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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며 삽시다
살후 2:13-17
한해의 반이 어느덧 지났습니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감사하며 삽시다” 라는 주제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러한 주제의 말씀은 여러 번 들으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진지하게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항상 불평과 부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과
항상 감사와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이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즉 행복이란 현실이 어떠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도 아주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눈을 가지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다리가 없이 장애인으로 살면서도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다리를 가지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손이 없이 장애인으로 살면서도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손을 가지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손, 두팔이 없이 살면서도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손두팔을 가지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의 자세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사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요즘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많이도 어려워하고 힘들어 합니다
경제적어려움, 정치,사회적어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자녀교육에대한두려움, 미래에대한 두려움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날 겪는 어려움들은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전에 정치,사회적안정도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어려웠습니다.
자녀교육은 더욱 말도 못하게 어려웠습니다.
질병에 관한어려움을 심각했지요...예전에 60만 살아도 장수라고 하였습니다.
문화적으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삽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너나없이 다 힘들다 어렵다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살기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기가 힘들다고 난리를 칠까요?
지금은 얼마나 정치,사회적안정이 이루어 졌습니까? 감사하며 살아야지요
경제적으로는 얼마나 풍요로워졌습니까? 감사하며 살아야지요
우리들의 자녀들 얼마나 공부하기가 쉬워졌습니까? 감사하며 살아야지요
질병문제는 어떻습니까? 예전에는 웬만한 병이면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암이 걸려도 늦게만 발견되지 않으면 다 삽니다.
수명은 얼마나 길어졌습니까? 보통 80은 사십니다. 수명이 20~30년이 늘었습니다.
문명이 얼마나 발전했습니까? 전기밥솟, 전자렌지, 자동차, 컴퓨터등 뭐든지 쉽게 할 수가 있습니다.
예전보다 엄청나게 편하게 살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평과 불만으로 투정을 부리며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 마음속에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감사하며 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까?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차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하는 짓입니다.
시편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너희여 내가 너희를 찢어버리리라” 하였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감사하지 않고 불평불만하며 사는 자는 찢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왜요 찢어지고 나서야 평상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미련한 짓입니까?
요즘사람들이 집에서 개들을 많이 기릅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니까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개를 좋아하느냐 말을 들어보면
<개는 배신하는 법이 없고, 감사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개는 은혜를 안다는 것입니다.
개는 주인이 오면 꼬리치고, 달려와서 별짓 다합니다.
뭐 하나를 주면 꼬리치고, 달려와서 뽀뽀를 하고 별짓 다합니다.
얼마나 감사를 잘 표현합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께는 물론이고, 부모님에 대해서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는커녕 맡겨놓은 것 달라는 것처럼 당당합니다.
그러니깐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개만도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
내 옆에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모르고 어리석게 살아갑니다.
고마운 줄을 모르고 감사치도 않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배신하고 배반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은혜를 모릅니다.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저 시종일관 타인에 대하여 불평과 불만, 원망만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를 원망하고 자살해 버립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면 오늘날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모든 불행은...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하고 이 모든 것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과거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고, 현재에 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여 감사하고,
앞으로 주님께서 주실 축복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감사를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까?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기 때문에 반드시 감사해야합니다.
14절 말씀을 보니까 <이를 인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불러주셨기 때문에 감사를 해야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신분 이십니다.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전능자이십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원수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습니다. 죄없다 하시고, 의인 삼아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원수된 우리를 불러주실 뿐 아니라 가까이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것도 일시적으로가 아닌...영원히 가까이 있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런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불만하고, 때로는 원망하면서 하나님을 배척하고 떠나버립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곁에 부르셔서 곁에 머물면서 교제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울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그 사실을 말씀하면서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영광을 얻게 해 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14절 끝을 보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영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하나는 현세에서 받는 영광이고, ②다른 하나는 내세에서 받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은 나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덕택에 받게 되는 영광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생활은... 오늘에다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삽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칭찬과 영광이 없더라도, 앞으로 받게 될 칭찬과 영광 때문에 감사하고 그리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18절에서
<현재에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나는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영광은 피상적인 영광입니다, 세상적인 영광은 한시적 영광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시들어 버리는 영광이 세상적인 영광입니다.
그러나 주님 때문에 얻는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미국에 50년 동안 반신불수가 돼서 병석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위로하러 가는 사람마다 오히려 위로를 받고 나옵니다.
소망을 가지고 나오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 소문이 미국 전역에 퍼져서 대통령까지 알게 됐습니다.
그녀의 50회 생일이 되던 날 뜻 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서 그녀의 생일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초청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왔습니다.
그리고 상원의원 하원의원 가운데 뜻 있는 사람들을 초청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이런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이처럼 저를 축하하려 오신 대통령 각하, 그리고 귀빈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50년 동안 병석에 누었었기 때문에 결혼도 못했습니다. 병을 남편 삼아 오늘까지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만일 건강해서 자유롭게 살았다면 건강을 핑계삼아 많은 죄를 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짓지 않고 살은것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실 그렇지 안아요
두 눈이 건강하기 때문에 눈으로 짓는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두 다리가 건강해서 두 다리가 걸어다니며 짓는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손이 건강해서 손으로 짓는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목구멍이 건강해서 목구멍으로 넘겨서 안될 것을 넘기느라고 죄짓는 일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나는 50년 동안 그런 죄를 범하지 안은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장차 천국에서 있을 제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인사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감사야말로 때 묻지 않은 감사, 순결한 백합꽃 같은 감사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 된 일보다는 된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감사하며 사십시다.
