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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빌립보서 3장 17-21절
제 목 하나님나라 시민권[7]
대한민국 국민들은 누구나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외국인이 귀국해야 하는 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한국에 남아 있게 되면 불법 체류자가 됩니다.
그들은 한국에 머물기 위해서 늘 마음을 졸이며 살아갈 것입니다.
혹 경찰에 잡힐까 두려운 마음에 좌불안석입니다.
시민권의 특혜를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불법체류하시는 분들은 시민권자를 아주 부러워 할 것입니다.
그들은 장시간의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체불과 열악한 환경등 그들이 견뎌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고통을 벗는 길은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뿐이지만 처한 환경이 귀국을 쉽게 결정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분들은 시민권이 없다는 것 하나 빼면 일하는 시간도, 일하는 능력도, 느끼는 감정도 시민권자와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까지 똑같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오면 지금까지 같이 웃던 그들의 태도가 달라지면서 경찰을 피해 높은 층에서 뛰어내리는 고통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남의 나라에서 시민권 없이 사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혹 국제결혼을 통해 시민권을 받기 위해서 결혼한 사람도 있지만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사랑 때문에 결혼하긴 했지만 나라와 문화가 다른 만큼 더 깊이 이해하고 아끼며 살아야만 안정된 가정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때 두 사람은 배려안에서 하나가 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보통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상대방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만약 사랑하지 않는다면 서로 배려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며 어떻게 하든 상대방에게 얻을 것만 생각할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상대를 섬기는 깊은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게 되면 상대가 나보다 학벌이 조금 부족해도, 육신이 연약해도, 재산이 없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문제점은 매매혼인방식으로 결혼한 두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들이 차별을 받고,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쪽 부모가 외국인이라서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을 조롱하는 사람은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국적이 다르더라도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모두가 형제입니다.
세상의 국적 때문에 이질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성도가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시민권을 가지지 않은 성도를 불법체류자 취급을 하며 초라하다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도 처음에는 세상의 시민권자였습니다.
다만 하나님나라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심령이 가난한 자를 건지러 오신 그리스도와 결혼했기 때문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잠시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이 땅에 잠시 머무는 성도들이 이 땅의 시민권을 가진 것처럼 세상에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여행하지만 결국 모두 사랑하는 자기나라로 돌아가는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나라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 바울은 세상사람들과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해서 복음을 전했지만 힘이 없어 보이는 그는 무시를 당했습니다.
세상은 자랑할 것이 있어야만 높여주기 때문에 함부로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사람들이 절대적인 힘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이미 가졌고, 자의로 버렸기 때문에 세상에 미련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조롱하는 자를 향해 나는 너희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며,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선민이라고 밝혔습니다.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으로써 가말리엘의 수하에서 공부한 수재이며, 너희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로마의 시민권자이고, 내 부모는 세상이 인정하는 재력가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제 그 누구도 사도바울앞에서 세상것으로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바울에게 그렇게 좋은 배경을 가졌으면서 왜 초라한 삶을 살고 있느냐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육적인 자랑을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곁에서 살 수만 있다면 자기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깊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통해 내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 계산하는 것이며, 얻을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세상의 시민권을 포기했고, 자기의 생명과 육적인 자랑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나라 시민권을 선택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계신 푯대를 향해 달려가기를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실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신앙은 성숙한 성도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입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한 모든 충성의 시간이 하나님께 칭찬받기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한 자신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 열정이 바나바와 여러 성도들이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아끼지 않고 선교여행을 떠나게 한 것입니다.
