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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치료하는 처방전
왕하5:1-14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설교:
몇주간 대심방을 했습니다. 심방을 해보니 공통적인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의 최대의 관심사는 건강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하고 다이어트하고 합니다. 그리고도 열심히 먹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건강에 좋다하면 뭐든지 다하려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다 건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건강에 대한 생각이 지나쳐서 건강=행복, 즉 건강해야만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이런 말을 합니다.
“돈을 잃으면 적게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일 수 있으나 저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면 건강치 못한 분들도 행복한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인간은 썩어져 가는 육체를 입고 살기에 언젠가는 노쇠하고 언젠가는 병들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멘을 안해도 죽습니다.
인간이 겪는 질병의 종류는 6.000여 가지나 된다합니다.
6.000여 가지나 되는 수많은 병에 걸리지 않고 고통 없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바이지만 실상은 불가능한 소원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리다 죽은 중국의 진시왕을 보세요.
그도 병으로 고통을 받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어서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려고 그렇게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50세의 나이로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건강도 중요하나 정말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복음의 진리를 알고 그 복음을 통해 영생의 원리를 알고 믿고 깨닫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의 삶은 한순간입니다. 잠시 왔다가 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 약 4:14에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잠깐 살다가 사라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인생을 사는 것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일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시고 영육간에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요구하시는 처방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영육간에 건강하게 살기위한 하나님의 처방전은 무엇일까요?
1. 자신의 실체를 보아야 합니다.
1절을 다 같이 보세요.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이스라엘 나라 주변에 아람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람나라에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는 이 나라의 영웅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아람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사람이 나아만 장군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도와주었나요?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왕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겉으로는 그토록 화려하고 대단한 사람이었으나 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이 저주받은 병이라 여겼던 나병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대단한 귀인이었으나 아무도 모르는 아픔과 괴로움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의 가족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겉은 화려하고 대단했으나 속은 썩어 죽음을 가다려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는 병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알고 신하들이 알고 결국 왕도 알게 되어 이제 사회에서 완전 매장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권력이 있고 명성이 있고 돈이 있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는 허다합니다. 아마도 당대의 최고의 의술을 가진 의원들이 달려 왔을 것입니다. 당대의 효험이 있다는 민간요법도 다 동원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다들 안타까워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나아만의 모습이 누구의 모습일까요?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겉으로는 화려하고 그럴듯합니다. 남들도 인정하고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소리도 듣습니다. 그래서 남부럽지 않게 성공했다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속은 어떻습니까? 자기만 아는 속, 실체도 괜찮습니까?
우리의 실체는 어떻습니까?
혹시 나아만처럼 남들이 모르는 아픔과 고통이 있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약점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분은 남편문제로, 어떤 분은 자식문제로 힘들어 합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들어내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존재인지.
그래서 스스로에게 절망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고 미련한지, 그리고 나병처럼 자신에 치명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설사 안다 해도 알면서도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해결책은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아프면 속히 병원가서 치료받기에 낫게 됩니다. 그런데 나병처럼 아프지 않으면서도 썩어갑니다. 이제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속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속히 자신의 실체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치료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뭔가요?
어떻게 오셨나요? 어디가 아프신가요? 묻습니다. 그러면 다 말해야 합니다. 감추어서는 안됩니다. 여성들도 산부인과 질병도 다 말해야합니다. 창피하다고 숨기고 감추면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목사인 저도 말씀을 보다가 순간순간 저의 모습을 보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야 이래서 목사라 할 수 있냐?” “내가 이런 형편없는 존재인가?”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남이 위료해 주십니다.
사도바울의 고민을 보게하고 소망을 얻게 하십니다.
로마서 7장에서 19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3~24절도 보세요.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명심할 것은 자신에게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실체를 자신이 드러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실체를 보셨습니까? 죄인이고 추악한 존재이며 마땅히 심판 받아야 할 존재인 자신을 보셨습니까?
그 실체를 하나님 앞에서 들어내십시오. 그러면 치료의 길이 열립니다.
