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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회 씨름대회
갑, 을, 병, 정 노인들이 천신(薦新)제 제사를 모시고 물러나자, 남자들은 씨름을 여자들은 누에실로 길쌈놀이를 했다.
씨름은 어른부터 시작되었다.
쥐똥나무 마을의 오랜 쌍벽인 철이 아베 배 강복과 돌이 아베 한 점수의 시합이었다.
갑동 노인과 을동 노인은 그 시절 젊음으로 다시 돌아갔다.
노인들은 미루나무에서 박차고 일어나 지팡이를 잡고 보챘다.
“뭐하는 겨, 졌다고 생각되면 나오지를 말어!”
“젊은 것들이 하는 꼬락서니하고는 그렇게 해서 밥이라도 먹겠냐?”
“아 뭐하는 거여”
갑, 을, 병, 정 할배들은 예전으로 돌아가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긴장하고 소리치면서 재촉했다.
드디어 평생의 앙숙인 쥐똥마을의 배 강복이와 한 점수가 샅바를 잡았다.
갑동 노인과 을동 노인은 당신들이 씨름판에 나온 느낌이었다.
“들어 매쳐”
“다리 걸어, 허리 걸어”
“물어”
“뭐라구! 물어?”
“아참, 수염 부벼”
노인들의 장난 끼가 넘쳤다.
배 강복은 한 점수의 샅바를 잡고 조였다.
“콜록”
비쩍 마른 한 점수가 비실거리며 매달렸다.
그러나 순간 한 점수가 손바닥으로 배 강복의 발바닥을 뻔쩍 들어 올리며 눕혔다.
배 강복은 한 점수를 찍어 누르다 하늘 높이 나는 새처럼 떠서 폴싹 떨어졌다.
한 점수는 가까이로 어깨를 들며 일어났다.
그래도 몽롱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갑동이 노인이 한 점수의 팔을 들어 올렸다.
“금년에는 한 점수가 승리를 했고, 농사도 더 잘될 거다. 우리 모두 축하 합시다.”
갑동 노인의 말에 누구라도 동의 했다.
“만세, 쥐똥나무 마을 만세”
“이건 아니 여요. 지가 다시 할 게요.”
지아비 대신 철이가 나섰다.
석이와 욱이는 뒤로 물러나 무참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들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돌아 너 나와”철이는 통통하면서 기운이 있는 아버지가 비실거리는 돌이 아버지에게 지자
열불이 나고 복수심이 앞섰다.
“좋아, 덤벼”
돌이도 질수 없었다.
돌이는 머리에 흰 끈을 질끈 동이고 나왔다.
이 동주가 허리에서 붉은 천을 풀어서 철이 이마에 묶어주었다.
백군와 홍군으로 패가 갈렸다.
순이는 돌이를 응원하기 위해 서 영은 아주머니 팔을 잡고 있었다.
둘의 씨름은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고 서로 밀고 밀리기만 했다.
힘이 백중세였다.
아니 이동주와 순이의 싸움처럼 처절했다.
62회 철이가 승
철이와 돌이의 이마와 어깨에서 땀이 비 오듯 내리며 번들 거렸다.
철이가 온 힘을 다해 돌이를 들고 올렸다.
“돌아 힘내, 돌아 힘내”
순이가 소리 쳤다.
철이 귀에 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이는 잠시 멈추며, 약이 콱 스며 올랐다.
순간 돌이가 내려오면서 철이 다리를 걸어 넘겼다.
“이거 아니여, 순이 때문에 ...”
“내가 뭐? 돌이가 잘도 하느만, 돌이 최고여”
순이는 철이의 약을 올릴 대로 올렸다.
“이 지지바야, 철이가 더 세”
이 동주가 역성을 들었다.
“좀 가만있어 봐라.”
갑동 노인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다시 해, 삼 세 판이다.”
“그만 혀 ”
배 강복이는 자기도 지고, 아들도 지자 김 팍 -새버렸다.
“아니 유, 다시 해유”
“그만두라니께”
“다시 해라, 삼 세 번이다.”
을동 노인이 젊잖게 한마디 했다.
철이와 돌이는 머리띠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다시 샅바를 잡았다.
“돌이 이겨라.”
순이가 방정맞게 또 소리쳤다.
“우리 철이 이겨라.”
이 동주가 큰 소리를 쳤다.
순간 철이가 돌이를 번쩍 들어서 모래 바닥에 매다 꼬났다.
“비겼다, 다시”
이번에도 샅바를 잡자 말자, 철이가 다시 무릎으로 밀며 발목을 걸고 돌이를 집어 던졌다.
“젠장, 두고 보자”
돌이는 뒤로 돌아서 맹탕개울로 나가며 분해서 욕을 했다.
“지미 시발”
한 점수는 땅바닥에 탁-하고 침을 뱉었다.
“와- 철이 만세! 장사 났다.”
온 마을에서 철이를 장사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쌀 한가마를 철이에게 주었다.
배 강복이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배 강복이는 공부 잘하는 석이와 욱이는 물론 씨름 장사 철이까지 두었으니 정말 행복했다.
“우리 아들들 최고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배 강복이를 부러워했다.
이 쌀은 마을을 위해 여유가 있는 송 사리가 기부한 쌀이었다.
“너 나하고도 씨름 한번 할까?”
송 사리가 철이의 손을 잡았다.
“관두세요. 나이도 어린 아이 한태 어른이 뭐하시는 거예요.”
