에 운전하려니 참말로 미치고 팔짝 뛸 일입니다.
옆에서 보니 무지하게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쌍코피 또 보게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라도 충주호 여행길에 홍근아빠는
인천에 도착하고 나서 부대찌게 먹다가 터져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운전중에 쌍코피 터지면 이를 어쩐다나요.
깊은 산 속에 안개마저 자욱한데
운전하는 안내양이 쌍코피 흘리는거 상상해보니
워메 이런, 전설의 고향이 따로 없습니다요 그려.
아직도 한라산줄기를 벗어나려면 멀은거 같은데
이누무 안개 언제나 겉히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정표를 보니 1100고지 휴게소입니다.
설까말까 망설이는 사이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좀 쉬었다 가얄 것 같은디 괜히 후회스럽습니다.
담에 또 휴게소 같은거 나오면 무조건 차 세워야겄습니다.
다행히도, 5분쯤 가니 어리목 주차장이 나옵니다.
소연이가 멀미땜에 마니 힘들었는지 부리나케 내립니다.
멀미도 멀미지만 운전하는 아빠가 무지 걱정되었는가 봅니다.
날씨는 추웠지만, 다들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펴봅니다.
아이들 쉬하는 사이에 제주도에 사시는 아저씨 한 분과 대화를 나눕니다.
제주도 날씨 원래 이렇답니다.
그래서 자기들은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항상 한라산에 올때는 중무장을 한답니다.
우리가 인천에서 왔다니까 무척 반갑게 대하십니다.
아무래도 무신 연고가 있나봅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홍근아빠 선배랍니다.
그 사람덜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해병대 야그만 나오면 웃을 듯 말 듯 야릇한 표정에 괜스리 어깨가 으쓱거립니다.
야무진 체격에 스타일도 다 비슷비슷합니다.
그 자부심이 대단한 거 같습니다.
정말 짜증(?)납니다.
이담에 다시 태어나면 나도 해병대를 가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해병대에서 받아줄랑가. 흐이그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랍니다.
좀만 가면 될 것 같습니다.
5분쯤 지났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 안개가 개었습니다.
멀리 시원스레 바다도 보입니다.
왼쪽에는 넓은 초원위에서 말들이 뛰어놉니다. 이제야 좀 살거 같습니다.
다시 오르막길이 나오는가 싶더니
2-3백미터 앞쪽에 차들이 죽 서있습니다.
별로 막히지도 않는 길인데 말입니다.
어느덧 도깨비도로에 도착한거 같습니다.
10년전 신혼여행길에 왔을 적에는 주변에 건물하나 없었는데
그새 식당이니 기념품가게니 해서 많이도 생겼습니다.
길가에 아이덜 죽 세워놓고 울 안내양이 음료수병으로 실험을 해줍니다.
오르막길인데도 음료수병이 길따라 올라갑니다.
아이들이 무척 신기해 합니다.
짙은 안개 뚫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습니다.
아직 유라는 뭐가 신기한지 모르는거 같습니다.
그저 언니 오빠들이 구경하니까 같이 구경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담에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오게되면
그시절 소연아빠(에구 실수)가 설명해 주신게 무언지 알겠지요.
도깨비도로 실험을 마치고 차에 오르려는데
울회장님이 재현이를 나무라고 계십니다.
도깨비도로에 와서 구경하라는 도로 구경은 안하고
말한테 돌맹이나 던지고 있다고 야단이십니다.
에궁, 모르시면 가만히나 계시지.
도로실험 마치고 남들보다 먼저와서 말들하고 놀고 있는건데
그것도 모르문서 괜시리 부지런한 아들한테 야단입니다.
미안하쥬? 미안할거 왜 그러셨남유? 흐이그.
자! 이제 마지막코스 '마상쇼'만 남았습니다.
시간을 보니 약간 여유가 있을 것 같고 해서
점심도 먹을겸 제주시내로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식당은 관공서 주변이 맛있을 것 같아
제주도청, 경찰서 등등 관공서가 모여있는 동네로 향합니다.