자기의 충성을 자랑하지 않는 바울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자랑과 편안함을 버리고도 불평하지 않는 바울은 우리 모두가 본받기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조금만 헌신하면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전 재산과 생명을 그리스도를 위해서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희생을 자랑하며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교만한 것이므로 바울처럼 헌신한 것은 잊어버리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충성하면 충성할수록 자신이 교만해질까봐 두려운 마음에 지금까지 헌신했던 모든 시간들은 다 잊어버리고, 더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이런 모습이 성숙한 성도의 자세일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물론 부족하지만 나를 본받으라고 빌립보성도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육체적 자랑을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해서 배설물로 버린 나를 본받고 믿음으로 살아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자신이 완벽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길로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마음을 본받는다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당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가족을 버리는 것이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많은 재산과 학벌과 친구들을 버리는 것이 과연 쉬웠을까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으로 살아온 바울이 율법을 버리고 진리안에서 자유로워지기 까지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자기가 지금까지 확신을 가지고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방식을 버려야 하는 바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가만히 있는데 예수그리스도가 그냥 믿어지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구까지 가득 찼던 세상을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하나씩 버릴 때 그 공간을 예수님께서 조금씩 채워 가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그리스도 때문에 돌에 맞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세상은 그를 성밖에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하늘로 이끌어서 놀라운 비밀을 보고 듣게 하셨습니다.
그는 비록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고통을 당했지만 영원한 나라를 보여주시며,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그런 자신을 빌립보성도들이 본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에게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곁에 있는 믿음의 형제에게 나만큼만 그리스도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누구에겐가 나를 본받고 나만큼만 믿음으로 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산 것입니다.
여러분도 본받을 삶을 살았겠지만 이제부터 누구에게나 바울처럼 나를 본받으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17절에 나를 본받으라고 말한 다음 이어서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믿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본을 삼아서 믿음으로 성장한 디모데와 같은 사람들의 삶을 잘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중에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들었으면서도 본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바울과 같이 주님만 바라보고 충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과 자신의 의로 자기의 신앙이 가장 올바른 것처럼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신앙중에 너희는 좋은 본만 따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곁에도 충성하는 사람과 판단만 하는 사람과 아무런 위기의식 없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다 성숙할 수 없지만 이렇게 다양한 신앙을 보여주신 것은 그중에 올바른 신앙을 본보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교회나 성도들 전체가 진리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다수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진리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면 결국 멸망길에 서기 때문입니다.
자유함이라는 것은 방종이 아니라 믿음안에서 선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도 세상이 좋아서 구원밖으로 나간 데마처럼 구원과 상관없는 세상을 동경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본을 보이며 앞서가는 자를 따라가야 하겠지만 여러분의 믿음을 보고 뒤따라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본을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좋은 본이 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19절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멸망은 구원의 반대개념입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세상과 동일한 길을 걷다가 결국 구원밖으로 떨어진 자들의 종말은 지옥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늘 조심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앞선자들이 하는 실수는 성도들을 판단하는 죄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지금까지 가졌던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때문이며, 내가 그들보다 신앙이 앞서있고 많이 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실수는 믿음이 성장한 사람과 부족한 사람이 분명하게 보이므로 성도들을 차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재정을 맡게 되면 헌금하는 횟수와 금액을 보며 성도들의 신앙을 판단하는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부서에서 헌신하는 사람들은 봉사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도 있을 것이고, 일에 동참하지도 않은 사람이 결과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신앙이 성숙했다면 연약한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준다면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도바울을 본받으며, 말씀을 듣고 거듭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의 삶을 보면서 구원의 길을 바로 걸어가는 성도의 삶이 바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백성의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8절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말은 하지만 말과 행동이 동일하지 않은 사람은 이미 영적인 싸움에 실패한 것입니다.
교회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놓지 않는 사람은 말씀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는 것은 오직 구원을 받기 위한 과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하늘나라를 모르기 때문에 늘 불안한 마음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이 허무한 세상을 왜 살아야 하는지 늘 의문속에 살아갑니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해서 허무한 시를 쓰기도 하고, 철학을 연구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대답은 성경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은 인생이 무엇인지, 인간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들이 늘 궁금해 하는 것을 대답해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사단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죄에 빠지도록 유혹했고, 역사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인간이 우상숭배를 하도록 세상의 권력을 이용하였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을 통해 사단은 패배하였지만 인간이 세상을 붙들도록 유혹하여 함께 불못에 들어가려고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도구는 세상이고, 미혹에 넘어간 인간의 마음입니다.
