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백주간을 마친 후) 후속 프로그램에 대해(안경렬 신부)◈
백주간, 실은 121주간의 공부가 까마득하다 생각하였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그 보람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아쉬움이 느껴진다. 제대로 읽지 못하고 어쩌다 빠진 것도 죄송하지만 이제 막 복음의 맛을 알만하니 끝난다. 또 마음을 열고 나누며 기도하던,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된 교우들과 헤어지는 것도 못내 섭섭하다. 이럴 때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생각하다 두서없이 몇 가지 적어본다. 좋은 의견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1. 제일 좋은 방법은 백주간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성서백주간을 몇 번 되풀이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우리 나라도 봉사하는 분들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되풀이하게 된다. 그 분들의 경험은 첫 번째 성서를 공부할 때 보다 더욱 말씀을 깊고 새롭게 알아듣게 되며 묵상하고 기도하게 된다고 한다. 마치 농부가 처음 경작(耕作)할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단, 그룹의 구성원은 첫 번과는 다르게 다양하게 구성하는 게 새로운 형제들의 시각에 접할 수 있겠다.
2. 성서40주간을 할 수도 있다.
흔히 성서40주간을 추천하기도 한다. 장점은 성서대의를 한 맥락으로 짚어 내려가 구세사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백주간처럼 구체적으로 말씀에 접하고, 느끼고, 듣고, 묵상하며, 묵상 나눔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강의식으로 진도가 빠르게 진행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3. 성서에 관한 책을 읽고 묵상해 나가는 것이다.
장익(요한) 주교님은 부교재로『주머니 속 성서박사 시리즈』(생활성서사 엮음 전 10권)를 추천하셨다. 그 외에도 좋은 책들이 많으나 다만 성서 본문을 충실히 간추린 책을 권하고 싶다. 성서를 지나치게 요약만 했다던가 학문적 이론에 치우친다면 말씀에 맛들이고 말씀 안에 우리 삶의 가르침과 기쁨을 얻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4. 성서통독 피정을 할 수도 있다.
성서적 지식의 전달이 아닌 삶의 지혜를 가르치고 나누는 강사와 함께 피정을 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좋은 강사가 관건이다. 강사마다 자기 전문 분야가 있어 성서의 심오한 모든 부분을 두루 다룰 수 없으므로 분야에 따라 전공자를 달리 모시면 더욱 좋을 것이다.
5. 성서 필사를 할 수도 있다.
성서 필사를 권장하는 본당도 있다. 불교에서의 사경(寫經)이 우리 나라에서 꽤 오래된 전통이듯 복음을 정성껏 써 내려가며 뜻을 헤아리고 묵상하는 방법이다. 글공부의 삼 요소는 모름지기 읽고, 쓰고, 듣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복음 공부는 기도하며 복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나에게 일깨워주시는 뜻을 헤아리며 느낌을 이웃 형제∙자매들과 나누고 또 듣는 것이 결여되기에 쓰기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주님은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라고 말씀 하셨다.
6 성독 모임을 권하고 싶다(Lectio divina).
올해부터 우리 본당에서 매달 첫 주일 전 금요일 저녁에 성독 모임을 시작했다. 주일의 거룩한 말씀의 식탁에 초대되는 많은 이들을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정성껏 준비를 하는가? 대접할 음식을 미리 맛보고 자신 있게 맛난 음식을 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때 좋은 강론을 준비해야할 사제는 물론 독서자, 해설자, 복사, 수도자, 전례 봉사자들, 성가대, 성찬봉사자, 청소하는 분 등 모든 주일미사 봉사자들이 우선 주일의 복음 말씀을 먼저 읽고 묵상하여 맛들이고 기쁨으로 봉사를 해야한다.
보통 한달에 네 번 주일 독서와 복음을 징검다리처럼 짚고 넘어간다. 중요한 주일 전례의 핵심을 짚어가며 묵상과 기도, 찬미노래와 느낌발표(이것은 복음 중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세 번 읽는 것으로 바꿔도 된다)를 한다. 촛불기도와 배경음악, 특히 전례에 맞는 복음 성가를 많이 이용한다. 반포 본당 교우들 중 일부는 이미 ‘한 주 동안의 미사전례 독서와 복음을 미리 읽고 매주 한번 모여 백주간식 나눔을 하고 기도한다.’고 하니 너무 놀라웠다.
그날 미사참례해서 즉석에서 듣는 말씀이 아니라 미리 한 주의 말씀들을 기도하고 정독하며 느낌을 나눈다고 하니 어느 성직자, 수도자보다 더욱 훌륭하고 미사참례 할 때, 강론 말씀을 들을 때, 그 느낌과 은혜로움이 얼마나 클까 부럽고 놀라울 뿐이다.
오! 복된 이들이다. 전례주기에 따라 3년 간 이어간다면 나름대로 구세사를 꿰뚫으며 살아 갈 것이다.
7. 복음과 직∙간접으로 연관되는 책읽기 모임을 해도 좋겠다.
우선 복음의 진솔한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다음 교회 안팎의 양서들을 읽어간다면 복음의 눈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우리의 신앙적 성숙에 도움이 되겠다. 이를테면 신앙의 독서 클럽이다.
8. 성서 말씀에 침잠(immersion∙沈潛)한다면 복음의 향기가 우러날 것이다.
여러 복음적 예술 활동들이 움돋을 것이고 복음적 덕이 드러나고 사랑의 은총을 나누는 작은 형제적, 다양한 모임들이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 안에 인도하심을 깨닫게 되리라.
“아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I사무 3,10).
2000년 노원 본당 주임신부 안경렬(토마스 아퀴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