철이 엄마 권 수인은 급한 순간이면 이렇게 서울말을 했다.
“좋아요.”
철이가 말했다.
송 사리와 철이가 온몸에서 땀을 흘리며 밀고 당기면서 힘을 겨누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 중에 초죽음이 되도록 기운이 빠지는 사람이 있었다.
권 수인은 어쩌면 육신의 부자간에 씨름을 하는 것 같아 온몸이 아파왔다.
송사리는 하필이면 아들 같은 철이를 잡고 기운을 쓰는지 버팅기는 철이의 모습에서 자기가 힘이 빠져 당한 것처럼 처참한 심정이 되었다.
눈이 가물 가물해지는 순간 송 사리가 철이를 모래밭에 집어 던졌다.
송 사리 생각은 아마도 철이가 순이 옆을 오가면서 자꾸 괴롭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이참에 아예 버릇을 고칠 요량이었다.
송 사리는 일어서는 철이를 다시 어깨 넘어 치기로 매다 꼬났다.
“아니 아이를 죽이려고 환장을 했나! 차라리 나를 죽여라! 이 나쁜 놈아!”
어느새 어미의 보호 본능이 작용해서 권 수인은 눈에 불을 켜고 송 사리 앞으로 나갔다.
“허 허 아줌마는 좀 가만히 있어요, 남자라면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 허 허”
턱밑으로 다가간 한 점수와 돌이는 물론 순이까지 철이가 넘어 질 때마다 고소해 미칠 것 만 같았다.
그런데 어디서 힘이 났는지 철이가 다시 송 사리를 잡자마자 다리를 걸어서 넘어 트리고, 또 넘어트리면서 사람들의 얼굴색이 바뀌었다.
이 동주는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간난 네와 순이가 뛰어나오면서 송 사리를 부축했다.
“괜찮아, 철이가 대단 하군, 네가 이겼다. 하 하 하,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넘어 졌어”
송 사리가 먼지를 털고 일어나서 철이 어깨에 팔을 얹고 말을 하니, 앞뒤 머리와 풍채가 비슷하게 닮았다.
권 수인은 깜짝 놀랐다.
순간 송 사리가 철이를 등으로 들러 매고 돌렸다.
철이는 눈앞이 까마득했다.
이건 아니지만 괴력의 힘에 밀리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땅바닥에 사뿐히 떨어졌다.
“봐 준거다, 아가”
권 수인은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63회 검은 점
송 사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철이에게 말하고 일어서는데, 흘러내려온 송 사리 바지가 엉덩이에 걸리자 배꼽 밑에 검은 점이 보였다.
철이는 무너매 어미가 배곱 밑에 검은 점을 조심하라던 것을 기억했다.
송 사리 아저씨의 괴력에 집어 던져 졌다면, 목숨이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송 사리 아저씨가 날 살려준 기여 암’
철이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순이를 빨리 챙기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짐했다.
철이가 송 사리의 어깨 너머로 넘어질 때 이 동주는 너무 놀라 주저앉아서 오줌을 질겼다.
우 민자와 순이는 신이 났다.
그래도 철이가 쥐똥나무 마을에서 송 사리에 이어 작은 씨름장수로 등극했다.
노인들은 결과를 중시하며 먼저 신이 나서 춤을 추었다.
아낙들도 둘러서서 춤을 추었다.
통돼지고기 안주로 시원한 막걸리가 한 순배씩 돌아가고 마을이 흥에 겨워서 남녀가 물론하고 어깨에 손을 얹고 빙빙 돌았다.
꽹과리를 치는 사람들에 북을 치는 사람들이 있나 하면 나팔도 불었다.
산마루 연이네 할머니가 꼽추 등을 하고 나와서 한가운데서 춤을 추었다.
마을 축제는 새벽녘에야 끝났다.
늦은 밤이 되자, 한마당에는 사람들이 먹다 남은 돼지 뼈다귀 씹는 곰지와 홍실이만 남아서 밤참을 즐기고 있었다.
그날 밤 철이는 괘씸한 순이를 벼르며 순이 창가에 다가 갔다.
그런데 벌써 도착한 돌이가 순이 창밖에서 순이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철이는 돌아섰다.
오늘 씨름은 이겼지만, 결국 돌이한테 순이를 뺏긴 것이나 진배없는 날이었다.
철이는 속이 많이 상했다.
철이는 순이네 마당 안으로 살그머니 들어가서, 순이 꽃 신발을 들고 집으로 냅다 내뺐다.
순이가 찾아오겠지!
만약에 순이가 꽃신을 찾으려 오면 내가 차라리 왕자였다.
철이는 순이 꽃신을 잘 씻어서 아무도 보지 않는 뒤 안에서 말려 가슴 속에 넣고 잤다.
이 세상에 고무신 하나를 가슴에 넣고 웃으며 자는 철이 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순이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뜨락에 있던 아빠가 사온 꽃신을 아무리 찾아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 신발이 없어 졌어유”
“무슨 신발?”
“아빠가 사온 꽃신 말유”
“야가, 그런 고운 신발은 방안에 넣어두어야지 개라도 물어뜯으면 어쩌려고 밖에 두었어?”
“꽃신에서 무슨 냄새라도 나야 개가 물지...차 암 어딜 갔을까?”
순이는 꽃신을 찾으러 온 마을을 다니기로 했다.
순이 발에 맞는 사람은 복이나 분이거니 했다.
