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도덕경이 아니다(딤후3:15)
제목을 성경은 도덕경이 아니다고 했지만 성경은 철학도 아니고 성경은 정치적인 말도
아니고 인간의 의지를 묻는 차원의 말이 아니란 뜻에서 제목을 삼았습니다. 성경 특유
의 성질을 바로 알아야 예수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 있고 구원과 은총을 누
릴 수 있습니다.
1. 원죄와 영생은 도덕적으로 이해할 바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첫 사람으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순종하는지를 시험하셨을
때,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먹지 말라 먹으면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무리 살펴도 창세기 3장에서 받은 인간의 첫시험은 도덕적인 것도 사회 윤리적인 것
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행위 언약이었습니다.그 곳엔 다른 이웃 사
람도 없었고 달랑 아담과 하와 두 사람 뿐이었으며,아직 사회법이나 도덕법도 생긴 때
가 아닙니다. 그리고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먹는 일이 무슨 도덕성이 개입되지 않
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생은 저주를 받아 땅의 세상에서 고통을 받고 사는 형벌과 아울러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죄로 도덕적인 것이 아니면서 동시에
영생을 얻는 구원의 내용도 도덕적인 것이 아닙니다. 착해서 구원 얻거나 선행으로 되
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
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죽으신 대속의 죽음을 믿어 속죄를 얻고 영원히 살게
되는 은혜를 입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역시 도덕이나 윤리의식이 아닙니다.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
니'
윈죄라고 할 창세기 3장의 죄도 윤리적인 것이 아니고, 영생을 얻는 길을 제시하신 것
도 도덕적으로 어떻게 취급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고 순종으로 되어집니다. 태초 아담에게 시험하실 때에,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고 하심대로 신약의 십
자가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소식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고 안 믿는 자는 그 십자가 때문에 안 믿어서 하나님
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
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민수기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불순종할 때 하나님이 광야의 뱀을 통하여 심
판하실 때,모세를 통하여 높은 장대에 그 놋같이 생긴 뱀을 만들어 쳐다 본 자는 낫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쳐다 본 자는 나았습니다. 참으로 이해되지 못할 약속
이었습니다. 그 놋뱀을 보고 낫는다는 것은 세상의 이해가 아닙니다.
모세가 든 놋뱀을 쳐다보는 것으로 구원이 있다는 것은 거저 목 운동 정도이지 윤리나
도덕 심리는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죽어가는 사람들이 목을 들어 그냥 한번 보는 정
도입니다.그 순간에 나음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그렇게 단순했습니다.
우리는 잘못한 것을 알고 뱀에게 물려 죽어가며 잘못한 윤리,도덕심리로 반성하겠지요
? 그것으로 구원이 없고 쳐다보라는 언약이 있었습니다. 효력없이 보이는 그것이 구원
의 메시지였습니다.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쳐다보는 정도였습니다.
그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시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돌아가시는 일에 우
리의 선행이나 무슨 행동을 더할 것이 없고 오직 주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놋뱀을 보
라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롬 4:6-8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일을 아니한 우리가 예수를 통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우리가 받는다는 말입니다. 죄없다 하시는 칭의의 은혜
를 입은 자는 행복한 자라는 것입니다.영생은 도덕과 인품과 그런 것으로 구원얻는 것
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정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그런 인격으로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
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입을 수
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믿음의 의를 입을 수 없습니다. 자랑할 게 없습니다.
나는 세상 중에 제일 악합니다. 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낮아지면 하나님
은 너는 의롭다 해주십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의롭다 생각하면 하나님은 너는 저 사
람보다 더 못하다 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이라 할 때 사회적으로 부도덕하면 죄인이라 여깁니다. 큰 죄가 없으면 별
로 죄인이 아니다고 생각하나 성경은 모두가 죄인이라 했습니다. 사람 마음에서 나오
는 것은 원죄 이후 악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원죄 이후 악한 마음과 행동이 나타났습니다.가정과 사회에 발생되어졌습니다. 하나님
의 언약을 지키지 않은 바람에 생긴 것입니다. 영생도 나의 선행이 아니라 주님이 죽
으신 것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아들에게 우리 죄를 맡기
시고 희생양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구원주시겠다는 새언약을 주신 것
입니다. 원죄도 영생도 도덕인 것들이 아닙니다.
2. 진리로 살면 승리하고 복을 얻는다는 것도 도덕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본문과 바로 뒤에 나오는 말씀을 함께 보면.
딤후 3:15-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
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
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산다는 것은 세상의 처세나 철학적인 사고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강요하는 성
질이 있어서 비합리적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따라 살다가 잘 될련지 못 될련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성경은 힘주어 말하기를 반드시 승리하고 축복 받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
습니다.
