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의 첩의 죽음과 베냐민 지파의 비류
성경본문 삿19;27-30,
에브라임 산지의 한 레위인이 도망간 첩을 다시 데려 오던 중 기브아에서 비류들로부터
큰 봉변을 당하고 이를 전 이스라엘에게 두루 알림으로
바야흐로 심각한 내전으로 치닫는 사건입니다.
성전을 맡은 성직자인 레위인이 첩을 두는 것은 심각한 영적 암흑을 보여 줍니다.
축복 받은 야곱의 후손 중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욱 교훈 삼아야 합니다.
1. 본질상 진노의 씨의 종말은 비참 합니다.
레위인의 첩은 자신이 남의 첩이 된 주제에 다른 남자와 행음하고 가출 하였다가 레위인에게 잡혀 돌아 오다가 남색에 눈이 먼 베냐민 지파의 비류들이 기브아에서 사건을 일으켜
레위인을 협박하고 윽박지르자 자기만 살겠다고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었고 그들은 밤새 강간하여 그녀를 죽입니다.
또한 레위인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첩을 비류들에게 내어준 패역한 자임에도 회개는커녕
자신이 당한 봉변에 악을 품고 첩의 시신을 열 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어 분을 표출하고 온 이스라엘을 뒤흔들었습니다.
선악 분별없이 감정과 흥분으로 들끓는 함성은 온 나라를 악의 도가니로 만듭니다.
내 눈의 들보를 발견 못한 레위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이스라엘의 연합지파, 자기 발견 없는 어두움은 파멸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편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비류들의 가증한 범죄를 알고도 이를 묵인하고 자파의 자존심만 옹호하며 감싸는 우를 범하고 싸움에 임하는 감정입니다.
2. 하나님은 시인하고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살리시고 양육 하실려고 고육 지책으로 마련한 길입니다.
싸움이 장기화 된 것은 이스라엘 연합군이 무려 15배의 숫적 우위의 병력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실패한 것은 사회 전반적인 타락과 부패를 외면하고 아간을 찾지 못한 까닭입니다.
신기하게도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양편 모두 시인하고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싸움은 피차 망하는 필연 코스입니다.
싸움이 장기화됨으로 엄청난 피해가 양측에 있었습니다.
특히 베냐민 지파는 장정 600명만 남는 비참하고 참담한 결과였습니다.
그래도 남은 자가 있음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결론으로 오늘의 현실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고 우리 속에 정과 욕을 십자가의 못 박는
십자가의 도를 외치는 하나님의 사람이 많이 나와야 됩니다.
여 야 싸움이 아닌 상생의 길, 진보 보수 싸움 없는 하나님 나라, 기독교는 여도 야도 아닌 좌도 우도 아닌 복음주의입니다. 양심이 살아 있는 교계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