사단은 사도바울처럼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건드릴 수 없지만 세상을 좋아하는 어리석은 자는 교회안에 있다고 해도 얼마든지 쉽게 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사단은 자신들은 불못에 던져지도록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지만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을 속여서 자기와 함께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그곳에는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거짓 선지자와 하나님을 세상의 축복을 주는 신으로 전하며 행위를 강조했던 목회자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말에 속아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었던 자들도 있을 것이고, 자기 희생은 커녕 세상의 재력으로 교회에서 조차 대접받으려고 욕심을 부렸던 교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기 때문에 목회자가 속였든 세상의 욕심 때문에 넘어졌든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하므로 지옥에 빠지는 것은 바로 속은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는 자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이용하여 천국도 소유하고 세상의 부도 소유하려는 생각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생각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는 사단의 유혹을 바로 바로 분별할 수 있는 영분별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거짓으로 전하는 거짓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자녀는 그 말이 사단의 장난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없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은 사단의 그럴듯한 말에 속는 것입니다.
말씀안에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와 말씀으로 살아가는 형제들과 함께 있어야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로써 진리안에서 충성을 다하는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도처럼, 헌신하는 것처럼, 교회인 것처럼, 어린양을 사랑하는 것처럼 흉내내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도바울처럼 하늘의 일만 생각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며,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참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빌립보성도에게 믿음안에서 살아줄 것을 간곡히 전하는 바울의 신앙은 하늘의 시민권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의 자세입니다.
구원은 이 땅에서 믿음을 가진 자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육을 가지고 살아있을 때 밖에 기회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토록 많은 설교와 성경의 말씀을 듣고 읽고도 세상의 일을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도와줄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입김을 한번 불어버리면 모두 날아가 버릴 지푸라기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세상사람이 모두 부러워하는 로마시민권이 얼마나 안개와 같이 힘이 없는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육적인 자랑이 구원앞에서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담대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세상사람과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입니다.
세상은 세상을 버린 바울이 초라해서 돌을 던졌지만 천국을 보고 온 바울은 도리어 세상이 얼마나 초라한지 알기에 세상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다시 하늘의 왕으로 돌아가셨기에 그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와 동일한 영광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썩어서 흙으로 돌아갈 몸을 사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입으셨던 영광의 몸을 입고 영원토록 하나님나라에서 시민권을 가지고 영생을 누리시겠습니까?
하나님나라를 학수고대하며 살아가는 성도는 죽음이 두렵지 않고, 사단이 주는 세상의 쾌락이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지금 여러분이 목숨처럼 아끼는 세상의 모든 것을 놓고 가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육을 벗고 하나님께 가는 것은 정해진 것입니다.
인생을 썩을 것으로 심지 말고 썩지 않을 것으로 심으시며, 욕된 것으로 살지 말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육의 몸으로 심는 모든 것은 지옥불에서 모두 타 버릴 헛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큰 상급을 받을 열매가 될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이 끝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헛된 곳에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이며, 아까운 돈을 교회에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으면 그만인 인생이라면 사후세계를 위해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리석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부탁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만왕의 왕이며, 육신을 벗는 그 순간 영광의 하나님을 뵙게 된다면 지금 믿음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산 성도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며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을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들만이 들어가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곳은 천사들이 여러분을 수종드는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천국을 보고 왔기 때문에 죽음의 두려움도, 매를 맞는 두려움도, 강도와 추위와 배고픔의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나라의 시민이기 때문에 하늘의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나라로 돌아갈 그 날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는 성도로써 믿음을 지키기 바랍니다.
언제나 주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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