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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평 ◈
꿈의 미래, 그 궁극의 가치
이 대 영
김초엽/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2019. |
▮ 들어가기
김초엽 소설의 시공간은 현재가 아닌 미래이다. 미래의 시간과 공간이기에 거기에는 과학적 상상력이 동행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상상하는 우주 외적인 세계와 그곳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노력,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개인 및 사회적 심리들은 그의 소설을 이끄는 서사의 힘이 된다. 그러기에 우리가 꿈꾸고 있는 미래의 과학기술에 대한 기대와 상상력은 독자의 기대지평을 확장시키거나 낯설게 만든다.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 일곱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작품에서 우리는 지구와 위성을 오가고, 배아를 디자인 하고, 미지의 행성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만나며, 망자의 마인드가 데이터베이스화된 도서관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고, 냉동수면기술로 생명을 연장하며, 피임 칩을 인체에 끼워 피임을 하는 상상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그렇다고 김초엽 소설이 상상력만 자극하지는 않는다. 그의 소설에는 인종과 성 차별, 비윤리성, 타자화, 장애인 등 우리사회에 내재해 있는 사회문제 등도 현시한다.
▮ 삶, 그리고 타자화
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는 선천적 열성 유전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이를 극복하려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과학자의 열정, 그리고 실패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성인식을 하기 전에 마을을 떠난 데이지가 소피에게 보내는 서간체 형식의 작품이다. 지구 밖에 존재하는 이 ‘마을’은 모든 이들이 같은 자궁에서 태어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행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슬픔은 알지만 지속적인 갈등과 고통, 불행은 항상 실재하는 것이 아닌 상상의 개념으로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열여덟 살이 되면 성년식의 과정으로 ‘시초지’로 순례를 떠나보내는 관습이 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순례자들은 이동선을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 돌아온 그들은 한 성인으로 인정받았지만 항상 떠난 사람 수에 비해 돌아오는 수는 적었다. 이러한 ‘시초지’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찬 데이지는 학교 뒤뜰에 금서구역의 서가가 있음을 알고 그곳을 방문하여 그곳에 관한 기록을 찾아냈다. 그것은 2170년 “릴리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이 도시를 만들었다”라는 올리브의 말로 시작된다. 릴리 디우드나는 바로 올리브의 어머니이다.
올리브는 모하비 사막의 유일한 도시 이타샤에 기거하며, 그의 얼굴에 자리한 커다란 얼룩이 사람들로부터 배타시되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지구가 100년 전에 나타난 해커들에 의해 신인류가 만들어지고 있음도 알게 된다. 유전자 시술을 통해 사람을 개조하고, 도심은 개조인들이, 도시 외곽은 비개조인들이 살고 있다. 올리브는 가게에서 주방 보조를 하며 델피로부터 릴리 디나우드가 100년 전의 인물로 이 악몽 같은 세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릴리 디나우드는 2035년 콜롬비아 보고타 출생으로 MIT 공대를 졸업하고 인간배아디자인 해커 ‘디엔’으로 활약한다. 디자인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답고 유능하며 질병 없이 장수하는 신인류가 늘어나며 동부의 도시는 개조인들의 거점이 되어 간다. 그리고 디엔은 4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행방이 묘연해진다.
올리브는 릴리 디나우드가 왜 보스톤을 떠나 지구 밖의 마을로 왔는지를 탐문한다. 그 결과,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그가 지구를 떠나기 전 남긴 기록을 발견한다. 그것은 얼굴에 지워지지 않는 흉측한 얼룩에 대한 자기 콤플렉스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배아 디자인에 대한 연구와 실행을 위한 것이었다. 릴리는 아이가 갖고 싶다는 욕망에서 배아디자인을 통해 올리브를 출산했으며, 유전학적 노이즈에 의해 얼굴에 나타나는 결함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이룬 모든 배아디자인 연구를 폐기하고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는 새로운 유전자 생명체 연구를 시작해 지구 밖에 ‘마을’을 만든 것이었다.
