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는 대로 받는 성도 (대상 4:9-10)
이 시간에 “구하는 대로 받는 성도”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IMF에 가까운 경제적 불황과 미국을 위시로 해서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인해서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복의 약속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대로 다 주신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참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성도만 된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야베스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구하는 대로 다 받았습니다.
10절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너무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도 회개하고 구하면 다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지 못할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야베스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교훈입니다.
구하는 대로 다 받는 참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해산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야베스는 해산의 수고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9절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의 어머니가 한 수고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성경의 여러 예를 통해서 몇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한나와 같이 불임의 고통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눈물의 기도로 통곡했습니까? 다음은 난산의 고통입니다. 마치 야곱의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을 때 거친 에브랏 길에서 난산하며 죽어갔던 것과 같습니다(창35:18).
다음은 임신의 고통입니다. 그 어머니만 나오는 것을 보니 남편을 잃고 과부로서 어머니가 유복자로 아이를 배어 먹지도 못하고 젖도 나오지 않아 얼마나 고통 당했는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튼 야베스의 어머니가 야베스를 낳기 위해 많은 수고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는 야베스가 되려면 그와 같은 해산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내가 해산의 수고를 하든지 아니면 누구라도 그런 수고를 해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불신자 한 사람 회개시켜 예수 믿게 하기 그냥 되는 것 아닙니다. 기도와 전도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해산의 수고와 같습니다. 피 흘리는 고통이 없이는 해산하지 않듯이 눈물의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양육되어 변화 성숙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머니의 해산의 수고 없이 야베스는 탄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 믿을 뿐 아니라 우리 안에 말씀이 거하기 위하여 불신과 싸우고 죄와 싸우고 불순종과 싸우고 내 생각과 싸우고 내 육체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며 말씀 안에서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각인에게 문제가 있거든 그냥 구하지만 마시고 회개하며 부르짖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운 일 당핬을 때 금식하며 회개하며 부르짖었던 것처럼 회개해야 합니다. 남을 해하는 죄도 죄지만 마음의 죄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도 말씀에 순종함에 부족한 것도 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들어주십니다. 하나님 기뻐하시게만 해보세요. 그러기 위해 변화의 해산의 수고를 하세요. 우리의 바라는 것 이상으로 넘치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시1:1-3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셨습니다.
2. 존귀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야베스는 형제보다 더 존귀한자였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9절)했는데 존귀한 자란 어떤 자일까요? 이 역시 구체적인 언급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쓰이는 존귀한 자에 대한 용례를 보면 힘을 가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왕족이나 귀족처럼 권력과 재력을 겸비한 뛰어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혹은 뛰어난 제사장이나 아주 훌륭한 율법학자에게도 붙여졌고 메시아의 영광을 묘사하는데도 쓰였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무엇을 교훈합니까? 성령의 충만과 권능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행1:8에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랬습니다. 권능은 권세와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백성된 성도일지라도 세상이 너무 악해서 성령의 능력 없이 참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자각하지 못해서 그러지 지금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고 살며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멀리하고도 평안하고 즐겁다면 그것은 악의 영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셔서 악의 영들이 물러가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구하는 것마다 들어 주시고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야베스와 같이 존귀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할 때 옵니다. 백부장 고넬료와 같이 겸손하면서 늘 기도하고 사랑하고 예배하세요. 그러면 하늘로부터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합니다. 의인은 간구하는 힘이 강합니다. 진실로 존귀한 자가 됩니다. 만사형통의 천국은 성령이 충만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응답 받는 이 시대의 야베스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 충만 받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3. 응답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베스가 누구에게 기도했습니까? 10절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야베스가 생각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이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런데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를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누굽니까? 야곱입니다. 야곱이 언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까?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입니다.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나이다 하면서 환도뼈를 쳐도 놓지 않고 천사와 씨름하며 복을 구할 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야곱은 환난의 사람입니다. 고난의 사람입니다. 그가 외삼촌의 집에 갈 때도 너무나도 절박하여 하나님의 보장을 간구했고 20년이 지난 후에도 그는 돌아갈 곳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더구나 형이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해하러 나온 순간입니다. 이 얼마나 절박한 순간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긴박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갑자기 나타난 천사와 밤새 씨름했고 환도뼈가 부러지면서도 놓지 않고 하나님께 복을 구했습니다. 이처럼 야베스의 기도는 복 주시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겠다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절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해 주실까요?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주셔도 귀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밟고 돌이켜 찢어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가치를 알고 갈망할 때까지 놔두십니다. 이것이 야베스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교훈입니다.
중국 순 임금 시절 이야기입니다. 순 왕은 어느 날 신하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망태기 하나씩을 줄 것이니 내가 알려 주는 웅덩이로 가서 망태기에 물을 가득 퍼 담아 오거라.” 신하들은 모두 망태기를 하나씩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웅덩이로 갔습니다. 그러나 물을 퍼부어 보아야 망태기에 물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몇 번 물을 붓다가 모두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가서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 신하가 하루 종일 물을 퍼 담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하도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망태기에 물을 퍼부었습니다. 한참 푸다 보니 웅덩이 물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웅덩이 가운데 무슨 누런 것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금이었습니다. 신하는 그 금덩어리를 가지고 왕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웅덩이에서 찾은 금덩어리라고 왕에게 올렸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수고했다! 내 말에 순종하는 자가 너뿐이구나. 그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려고 내가 마련한 상급이다. 네 것이다. 그리고 너는 앞으로 큰일을 맡기게 될 것이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한 번 해서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성경 말씀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해 보세요. 여러분이 형통의 주인공 야베스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지금 야베스와 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상황에 있습니까? 참된 성도만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거듭나는 해산의 수고와, 성령의 권세와 능력을 받고, 복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복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 잘 섬겨서 야베스처럼 구하는 대로 다 받는 복의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