“니들 내 꽃신을 보지 못했어?”
“무슨 신? 고무신?”
“몰라?”
“참,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가벼”
“씨름에 진 돌이 응원하다가 머리가 돌았나?”
복이는 심술이 나서 말했다.
“야가 별소릴 다한다!”
“아녀? 내가 다 알아, 네가 돌이 하고 결혼 할 거라는데, 누가 말려”
“이러다 오늘이라도 내가 결혼 할 것처럼 이야기 하네”
“그럼 아녀? 온 동네 남자들은 전부 네 꺼지?”
“좀 나눠주라, 철이 할래! 돌이 할래! 아님 노처녀로 늙어 죽을 래”
복이와 분이는 부아가 나서 할 말을 다해버렸다.
“정말 니들하고 못 놀아”
“좋아, 우리는 네가 두 남자 등쌀에 어떻게 사는지 두고 볼겨”
복이나 분이는 남자들이 자신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것이 약이 올랐다.
“약 오르지! 나처럼 예뻐 봐라, 성질나면 아버지 한태 이야기해, 울 아빠가
던져 줄태니까!“
“칫- 철이 한태 꼼짝도 못하면서, 돌이는 또~! 모두 잼병이여”
순이는 철이도 내 편이라고 생각했다.
“철이? 철이 하고 결혼 할겨, 호 호 호 잠자다가도 내꿈꾸고 놀라자빠져라 흥”
복이나 분이는 성질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귀신이 널 잡아먹을 겨”
“벌건 대낮에 귀신타령이냐, 니들끼리 남아서 치고 박고 싸워 봐! 나오는 게 있나, 이 세상이 다 내꺼다, 야호”
복이와 분이는 이제 주저앉을 것 같았다.
“두고 볼겨”
순이는 검정 고무신을 신고도 잘 달렸다.
발걸음도 신났다.
‘근데 꽃신이 어디 갔지?’
순이 걸음이 쥐똥나무 울타리쯤에서 느려지는 때였다.
“야호!”
“아유 깜짝이야”
“나야, 철이”“왜?”
“네가 뭘 찾나하고 궁금해서”
“내가 뭘 찾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 알아, 장인 한태는 죄송했지만 허허”
“네가 진짜 이긴 줄 알아? 아빠는 네 엄마가 살려주라고 해서 봐 준거야”
64회 문을 열고
“이게, 힘으로 하면. 아 아 알았어, 장인어른이 날 봐 주셨고말고.
“너는 지금 나하고 결혼해서 살고 있는 것처럼 장인, 장인, 하네, 야 내가 천만에 너하고 결혼 할까!”
“그럼 누구랑?”
“돌이지, 너보다 백배 낫잖아”
“백배! 내가 이 백배 보여줄게”
“어떻게?”
“이렇게”
철이는 가슴 속에 감추어 두었던 꽃신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도둑놈아, 내신 내놔”
“도둑놈? 도둑놈이 아닌 남자 나오라고 해, 세상 여자 데리고 오면 다 도둑놈들이지”
“그래도 이 새끼야, 내 신을 훔쳐? 이 나쁜 놈아”
“네가 성질내는 모습이 예쁘니까, 그걸 보고 싶어서 그런다, 바보야”
철이는 순이 신발을 들고 뛰었다.
순이가 따라왔다.
순이가 뛰어오다 돌에 걸려 넘어졌다.
“아이고 아파”“어디?”
“여기 무릎”
“피는 안 나네, 내가 치료해 줄게, 호 호 호 됐지?”
“그만해 왜 다리는 주무르고 그래”
“내가 신발 신겨줄 때까지 가만있어”“하 참”
순이도 지쳐서 일어나 서있으니 철이가 순이의 매끈한 다리를 들게 하고 꽃신을 신겨 주었다.
“찾아줘서 고맙지?”
“도둑놈”
순이도 영 싫지는 안았다.
철이의 넓은 등과 발목을 잡는 팔 힘이 전달해왔고, 따스한 손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아빠의 정든 땀 냄새 였다.
참 이상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해, 내가 너를 좋아한단 말이야”
“왜?”
“나도 몰러”
순이도 왜 철이에게 끌리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순이 방은 벽에 사각 구멍을 내고 창호지만 바른 여닫이 봉창이 하나 있었다.
흙벽돌 창에는 틈이 있어서 새가 물어다 심은 쥐똥나무 씨가 자라 파란 싹을 냈다.
아무리 작은 바위틈에서라도 씨가 앉을 수만 있다면, 그 씨가 뿌리를 내리고 움트고 싹을 내는 것이다.
이 따스하게 열린 창으로 분이와 복이를 만나고 돌이와 이야기꽃을 피우기고 했다.
씨앗은 싹트고 사랑의 꽃은 피게 마련이다.
철이는 한밤에 쥐똥나무 울타리를 옆으로 재치고, 순이 방 창 곁에 붙어 섰다.
트럭이 없는 것을 보니 송 사리가 돈 벌려 차를 몰고 간 모양이었다.
안방과 순이 방에 불이 다 꺼지고 코고는 소리와 숨소리가 다 들리는 흐린 날이었다.
철이가 순이 방문 앞에서 방안 쪽을 들여다보니 순이가 방문을 열어 재친 체 한잠에 빠져있었다.
여치소리가 났다.
철이는 여치가 우는 소리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씨르륵 씨르륵’
‘싹 – 싹 -“
그렇게 방안으로 들어갔다.