릴리는 ‘시초지’에 대한 기록을 남긴 후 10년 후에 다시 지구로 돌아가, 지구에서 델피와 함께 분리주의에 저항하면서 그가 남긴 흔적을 바꾸려고 애쓰다가 생을 마감한다. 마을의 순례의식은 올리브가 마을에 남긴 마지막 관습의 흔적으로 마을 외부 세계에 대한 주민들의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순례를 떠난 이들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남는다.
정말로 지구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곳이라면, 우리가 그곳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 오직 삶의 불행한 이면이라면, 왜 떠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을까?(p.51.)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거야. 그리고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거야. (p.51.)
우리 이전의 순례자들은 지구를 조금이라도 바꾸어놓았을까? 그곳은 올리브가 갔던 수백 년 전만큼이나 여전히 비탄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까? 분명 세계 곳곳에는 순례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 그들은, 릴리와 올리브의 후손들은 세계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p.53.)
결국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비록 힘들고 괴로운 여정이지만 그러한 난관을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열성유전자에 대한 선긋기의 시선 또는 타자화에 대한 비판도 보여준다.
이 작품과 연관하여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 소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이다.
가윤은 항공우주국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우주인 후보로 선정된다. 가윤의 이모인 최재경은 48세의 나이에 우주 최초의 터널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적이 있다. 터널은 화성 궤도상에 위치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천체로 그 너머에는 또 다른 우주가 있음이 밝혀진다. 터널 프로젝트는 인간이 우주 밖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위험한 터널환경에서 견디는 것이었다. 그러나 캡슐이 추진체 불안으로 터널에 진입하기도 전에 폭발하여 비행사들이 우주 밖으로 사라져 버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나 우주국 직원에게서 이모는 캡슐에 탑승하지도 않았으며 바다로 뛰어들어 캡슐폭파 사고 후 실종된 것으로 보도되었음을 알게 된다.
가윤은 심해훈련 과정에서 극한의 환경인 심해에서 사이보그로서 편안함과 해방감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모가 원했던 것은 터널로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으로의 재탄생, 사이보그 그라인딩 자체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많은 사회적 여론의 비난에도 가윤은 이모가 전에 체득했던 우주교육 프로그램을 마치고 출발을 목전에 두고 이모의 딸인 재경과 면회를 한다. 그 자리에서 비혼모, 동양인, 유일한 여성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기대로부터 이모는 우주를 떠나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윤은 마침내 캡슐에 탑승하여 터널을 통과하여 또 다른 우주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우주 저편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인류와 자신의 의지가 터널 밖의 세계로 그를 이끈 것이었다. 비록 그가 발견한 새로운 세계가 유토피아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모가 경험했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터널을 통과한 그녀의 의지에 박수를 보낼만하다.
▮ 행성, 그리고 과학적 가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8개의 주요 행성은 태양을 기점으로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명왕성의 순서로 위치한다. 지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행성은 상상 이상의 고온 또는 저온, 이산화탄소·수소·헬륨으로 가득 찬 가스행성, 얼음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표층으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다. 다만, 지구의 위성인 달은 지구인의 이주지로서의 대체 가능성과 천연자원의 활용 가능성 여부를 탐색하고자 끊임없는 탐사가 진행 중이다. 또한, 대기가 수소와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인간이 살기에는 불가하지만 약간의 산소와 물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생명체의 발견 가능성이 높은 화성 또한, 끊임없는 탐사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1990년 「토탈리콜(Total Recall)」, 2000년 「미션 투 마스(Mission to Mars)」과 「레드 플래닛(Red Planet)」, 2015년 「마션(The Martian)」, 2017년 「화성탈출(Escape from Mars)」 등 화성에 관한 영화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특히, 달은 문학, 소설, 영화, 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사용되며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문화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소설 「스펙트럼」 은 행성에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지구인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외계생명체 탐사 연구소의 일원이었던 희진은 탐사선에 올랐다가 조난되어 태양계 밖을 떠돌다가 40년 만에 구조된다. 그는 외계인이 살고 있는 행성을 발견했다고 했지만 이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
조난 열흘 째, 미지의 행성에서 희진은 새로운 생명체와 조우한다. 그들은 지구인과 같이 이족 보행을 하고 있었으나 팔의 개수는 다양했고, 약간의 농경과 수렵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수명은 3년에서 5년으로 단명했으며 수의 개념을 알고 이진법을 썼다고 한다. 행성의 위치나 시간성, 과학적 해석이 불가한 희진의 이야기는 지구인들에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진실의 가능성은 늘 열려있는 미래의 이야기로 수용된다.
