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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0:13-16 어린이들을 축복하신 예수님 2024. 5. 5.
1889년 4월 20세기 인류 역사를 뒤 흔드는 한 명의 아이가 오스트리아에서 한 부부의 가정에서 출생합니다. 그 부부는 말이 부부지 실제로는 사촌 남매 사이로 맺어진 불법 근친혼 부부였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성격이 몹시 급했고, 어머니는 아이 양육이나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나가서 놀기 좋아하던 여성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짐처럼 여겨졌던 아이를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겨버리곤 집을 가출해 버릴 정도로 자식에 대해 매우 소홀한 엄마였습니다.
16세의 소년은 학교를 들어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곧 중퇴합니다. 그리곤 이리저리 방탕한 삶을 살며 방황하다가, 마침 제 1차 대전이 일어났고, 독일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독일 군대는 패배하고, 그는 제대하고 나서 정치에 입문한 후, 극렬한 반정부적인 운동을 하면서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감옥에 투옥되는 일도 있었지만, 이 사람에게는 한 가지 탁월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웅변에 능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조정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모아서 독일 총독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그는 제 2차 대전을 일으키고, 6백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했고, 수많은 사람을 전쟁의 비극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전쟁이 1945년 4월 종료될 때에 그의 나이 56세에 베를린 지하 방공 대피소에서 스스로 권총으로 목숨을 끊는 인물이 됩니다.
전쟁이 끝난지 벌써 80여년이 흐른 시간이지만, 아직도 독일인들에게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꺼집어 내지 못하는 인물로 악명이 높은 사람입니다.
히틀러가 태어난 1년 뒤 1890년 또 한 명의 아이가 지구 반대편 미국 땅에서 태어납니다.
이 아이는 미국 텍사스 주에서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성장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신앙 안에서 성장합니다. 갓난아기 때 어머니는 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재울 때마다 기도로 자장가를 대신합니다. 아이가 소년기로 접어들 때에 아버지는 늘 아들에게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커서 미국 웨스트포인트 즉 미국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장교가 되었고 장군으로 있는 시기에 마침 그 때 제 2차 대전이 터지게 됩니다. 그는 제 2차 대전에 미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연합군 사령관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 됩니다.
바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대통령입니다. 그는 1969년 80세까지 장수하며 살다가 평화롭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눈을 감게 됩니다. 그의 죽음의 소식이 알려졌을 때 전 지구인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동시대에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며, 다른 업적을 남긴 두 사람의 삶을 살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2차 대전의 흉악한 전범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계를 전쟁에서 구한 영웅으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왜 이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그들이 자란 가정환경이 다르고, 신앙 교육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비교를 하지 않아도, 자녀들의 성장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꾸지람 속에서 자란 아이는 비난하기를 배운다.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미움을 배우며 자란다. 매를 맞으며 자란 아이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고, 놀림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격려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자란다.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알게 되고, 기도로 자란 아이는 희망을 꿈꾸며 자라게 된다.”
여러분! 기도를 배우며, 기도 가운데 성장한 아이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속에 자란 아이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희망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1)좋은 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꼭 돈 많은 부모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사랑하고, 좋은 신앙적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훌륭한 부모를 만나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때, 그 자녀에게 놀라운 축복을 선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조금 가정환경이 불우해도, 중고등학교 때 좋은 스승을 만난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 낙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적으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축복이지만, 내 믿음을 이끌어 주는 믿음의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큰 축복인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덕민 교회 성도님들은 믿음의 좋은 교우들을 만나고, 믿음의 좋은 동역자들을 만나 덕민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게 된 것을 크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여자 분들은 좋은 남편을 만나는 것, 남자 분들은 좋은 아내를 만나는 것이 참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단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여기서 <좋은 남편, 좋은 아내>라고 말할 때에, 좋은 것은 돈이 많다거나, 학벌이 좋다거나, 인물이 잘생겼다는 외형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좋다 라고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남성과 여성이 가장 좋은 신랑감과 신부감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배우자는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간혹 내가 눈이 삐어서 너 같은 인간 만나 내 인생 망가졌다, 내가 잘못 골랐다”고 함부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너무 그렇게 극단적인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짝 지워 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짝을 지어주었다고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그 짝을 통하여 행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아주 앞이 꽉 막힌 사람, 틈이 없는 사람 같지만, 그 사람에게도 틈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반드시 있으니 찾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잘 만나고, 좋은 스승을 만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났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일까요? 아니지요!~ 더 근원적으로 소중한 만남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집에 비교하여 조금은 부족한 부모를 만나고,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였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이런 만남에서 부족함이 있어도, 예수님을 만나면 다른 것이 다 부족해도 완벽하게 보충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더욱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줄 수 있다면, 최고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소개해 줄 때, 그 인생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도 예수님을 만난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이들 부모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축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부모들의 마음과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아이들이 몰려오자 귀찮았습니다.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드는 아이들을 귀찮게 여긴 제자들은 가로막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노하시면서 말씀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그리고 어린 아이들 한 명 한 명 껴안고 안수 해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어린이들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어린이들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물론, 어린이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은 다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에 고귀한 대상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어린아이들은 더 소중한 대상이 됩니다. 아이들은 연약한 존재요, 보호받아 마땅한 대상이며,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양육 받아야 되는 존재입니다.