순이는 옆으로 누웠다가 바로 누웠다.
철이는 바짝 엎드려서 순이가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랬다.
그렇게 조금 있으면서 손을 잡았다.
순이 손이 따스했다.
“더워”
순이가 팔을 위로 올리면서 말했다.
철이는 순간 순이 배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순이 입을 틀어막고 한손으로 꼭 껴안았다.
“으음 누 누구야”“철이, 가만히 있어.”
“놔, 너 왜 그래”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
“손 좀 놔 봐”
순이가 몸을 비틀었다.
“가만히 있어”
철이는 순이를 꽉 잡고 눌렀다.
“소리 지른다.”
“소리치면 너를 죽일 거야”
철이는 순이 목을 졸랐다.
“헉 헉 허 죽이지 마, 네가 하란 대로 할게”
철이가 순이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옷을 찢었다.
그리고 철이는 쥐똥나무 꽃을 언제 준비했는지 순이가 벌거벗은 몸 주변에 쥐똥나무 꽃을 겹겹이 뱅둘러 가면서 늘어놓았다.
순이의 맨 몸이 쥐똥나무 꽃잎으로 둘러쌓였다.
순이는 쥐똥나무 잎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앞 뒤의 창문을 죄다 열었다.
쥐똥나무 꽃 향기가 방안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순이가 소리 쳤다.
철이가 순이 입을 자기 입으로 틀어막았다.
그리고 꽉 눌렸다.
거기서 뽀도독 뻐꾹 하고 버꾸기 우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에 퍽-하면서 순이 배위로 밤꽃 냄새가 흘러내렸다.
그 위에 쥐똥나무 냄새가 어울렸다.
65회 형제 싸움
“엄마가 형이 뭐가 필요한지 알아보고 오라고 해서 왔더니, 보아하니 순이 하고 살림살이나 챙겨줘야 하겠군, 나 참”
철이는 형과 순이가 있는 것에 질투심이 불길 같이 치솟았다.
“철아! 너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청소 해주려고 왔어, 그런 말 마”
“살림 차리고 둘이 살라고 하는 것 아니었나구”
“얌마, 형이 뭘 하던 네가 뭔 참견이야, 순이 너도 가라”
“순아 가라! 단물 다 빨고 보내는 겨?”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청소 한다 길래 하지 말라고 하는 중이었다. 왜?”
“청소하는 사람을 끌어안고 뒹굴러 보려고 했다, 이 말이지? 누가 믿어 시발 공부는 개나발로 하냐?”
“말이며 단 줄 아나?”
석이가 큰 돌을 들고 철이를 내려치려 했다.
“헝! 이제는 동생을 돌로 쳐 죽이겠다, 해보자”
나이 많은 석이와 덩치 큰 철이가 맞붙었다.
“오빠들 왜 이랴, 참아, 참으라고”
순이가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철이는 얼굴이 하얗게 변한 순이를 보자 물속에서 건져낼 때 그 모습이어서 손을 멈추었다.
순이가 또 탈이 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뭐라고 해도 순이는 내 것이었다.
“알았어, 시발”
“둘 다,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어, 그때는 둘 다 죽여 버릴 거여”
석이는 비참해져서 막말을 했다.
“누가 오라고 해도 올 줄 알아, 순이 너도 여기 오면 안 되는 거여”
철이는 순이의 등을 때렸다.
“아파! 너는? 내가 네 마누라도 되냐? 왜 나를 맘대로 하려고 해, 징그러워 정말 흐 흐 흑”
순이는 울면서 토굴을 빠져나갔다.
철이는 그 뒤를 따라서 터덜터덜 내려갔다.
산바람이 불어오자 석이는 웃통을 벗고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허허 웃었다.
‘공부하기 더럽게 힘드네’
그래도 석이는 인내와 끈기로 지치지 않고 노력하여 성공하고 싶었다.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려는지 여름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겨드랑이가 쩍쩍 달라붙으며 변덕스럽게 변했다.
순이네 칠 흙 같이 어두운 그 밤에 호롱불 켜진 누에 방에는 5령 누에가 사각 사각 여름 비오는 소리를 내며, 왕성하게 뽕잎을 먹어 치워도 순이는 눈꺼풀이 온몸으로 내려 덮어 방바닥에 그냥 쓰러져 자고 있었다.
안방도 고요했다.
철이는 순이네 집 뒤꼍으로 가서 쥐똥나무 울타리 밑을 살펴보고는 개구멍을 찾아서 살금살금 순이네 뜰로 스며들어갔다.
저쪽 안방에서 송 사리와 간난 네가 사람 잡은 소리를 내더니 조용해지더니 이내 코고는 소리가 방문을 넘어 흘러 나왔다.
철이는 순이가 자고 있는 방을 잘 알고 있었다.
철이는 낮에 본 순이가 다시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잘못 하다가 놓치면 순이가 석이나 돌이와 살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며 시야가 까맸다.
안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으니 철이는 이때다 싶었다.
철이는 살그머니 순이가 있는 누에 방에 동정을 살피고는 누에처럼 살금살금 순이 방으로 기어들어갔다.
오래된 어둠속에서는 지척을 잘 분간할 수가 있었다.
순이 옆으로 살며시 다가가서 한여름 날씨에 더워서 하얀 가슴을 다 들어내고 치마도 배위로 올라가서 명주 속곳의 끈이 허리를 동이고 있는 모습이 어둠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순이의 얕은 숨소리가 방안을 새근새근 두드리고, 철이의 두근거리는 숨소리는 이리처럼 거칠어졌다.