소설 「공생가설」은 수만 년 전부터 인류와 공생해 온 어떤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내로 들어와 핵과 별도의 DNA를 가진 채로 수십억 년의 공생을 시작한 것처럼, 별개로 출발한 두 종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 공생하며 타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공생의 대상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니라 오래 전 지구 밖의 어느 행성에서 온 것이며 인간의 특질들이 외부에서 온 것이라면 우리의 인간성은 외계성을 공유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소설 「감정의 물성」은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소유하고 그것을 통제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감성의 물성을 지닌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미래를 가상하여 인간은 소비를 통해 감정을 얻기도 하지만, 가치를 지불하고 감정을 소유할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소설 「관내분실」은 도서관이 망자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변화된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서관은 책 대신 망자의 마인드가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층층이 쌓여 있는 공간이다. ‘마인드’란 한 개인의 일생에 이르는 정보의 총합으로 뇌의 시냅스 연결패턴을 스캔하고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현된 결과물을 이름이다. 미래에는 망자와 생자가 마인드 접속기를 통해 재회하여 대화하는 감동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170세의 나이에 남편과 아들을 찾아 떠날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과학의 발전이 오히려 인류를 분열시키는 문제를 보여준다. 노인은 지구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곳에 남편과 아들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가려한다. 그러나 우주연방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곳으로의 우주선 운행을 중단한다. 그러자 노인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수만 년 걸리는 거리에 있는 행성을 향해 작은 우주선을 타고 남편과 아들을 찾아 떠나는 무모한 행동을 이행한다. 인륜의 문제보다 경제적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미래의 극단적인 우주선 경영행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 마무리
김초엽 소설은 첨단과학을 통해 인류가 실현하고자 하는 궁극의 가치를 자문하게 한다는 점이 의미 있어 보인다. 그가 가지는 의문은 인류가 추구하는 최첨단 과학으로 실현된 세계가 과연 유토피아가 될까? 라는 점이다.
비록 우리가 지구와 위성을 오갈 수 있더라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처럼 경제성을 이유로 우주정거장을 폐쇄할 수도 있고, 냉동수면기술로 생명을 연장하더라도 삶의 행복을 보전해주지는 않는다. 망자의 마인드가 데이터베이스화된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그와 대화를 나누더라도 가상의 공간이며, 배아세포를 통해 지구 밖에 또 다른 ‘마을’을 만든다할지라도 그곳은 인성이 아닌 사이보그의 원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비록 인종과 성 차별, 비윤리성, 타자화, 장애인에 대한 편견 등이 공존하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그것과 맞서 싸우며 자신의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가치 있는 삶임을 보여준다. 분리주의에 저항하며 지구 밖에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려던 릴리 디나우드의 심정에 공감하며 그의 행보에 갈채를 보내게 된다.
보통, 그 너머의 불편한 진실
김희진/두 방문객/민음사/2019 |
▮ 들어가기
‘두 방문객’이란 소설 제목이 시선을 끈다. 그것은 서사와 등장인물의 행위, 독자, 그리고 호기심의 유발이라는 동시성을 내포한다.