근데 의외로 선뜻 발길 닿는 곳이 없습니다.
몇 군데를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는 일단 걍 가기로 합니다.
가다보면 괜찬은 식당 있지 않겠나 싶어서 말이지요.
그렇게 잠시 헤메이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점심식사는 마상쇼 끝난후에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동부관광도로를 따라 10분쯤 내달리니 '코끼리랜드' 이정표가 나옵니다.
시계를 보니 2시 30분쯤,
마상쇼가 3시에 시작한다고 하니
대충 식사시간 계산하면 정확히 제시간에 도착했습니다.
근데 아무리 둘러봐도 몽골리안마상쇼 이정표가 보이질 않습니다.
안내양이 이상하다는 듯 마상쇼 공연장에 전화를 해봅니다.
궁시렁, 궁시렁, 대화를 나누더니
그러고는 갑자기 '네----?' 하더니만
전화기를 힘없이 내려놓습니다.
예감이 아주 이상합니다.
좀 과장된 표현으로 안내양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습니다.
한숨도 푹푹 내쉽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기는 한 거 같은데 도저히 물어볼 엄두가 안납니다.
그렇게 당황하는 거 처음 보는거 같습니다.
차 안에 찬 바람이 쇄애애앵 불어옵니다.
잠시 차 안이 조용해집니다.
몽골리안마상쇼 공연장은 그린리조트 옆에 있답니다.
그린리조트라면 서부관광도로를 타야 했습니다.
근데 왜 동부관광도로를 타고 열라 달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반대 방향으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습니다.
분명히 안내양이 천지연 출발전 조수한테 95번도로를 타야한다고 했더랬습니다.
근데 조수 눈에는 97번도로만 보일뿐 95번도로는 보이지 않았더랬습니다.
글구는 별 생각없이 95번도로니깐 97번도로 부근이겠지 여겼습니다.
안내양이 힘없이 전화를 내려놓는 순간 다시 지도를 보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95번도로가 갑자기 큰 글씨로 눈에 들어옵니다.
이게 웬 난리랍니까? 정말 이게 웬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내양하고 조수가 뭔가에 잠시 홀렸던거 같습니다.
필요없는 얘기지만, 안내양이나 조수나 남 못지않게 신중한 사람덜인데 말입니다.
워째 그런 실수를 듀엣으로 했는지 참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정말 골때립니다.(어린이는 따라하지 마세염)
안내양은 아직도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추진해왔는데
큰 행사는 큰 행사대로, 작은 행사는 작은 행사대로
정말 매사를 정성껏 준비했었는데
그래서 여태껏 아무탈 없이 어떤 행사던 근사하게 마무리해왔는데
이렇게 황당한 실수를 했다는게 스스로 용서가 안되나 봅니다.
어떤 실수를 하던 간에 대안이 있었기에 이렇게 속상한 적은 없었는데
고생하는 아내덜, 사랑하는 아이덜에게
정말 그림같은 소중한 추억 남겨주고 싶었는데
하필, 마지막날 젤 마지막일정에 대책없이 빵구가 나버렸으니,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순간 우리 안내양의 심정이 무지하게 착잡한 거 같습니다.
이제라도 그쪽으로 가볼까 궁리해봅니다.
그린리조트까정 가려면 족히 1시간은 달려야 할거 같습니다.
웬만한 신호 무시하고, 열라 빠른 속도로 말입니다.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도저히 수습이 안되는 사안이기에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습니다.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안내양 옆에 있는 조수는 나름대로 가시방석이었습니다.
첫날부터 조수역할 제대로 못했는데 마지막날까정 도움이 안됩니다.
워낙 안내양이 심각한 탓에, 조수는 쥐 죽은 듯 조용히,
구석에 쭈구리고 앉아 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일단 후퇴하기로 합니다.
기왕에 이렇게 된 바에야 똥돼지나 실컷 먹자며 또 식당을 찾아 헤맵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지나 좀 가다보니
'흑돼지전문점' 간판이 나옵니다.