철이는 어디부터 손을 댈지 몰라서 그냥 숨소리만 거칠게 내고, 한참을 순이를 내려 다 보았다.
이윽고 철이는 순이의 입술에다 자기 입술을 포갰다.
“엄마, 음 음 음 누구”
“철이여 쉿”
철이는 손으로 순이의 입을 막고 배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왼손으로 순이의 한손을 잡았다.
철이는 맹렬하게 움직이는 순이 배위에서 찍어 눌렸다.
둘이는 한참을 방안에서 맴돌다가 순이가 힘이 빠지고 지쳤을 때, 철이가 순이의 속곳을 한손으로 확 잡고 당겼다.
순이의 속곳은 좍 찢어졌다.
66회 나를 지켜줘
“철아! 이러면 안 돼, 나 좋아 하면 지켜줘야지”
순이는 속곳을 손으로 잡고, 철이에게 사정했다.
철이는 순이 말에 손을 놓고 입술만 빨았다.
그리고 순이를 폭 안았다.
순이는 자기 몸을 지켜내기 위해 손으로 막고 있었다.
철이는 이내 순이 한태서 떨어졌다.
“담에는 꼭 너를 가질 겨”
철이가 몸을 일으켰다.
“내가 그렇게 좋으면 항상 지켜줘야 해”
순이도 철이가 싫지는 않았다.
“그래”
“빨리 나가 엄마 아빠 한태 들킬라.”
“응”
철이는 뱀처럼 왔던 길로 기어서 뒤꼍으로 빠져 나갔다.
참 아슬 아슬 했지만, 철이가 자기의 처녀를 지켜주어서 고마웠다.
순이는 옷을 고쳐 입으면서 문밖으로 철이가 어둠속을 빠져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순이는 철이가 물에 빠졌을 때 입술을 가져간 것과 이 밤에 자기를 겁탈하려는 것들이 알사하게 가슴에 파도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온몸의 움직임도 아슬아슬한 지킴으로 행복할 수가 있을까!
철이의 이런 행동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돌파구를 찾는 심산이었다.
석이 형이 토굴로 들어 갈 때도 어디 멀리 가고 싶었다.
무서운 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과 이 동주를 만나는 밤이 무서웠다.
모두 잠든 밤에 마당으로 나와 모닥불이 사그라지는 것을 불쏘시개를 다시 넣어 휘젓고는 평상에서 팔을 괴고 누워 별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어디 멀리라도 갔으면 좋겠다. 아직 청춘이 만리 같은데 말여”
“뭐라고 어딜 간다고?”
어머니가 냉수를 뜨려고 마루에 나서다 들었다.
“아니여 유 별이 어딜 간다구 유”
“언능 들어와 잠이나 자, 또 아버지한테 한소리 듣지 말고 응”
“야”
철이는 혼자서 공상도 못하는 따분한 신세가 되었다.
철이는 어디에 머물던지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음날 마을에 엿장수가 들어왔다.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우체부, 생선장수, 엿장수, 방물장수, 인삼장수 방물장수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팔려고 오는 타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두 번 씩 서커스 공연이나, 활동사진 상영이 있기도 했다.
“엿 사려, 엿 좀 사요.”
엿장수는 작은 리어카를 밀며 다녔다.
이렇게 40대 정도의 엿장수가 쥐똥나무 마을에 엿을 팔려고 건들건들 왔다.
엿장수가 엿 가락 하나를 집어서 공중으로 휙 집어 던졌다.
엿가락은 이내 하늘에 잠시 떠있다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조각이 나서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마을 아이들은 그 엿가락을 주우려고 달려들다가 머리를 부딪치고 나가떨어지기도 했다.
운 좋은 녀석들은 입에 물어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큰 조각을 주워서 희희낙락했다.
온 동네가 엿장수 마음대로 였다.
엿만 뿌리면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그 공짜 맛베기 엿 조각을 주어먹으려고 너도나도 몰려드니 말이었다.
나도 엿장수나 되어볼까?
엿장수는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엿도 맘대로 팔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엿장수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니 멋있는 일이었다.
철이는 도무지 말썽부리는 소를 끌고 다니며 꼴을 먹이는 일이나, 염소 목 에 맨 줄에 매달려서 끌려 다니는 것도 진력이 났고, 농사일은 도무지 마음에도 없었다.
철이는 사람들 틈에서 엿장수를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엿장수는 소리쳤다.
“다가지고 나와라, 냄비 뚫어 진 것, 고무신이나 빈병, 무쇠 솥도 좋다, 다가지고 나와라.”
동네 아이들은 이 말을 듣고 집집마다 들어가서 빈병이나 해진 고무신을 집어 들고 엿장수에게 달려 왔다.
엿장수는 다시 엿을 뿌리고 리어카를 끌고 이웃 마을로 향했다.
어린아이들 속에서 침만 흘리던 철이가 빨래를 널고 있는 권 수인에게 다가갔다.
“엄마 나 돈 좀…….”
철이는 엄마에게 차마 엿 사 먹고 싶다는 말은 못하고 돈을 달라고 했다.
“야 이놈아, 돈 커녕은 쇳조각도 없다, 어여 가서 소꼴이나 배와, 아이고 철아”
철딱서니가 없는 아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기에 엄마에게 돈을 얻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내가 뭐 머슴인가? 참 알았어요.”