작가 김희진은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혀」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 옷의 시간들, 양파의 습관, 소설집 욕조 등을 통해 세계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장편소설 두 방문객은 양평에 있는 주택에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손경애, 그리고 그를 찾아온 아들의 친구 권세현, 그의 연인인 정수연을 중심으로 5일 동안 전개되는 사건을 내용으로 한다. 작품의 서두에서, 작가는 독자를 흡입하는 서사기제를 설정해 나간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사건의 전개에 따라 작중인물 유상운의 죽음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찾고자 노력하게 된다. 즉, 아들 유상운이 생일 날 독일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 강릉으로 여행을 떠난 이유, 그리고 그의 차에 동승했던 조은영이라는 여인의 정체. 아들의 생일날에 찾아 온 권세현의 진정성과 목적, 그들이 몸에 지닌 북두칠성이 새겨진 반지의 사연 등이 그것이다.
▮ 사랑, 그 어찌할 수 없는 무엇
작가는 손경애, 권세현, 정수연을 화자로, 시점을 달리하는 기법을 구사한다. 그러기에 유상운의 죽음에 접근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
갤러리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수연은 스무 살 때 대학에서 세현을 만나 16년 동안 교제 끝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에 고민 중이다. 그것은 세현이 이성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연이 상운을 처음 만난 것은 세현의 설계사무소였다. 그곳에서 수연은 상운의 모습에 흔들렸고, 세 사람 사이에 묘한 감정의 기류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상운과 세현은 동성애적 감정을 느낀 후 연인으로 발전하여 그들만의 밀회를 이어가게 된다.
이에 수연은 상훈에게 세훈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조바심을 갖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 전달된 상훈의 부음을 알리는 편지는 세훈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다. 세훈은 편지 속에 자신이 죽은 후 3주기를 맞아 세훈이 그의 집을 방문하여 어머니와 함께 해주기를 요청한다. 이에 두 방문객이 상훈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이에 상훈이 세훈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선물이 집안 어딘가에 있다는 편지글을 보고 이를 찾으려는 세훈의 행동이 구체화됨에 따라 소설적 긴장감이 더 해 간다. 또한, 손경애는 수연의 손가락에서 발견한 북두칠성이 새겨진 반지를 아들의 방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아들과 동행하다 사고가 난 조은영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양말제조공장에서 일하는 신분으로 엘리트인 자신의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두 방문객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된다. 수연 또한 세훈의 집을 방문한 상운의 행동에 의구심을 더한다.
수연은 상운의 방을 뒤지는 세현을 추궁하여 상운의 교통사고가 사고가 아닌 선택된 죽음이라는 사실을 접한다. 강릉에서 느린 우체통을 통해 세현에게 3년 후에 배달된 편지에는 그가 죽은 이유가 적혀 있었다. 그들이 궁금해 하던 은영은 평소 죽음을 원했던 사람으로 상운이 당일 만난 사람이었고, 또한 3주기를 맞아 자신의 집을 찾아 아들의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의 집에서 상운이 세현에게 주고픈 선물도 찾아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상운이 세현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선물은 편지로 손경애가 먼저 수영장 벽면에서 찾아내어 읽게 된다. 마침내 그는 아들과 세현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들의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엘리트로서 뒤틀리는 삶이 괴로웠고, 비밀이 많아지는 삶이 버거웠던 아들은 결국 죽음을 택하게 된 것이다. 동성애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자살파트너로 이성을 택하여 교통사고로 삶을 마쳐야했던 아들의 삶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나아가기
소설 『두 방문객』은 성소수자들이 마주하는 법적 한계나 사회적 차별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보통’의 개념이 진실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 너머에 존재하는 ‘평범’ 하지 않기에 힘겨워 하는 언어들을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작가는 ‘나’ 또는 ‘평범하지 않은 것’을 바라볼 때의 편견과 갈등, 혐오와 수치감을 걷어내고 연민과 관용의 연대가 생겨난다면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감한다. 그러기에 소설 두 방문객에 등장하는 상운과 세현을 인물화 하는 작가의 시선은 따듯하다. 작가는 손경애를 통해 어떤 관계에서 싹튼 사랑이든, 사랑한 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은 없으며, 일방적으로 사랑하고픈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살아 숨 쉬고 싶은 이유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은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지 사랑받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사랑이란 공평해야 한다거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산술적 논리보다 사랑하는 주체의 감정이 중요하며, 사랑은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누구를 사랑하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것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이 순수하다 할지라도 성소수자들과 같이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사회의 불편한 시선들을 감내하기도 쉽지 않다. 상운의 자살과 수연과 세훈의 이별에 대한 예견이 이를 증명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사랑은 순수한 거라고,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러기에 평범하지 않은 사랑에게도 따듯한 시선을 보내주자고.