감추면 안 됩니다. 속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는 감출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다 드러내시고, 자신의 약점과 아픔을 다 들어내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2.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3절을 보세요.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나아만 장군이 전에 전쟁터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포로로 잡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아만 장군의 옷을 빨다가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걸린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주인마님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 소식이 나아만의 귀에 들어갑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은 잘난 사람, 말 잘하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만이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명의 소녀 하나가 나아만에게 복음의 소식을 전한 것처럼 오늘 우리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 한마디가 한사람을 살립니다. 한 사람뿐만 아닙니다. 한 가문, 한 나라를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놀라운 것은 그 이름도 없는 소녀 하나가 전한 이야기를 아람의 영웅 나아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지 모르나 어떻든 그 아이의 말은 그의 귀에는 복음이었습니다.
그만큼 나아만은 자신의 실체 앞에서 낮아진 것입니다. 자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은 낮아집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교만하고 거만한 것입니다.
한국의 지성이라 불리던 이어령 박사도 자신의 실체와 무능 앞에서 낮아지게 되자 하나님이 보이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나아만의 입장에서 보세요. 당시 쟁쟁한 왕의 주치의들이 치료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여자 아이의 소리가 들렸겠습니까?
그러나 절망에 빠진 어느 날 그 아이의 소리가 비로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소리가 나아만의 생애를 바꾸어놓은 놀라운 음성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에도 있고 우리 생각과 소원에도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행20:22에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간다고 했습니다. 성령에 매여 간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성령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루살렘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 기도하면 할수록 예루살렘 예루살렘 예루살렘……. 예루살렘만 생각납니다.
거기 가서 살든 죽든 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소원이었습니다.
그 소원이 너무도 강렬하여 아무도 바울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 소원이 바로 성령을 통해 주신 주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이런 음성이 들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도 힘들고 어려우나 신학교를 하는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우리 주님의 음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온 우주에 가득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가득합니다. 지금 이시간도 여러분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잘 들리지 않을까요? 세상 생각과 소리가 가득하니 들려올 수 있겠습니까? 들을 수 있는 마음과 여유가 없으니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이 나를 꽉 붙잡고 있으니 주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나병은 불치병이야, 나병은 저주받은 병이야” 이것이 우리를 꽉 붙잡으면 주의 음성이 안들입니다. 그런 편견과 고정관념이 강하기에 하나님 음성과 하나님의 소원이 내게 들릴 턱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 보세요. 말씀을 묵상하세요. 그리고 겸손히 기도하면서 마음을 비우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 예배시간에 세상 것을 내려놓으세요. 자식 걱정 내려놓으세요. 사업 걱정도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리고 음성이 들리거든 그대로 순종하세요.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 인생을 바꾸어놓는 음성입니다.
3. 교만을 벗고 겸손으로 가야 합니다.
나아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소녀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찾아가 허락을 받습니다. 그리고 친서까지 받아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이스라엘로 가서도 먼저 왕에게 찾아갑니다. 이것은 나아만 장군이 지혜로운 사람이란 뜻입니다.
질서를 존중하고 권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만약 왕의 허락이 없이 곧바로 이스라엘로 갔다면 쓸데없는 오해를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땅에 와서도 곧바로 엘리사를 찾아가지 않고 이스라엘 왕을 먼저 찾아갑니다. 만약, 나아만이 엘리사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야 하기에 모든 절차 생략하고 엘리사를 찾아갔다면 복잡한 문제가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윗사람에 대한 권위를 존중하고 절차를 밟는 모습이 참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우리도 나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오른을 존경하고 부모를 존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를 존중하고 그 권위아래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겸손하면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겸손하면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남을 무시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을 무시합니다. 목사도 무시하고 주변 사람들을 알기를 아주 우습게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행복이 없습니다. 늘 환경이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런 분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내속에 교만이 가득해서 그렇습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나보다 다 훌륭한 사람으로 높여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나아만 장군을 보세요. 참 지혜롭게 처신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자기 생각과는 다른 대접을 합니다. 문도 안 열어보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종을 시켜 명령합니다.
10절을 보세요.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그러자 나아만이 열을 받았습니다. 화가 나서 머리 뚜껑이 열렸습니다.