철이는 심술이 났다.
“빨랑 안가”
권 수인은 빨래를 널면서 재촉했다.
“야”
철이는 입을 빼물고 그냥 도망 나왔다.
달콤한 엿을 먹고 싶어서 뜨거운 고추밭에서 밭을 매는 아버지 배씨에게 주전자로 찬물을 떠 가지고 갔다.
67회 단 것이 좋아
“얼씨구! 네가 웬일이냐?”
“아부지 여기 물....”
“마침 목이 마르던 참에 잘됐다, 날씨가 얼매나 더 운지 하이고 더워라, 아 시원하다, 근데 네가 시키지도 않은 물을 떠오다니 무슨 일이냐?”
“아버지 돈 좀 주세요.”
“무슨 돈 ?”
“엿 사먹게요.”
“하 하 하 이런 썩어 죽을 놈아! 다 큰 놈이 뻘건 대낮에 엿은 무슨 엿이냐, 이거나 처먹어라.”
배씨는 철이에게 큰 삽으로 흙을 퍼서 철이의 머리에 뿌렸다.
철이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언덕 밭 위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놈아,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돼 질 줄 알아라, 천하에 쓰레기 같은 놈아”
철이는 죽자고 뛰었다.
걸음을 멈춘 것은 버드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던 엿장수를 만났다.
“왜 그렇게 뛰어다녀?”
“어~ 아저씨, 엿 좀 사먹으려고 돈 달라고 하자, 아버지가 죽인다고 해서요. 후유”
철이는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렸다.
“엿이 그렇게 먹고 싶냐?”
“야”
“어디 실 컷 먹어 봐라.”
앞니가 하나 빠져 합죽한 엿장수는 실눈을 뜨고 철이를 바라보며 큰 엿가락을 하나 주었다.
엿장수는 벌써부터 동네 소문으로 철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먹이를 준거나 마찬가지였다.
못난 인간들은 달고 맛난 엿에 똥파리처럼 달려드는 것을 엿장수는 잘 알고 있었다.
철이는 먹고 싶던 엿을 바그작 바그작 잘도 씹어 먹었다.
용돈 한 푼 준적이 없는 부모를 생각하면서 씹고 또 씹었다.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 제일 불쌍한 것이다.
“근디 말여”
엿장수가 은근히 철이의 등에 다정하게 손을 얹고 말했다.
“이 엿은 공짜가 없어, 내가 돈이 필요한 사람이여, 너도 돈 없는 것을 잘 알아, 내가 여기 나무 밑에 있을 태니까, 빈집에 들어가서 돈 되는 것을 가져 오란 말여”
“가져오라면 도둑질 하란 말여요? 좀 전에 엿을 공짜로 주셨잖아요.”
철이는 놀라서 말하고 더구나 도적질까지 하라니 겁이 났다.
“그냥 처음에는 다 힘든 거야, 그렇지만 한번하면 두 번째 부터는 길들어서 잘돼 뭐든지 그렇다고, 얼른 가서 돈 되는 것을 가져오란 말이야”
엿장수는 품속에서 칼을 내보이면서 말했다.
“안돼요, 아저씨”
“그럼 여기서 죽을 래! 조기 숲에 끌고 가서 죽일까?, 백 환만 만들어 가지고 와”
“백환이면 쌀이 두 되 인데요, 엿이 그렇게 비싸요?”
“네가 먹은 엿은 특제야, 좀 크다고 생각 안 들었어?”
“야 좀 컷어요, 그래도 그렇지”
“이 새끼가 웬 잔말이 많아, 빨랑 돈 백환 가지고 와”
철이는 엿장수의 엄포에 마을로 들어와서 돈이 있을 집을 찾았다.
그런 집은 만만한 이 장댁이었다.
이 장댁은 들에 나갔는지 집에 아무도 없었다.
창호지로 된 방문과 목재 부엌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혹시 뒤 안에 누구라도 있으면 해서 ‘에취’ 하고 일부러 소리를 냈다.
반응이 없었다.
철이가 방안으로 들어가서 안방 시렁에 있는 반짇고리를 꺼내서 지갑을 찾았다.
거기에 돈 이백 환 들어 있었다.
철이는 그중에 하나를 꺼내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고 밖으로 냅다 뛰었다.
그 순간 문 앞으로 들어서던 이 장댁을 만났다.
“철아 우째 왔어? 잠시 앉았다가 가지, 뭐가 그리 급해”
“아주머이 아니유”
“자가 자가, 봐라, 철아”
철이는 뛰어서 버드나무 그늘에 늘어져 누운 엿장수에게 다가갔다.
68회 도적질
“아저씨 엿 값이유”
“얼만데 ”
“백 환이요”
“얼마 있었는데?”
“이 백환이요.”
“다시 가서 모두 다 가지고 와, 나 여기 있을 테니, 나는 너 때문에 오늘 장사도 못하잖아, 늦으면 한 시간당 백 환씩 올릴 거다, 알았지”
엿장수는 날선 칼을 철이 앞에 꺼내서 버드나무 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말했다.
먼데 산에서 뻐꾸기도 뻐꾹뻐꾹 하며 울었다.
철이는 겁이 나서 복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모녀간에 사는 복이 네는 방 두 칸에 방안이 텅 빈 가난한 모습이 역력했다.
훔칠 것이 없었다.