광장에서 피어 난 꽃, 혹은 사랑
이 대 영
김혜진/중앙역/문학동네/2020. |
▮ 들어가기
소설 『중앙역』은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중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 등을 발표한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역 광장을 중심으로 절망의 덫에 걸려 있는 노숙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들에게 일반인과 동일한 의식과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노숙자들은 그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이행한다. 그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는 것조차 의미가 없다. 대화를 위한 한글의 자모 수도 너무 많아 오히려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누군가와 만나거나 대화를 할 필요도 없으며, 이어가는 것도 싫어한다. 그들은 술을 통해 감정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드는 재주도 있다. 그들의 의식은 과거의 어느 한 지점의 시간에 포박되어 역사(驛舍) 주위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잠이 든다.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운 그들에게 하루는 너무 길다.
작가가 일상인이 외면하거나, 그 동안 외면해왔던 이들의 생활을 서사화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어둠과 함께 지하로 스며드는 풀 죽은 언어들을 건져올리려 끙끙 댄다. 그 중심에 젊은 노숙인과 그 보다 나이가 많은 한 여인이 웅크리고 앉아 삶의 힘겨운 언어들을 보탠다.
이제, 쭈그려지고 망가진 시간의 기억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을 만나러 광장으로 나서고자 한다.
▮ 죽음에 이르는 병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유신론적 철학자의 관점에서 본 절망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에는 신과의 관계설정이 필요하지만, 아무튼 절망만큼 참혹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절망을 인식하는 주체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직도 주체가 절망을 인식할 수 있는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절망조차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노숙자들이다. 소설 『중앙역』의 주인공 ‘나’는 역사(驛舍)와 지하도를 생활공간으로 하는 노숙자이다. 그는 추운 어느 날 밤, 여자 노숙자의 요청으로 지하도에서 나란히 잠을 자게 된다. 이튿날 그 여인이 자신의 캐리어를 가지고 사라졌음을 안 나는 분노가 극에 달한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행적을 찾을 수가 없다. 며칠이 흐르는 사이, 나는 노숙생활에 익숙해지고 지하도에서 역사 근처로 옮겨 자리를 차지할 만큼 위세도 키워간다. 그러던 중, 캐리어를 훔쳐간 여자를 광장 근처에서 발견한다. 나는 그녀에 대한 분노로 그를 폭행하고 공원으로 데려가 성행위를 시도한다. 그 후, 두 사람은 동행하며 연인처럼 노숙생활을 이어간다. ‘술’은 두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밤에 성행위를 돕는 도구이다. 그녀는 광장에서 이성적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녀보다 어린 나는 그녀에게 집착한다. 그녀가 다른 노숙자들과 어울려 술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싫어하며, 복수가 차고 황달로 병이 악화되어도 그녀가 곁을 떠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이러한 절망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역 인근 철거예정지를 돌며 일당 7만원을 받고 폐품을 주워 나르는 일도 하고, 노숙자 지원센터의 일을 도우며 돈을 모으고자 한다. 심지어 요양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다시 쪽방으로 데려오기 위해 자신의 신분증을 팔기도 한다. 그러나 그 돈마저도 술에 취해 잠이 든 사이 누군가에게 털리고 만다. 그녀는 없어서는 안 될 나의 동반자로 자리한다.