철학적인 이야기면 사람들의 의지에 맡기겠지만 성경진리는 그냥 순종해야 합니다. 왜
냐면 우리가 가진 경험적인 사고방식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생활, 기도, 전도 생활등이 세상의 처세나 통계와는 거리가 먼 처세입니다. 그러나 순
종하고 따른 사람들은 기독교 2천년간 경험적으로 옳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왜 십일조를 내면 좋을지, 주일 하루를 쉬면서 예배와 말씀연구로 주간 일상의 생활에
비해 특별한 생활을 살면 어떻게 복이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는 처음부터 되
는 게 아닙니다. 믿고 순종할 뿐입니다. 성경의 성질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사
회의 흐름대로 성경을 해석하려하면 실패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그렇게 실패를 했습니다. 시대를 따라서 성경을 마음대로 풀다가 망
했습니다. 기독교에서 미덕을 이야기 할 때 순종이라 합니다.말씀 안에서 원하면 서로
순종할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순종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성경 안에서 맺어진 형
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서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형제로 만들었습니다.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인격이 필요하나 인격대 인격으로 형제 된 것 아닙니다. 물질이나 인
격이 아니라 순종과 신뢰입니다. 누가 순종을 잘 하는가 이것으로 하나님 앞에 판단하
는 것이 옳습니다.
유대인이 지혜롭고 부호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슴대로만 살력고 했습니다.
제사하는 백성, 즉 예배하는 백성입니다. 그들은 한 해 중에 거의 절반을 예배한다고
세월 다 보냈는데 그들이 어찌 복을 받고 잘 되었는가? 그들을 세상적으로 보면 시간
을 허비한 것 같은데, 그들이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범사에 먼저 생각한 자들이기
때문에 복을 받은 자라 여길 수 있습니다. 성경대로 살면 잘 된다는 말을 사람의 생
각대로 도덕경으로 생각하기엔 너무 엉뚱한 말입니다. 행한 후에 알 수 있습니다.
3. 성경 예언은 철학으로 풀 수 없습니다
성경은 넓게는 예수 믿으면 천국, 안 믿으면 지옥이라는 대 주제를 중심으로 기록되었
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도자는 하나님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미래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소위 종말에 대한 경고의 예언적 계시는 인간의 술어가 아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계시입니다. 이것을 믿을 것인가? 기다려 볼 것인가? 하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이
내용도 역시 믿음과 순종으로 따라야 할 문제입니다.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계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
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성경자체가 예언이며 동시에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들을 때는 지나간 역사의 기
록처럼 확실히 그렇게 미래가 되어질 것으로 믿고 순종함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성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세가 되면 세상의 통계를 보고 세속의 형편을 따라, 이기적이어서 자
기 자신의 본성을 따라 귀신의 가르침을 받게 될 날이 올 것이라 했습니다.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
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믿음에 떠나..믿음에 떠나면? 그냥 중간에 있지 않고 사고와 감성과 의지가 악령의 유
혹에 가고 귀신에게 갑니다. 믿음에 떠나면 귀신을 떠납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천당 아
니면 지옥입니다. 이것 아니면 저겁니다.흑백입니다. 믿음에서 떠나면 중간에 있는 것
이 아닙니다.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성경을 이해하기를 이처럼,
죄에 대해서도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성경의 역사인데,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
를 먹었다는 이유로 이렇게 인류가 망하는 사망의 벌이 주어진 사연에 대해 우리는 다
른 질문을 할 여지가 없이 다만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다는 것으로 죄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려야 하고,
원죄이 이야기도 아주 어떻게 보면 유치하게도 보이지만 너무나 엄청난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예수 믿고 구원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로 너무 쉽게도 보이는데 너무나 큰 구
원이란 대 주제가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동시에 영생을 얻는 법도 그처럼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죽으심이 내 죄를
위한 것으로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순종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축복의 개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입니다.
성경에 이른 바를 좇아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세상은 지구 끝까지 이래저
래 생각을 굴리다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서기 2천년 시대가 와도 옛날과 다를 게 하
나도 없습니다.옛날에도 오늘날 현명한 척 하는 소리처럼 늘 그렇게 새로운 소리를 질
러댔습니다.
그러나 해 아래는 새 것이 없고, 무슨 새로운 예배 형식이니 뭐 비쥬얼 예배니 오픈예
배니 하고 예수보다 내가 즐겁기 위해 웰빙이니 뭐니 할 뿐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과
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제대로 영혼이 잘되어서 승리할 처사인지 반성해야 합니다. 성
경은 우리에게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 믿고 순종하라고 가만히 그대로 변치 않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꾸역꾸역 순종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변화가 많으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을 언제부턴가 무슨 심리철학 도서같이 취급하는 목사도 있고, 도덕경이나 철학도
서정도로 아는지 성경 읽어놓고 딴소리만 잔뜩 하는 설교자도 숱합니다. 제가 인터넷
을 통해 주간 많은 설교를 듣고 읽는데, 여러 교회, 그것도 대형교회가 될수록 도대체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말하자는 건지 사람의 말을 지혜롭게 하자는 건지 헷갈립니다.
세상이 골백번 바뀌어도 성경대로 살도록 연구를 하고 믿고 순종하고 읽고 깨닫기를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셔서 승리하고 지혜로운 삶의 종국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