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김 창 욱
어제 - 산과의 만남 1992년 8월. 대학에 들어온 지 6개월이 지난 첫 여름방학이다. 서울의 답답한 공기와 대학의 따분한 분위기가 싫었던 터라 나의 고향 강원도 동해로 내려왔다. 고등학교 3년, 재수 1년, 도합 4년을 희생하여 입학한 대학에서 나는 커다란 희망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삶과 세상의 본질을 찾는답시고 지원한 ‘철학과’의 공부는 나를 더욱 힘들고 헷갈리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술먹고 깽판치는 것으로 일관한 6개월의 시간은 그야말로 무료함 그 자체였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서서히 방안을 달구어 오는 8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멍한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저 멀리 산이 보인다. 산, 저기에는 뭐가 있을까. 불현듯 그곳에 가고 싶은 욕구가 일렁거렸다. 방구석에 처박힌 낡은 배낭에 먹을 것을 조금 담아 두타·청옥산으로 향했다. 어릴 때부터 바라보던 그 산에 오늘 나는 간다. 이정표를 따라 삼화사, 무릉반석, 학등을 거쳐 청옥산에 오른 뒤 두타산을 거쳐 하산하는 계획을 갖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3시간 올라갔을까. 뜨거운 태양은 지친 나의 몸을 녹여버릴 듯 이글거렸고 나의 입에는 그야말로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산행이라 너무너무 힘들었다. 물도 떨어지고 다리엔 쥐가 나기 시작한다. “씨, 졸라 힘드네. 이걸 계속 올라가야돼?” 10분 오르다 5분 쉬고 그러길 몇 번 반복하다가 그만 주저 앉고 말았다. 포기하자. 안돼 이것도 못하면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축 늘어져 갈등을 때리고 있는 순간, 3명의 등산객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도 나에게 물과 먹을 것을 주었고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이라며 힘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낯선 사람의 따뜻한 격려에 힘을 얻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청옥산 정산에 발을 디뎠다. 정상의 조망은 나무에 가려 별로 좋지 않았지만 능선으로 약간 내려오니 경관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이 그냥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내 눈엔 원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 인간 세상의 지저분한 구렁텅이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가 나에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모든 가식을 벗어 던지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공간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산과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그 후 학교와 기숙사를 오가는 단조로운 삶 속에서도 언제나 가슴 한켠엔 산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주말이면 혼자 산으로 향했고 군에 입대해서도 휴가 때면 집보다는 산으로 갔다. 산은 나에게 하나의 도피처인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어머니같은 곳이었다.
오늘 - 청악과의 만남 1998년, 대학 4학년이 되었다. IMF로 세상은 살벌해졌고 나는 그야말로 死學年生이었다. 주말엔 빌어먹을 토익 시험장으로 혹은 학교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학 졸업하고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큰 아픔이 있긴 했지만 졸업후 그럭 저럭 직장을 갖게 되었고 한동안 접어 두었던 산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나의 산행은 주로 워킹이었다. 대학시절 잠시 있었던 학교산악회에서 암벽등반을 조금 해보긴 했지만 당시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지도를 보면서 산에 올라 능선을 따라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는 산행에 보다 큰 재미를 느꼈었다. 그러나 나이를 서서히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더 늦어지기 전에 전문등반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욕구로 인해 청악과의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를 지나는 순간, 나는 전원다방에서 청악산우회 입회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여러 선배님들 모두 낯설었지만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암벽등반 장비를 구입할 때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는 선배님께 큰 고마움을 느꼈다. 청악에 들어온 후 첫 산행은 인수봉이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비가 엄청 쏟아졌고 일기예보는 일요일의 폭우를 알려오고 있었다. 산행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무척 불안했기에 김경희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정대로 산행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북한산으로 향했다. 원종민 선배님, 이합승 선배님 그리고 김경희 선배와 함께 토요일 밤, 인수봉 야영장에 들어갔다. LA갈비와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며 선배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모든 상황에 어색하기만 했던 나였지만 흥겨운 분위기에 나의 마음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악천우가 있더라도 산에 옴으로써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원종민 선배님의 말을 듣고 비에 신경썼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비록 첫산행에서 암벽등반을 하지 못했지만, 악천우 속에서도 약속을 지키며 산행을 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았다. 1999년 12월 12일, 정기총회 날이다. 한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자리에서 난 또 한번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고등학교 때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보듯 회원종합평가를 보았는데 99-12번(본인)은 50%를 약간 넘는 참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나오려고 노력했는데.... 청악에 들어온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몇 가지 느낌을 정리해 본다. 우선, 청악을 선택한 것에 큰 만족을 느낀다. 다른 산악회에 가보지 않아 비교하기는 다소 힘들겠지만, 청악은 나름의 색깔을 갖고 전통을 만들어 온 산우회라는 점이다. 특히 선배님들로부터 암벽등반 교육을 받을 때 청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대충대충 경험담을 늘어 놓는 교육이 아니라 이론에 기반한 교육을 통해 암벽 초보자가 확실한 기본을 다질 수 있도록 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등반을 좀 한답시고 건방떠는 사람은 청악에 발을 들여 놓기 힘들 것이다. 산과 인간에 대한 겸손을 간직하고 있는 청악의 분위기가 무척 맘에 들었다. 둘째, 산악회에 젊은 피의 수혈이 원활하지 않았던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이제 곧 30주년을 맞이하게 될 청악이 그 명맥을 계속 잇기 위해서는 선배님들의 화려한 영광이 후배들에게 계속 전수될 수 있도록 후진 양성에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의 젊은이들이 과거와는 달리 힘든 것을 싫어하고 어떤 일에 쉽게 싫증을 내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도 나름의 열정이 있어서 한번 애정을 갖게되면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론 선배님들이 후배들의 나약함을 따끔하게 질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젊은이들을 받아주며 대화를 이끌어 낼 때 후배들도 선배님들에 진정한 존경의 마음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일 - 나의 다짐 앞으로 청악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열심히 산행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나 이젠 보다 적극적으로 선배님, 후배와 따뜻한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울 할 것이며, 매 산행이 끝난 뒤에는 산행기록을 남기겠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 것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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