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에 있는 강민첨 장군의 묘에 얽힌 일화는 또 다른 교훈을 우리에 게 준다.
진양 강씨로 문과에 급제했던 강민첨 장군은 고려의 명장인 강감찬 장군의 부장(副將)으로 거란족을 물리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려 병부상서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러나 후손들은 오랫동안 그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다. 명장의 묘이면 명당에 자리 를 잡았을 것인데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잊어 버렸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 다.
경위는 다음과 같다. 고려가 망하면서 많은 고려의 충신들이 이성계와 그를 따른 사람들을 변절자라 하여 왕래를 끊었고 이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등 많은 핍박을 당했다.
무관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했다.
강 장군의 후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분을 감추고 살아야 했기에 조상의 산소를 보살필 여유가 없었다.
후손들은 많은 세월이 흐른뒤 벼슬길에도 오르게 되자 예산현에 있다고 선대들로부터 들어 온 강 장군의 묘를 찾아 나섰다.
대략의 위치는 알았으나 그 땅은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봉분을 없애고 석물은 땅 속에 묻었으니 정확한 위치를 찾는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후손들이 한양과 예산을 오가며 수소문했으나 땅 주인이 장군의 묘자리가 명당임을 알고 자신이 죽은 후 묻히기 위해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에 아무도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후손들은 땅 주인의 집에 후손인 청년을 벙어리로 가장해 머슴으로 들여보냈다. 지성 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날 주인이 자기들만 비를 피해 집으로 뛰어든 하인들에게 소를 빨 리 끌고 오라고 호통쳤다.
하인들이 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멀뚱멀뚱하자 “강 장군 묘터에 있으니 비를 많이 맞 기 전에 빨리 끌고 오라”고 말했다.
주인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강 장군의 묘터에 소를 데려다 놓았으니 주인만 소의 위치를 알 고 있었다.
벙어리 행세를 하던 강 장군의 후손은 그길로 한양으로 달려가 어른들에게 알려 묘를 되찾았다.
후손들은 봉분을 다시 만들고 묘를 정성스레 가꾸었다. 이 일화는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조상의 묘를 찾아 모시려는 진양 강씨의 후손들의 마음자세는 요즘 세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댓글 시조할아버지 산소에 그런 사연이 있군요 은열공파 24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