철이는 놋 밥그릇을 두 개를 얼른 들고 나왔다.
엿장수는 백 환을 쳐주었다.
이번에는 좀 떨어진 돌이네 집으로 찾아 들었다.
철이는 흰둥이 개 홍실이가 짖어대는 때문에 집 앞에서 얼쩡거리기만 했다.
이윽고 머리를 감고 일어선 돌이 엄마 서 영은이 개 짖는 소리를 듣고는 문 앞으로 걸어 나왔다.
“누구세요.?”
철이는 죽으라고 뛰었다.
“자가 철이 아닌 게비여, 우찌 이까지 왔을꼬? 별난 일이여, 참 말로 별난 녀석 이구만”
돌이네는 철이 집과 정반대되는 곳에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철이가 뒤를 돌아보니 이 동주와 복이 엄마가 광주리를 들고 길가에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철이가 뛰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평소와 달리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철이는 얼른 버드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아저씨 도저히 못하겠어요.”
“그럼 나를 따라와! 내가 밤일 하는 것을 도와줄게”
“아니여 안가요.”
“까불지 말고 따라와, 안 오면 동네에서 도적질한 것이나 엿을 훔쳐 먹은 것을 죄다 까바실거야”
“아 엿은 아저씨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잖아요.”
“그런데 도적질 한 물건을 어쩌고”
“그것도 아저씨가 훔쳐오라고 해서”
“내가 언제? 네가 외상으로 먹은 엿 값을 갚으려고 훔쳐 온 거 아니야, 이제는 거짓말까지 할래! 혼날래? 아니면 나를 따라 올래?”
“.......”
철이는 할 말이 없었다.
이 아저씨는 전부 거짓말을 해도 도적으로 몰릴 것이고,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생각나니, 이참에 멀리 가고 싶기도 했다.
순간 저 멀리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임마, 빨리 여길 뜨자, 네가 물건 훔친 것이 발각된 모양이다.”
엿장수와 철이는 한 패가 되어서 마을을 빠져 나갔다.
철이는 이 동주의 목소리와 복이 엄마, 돌이 엄마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멀어져가는 들판을 지나 고개를 돌아갔다.
엿장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을 즈음 소리쳤다.
“엿사려 엿사려 안사면 말고, 엿사려 엿사려 안사면 말고 ♬ ~ ♩~ ”
그 소리는 처량한 철이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철이는 엄마 생각이 났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집을 억지로 떠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집이 지겨웠다.
근데 순이는 어떻게 하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너는 이자 집에 못 간다, 네 마음을 잘 안다, 꼼짝 말고 나만 따라와 엿공장에 취직시켜 줄게”
“엿공장에 취직을 시켜요?”
“그래 네가 좋아하는 엿을 실컷 먹으면서 지나게 된다, 다 내덕인줄 알아라”
“야 .....”
69회 엿 공장
철이는 도적질을 시키지 않고 엿 공장에 취직 시켜준다니 흥미로웠다.
어느덧 엿 공장에 도착한 엿장수는 엿을 팔아 모은 고물과 훔친 고물들을
현금으로 바꾸는 한편, 철이를 남겨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엿공장 주인에게 다가갔다.
“저놈이 엿도 좋아하고 덩치가 있어서 쓸 만하니까, 맡아서 일시키시고 사람 구해준 값이나 톡톡하게 주시오”
“얼마를 .....?”
“만환은 줘야지”
“저 깐 시골 놈 밥값이나 할 련지, 무슨 만환이야, 오천환이면 모를까”
통통하게 생긴 엿공장 주인이 얼굴에 기름기를 번들거리면서 말했다.
“알았소, 육천환주시오.”
“안돼요, 오천 환”
철이 귀에 들리도록 흥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철이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이었다.
“알았어요, 빨랑 돈 줘요, 아픈 집사람 병원에 데리고 가게”
“사람 팔아서, 마누라 병 고치려는 사람 처음 보내, 자 여깃소”
엿공장 주인은 지폐를 꺼내서 엿장수에게 주었다.
“철아! 공장에서 일 열심히 해, 또 보자”
엿장수는 노래를 부르며 가버렸다.
“임마, 뭘 멍하게 바라보고 있어, 방금 내가 너를 돈 오 천환 주고 너를 산 것 보았지, 너는 이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 줄 알아, 얼른 창고에 들어가서 엿 만들 쌀자루를 지고 나와”
엿장수가 가버린 곳을 바라보는 철이의 등에서 불이 났다.
철이는 쌀자루를 들고 나오면서 하루 만에 변해버린 자신을 돌아 봤다.
일하는 엿공장 아저씨들은 네 개의 엿가마가 걸린 주위에서 불을 지피고 긴 주걱으로 엿을 젓다가 철이에게 주걱을 넘겨주고는 다른 일을 했다.
철이는 뜨거운 가마솥 옆에서 한여름 땀을 철철 흘리면서 엿물을 젓고 있었다.
철이는 엿물을 저으면서 더운 열기와 땀이 흘러도 잠깐 잠깐씩 졸렸다.
맹탕개울에서 작은 배로 노를 젓던 생각이 났다.
그리고 노젓는 팔에 점점 힘이 빠져가면서 살포시 눈을 감았다.
“이 자식이, 엿 되고 싶어서 환장했나, 뜨거운 엿가마 옆에서 졸면 어떻게 해 ”
엿물을 고는 장작이 등에 부딪치면서 부러져 나갔다.
