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타 (1475)
안토넬로 다 메시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메시나에서 출생한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1430-1479)는
작은 화폭에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탈리아 남부 지역과 밀라노 등을 거쳐 1475년경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안토넬로가 그린 <골고타>는 색채를 중심으로 한
베네치아 미술 특징에 플랑드르 회화의 특징인 섬세한 묘사가 더해져 있다.
그림 전경 왼쪽에는 “1475년, 안토넬로 다 메시나가 그렸다.”라는
화가의 서명을 정확하게 라틴어로 적어 놓았다.
작품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과 두 죄수,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했던 사도 요한이 보인다.
성모님은 두 손을 무릎에 내려놓고 있는데,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을 넘어 체념한 듯하다.
오른쪽 사도 요한은 무릎을 꿇은 채
십자가 위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넓게 펼쳐진 들판과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하늘을 배경으로 예수님은
골고타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 고요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군사들이 죄목으로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를 나타내는
라틴어 약자 ‘I.N.R.I.’(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를 적어 놓았다.
십자가 아래에는 자갈과 모래가 뒤덮여 있고,
아담의 해골과 사람의 뼈가 널브러져 있다.
해골은 예수님의 수난을 주제로 한 작품들에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골고타 언덕에 묻혀있다는
중세 사람들의 믿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담의 해골은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서 시작된 원죄를 의미하며,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어
그 피로 깨끗이 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가는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림의 중심은 죽음의 고통이 아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몸을 바친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한다.
창으로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와’(요한 19,34)
세상 모든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수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의 서막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매달린 십자가 밑 부분의 뒤편에
밑동이 잘린 나무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돋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함으로써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됨을 의미한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양옆에 있는 두 명의 죄수는
온몸이 뒤틀린 상태로 나무 기둥에 가죽끈으로 묶여 있다.
예수님과 두 죄수의 모습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는데,
이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많이 연구된
인체 해부학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인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예수님의 균형 잡힌 평온한 몸의 형태와
죽음에 대해 발버둥 치는 듯이 두 죄수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를 보인다.
예수님 양옆에 있는 두 죄수 중에 누가 ‘착한 죄수’인지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화가는 이들의 회개 여부에 따라 몸의 뒤틀림 정도를 다르게 묘사했다.
죽음을 앞두고 착한 죄수는 말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루카 23,43)이라고 하신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회개한 죄수를 자신에게 이끌어 그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였고,
예수님의 머리는 ‘착한 죄수’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독했던 오른쪽의 나쁜 죄수는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라고 빈정대며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림 전경에는 빛을 싫어하는 야행성 동물인 올빼미가 있다.
나쁜 죄수는 올빼미처럼 진정한 믿음의 빛을 외면하며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왼쪽 전경 ‘착한 죄수’ 편의 부러진 십자가 아래에는
부활을 상징하는 토끼가 있다.
그는 낙원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부활을 꿈꾸며 숨을 거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