더 이상 찾아다니기도 힘들고 해서 속는셈 치고 일단 들어가기로 합니다.
맛있습니다.
배가 고파서였는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구 보니 제주도에 와서 대충 찍은 식당들이 다 괜찮은거 같습니다.
3일동안 참 잘 먹었습니다. 그러츄 회당님.
이제 공항으로 향합니다.
햇볕이 쨍쨍하지는 않았지만 날씨는 대체로 좋았습니다.
1100도로만 빼면 말입니다.
공항주차장에 도착할 즈음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조금 있으려니 렌터카 직원이 차를 가지러 옵니다.
차를 인계하고 공항대합실로 향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제주 하늘 한 번 더 볼까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 전까지 보이던 해가 그새 없어져 버렸습니다.
중천에 있을때는 느린거 같은데 해질녁에는 왜 그리도 빨리 내려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티켓팅을 마치고 면세점으로 들어가봅니다.
매장은 화려한데 담배하고 양주 빼면 살 것도 별로 없습니다.
살 것이 없는게 아니라 돈이 없는거겠지요.
어쨌든, 주상절리대에서 귤이라도 안샀더라면 클 날 뻔 했습니다.
오랜만에 제주 여행 다녀와서는 친척들에게 빈손으로 갈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드디어,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서 첨으로 비행기를 타봅니다.
신기한가 봅니다.
벨트를 잠갔다 풀렀다, 탁자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막내 유라는 무척이나 바쁩니다.
혹시라도 창가에 빈자리가 있을까 해서 아빠들은 연신 사방을 두리번 거립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에게 하늘에서 보는 멋진 야경을 보여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불행히도 창가에 빈자리는 없습니다.
한 줄에 8자리중 가운데 4자리는 바깥구경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 비행기 타는 사람덜이야 별로 관심도 없겠지만
어쩌다 한번 비행기 타는 사람들은 -특히 아이들은 -
하늘에서 보는 모습이 어떨까 많이 궁금합니다.
쓸데 없는 필름 돌리지 말고
조종석 앞쪽에 ccTV 설치해놓고
조종석에서 보는 야경을 비디오로 보여주는것도 괜찮을텐데
바보같은(?) 항공사 직원들은 왜 그런거 생각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륙한지 20분쯤 지났을까,
희라아빠가 갑자기 바쁘게 왔다갔다 합니다.
유라가 멀미를 하나봅니다.
하루종일 피곤한데다가 비행기 이륙할 때 많이 긴장했던거 같습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아쉽기도 하지만 참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2박3일 제주여행 무사히, 보람있게, 아주 잘 다녀왔습니다.
일품가든에서 갈비탕으로(아빠들은 냉면으로)
뒷마무리 깔끔하게 하고 서로 안녕합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면서 말입니다.
담에는 어디로 갈까?
힘들텐데도 그저 그 생각뿐인가 봅니다.
하긴 우리 가족덜끼리라면야 어딜 간들 어떻겠습니까?
그저 함께 한다는 그것만으로도 흐뭇한 사람덜인걸요.
<에필로그>
지금부터 10년전, 아마 설연휴 때인걸로 기억됩니다.
만 4년여간의 지겨운(?) 열애(?)를 마감하고자(?)
미래의 처갓집으로 인사를 갔더랬습니다.
그리 싹싹하지 않은 성격 탓에, 어찌해야 하나 다소 부담스러웠습니다.
6남1녀의 장남인지라 언니 오빠들이 반대 내지는 싫은 반응을 보이더래도 크게 맘쓰지 말라는 말에 은근히 걱정도 되었겠지요.
처음엔 처 할머니인줄 알았습니다.
장모님이 그때 칠순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새해 인사를 드리고 나서
처남과 처남댁과 많은 얘기 나누었습니다.