특히 예수님 시대에는 어린아이들과 여인들이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숫자를 기록할 때에도,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은 숫자에서 빼고 기록하였습니다. 단순하게 숫자를 뺏다는 뜻이 아니라,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을 정도로,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을 하찮게 보았다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오병이어 사건의 <장정만 5천명>이란 기록이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린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했습니다. 그 어린이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셨고, 그리고 그들이 이루어 나갈 귀한 미래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어린아이들이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제 3세계와 가난하게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어린이 노동착취 및 아동 성매매 등, 참아 입에 담기 힘든 추악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월드비전 책자에 보니, 서울에 있는 어떤 권사님은 올해 연세가 69세인데, 휴지, 병 등을 팔고, 자식이 주는 용돈을 모아 아프리카에 우물 파는 헌금을 한다고 합니다. 작게는 3백만원 많게는 5백만원이면, 우물을 하나 팔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물에 물 길러 왕복 4시간을 걸어야 되는 아이들의 노동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권사님은 벌써 우물 7개를 팠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나이를 다 먹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이 자리에도, 작게는 몇 살에서부터 많게는 70중반까지 연세를 드신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어린아이와 나이든 어른으로 구별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우리 모두가 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적 어린 아이 같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어야 하며, 영적 어린아이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자녀는 소중한 대상인 것으로 알아 믿음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나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영적 어린아이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아야 되는 존재인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2. 어린아이들은 축복의 대상
16절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이렇게 짧은 한 구절 안에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축복의 행동이 이렇게 세 가지로 함축되어 기록된 성경 말씀이 다른 어느 부분에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그 많은 말씀들이 선포되었지만, 이렇게 짧은 구절 안에, 함께 나타난 축복의 메시지가 다른 부분에는 없습니다.
16절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행동이 무엇인가요? “1)안고, 2) 안수하고, 3)축복하다”라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 나온 아이들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전도여 행중에 아이들이 치근대는 것이 피곤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찾아 나온 아이들을 일일이 안아 주셨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사랑의 참된 행동이요, 모습입니다.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사랑의 마음과 행동으로 자녀를 안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곤 자녀를 향해 축복의 안수를 해 주십시오. 안수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지만, 부모가 자녀의 머리를 향해 올리는 안수는 하나님이 어여삐 보시는 안수입니다. 이것은 가로 막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향한 부모의 안수를 도리어 더 권장해야 합니다.
다 큰 자녀라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부모된 입장에서 내 자녀를 품에 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 안수를 하십시오. 부모가 자녀를 향해 축복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대로 들어 응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말씀입니다.
17세기 미국에 벤쟈민 웨스트(Benjamin West 1738-1820)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웨스트는 미국 독립 전쟁과 7년 전쟁 전후의 역사화를 그린 화가로 영국의 런던 로열 아카데미 (왕립미술원)의 제 2대 원장으로 두 번이나 임기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여관주인의 10번째 아들로 가난하게 태어납니다. 가난한 집안이지만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고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하루는 부모님이 외출하고 난 사이에 그가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벤쟈민은 심심한 나머지 부모님이 아껴두었던 그림물감을 다 풀어서 자기의 누이동생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잠시 뒤에 부모님이 외출에서 돌아와서 보니 방은 엉망입니다. 아껴두었던 물감들이 여기저거 쏟아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엉망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 하나가 있습니다. 당황해 하며 서 있는 부모님을 보고 벤쟈민은 그 그림이 자신의 동생을 그린 그림이라 말합니다.
이때 부모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야! 우리 벤쟈민이 그림을 엄청 잘 그렸네. 딱 보니까 누이동생인걸 알겠네!”부모님은 벤쟈민을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그림을 잘 그렸다고 격려의 입맞춤까지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벤쟈민은 그때 일을 이렇게 술회합니다. “내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부모님의 격려와 입맞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이제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두고두고 곰씹어도 맞는 말은 아이들을 향한 칭찬은 아이들의 미래를 바꾼다는 말입니다. 아이들만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칭찬은 어른들 또한 인생을 바꾸는 키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자녀를 많이 칭찬하기 바랍니다. 잘못한 것만 들추어 내어 비난하고, 야단치기 보다는 자녀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고 칭찬하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자녀는 축복의 존귀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느 부부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방에 들어가서 숨을 죽인 채 거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마음 졸이며 듣고 있습니다. 부부사이에 점점 더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급기야 화를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옆에 있는 가스밸브를 틀었습니다. 그리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습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아파트 안에 불길이 크게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방안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면서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아들이 도저히 참지 못해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왔습니다. 나와서 보니까 거센 불길이 아파트 거실 안 가득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엉겁결에 창문을 열고서 고층아파트에서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따라 창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아버지는 홧김에 불을 지르기는 했지만,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세 사람이 다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사람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다 무사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첫째로, 아버지는 <제비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비처럼 날아서 땅에 사뿐히 땅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머니는 <날라리>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잘 날았겠습니까? 훨훨 날아서 땅에 사뿐히 떨어졌습니다. 셋째로,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세요? 이해 못하시면 예배 끝나고 옆에 분에게 물어 보세요. 아무튼 오늘날에 가정이 얼마나 병들었는지, 풍자적으로 꼬집어주는 이야기인 줄 압니다.
자녀를 올바르게 키울려면, 부모부터 먼저 올바로 서야 합니다. 아이들이 소중한 대상이고 축복의 존재라는 것을 부모님들이 먼저 받아 들이고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합니다. 그럴때에 내 자녀는 축복의 아름다운 대상이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시고, 나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영적 어린아이이므로, 말씀으로 양육 받는 대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