못 가진 것보다는 가진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며 하십시다.
잃어버린 것보다는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며 삽시다.
지나간 일들에 대하여 원통해하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좋은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삽시다.
지난날의 패배, 지난날의 아픔, 지난날의 그 어려웠던 일들,
지난날의 치욕, 지난날의 반감, 지난날의 상처, 지난날의 원한까지도 다 감사합시다.
3)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반드시 감사해야 합니다.
16절 말씀 보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랬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증오의 신이라든지, 하나님이 복수의 신>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친구 두 사람이 장미꽃 밭을 찾아가서 장미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①한 친구가 장미꽃을 메 만지다가 가시에 찔렸습니다. 피가 뚝뚝 떨어집니다. 불평을 합니다.
<무슨 놈의 꽃이 가시뿐이람, 장미는 틀렸단 말이야! 이건 할퀸단 말아야> 그리고 불평을 합니다.
②그러나 한 사람은 장미꽃을 드려다 보면서 감탄을 아끼지 않습니다.
역시 꽃 중의 꽃이야, 꽃 중의 여왕이야!
아 ! 아름답단 말이야 가시 없는 장미가 무슨 의미가 있담, 꽃과 가시 얼마나 멋진 조화인가 예찬을 마지않습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 속에는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습니다.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평안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안 좋은 쪽만 들어다 보면 감사가 나올 턱이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23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 동기가 사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같습니다.
①하나는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독생자까지,
②또 하나는 변함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리고 늘 풍성한 사랑입니다.
③그리고 자상한 사랑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구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 때문에 바울은 감사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4) 영원한 소망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16절을 보면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그랬습니다.
우리가 갖는 소망은 이 세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적인 것은 잠시 필요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왜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까?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1) 첫째는 이 세상 것은 잠깐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행복도 잠깐, 기쁨도 잠깐, 성공도 잠깐, 승진도 잠깐, 평화도 잠깐,
다 찰라입니다. 다 순간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나라가 좋은 것입니다. 이 영원한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2) 둘째 영원한 나라는 살기가 좋은 곳이기 때문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죄도 없고, 질병도 없고, 미움도 없고, 다툼도 없고, 전쟁도 없는 나라
인간이 수 천년 동안 꿈꾸어 오던 파라다이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거기가 영원한 소망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주시고 소망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3) 셋째 주님과 거기서 영원히 살기 때문에 소망을 두어야합니다.
찬송작가 헌팅톤은 222장에 이렇게 읊었습니다.
♪. 우리를 구하신 주님도 거룩한 그 집에 계시니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주님이 그 집에 계시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거기서 영원히 산다는 찬송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가까이 가면은 스텐퍼드대학이라고 하는 명문대학이 있습니다.
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두 남학생이 학비를 벌기 위하여 의논을 하다가
그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인 파데 레프스키(Ignacy Paderewski)라고 하는 사람을
초청을 해서 음악회를 열자 그러면 돈을 벌 것 같다하였습니다.
그래서 폴란드로 편지를 보내서 매니저가 약속하기를
<스텐퍼드 대학에 가겠다. 대신 2000 달러를 달라>하였습니다.
그래서 주겠다하고는 열심히 음악회를 준비 해 가지고 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초청해다가
음악회를 열었는데 실패를 했습니다.
표를 다 판 것을 모으니까 1600불 밖에 안되었습니다. 밑졌습니다.
두 학생이 <1600불을 드리면서, 400불은 이 다음에 우리가 돈 벌어 가지고 갚겠다>고 차용증서 써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두 학생의 설명을 다 듣고난<파데 레프스키>는 그들 보는 앞에서 400불짜리 차용 증서를 쭉쭉 찢어 버리고, 1600불을
돌려주면서... 이 돈 가지고 경비 갚고, 그리고 둘이 나누어서 쓰라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두 학생은 너무 감사해서 일평생 그분의 감사를 잊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세월이 지난후에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파데 레프스키가 폴란드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때는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라 폴란드가 경제 공황으로 국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래 대통령은 미국에 식량 원조를 청하기로 결정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국에서 식량이 막 쏟아져 들어 왔습니다. 구호물자와 원조 식량이 들어 왔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폴란드 대통령이 위기를 모면하게 됐습니다.
이를 감사하기 위해서 때를 노리고 있는데, 그때 불란서 파리를 방문하고 있는
미국의 제 31대 대통령인 후버(Herbert Clark Hoover)가 파리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를 타고 좇아갔습니다.
정중하게 감사를 했습니다.
<참 감사했다고, 당신이 보내준 식량 때문에 우리나라가 죽지 않고 살게 됐다고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하겠느냐>고,
그랬더니
후버 대통령이 하는 말이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저는 신세를 갚았을 뿐입니다>.
<아니 신세라니요!> 대통령께서는 스텐퍼드대학 음악회에 오셔서 연주해 주실 때에 은혜 입은 학생이 바로 나였습니다.
여러분 이건 상당히 감동적인 얘기고 찡하는 예기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이 각박해 진다고 하더라도... 감사를 잊지 말고 사십시다.
이게 무슨 예기입니까?
감사를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살아가십시다.
감사는 내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감사는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그리고 감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감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는 더군다나 나에게 축복을 가져다가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요한 것은 오늘의 형편이 아닙니다.
오늘의 상황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도 아닙니다.
감사하는 마음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더 많이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감사하는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놀라운 영광이 풍성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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