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7편은 솔로몬의 시이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그야말로 준비찬송이라고 말하는 성령의 감동을 초청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님께 사모함과 경외하는 자세를 가다듬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입니다.
예배를 위해 교회를 갈 때에는 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자세로 예배당을 향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감동적인 웅변에 의한 순간의
감동이나 깨달음에 머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목사님의 얼굴은
왜 저 모양이냐 넥타이 색깔이 안 좋으네 말투는 왜 저 모양인가?’ 이런 저런
인간적인 생각만 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진리로 심판하시기 때문에 외모로
사람을 보지 않으시고 진리를 따라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에 올라갈 때부터 시편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내용은 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다윗의 소망을 물려받은 솔로몬의 열망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부왕 다윗의 소원이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노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나 다른 일을 할 때에도 하나님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겨울에 자동차 엔진을
예열하듯 자신의 영혼을 천국열쇠로 스위치 온(switch on)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긴 시간 말씀을 듣고 이루어길 바라며 참고 인내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에서 눅15장의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을 떠나 분깃에
치중할 수도 있고, 돌아온 탕자처럼 양식에 치중할 수도 있습니다. 분깃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자본, 여건, 기술, 경험들입니다. 유산이거나 수고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분깃은 점점 소모되어 가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점점 작아져 갑니다.
지금 이 시대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기 때문에 다 가난한 사람들만 있습니다.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공급이 되는 영의 힘입니다. 지혜, 거룩, 사랑 등의
은사들입니다. 이 양식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풍성해집니다.
예수님의 벳세다 광야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보여주신 그 분의 생명의 떡은
5,000명이 먹고도 12바구니가 남았습니다(요6장) 우리에게도 항상 마진이 있어야죠.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수고로 사느냐 하나님의 복으로 사느냐 깊이 생각하세요.
수고로 사는 에서나 사울은 점점 쇠약해져 가지만 복으로 사는 야곱이나 다윗은
점점 강성해 갑니다. 모든 시편은 1편이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세요.
1절에는 일하는 수고와 지키고 감시하는 것 이 둘을 대비시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일도 잘하고 감시도 잘해야 합니다. 수고와 지킴입니다.
일은 바로 자기 구원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의 집을 지어가는 일입니다
솔로몬이 눈에 보이는 성전을 짓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더불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지어가야 합니다. 그 처소가 되려면 이미 주어진 은혜를
파악하고 난 다음에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 다음 감시는 원수를 분별해야 합니다. 친구와 원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일과 진리의 성령이 없는 사람들을
제대로 감시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잘해야 하나님의 복으로 살 수 있습니다.
2절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일찍 일어나 늦게 눕는 것은 인생살이의 수고에 대한 고통입니다. 주어진 노동의
의무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생은 이와 같은 고통의 떡을 먹습니다. 어쩌면
지금 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의 수고를 보면 이해를 할 것입니다. 참 맹렬하게 삽니다.
근데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면 이런 것들도 헛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단잠을 주십니다. 발 뻗고 푹 자게 하십니다. 잠을 푹 자고 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사실 잠 안 오는 것은 보통 고통이 아닙니다.
잠3:24절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전5:12절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잠을 제대로 자고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고 있으면 지금의 생활이
정상이라 보면 됩니다. 밤새 뒤척이다 아침에 돌쩌귀처럼 이리저리 뒹굴면 안 되지요.
3절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식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태의 열매는 상급입니다. 기업은 모든 자식들이
받는 분깃입니다. 공통적인 유산입니다. 곧 자식이 몇이요? 하면 둘이요. 아 그래요
우리는 셋이요 하는 식입니다. 그게 과거엔 큰 화제 거리였는데 요즘은 자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은 그만큼 이 세대가 타락한 증거라 볼 수 있습니다.
상급은 보너스와 같은 플러스알파입니다. 같은 숫자라 할지라도 되나 말로 곡식을 달아
줄 때에 한 번 흔들어 주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한 되 하고 한 말은 차이가 큽니다.
자식들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똑 같은 아들이며 딸이라도
하나님이 한 번 흔드시면 더 지혜롭고, 더 총명하여 자질이 출중한 자녀가 됩니다.
요즘 세계적인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기독교인의 가정에 나온 자녀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기독교 가정의 자녀들의 spirit이 특출한 것을 봅니다.
세계적으로 유대인 다음으로는 한국이 우수하다고 말합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바로 정신력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4절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장사의 수중의 화살은 한 마디로 말하면 든든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시원찮으면 실탄이 없는 총을 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항상 불안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루를 열면서 찬송을 부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주부들이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면서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남편들도 ‘내가 다 해 줄게’하고 호기 부리지 말고 ‘주께서 함께 하시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해야 하는가?
1절부터 자세히 보면 생활 속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1절 집입니다. 곧 신앙의 집입니다. 2절 일어나서 눕고 자는 생활입니다.
3-4절 자식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예배의 의식만이 아니라 신앙은
생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생활 속의 그리스도, 사고방식 속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의식이 개혁되어 그 사람에게서 천국 분위기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거룩하게 되어 영광으로
영광에 나아가는 천국 신작로가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며 간절하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5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의 기업으로 주신 자식, 상급으로 열매가 있는 자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애물단지는 참으로 곤란합니다. 저희 성문 곧 재판정입니다.
그 원수와 다툼 곧 옳으냐 그르냐의 토론이 있을 때 수치를 당치 않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결산은 자식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식으로 인해
영광도 받고 수욕도 받습니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 때문에 학교에 불려가고,
이웃에게 가서 사과하기도 하고 경찰이나 교도소를 들락거립니다.
반면에 자식 때문에 기분 좋은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을
과외공부 시킨다고 되는가? 자식은 아무도 마음대로 못하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시127편을 깊이 묵상하십시다.
1절 신앙에 대해서 성령 안에서 지어져 가는 하나님의 집, 늘 깨어있는 신앙의
상태입니다. 2절 의식주의 생활이며 3절 자식들의 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지 않습니까? 아파트 몇 평 더 늘리고 도배 다시하고,
옷장 새것으로 바꾸고, 냉장고 신형으로 바꾸고, 커튼 새로 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127편의 말씀을 늘 마음에 담아 두도록 해야 할 겁니다.
첫댓글 아멘 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작금의 나라 사정으로 기도하시는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기독교는 국경은 없지만 기독교인은 조국(대한민국)이 있다지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한자성어에 "사필귀정"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나라도 반드시 새로운 질서 속으로 들어갈 줄 믿습니다.
그나저나 각종언론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편파보도(특히 MBC)에 치를 떱니다.
그리고 전과 잡범이 주둥아리를 놀리는 꼴은 더이상 보고 싶지 않네요.
조국과 공정과 상식을 불법으로 짓밟았으니
이는 끓는 납덩이를 삼킨 꼴입니다. 민심이
가장 순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래도 안 되면
천벌입니다.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