처남 말씀이
조건도 별로인거 같고
더구나 얼굴이 넘 잘 생겨서(죄송함다 큭큭)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자기가 워낙에 심한 반대 속에 결혼한 탓에
그리 반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루 좋은 반응은 아니었으나
워낙 쫄고 간 덕분인지 그저 감사드린다는 말만 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잠시후
처남댁과 현이짱이 설거지 하러 부엌으로 가고
처남과 조카딸들도(4명) 밖으로 나가고 나자
여태껏 아무말씀도 안하시던 장모님이
살며시 제 손을 잡으시더니
'못생긴 우리딸 데려가줘서 고맙다며,
외롭고 불쌍하게 자란 우리 막내딸 많이 이뻐해주고 사랑해주라'시며
갑자기 눈물이 글썽이십니다.
사내놈이 비쩍 마른 것이 무신 병이나 있는건 아닌지,
도대체 무얼하며 먹고 사는 놈인지,
우리 장모님은 아예 관심도 없으십니다.
그저, 우리 막내딸 잘해주라는 그 말씀만 되풀이 하십니다.
워낙 늦게 얻은 막내딸이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테지만
남들처럼 귀염 받으며, 예쁘게 키워주기는커녕
과수원 한답시고 외딴 산속에서 외롭게만 자라온 딸을
비빌 언덕도 없는 타향으로 보내시는 늙은 엄마의 심정을
그때 제가 어찌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워낙에 말을 아껴온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네. 걱정마세요. 우리 행복하고 재미있게 잘 살께요'
대답이라도 크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습니다
어느덧 두 딸을 가진 아빠가 되고 나니,
이제사 그 때 장모님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정이 없는 성격 탓이라고 돌리기에는 미안한 게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고맙습니다.
그 많은 동네 다 뿌리치고 여기로 이사온 것이 참 다행스럽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홍근네 가족이랑
영현네 가족이랑,
글구 재현네, 소연네 가족을 만나게 되어 정말 고맙습니다.
가끔 생각해봅니다.
우리 소중한 이웃덜 못 만났더라면
그래서 썰렁한 신랑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지냈더라면
우리 현이짱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습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떠올리곤 합니다.
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물론, 우리 현이짱이 워낙에 하는 짓이 이쁜탓도 있겠지만(큭큭)
서로 아껴주고, 위로해주면서 그렇게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요즘의 생활을 행복으로 느끼며 늘 웃으면서 살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계속,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요즘, 우리 현이짱이 마니 심난한 거 같습니다.
울아빠님이 자기 두고 도망갈까봐 걱정이랍니다.
씰데 없는 고민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으니 신경 끊으라고 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신 조환지 모르겠음다.
물론, 울아빠님이
'달달달달.... 달달달달....'
현이짱의 현란한 댄스에 넋이 나간 극성팬이란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더래도,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 갖고 저리 걱정하고 있으니
정말 죽갔음다.
세상만사, 예기치 못한 변수가 얼마나 많은지 아직 모르나 봅니다.
어줍잖은 여행일기 쓴답시고 시작한지가 벌써 햇수로 2년입니다.
저도 저한테 질렸습니다.
시작했으면 끝을 내야지 무신 남자가 그 모양이냐며
현이짱한테 잔소리도 무지 들었습니다.
다 쓰고 나서 읽어보면 아무것도 아닌 말인데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서서히 일기를 마감해야 할 시간입니다.
다음 여행일기를 좀 더 근사하게 쓰기 위해서 독서량을 늘릴까 생각중입니다.
다음 여행일기는 홍근네 엄마부터 현이짱까지
다섯 엄마들의 이야기를 좀 많이 다뤄볼까 합니다.
(아직 여행계획도 없는데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시고 있습니다. 내 참)
그러려면, 아무래도 일거수 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해야 할테지요.
그러니, 제가 좀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멋쩍더라도 이해하시길.
그나저나, 대충 흐름을 보니 다음 여행은 아산스파 쪽일거 같은데,
홍근아빠가 여행일기 쓰겠다고 나선다면 워쩐다나요.
버티자니 제명에 못죽을 것 같고,
놔두자니 여행일기가 야릇한 방향으로 흘러갈까봐 걱정도 되고,
회장님. 어쩌면 좋을까요?
첫댓글 아주 딱입니다요 다시 읽어도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