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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 먹먹한 이름
이 대 영
신경숙/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창비/2021 |
❙‘어머니’만큼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혹은 먹먹하게 했던 단어가 있을까? 희생 혹은 운명적인 삶으로 서사화했던 여성, 또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시절이 엊그제이다.
소설집 『겨울 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 등을 통해 작품의 지향점을 제시했던 신경숙은 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을 통해 이미 작가의 개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 등을 통해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삶의 고리와 끊어낼 수 없는 이어짐이라는 숙명적 삶을 서사화한다. 그러기에 신경숙 소설의 중심축은 가족 혹은 고향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은 깊은 우물에서 오래전의 언어를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온 언어에서 지난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또는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한다.
시골 또는 소읍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이어지는 서사의 이면에는 근현대사를 살았던 우리 서민들의 깊고 우울한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의 성장배경이 이유일 수도 있고, 어렵게 삶을 이어갔던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서사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의미 배경이나 등장인물이 낯설기보다는 우리 주변의 익숙한 풍경, 또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신경숙 소설에 굴곡 있는 사건이 존재하지 않아도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새어머니. 점촌할머니와 중년부인, 나와 남자의 부인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경험했던 타자 의식을 주제화 했던 「풍금이 있던 자리」는 전통적인 한국여성의 삶을 대변해준다. 그의 작품에는 유독, 가슴 저미는 슬픔을 다소곳이 한으로 토해내는 문장들이 많다. 자기 체험을 중심으로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단계의 글을 쓰는 작가는 아픈 고향의 이미지와 독한 상처로 점철되는 현실을『외딴방』,「깊은 슬픔」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 구성원이 실제, 즉 엄마의 삶에 대해 어느 하나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엄마를 부탁해』를 보여준다. 사라진 엄마를 통해 그를 대하는 자식들의 태도와 그동안 당연시했던 엄마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하게 한다. 가족 간의 정과 어머니의 희생을 통해 가족이 지니는 긍정의 힘을 서사화했던 작가는 이를 소설『아버지에게 갔었어』로 이어 간 다.
❙소설『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J시 즉, 정읍을 떠나 서울로 온 것을 시점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아버지는 4남 2녀의 막내였으나 전염병으로 형들이 모두 죽고 종가의 장남이 된다. 한의사였던 조부는 하나 남은 아들마저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어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한학을 가르친다. 그리고 부모마저 전염병으로 사망하자 아버지는 열네 살의 나이로 농사를 시작하게 된다.
서사의 화자이며 주인공이기도 한 작가는 가족의 중심에 서 있던 아버지의 위치와 존재를 서술해 간다. 여기서, 아버지의 존재는 너 또는 나, 그리고 우리, 살아 있거나 살다간 모든 이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서사의 흐름에 주목하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대흥리 다리에서 만난 아버지를 외면했던 일로부터 앵무새, 개, 고양이와 연관된 과거의 사건들이 세밀한 묘사와 함께 다소 장황하게 전개된다. 내가 고향 집을 찾아 발견한 아버지의 첫 모습은 그가 울고 있는 것이었다. 죽은 앵무새를 묻어 놓은 돌무더기 위에 날고 있는 나비를 보고, 헛간 벽에 걸린 농기구들 아래서, 우물 옆에서, 또는 장독대에서 울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는 일은 예사가 된다. 심지어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다른 방에 가서 자면서도 울고 있다. 그 눈물은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임을 나는 안다.
전쟁 통에는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작은아버지들이 총살을 당하고,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사살되거나 죽창에 찔려 죽는 비극도 겪게 된다. 아버지가 입대 소집령을 받고 경찰서에 불려오면 형사였던 막내 작은아버지는 집안의 장손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로 그를 피신시킨다. 다시 소집령을 받고 경찰서에 왔을 때는 문중 선산 사당으로 그를 보내 그곳에 살던 사람이 검지를 잘라 징집을 피하게까지 한다. 아버지가 소를 지키려고 했던 노력, 인민군들의 만행, 빨치산이 된 인근 마을 사람이 끌려가던 자신을 풀어주던 기억, 우물, 우사, 상점, 그리고 폐가의 방 안에 놓인 나무 궤짝에서 발견한 편지 등을 통해 아버지를 중심으로 주변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이 소설은『엄마를 부탁해』처럼 딸-큰아들-아버지·남편-어머니·아내-딸 등으로 이어지는 시점의 전환을 통해 인물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낸다. 즉 아버지를 관찰하는 ‘나’라는 1인칭 시점은 편지를 매개로 큰오빠·아버지-둘째 아들-어머니-박무릉-손주 등으로 시점을 달리해 나간다. 그럼으로써 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한다. 즉, 아버지를 통해 4·19혁명, 80년대 소값 파동을, 박무릉을 통해 6.25 전쟁을, 큰오빠를 통해 80~90년대 중동 이주노동자의 삶을, 둘째 오빠를 통해 아버지의 장자의식을, 어머니를 통한 아버지에 대한 애정 등을 서술하고 있다. 가족의 삶을 통해 지난 했던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게 하는 이 소설은 가장(家長)이 아닌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성찰함에 초점을 둔다. 그리하여 나와 아버지, 그리고 가족 구성원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다, 고.(p.7.)
아버지가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할 뻔했다.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라고.(…)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그 별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 (p.93.)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를 농부로, 전쟁을 겪은 세대로, 소를 기르는 사람으로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버릇이 들어서 아버지 개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게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p.197.)
나는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려고 한 번이라도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먼 이국의 사람들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데 나는 내 아버지의 말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아버지 뇌만 기억하도록 두었구나, 싶은 자각이 들었다.(p.373.)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p.416.)
