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6.
손님맞이 준비하기
손님이 온다. 딸과 아들과 며느리가 손님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해남살이가 몹시 궁금한 모양이다. 방문 날짜를 정해 통보하니 도리가 없다. 사람 사는 게 뭐가 다르겠냐만 이참에 효(孝)를 핑계로 남도 여행을 겸하니 일타이피의 묘수라 할 수 있겠다. 오는 놈을 마다할 수는 없으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어디에서 재울까. 몸과 마음의 편안한 휴식은 아주 중요하다. 숙면 후의 아침은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그래서 잠자리가 매우 중요하다. 근처의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 하나를 예약했다. 늙은 우리와 한 공간에서 이틀 밤은 무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알기에 아들 내외와 딸이 편히 쉬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며느리가 숙소 비용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고 한다. 결국 좁은 원룸에서 가족 다섯이 함께 자기로 했다. “어머니! 저는 일곱 시까지는 자고 싶어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나는 늦어도 다섯 시에는 일어나는데.
뭘 먹이지. 인간의 3대 욕구에 수면욕과 식욕이 포함된다. 잠자는 불편함을 감수했으니, 식욕만이라도 만족시켜 줘야 할 책임이 생겼다. 남도 음식이 제격이다. 나주 영산포 홍어 정식을 골랐다. 홍어무침, 홍어탕수, 홍어삼합 그리고 홍어튀김과 홍어전, 홍어찜까지. 보리애국으로 마무리하는 한 끼를 정했다. 강진 마량항 붕장어주물럭의 매콤함도 맛보여 주고 싶다. 그 양념에 볶음밥 서너 숟갈이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리라. 짱뚱어탕과 강진이나 해남 한정식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해남 진양주의 안주로는 대덕닭집의 통닭이 제격이라 생각된다. 이제 나머지 한 끼를 고민해야 할 판이다.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잠이나 밥은 인간 본능에 관한 문제이다. 한 차원 높은 문화에 대한 고민이 머리를 쥐어짜게 만든다. 여행은 날씨가 관건인데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무척 고민스럽다. 해남 땅끝전망대의 바다 경치나 윤선도의 보길도에서 세연정과 동천석실을 올라 봄날의 풍광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이들을 무시하는 듯해 보인다. 강진 무위사나 영암 도갑사, 해남 대흥사, 미황사는 아이들이 좋아할까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어느 곳으로 가지?”를 고민하기보다 “무엇을 보여주지?”로 질문을 바꿔본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내가 아는 것을 보여주고 들려줘야겠다.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두륜산 대흥사에 가서 휴정(休靜大師 汝信, 1520~1604)과 초의(草衣禪師 意恂, 1786~1866)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원교(圓嶠 李匡師, 1705~1777)의 동국진체와 추사체도 곁들이고 싶다. 만덕산 백련사에서는 1,500여 그루의 동백나무숲 사이를 걸으며 혜장스님의 차와 다산의 술, 둘 사이의 존경과 사랑 이야기를 숙제로 던져주고 싶다. 강진다원 녹차밭을 느리게 산책하며 건강을 이야기하고, 백운동원림 소수실 마루에 앉아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정선대에 앉아 봄볕을 실컷 받아야겠다.
봄이다. 꽃을 찾아가면 좋겠지만 꽃이 펴야 꽃을 보지. 문제는 아직 개화 시기로는 이르다. 3월 말이면 매화, 진달래꽃, 생강나무꽃, 동백꽃으로 산천이 붉고 노랗게 출렁일 텐데. 몹시 아쉽다. 하지만 같이 걸으며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그 시간이 우리가 갈구하는 사랑이니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뭐가 대수랴.
첫댓글 더 재미진 이야기 있던데ᆢ ㅋㅋ
그래도 시집오고 5년은 지나야 가족이랑 비슷하게 되던데 이집 박사며느님은 처음부터 재단 되어온 마춤이더라고 신기해
이것도 운이야
운? ㅋㅋㅋ 그런가?
5년, 10년 되기 전에는 안되는 줄 알았더만 금방 흡수되어 뿌네. 이상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