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몽골, 끝동 이불에 끌려서
1975년도인가 미국에서 처음 공부할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북한 책, 소련 책, 중국 책, 몽골 책을 호기심으로 사주경계(?)를 하면서 보면서 뒤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얘기로 들릴지 몰라도 이러한 경험은 나만이 한 것은 아니리라.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보아 답답할 정도로 콱콱 막힌 공산권 정보여건에서 그 나라들의 책이 호기심을 끌기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한번은 몽골 책을 뒤적이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골 정부의 홍보자료로 생각되는데 몽골에 사는 Korean을 소개하면서 단정하게 방안 한쪽에 개어놓은 무명 끝동이불(까만 바탕에 머리 부분에 빨간 끝동을 댄 이불) 사진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골에도 우리민족의 전통이 아직도 살아 있구나 하면서 신기했던 기분이 지금도 되살아난다.
몽골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을 더했으며 친구 Bill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William Roziki 인데 한국에서 Peace Corp 일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고 한국말도 곧잘하여 서로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그가 공부하는 분야가 InnerAsia Study 이어서 몽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당시 그의 관심은 일본이 몽골지배를 위하여 몽골인 들에게 가르쳤던 일본어 교과서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인들에게 가르쳤던 일본어 교과서와도 비교연구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공부를 마치고 1977년 귀국하게 되어 Bill과 헤어지게 되었으나 그가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는 가끔 만나면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그도 미국에서 저명한 Mongolist가 되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그 후 내가 몽골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1991년 11월 타이페이에서 개최되었던 제21차 ICWP(International Confederation on World Peace) 국제학술회의에서 몽골의 Sukhragchaa Nyamzagd(Rector, Institute of Commerce and Business)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는 몽골 대표로 참석하였는데 바로 옆방에 투숙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만 하여도 공산국가인 몽골의 학자를 만난다는 것은 좀 꺼리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 때 맺어진 그와의 친교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냠쟉드는 귀국하여 나에게 The 6th International Congress of Mongolists(Ulaanbataar: 1992.8.9-8.18)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내 주었다. 당시 몽골에 입국하기 위하여 북경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는데 누군가가 나를 찾고 있었다. 그가 바로 Orchisk 군 이었는데 그는 냠쟉드의 제자이었고 북경에 있는 UN기관에서 근무하였다. 마침 냠쟉드가 그에게 나를 북경에서부터 마중하라고 하여서 그와 함께 몽골로 들어가게 되었고 몽골에서 나의 안내를 맡아주어서 첫 번째 몽골여행은 너무 재미있었다. 당시 냠쟉드선생과 하구와선생이 베풀어준 순수한 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자 지금도 나의 몽골로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Ulaanbataar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난데없이 눈보라가 몰아쳐서 당황했던 생각은 지금까지 잊혀 지지 않는다. 마침 마중나온 주몽골 초대 권영순 대사 사모님이, 베이징의 찜통 더위를 견디려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도착하여 벌벌 떨고 있는 나를 털옷으로 감싸주던 고마움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제6차 IAMS(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Mongol Studies) 대회에 한국학자로는 나와 손경자교수(세종대)를 비롯하여 몇 분만이 공식 초청자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논문(Lessons from Korea to Mongolia-Comparative Economic Development Context)을 발표하였고 분과회의 사회도 맡았다.
그리고 대통령궁 Ikh Tenger에서 숙식을 했는데 한국 사람은 나 혼자이었고 흔한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생경한 지역에서의 첫 경험이어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당시 몽골은 체제전환기에 있었기 때문에 곳곳에서 나타나는 체제말기 현상을 너무나 생생하게 보고 느끼었다. 텅텅 빈 국영상점 판매대에는 양파 몇 뿌리가 올려놓아 있는 것이 고작이었고, 공설시장에서 입장료 징수, 간단사원 한구석에 쌓여있는 춘화 등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느 절에서인가, 박물관에서인가 휴대용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자 촬영료를 별도로 내어야 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간혹 있는 일이어서 뭐 대수롭지 않았지만 사진을 몇 장 찍겠느냐? 큰 부처를 찍겠느냐, 작은 부처를 찍겠느냐(큰 부처만 찍을래도 옆의 작은 부처까지 찍히는데 . . .) 꼬치꼬치 물어서 가격을 달리 매기었다. 좀 항의하거나 불만을 이야기하면 자본주의 나라에 살면서 그것도 모르느냐는 둥 핀잔을 하면서 깎아주기도 하였다.