상기의 인용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단지 가족 또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영역을 넘어 삶의 문제로 확대됨을 발견한다. 아버지의 삶은 가족을 위한, 생존을 위한 시간이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는 아버지의 발화는 가족 또는 자식이 그의 삶을 지탱해나가는 버팀목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자신의 글쓰기도 자신의 생의 목표나 행복 추구를 위함이기보다 살아가기 위한, 그리고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임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또는 개별적 가족 구성원에 대해 이해하거나 소통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는 ‘나’의 성장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사실, 어느 플롯부터 읽어도 서사의 전개 과정과 주제 의식을 짚어내는데 어렵지 않다. 그만큼 이 소설은 사건 전개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작가의 시야에 포착되는 사물들을 매개로 떠오르는 기억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장황해 보이는 나무궤짝 안의 서신 내용, ‘아들의 아들의 말’ 플롯 등이 서사적 긴장감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기는 하지만, 가족과의 소통과 화해, 그리고 그 밑에 흐르는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끈끈한 가족애가 있기에 드러나는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아울러, 단순한 가족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걸어 온 근현대사와 ‘살아가는 이유와 힘’이라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되짚어 보게 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이름, 빨치산
이 대 영
정지아/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2022 |
❙‘빨갱이’ 또는 ‘빨치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두렵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가족이 몰살을 당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사회주의는 신념 있는 지식인들이 택한 사상 중 하나였지만, 분단이데올로기와 미군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갱이란 용어는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는 정치적 용어로 이용되곤 했다. 한때, 금기시되었던 빨갱이란 용어가 적(敵)이 아닌 사람의 개념으로 소설에 등장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6.25와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에서 가해자로 설정되던 소설 속 빨치산이 인간, 혹은 사회주의자로 등장하기까지 많은 문인이 필화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병주의 『지리산』, 이 태의 『남부군』,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을 거쳐 빨갱이 혹은 빨치산이 우리 곁으로, 혹은 역사의 희생자로 다가오기까지 참으로 긴 터널을 지나왔다. 이 과정을 거쳐 우리는 아픈 상처를 보듬고 화해를 통해 상생을 모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지아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또한 그러한 작품이다.
❙빨치산을 부모로 두어 가족의 수난사를 직접 체험한 작가는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그의 삶을 이해하고, 거시사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민중의 삶을 서사화 한다.
아버지는 5.10단선 반대 유인물을 살포하다 경찰에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한다. 성기에 전선을 꽂고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시가 되고, 그의 정자는 활동성을 잃어 임신불가 판정까지 받는다. 아버지 곁에서 총에 맞아 아들 같은 동생을 잃은 최 약방 아저씨는 아버지를 동생처럼 각별하게 여겨 한약을 지어주고 이로 인해 내가 태어난다.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와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차용하여 고아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나는 마치 ‘개 이름 같다’고 생각한다. 또한, 읍내 오거리에서 한의사를 발견했을 때도 ‘나를 이 세상에 불러낸 원흉’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피하기도 한다. 그만큼 사회주의자 딸로 현실을 살아가는 아픈 상처가 행위로 표출된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산간마을 사람들에게 6.25가 남긴 것은 상처뿐이다. 빨치산으로 평생 감시와 통제를 받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빨갱이의 딸로 태어난 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둔 황 사장, 동생을 잃은 최 약방 아저씨, 형 때문에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둔 막내 삼촌, 빨갱이 작은아버지 때문에 연좌제로 육사에 진학하지 못한 큰집 오빠, 아버지의 빨치산 동료로 지리산에서 죽은 형을 둔 박 선생, 빨치산 형을 잃은 노인, 비전향장기수로 37년이나 옥살이를 했던 소년 빨치산 등은 모두 전쟁 혹은 연좌제의 피해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람’이기에 실수하고 배신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용서한다는 아버지의 생각처럼 서로 위무하며 삶을 이어간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나에게 아버지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념과 행태는 한낱 우스운 것이었다. 그들이 희망하는 사회주의는 아득한 사상이었고, 그들이 믿는 민중의 힘은 자신의 목숨과 이익 앞에 무력한 것임을 이미 세월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빨치산의 딸인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나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던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 발짝 물러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p.148.)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빨치산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느껴지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했다.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오는 사람들을 만나며 아버지의 얽히고 설킨 삶을 읽고,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갖기까지 시대와 사상의 변화, 나의 성숙, 대중의 빨치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는 복잡다단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 소설이 지루하지 않고 마냥 우울하지 않은 이유는 문장에서 스며 나오는 작중인물들의 지방 사투리와 입담 때문이다. 비록 문법과 품격은 없지만, 민중들이 거침없이 쏟아내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언어를 느끼게 된다.
빨치산 활동을 했던 나의 아버지는 철저한 사회주의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막차를 놓쳐 잠잘 곳이 없는 방물장수를 집에 데려오기도 하며, 보증을 세워 피해를 주고 달아난 사람들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며 용서한다. 트럭 밑에 깔려 산산조각이 난 한 씨 사위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하고, 동네 사람이 병원 갈 일이 생기면 먼저 나서는 아버지는 철저한 사회주의 사상가였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혁명의 필요하다는 그의 신념은 철 지난 것일 수도 있고 여전히 유효한 것일 수도 있다. 시대적 사상은 상황에 따라 그 유효성 여부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이 사상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그 선택을 제어하는 체제와 주목하는 시선이 많기에 자유롭지 못한 영역이기도 하다. 더욱이 남북이 분단된 이 땅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작가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아버지에게 한 말이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