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의 여친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 중간 부분부터 여친 한 명은 연방 눈밑으로 손을 올리고 나머지 두 명은 아예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더니만 급기야는 “흑흑 훌쩍훌쩍 꺽꺽.”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그렇게 갔다. 관람객 전부가 흐느끼니까 누구 하나 우리쪽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소리도 없었다. 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영화를 그렇게 극적으로 봤다.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서 자문을 해봤다. 제법 심리철학적 자문이었다. 이 풍진 세상을 우리는 무엇으로 감동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무슨 일로 감동의 눈물을 쏟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 그래서 무엇이 나를 감동시켰던가 -
나는 워낙 감동을 잘 받는 체질이라서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작년 9월 뉴욕 미문화원에서 조영남 미술전시회 오프닝 파티할 때 거기서 공부하는 두 아들 녀석과 아들의 여친 한 명을 본 순간이 내 생애 최고의 감동으로 남아있다. 10여년간 두 아들을 따로 보다가 한꺼번에 본 것, 플러스 아들의 여친(장차 며느리가 될지도 모를) 상봉은 나를 온통 황홀한 감동으로 몰아갔고 사실상 그날 밤 나는 술을 빌려 실신했다.
작년 가을 나를 좋아하는 단 한 명의 열성팬을 위한 ‘일본 센다이 1인 콘서트’를 할 때 거기 모인 100여명의 일본관객 요청으로 우리의 독립투사를 기리는 노래 ‘선구자’를 부르고 박수를 받았을 때 감동이 출렁댔다. 고1짜리 딸 아이와 장난치다 나를 야단친다며 불쑥 내뱉은 “나쁜 아빠 자식아!”라는 말을 듣고 나는 정녕 감동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딸이 나를 친구처럼 여긴다는 엄연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 그럼 무엇이 눈물을 쏟게 했던가 -
천벌 받을 일이지만 내 아버지 조승초씨가 13년간 중풍으로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을 안 흘렸고, 어머니 김정신 권사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리지 않았다. 임종시 내가 권사님의 귀에 큰 소리로 돈 빌려준 사람의 이름을 대라고 긴박하게 요구했던 기억만 난다. 물론 권사님은 아무 대답없이 돌아가셨다. 작은 누나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눈물이 별로 안 나왔다.
나한테는 내가 사내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몇 년 전 김희갑씨가 작곡한 시인 정지용의 ‘향수’라는 불멸의 노래를 배우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눈물이 자꾸 흘러 연습을 못할 정도였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옛 시골의 추억이 고스란히 노랫말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제하 작곡의 ‘모란동백’이라는 노래를 배울 때도 눈물이 앞을 가렸고 그 노래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처음 부를 때도 눈물이 자꾸 나서 매번 노래가 끊겼다.
수십년 헤맸던 이산가족이 상봉해서 펑펑 우는 거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애국가 울려퍼질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건 매우 특별한 경우다. 등산 가서 높은 산을 정복하면 크게 감동은 하지만 목놓아 울진 않는다. 낚시광이 대어를 낚았다고 펑펑 울까. 복권에 당첨됐다고 펑펑 울 것 같진 않다.
울음과 눈물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아무 때나 손쉽게 감동, 감격하고 눈물까지 흘리게 하는 매체는 무엇인가. 단연 영화다. 이 시대에 영화를 능가하는 가치있는 오락(Entertainment) 장치는 없다. 감동의 영화, 눈물의 영화 3편이 한국땅에서 한꺼번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부득이한 경우로 영화관까지 가서 티켓을 구입하지 못하는 경향 애독자를 위해서 건국 이래 최초로 신문지상 상영을 감행한다. 허걱! 아니면 비디오를 빌려서라도 꼭 보시라고.
◇미국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을 쭈르르 탄 영화니까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마카로니 웨스턴 스파게티 서부활극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에 음악까지 맡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74살이라는 실제 나이에 말이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줄거리는 별 것 아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무명의 여자 복서 지망생과 이제는 큰 성공도 없이 젊은 시절 다 보낸 늙은 트레이너가 있는 힘을 합쳐 결국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고야 마는 극히 단순한 내용의 영화다. 그럼 이것이 어째서 기교찬란한 당대의 항공왕 하워드 휴즈 스토리 ‘에비에이터’와 흑인가수 레이 찰스 생전의 스토리를 영화화한 ‘레이’를 밀어내고 2005년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영화로 등극했는가. 간단하다.
할리우드라고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감동과 눈물이 출렁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감동과 눈물을 강요하거나 과장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소박한 따스함과 극도의 절제가 오히려 가슴을 후벼댄다. ‘말아톤’이나 ‘아무도 모른다’도 똑같은 맥락에 있다.
◇한국영화 ‘말아톤’=미국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있다면 한국엔 ‘말아톤’이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스포츠 관련 영화이며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개봉되어 찬사를 받고 있다. 아마도 2005년 한국의 모든 영화상을 휩쓸 것 같다. 단 외국 영화제서도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버릴 수가 없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경우처럼 다채로운 기록이나 기상천외의 반전 스토리가 풍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20살 먹은 5살 지능의 자폐아가 풀코스 마라톤을 뛴다는 내용 자체가 벌써 반전이다. ‘말아톤’은 자폐아가 정상아로 변한다는 식의 상투적인 스토리가 아니다. 타고난 자폐아로 살면서 그 속에도 남들과 똑같은 가족과의 사랑, 자립의지, 꿈을 이루어 내고야 마는 보통 사람의 끈질김이 유쾌한 감동과 눈물을 쏟게 만든다. 감독 정윤철, 배우 조승우, 김미숙 트리오는 기립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일본영화 ‘아무도 모른다’=작년 칸영화제에서 우리영화 ‘올드보이’의 최민식을 꺾고 옆나라 일본의 야기라 유야라는 14세 소년이 ‘아무도 모른다’라는 영화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건 말았건…. 지난 2002년 스페인 영화 ‘그녀에게’ 이래 이처럼 청아하고 가련하고 우스꽝스럽고 슬프고 재밌고 황홀하게 내 몸 전체를 감동과 눈물로 뒤흔들어 놓은 영화는 없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영화에는 스토리가 없다. 그저 한 철없는 엄마에 각기 아버지가 다른 네 명의 어린 아이가 엄마한테도 버림받고 1년 사계절을 그냥 하루 하루 버티어내는 이야기가 전부다.
서너평짜리의 낡고 좁은 방구석에서 아파트의 규정상 떠들거나 바깥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없는 감옥 아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어린 아이들이 어쩜 나가 놀겠다, 배고프다, 학교 가고 싶다, 친구 만나고 싶다, 장난감 갖고 싶다 등 떼를 쓰거나 징징거리질 않는다. 버려진 아이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구김없는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다른 세상의 사람들(영화 관람객)이 시종 안타까워 못견딘다.
이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겐 예외없이 양면들, 즉 슬픔과 기쁨, 추함과 아름다움, 웃음과 울음이 어느 구석에선 깃들어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다. 최악의 슬픈 상황에도 웃음의 틈새가 있다는 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