은행에서 돈을 바꾸려면 적당히 집어주고 좀 더 달라면 더 집어주는 경우도 있었고, 한 웅큼 몽골 돈을 바꾸어서 쓰다보면, 쓰고 또 써도 남았으니 화폐개념이 아예 모자라는 것 이었다. 특히 공항에서 Nancy라는 미국학자가 출국할 때에 있었던 일인데 그녀가 기념품을 사가지고 나가는 모양인데 그것이 반출 금지품목에 해당되는지 돈을 내면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몽골 돈으로 내려니까 당연히 거절당해야 했고, 여행자 수표, 달라 돈이 부족하여 몽골 돈과 합쳐 내려 해도 안 받아주고. 카드로 내려니까 더더욱 받아 줄리도 없었다. 오직 달러만 고집하고 통과를 안 시키는 것이었다. 맨 나중에야 어떻게 할 수 없었는지 그 동안 떵떵거리던 자세도 사라지고, 그리고 긴긴 애원과 협상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통과시키었으니 한동안 애타던 마음 끝이라 구경하던 사람마저 허탈 할 뿐이었다.
그 후 한몽경제학회 주체의 학술대회(1996.7.5-7.12)에 참석하여 논문(Tourism Development Strategy in Mongolia for their Cooperative Context between Korean and Mongolia)을 발표하였고, 이어서 The 7th International Congress of Mongolists(Ulaanbataar, August 11-15, 1997)에 참석하여 논문(International Comparison of Disadvantages for Mongolian Economic Development)을 발표하였다. 이 회의에서 나는 IAMS의 Editor를 맡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The 8th International Congress of Mongolists(2002. 8.5-8.12)에 참석하여 논문(Thinking about Korea-Mongolia FTA)을 발표하였으며 IAMS의 executive council member도 맡게 되었다.
다음으로 내가 몽골을 찾은 것과 달리 다양한 학회활동을 통하여 몽골학자들을 한국에 초청하였다.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중동학회 연합회 창립총회(AFMA: Asian Federation of Middle East Studies Associations, Seoul, 1995)와 제2차 서울대회(Seoul, 1997), 그리고 제3차 동경대회에(Tokyo, 1999) 그들을 초청하였다. 지난해에는 냠쟉을 중심으로 몽골중동학회를(Mongolian Association of Middle East Studies) 창설하였으므로 올해 여름 Ulaanbataar 대회에 한국 학자들은 물론 동아시아의 중동학자들이 많이 참석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밖에도 한국동북아경제학회 학술대회에 처음으로 초대 주한몽골 Urjinlhundev 대사를 초청하여 평양말투의 특강을 들은 것을 비롯하여 학술교류가 많았고 작년 말에도 명지대 경제경영연구소 국제학술대회에 몽골학자 몇 분을 초청하여 한몽학술교류를 나름대로 다양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학술대회를 통하여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아직 몽골 말을 배우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다는 것과 많은 한국의 학자들의 몽골에서의 수많은 학술대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국제학술대회에서 아직은 마음 놓고 세계의 학자들과 자연스럽게 토론할 수 있는 학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역시 우리 학계에서도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시행착오가 반복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몽골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과 한국에서 공부하는 몽골의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국제학술대회의 어색함은 이제 한낱 추억거리가 될 날들이 가까워 오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젊은 시절 끝동 이불 사진에서 끌려서 비롯된 몽골에의 관심은 아직도 내 마음을 몽골연구에 묶어 두고 있다(2003.03).
출처: 심의섭, 저희나라, 충청서도, 도서출판 조은, 2015.09.05.: 194~198.
더읽기 : 심의섭 교수, '저희나라, 충청서도' 수필집 펴내, 2021.11.21.
첫댓글 "심 교수님, 올리신 글 속 '끝동이불'이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옛날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와 정말 몰입해서 자세히 읽었습니다.
저 역시 2005년 정년퇴직을 하고 몽골에서 10여 년간(실제 체류 3년가량) 교육 봉사를 하면서 몽골이 한국과 참 많이 닮은 나라라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글을 보니 저보다 무려 10년이나 앞서 몽골에서 뜨거운 학술 활동을 펼치고 계셨군요!
돌이켜보면 제가 심 교수님을 처음 소개받았던 것도, 주위 친구가 '심 교수는 알아주는 몽골통이니 꼭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했던 덕분이었습니다. 참 귀한 인연이지요.
년전에 몽골이 G7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경제가 도약하고 의료 분야도 눈부시게 발전한 모습을 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몽골 경제 연구에 헌신하셨던 심 교수님의 땀방울이 큰 밑거름이자 선한 영향력이 되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옛 추억을 불러일으켜 준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