11절입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나아만이라면 어떨까요? 아마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엘리사는 나아만을 이렇게 푸대접한 것일까요?
자기 딴에는 예를 갖추어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얼굴조차 내밀지 않고 종을 보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엘리사는 그의 교만을 보았습니다.
그는 처음에 나병 앞에서 자기실체를 보았기에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왕의 추천서를 갖고 이스라엘 나라 왕에게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대국의 장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엘리사 집 앞에 도착하면 얼른 뛰어나와 엎드려 자기를 정중히 맞아들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흔들어 기도해 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의 교만이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교만의 근거입니다.
엘리사는 그 교만을 보았습니다.
자기를 찾아온 나아만이지만 나아만을 고쳐주실 분은 자기가 아닌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하나님은 안중에 없고 엘리사가 치료해 주는 줄 알고 찾아와서 합당한 대우를 요구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사람 앞에 서지 말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도 목사 앞에서, 또는 성도 앞에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러려면 “내 생각” 이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방식이 아무리 바르고 좋고 편리해도 버려야 합니다. 아멘?
그게 뭘까요? 겸손과 순종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그에게 그런 숙제를 준 것입니다. 겸손이 있느냐? 네가 순종하느냐? 이것입니다. 명심하세요. 요단강 물이 치유한 것이 아닙니다. 그 겸손과 순종이 그의 나병을 치유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겸손과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힘듭니다. 어렵습니다. 그래도 명령하면 순종하셔야 합니다.
“새벽 첫 시간 드려라 그러면 낫는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아멘? 아멘하신 분은 새벽에 나오세요. 그것을 겸손히 받아 순종해야 합니다.
“주일을 목숨 걸고 지켜라.” 그러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면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바쳐라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린다.”아멘?
그런데 문제는 순종을 못합니다. 왜죠? 내 형편, 내 생각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빚이 있으니 빚부터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편을 앞세우니 못하는 것입니다. 왜 못하나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불신앙이고 하나는 교만입니다. 그러니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4.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나아만은 흥분하여 돌아간다고 난리를 칩니다. 그런데 그의 부하 중에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13절을 보세요.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참 지혜로운 부하입니다. 그렇습니다.
더 큰일을 하라 해도 할 텐데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이 뭐 어렵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미련하면 옆에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살게 됩니다. 남편이 미련하면 아내라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 혼자는 잘 안됩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늘 나를 점검해주고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아만이 훌륭한 것은 그런 사람을 옆에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혼자해서는 안됩니다. 공동체 속에서 늘 서로 도우며 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의 종이 옆에서 조언을 하고 우리의 생각을 고쳐주게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옆에서 우리의 생각을 고쳐먹도록 지도해 줍니다. 그때 생각을 바꾸고 받아들이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사람이 화가 났을 때 남의 말 듣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그 순간 그 말이 옳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적이 찾아온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어린 포로소녀 한 아이의 말도 듣더니 이제 자기 아랫사람의 말도 들을 수 있는 것 보니 그가 위인은 위인입니다.
결과가 뭡니까? 순종했습니다.
자기 맘에 안들과 기분도 안 좋고 처방도 달갑지도 않았으나 그는 요단강으로 갑니다. 그리고 여러 신하들 앞에서 자기 옷을 다 벗습니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명한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잠갔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장담은 못하겠으나 제가 보기에는 6번 몸을 담글 때까지 전혀 기미가 안보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7번 씻고 나왔더니 어린이 새 살처럼 깨끗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옆에는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때론 아픈 말을 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그저 듣기 좋도록 아첨하는 말에 속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듣기 싫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고하면 아멘 하고 듣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사람이 내게 기적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복을 누린 결정적 전환점은 이 부하의 말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그저 되지 않습니다. 들을 귀가 있어야 합니다. 아멘?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 내게도 /들을 귀를 주시옵소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허상에 착각하지 마시고 속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내 편견과 아집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명령하시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아만처럼 나병을 들어내고 허울을 다 벗어야 합니다. 사람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 믿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현대판 나아만입니다. 허울을 벗고 자신을 직시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 겸손하고 명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능력입니다. 그것이 나를 건강케 하는 유일한 처방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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