고독한 자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곧 생명선과도 같다. 일명 ‘쥐 사내’로 불리는 노숙인은 쥐를 키우며 생활하고, 애완견이 죽자 자신이 머무는 광장근처 화단에 불법임을 알면서도 매장을 한다. 심지어 새끼 거위까지 기르기도 한다. 나는 그녀가 병원에서 치료되어 완치되기 보다는 자신과 함께 머물기를 원한다. 그녀는 가족이며 아내이며 동반자로 절망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혼절한 그녀를 병원에 두고 도망 나온 나는 추억이나 기억 따위를 믿지 않기로 한다. 불가시적인 희망이나 기대와 같이 다만 거기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사람을 망치기에 나는 ‘지금과 맞서는 법’을 배울 것이라 다짐하며 과거를 지우고자 한다.
▮ 나아가기
슬픈 소설이다. 절망이 희망으로 이어지는 소설에 익숙한 독자의 ‘기대지평’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기에 쪽방 촌 철거라는 현실과 맞서는 것이 진정 절망을 이기는 방법인가에 의문을 가지며, 소설의 결론에 아쉬움을 표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은 자칫, 노숙자인 두 남녀의 진부한 사랑을 다룬 애정소설이 될 수 있는 있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애정소설에서 나타나는 상투성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문학적 역량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문체와 문장력 때문이다. 현재형 서술형 어미로 끝나는 간결한 문장은 연극을 보는 듯한 현장감을 연출한다. 이것은 동적인 광장을 투사하고 노숙인의 단순한 행위와 의식을 독자가 빨리 따라가게 한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의식을 가둔 채 불편한 일상을 덮고 사는 사람들의 행태를 편하게 주시하게 된다.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은 섬세한 언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공들인 문장들이다.
· 내 시간은 어디엔가 묶여 있다. 누군가가 내 시간을 단단히 매어둔 게 틀림없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이다.
· 멍하니 앞만 내다보고 걷는 여자는 차가운 물속에 머리를 박고 흘러가는 기억을 바라보는 것 같다.
· 여자는 낮보다 밤에 더 많이 말한다. 낮에는 말하지 않고 시간을 견디다가 밤이 되면 움켜진 말들을 하나씩 펼치는 것 같다.
· 공기가 물 먹은 담요처럼 무겁다. 환한 전광판 위로 열차 번호와 플랫폼, 출발과 도착 시간이 숨 가쁘게 떠오른다.
· 여자의 뒷모습이 어두운 지하도를 따라 한 칸씩 한 칸씩 가라앉는다.
· 난간 위로 우뚝 올라선 남자가 고함을 친다. 우리 쪽을 바라보고 선 그의 모습이 깃발처럼 펄럭인다.
· 햇빛이 쏟아지는 한낮에, 물줄기가 솟구치는 광장에, 여자는 누가 잃어버리고 간 가방처럼 거기 놓여 있다.
· 빈자리가 생겨도 곁에 와서 앉지 않는다. 붐비는 객차 안에서 우리는 외딴 섬 같다.
· 메마르고 건조한 목소리가 나를 찌르고 베고 상처를 남기는 것을 나는 내버려둔다.
· 나는 현실 감각을 잃은 채 걷는 데에만 집중한다. 바닥을 디딘 발의 감촉을 제외하면 모든 게 거짓말 같다.
이와 같이 선과 결이 명확한 문장들은 이 소설에 매력을 더한다. 소설 중앙역의 표지를 덮으면서 가시지 않고 자꾸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이런 곳에서 사랑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 이곳을 딛고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여자와 함께 서로 돕고 의지하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안이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은 지금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가슴 아린 두 주인공의 발화이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 속 두 인물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런 곳에서도 사랑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것이, 그녀와의 미래를 꿈꾼 것이 결코 오만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