“아이구 죽겠네”
“아이구 죽겠네? 임마, 엿 솥에다 너를 삶아 버릴 뻔 했잖아, 이 멍청아”
주인 손씨는 서슬이 퍼래서 철이를 잡아 죽일 듯 했다.
하루 종일 엿 솥에 붙어서 엿을 고아 내자니 온몸이 쑤셔오고 잠이 쏟아 졌는데, 장작으로 등을 한방 맞고 난 뒤에는 정신이 뻔쩍 들었다.
뼈가 부러졌는지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차라리 집에서 아버지 한태 혼이 나더라도 나무나 하려 다닐 것을 공연히 엿장수를 따라 와서 이 고생이었다.
“촌놈이 보은읍에 와서 고생 한다, 아나 엿이나 먹어라.”
10살이나 될 나이의 손씨 딸이 엿을 손에 들고 주려다 말았다.
철이는 엿이나 고았지 언감생심 엿을 먹을 수가 없었다.
밤이 되어 겨우 아저씨와 교대하고 저녁을 먹고는 잠에 골아 떨어졌다.
꿈속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철이를 찾고 있었다.
[철아 !]
“예?”
꿈이었다.
한편, 마을 아낙네들이 우물가에 모여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돈 백 환이 어디로 가고 없어요.”
이 동주가 말했다.
“우리 밥그릇을 가져갔던데.”
복이 엄마가 말했다.
“글쎄 누굴까, 뭐 집히는 사람 없우”
이 동주가 돌이 엄마 서 씨에게 물었다.
“글쎄! 하여튼 엿장수만 나타나면 온 동네가 난리라니까, 철이가 ...”
“철이가 뭐”
70회 철이를 찾아라
복이 엄마가 말했다.
“쉿 저기”
서 영은이 철이 엄마가 뛰어오는 것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험 ”
복이 엄마가 큰기침을 했다.
“철이, 이놈이 어딜 갔나?”
철이 엄마 권 수인은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여기저기 철이를 찾았다.
“철이는 엿장수와 같이 가는 것 같던데…….”서 영은이 말했다.
“언제 쯤?”
“하루가 넘었지 아마, 나는 빨래 걷어야 해, 가네”
돌이 엄마 서 영은이 집으로 돌아가고, 이어서 복이 엄마와 이 동주도 슬며시 집으로 돌아갔다.
“철아 철아”
권 수인은 미루나무 아래에서 겨우 차가 들어오는 동구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어서 배 강복이와 석이 까지 철이를 찾아 나섰다,
“하이고 철이가 또 일을 친 모양이야”
간난 네가 집 앞으로 지나가는 철이네 식구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엄마 무슨 일?”
순이가 물었다.
“낸들 알겠어, 너무 야단스러운 녀석이니 알 수가 있어야지, 너는 철이 조심해 따라 다니지 말란 말이여”
“엄마는 괜히 철이 이야기만 나오면 나 한태 화풀이를 하더라.”
“이년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가시나 궁둥이나 따라 다니니까, 그러지”
“엄마는 참”
순이는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얼른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저러나 철이가 걱정이었다.
며칠 뒤에 동네 남자 어른들이 저녁에 느티나무 밑에 모여서 밤늦게 까지 이야기를 했다.
“엿장수 그놈의 짓이 틀림없습니다.”
순이 아버지 송 씨가 말했다.
“그놈들이 한 두 놈들이 아니잖아요, 장거리의 패들이란 말이여.”
배 강복이가 불안해했다.
“그러니 우리들이 보은으로 건너가서 철이가 다른 곳으로 팔러 가기 전에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합니다.”
돌이 아버지 한 점수가 말했다.
“파출소에는 제가 연락하지요.”
송 사리가 나섰다.
“그려 그럼”
배 강복은 목이 탔다.
“목이라도 축이면서 말씀들 하시유”
이 동주가 마침 막걸리와 안주로 파전과 묵을 썰어 내왔다.
“엿장수가 어디 있는지는 아는겨?”
한 점수가 말했다.
“아 보은 버스 역에서 조금 뒤로 들어가면 있잖여”
송 사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이 몇 시여? 새벽 두 시구만. 가야지”
배 강복은 마음이 급했다.
“두 시간 더 있다가 통금이나 해지 되면 나섭시다, 자 한 잔씩 드시오.”
한 점수가 서두는 배씨 손을 잡아서 앉혔다.
“철이가 철이 없지, 거길 왜 따라가”
“아무래도 엿장수가 윽박질렀을 겁니다, 그냥 따라갈 철이가 아니유”
“글쎄...”
배 강복은 믿기지 않지만 아이를 찾자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다.
평소에 철이가 하는 짓이 미웠지만, 그래도 자식이고, 아내 권 수인이 하루 종일 울고 있는 모습을 차마 그냥 볼 수가 없었다.
어둠속에 동네 아저씨들이 마로를 지나 보은으로 나갔다.
보은 정류장 뒤에 엿공장이 있었다.
한밤에도 불이 환한 엿 공장에서는 엿을 고는 냄새와 나무 타는 냄새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송 사리가 파출소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한꺼번에 엿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여보시오, 아무도 없오?”
“누구시유”
늙은 일꾼이 등불을 쳐들고 나왔다.
“여기 엿장사가 안 왔오?”
“엿장사요? 여기가 엿 공장인데.... 아 그 사람들은 여기저기 떠도는 사람들이라, 어디로 간 중은 알 수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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