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는 소크라테스 같은 옷을 입은 사람, 그 왼쪽에는 천사님, 오른쪽에는 염라대왕, 그 옆에는 음악가 같은 가발을 쓴 옛날 서양의 재판장, 그 반대쪽에는 우리나라(대한민국)의 판사, 결국은 모두 재판장들이 나란히 죄인을 보고 엄한 표정을 짓고 있고, 죄인의 뒤로는 초라한 모습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다. 죄인은 새빨간 얼굴과 새하얀 손가락과 어쩔 줄 모르는 입과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는 눈으로 혼란스러워한다. 재판관들이 뭐라뭐라 악을 쓰고 뒤의 구경꾼들이 거칠게 야유하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화가 나있고 손가락질을한다. 죄인은 계속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장소가 바뀌어서, 죄인이 벌을 받는 중이다. 무거운 바위를 밀어 산꼭대기로 밀거나, 사지가 묶여 64종의 새에게 산 채로 파먹히거나, 불로 달군 철판 위를 맨발로 지나거나, 손가락부터 마디마디 잘려 나가거나, 땡땡 언 땅을 손으로 파서 철로를 놓거나, 배고픈 거인들에게 산채로 씹어 먹히거나 이러저러한 여러 가지 형벌을 받았다.
벌이 끝나자 죄인은 행복에 겨운 황홀한 얼굴로 주저앉아 세상 만물에 감사했다. 기쁘고 안도한 표정으로 잠깐 있다가 뒤를 돌아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재판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소크라테스와 천사와 염라대왕 등등의 재판관들 앞에 똑바로 서지도 못한 채 또다시 혼이 나고 또다시 손가락질 받다가 또다시 내려진 벌을 받으러 끌려갔다. 사람들은 또 벌을 받으러 가는 죄인을 구경하며 비난하고 조롱했다.
죄인은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서 벌을 받았다. 이상하게 그러한 벌을 받으면서 죽지 않았다. 죄인이 죽지도 못한 채 벌과 재판을 반복하는 세상의 바깥은 머리카락이 돋아난 두피가 있었다. 식은땀이 맺힌 이마가 있었다. 투쟁-도피-얼음 중에 얼음으로만 반응하는 좁은 시야와 굳어버린 몸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ㅁㅁ이다. 그러니 이상한 게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ㅁㅁ는 자꾸만 자신을 스스로 심판하고 스스로 벌을 내렸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
ㅁㅁ는 왜 이렇게 사람이 무서운지 모르겠다. 누군가 자신에게 지적하거나 조언하면 무조건 자신을 혼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있는 말 그대로를 수용하지 못했다. 잘하지 못하니 혼나는 거였고, 혼나는 자신은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다. 여러 가지 책과 조언으로 이런 일은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다르다는 건 알지만 도저히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늘 나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낸 사람이 다음날에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면 안도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길을 가다 내가 실수로 발을 밟은 저 아저씨에게까지도.
오늘도 도대체 몇 명에게나 눈총을 받았는가, 어제는, 1년은? 내가 살아온 30년을 초과한 시간 동안, 나는 내내 혼이 났다. 내내 잘못을 했다.
오늘도 집에 가는 길에 머릿속에서 재판이 일어난다. 불안과 죄송과 비참함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 시달리다가 잠을 자고, 눈을 뜨자마자 오늘 또 누구에게 혼날까 하는 걱정과, 어제 혼났던 사람이 화가 풀렸을까 하는 걱정이 아침과 함께 찾아왔다. 세상은 걱정과 무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이 있는 만큼 공포가 있었다.
오늘도 무서운 하루가 될 것이다. 오늘도 또 재판을 받고 죽을 정도의 형벌은 받지만 죽지 않는 꿈을 꾸었고, 속죄하지만 또다시 죄를 지을 하루가 시작된다.
평안은 언제 오는 걸까, 평안은 언제 오는 걸까.
2.
심판자는 어이가 없다. 그거 아는가? 인간은 탄생이 기적이다. 정신만 있는 자신들과 달리 인간과 동물과 벌레, 식물들은 지난하게 오랜 시간 동안 진화와 변화와 진화와 변화를 반복해 지금의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 대단한 생명들은 탄생은 기적이지만 죽으면 끝인, 영원을 의미 없이 지루하게 사는 자신들과 달리 찬란하고 아름답게 살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귀하고 예쁜 존재들이다. 우리들은 사는 게 너무나도 재미없고 심심해서 못된 인간들을 골려줄 생각으로 무작위로 아무나 골라 장난을 치곤 한다. 인간들은 자신들을 본 경험으로 신이나 영혼을 만들어 믿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지금 심판자는 어이가 없다.
이번에 고른 사람은 그저 귀여운 걸 소유하고 지배하고 싶다는 이유로 햄스터를 데려다 키우다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골목에 유기했다. 더운 한여름 밤이었고, 바로 소나기가 내렸다. 빗물에 휩쓸려가던 햄스터는 저 인간이 벌받길 간절히 기도했고, 그 기도를 그들 중 하나가 지나가다 들었다. 그들 중 하나는 마침 심심했기에 그 인간을 찾아가 죄를 알려주고 벌을 주어 속죄시킬 생각이었다. 그래서 심판자 역할을 잠깐 하면서 놀기로 했다.
그러나 그 햄스터의 기도를 듣고 난 뒤 15년 동안, 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고 재판하고 벌을 주고 벌을 받고 죄 사함을 받았다가 금방 다시 별것도 아닌 일로 스스로 재판을 열어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벌을 주는 굴레를 반복하고 있다. 도저히 자신이 끼어들어 쥐알만 한 햄스터의 원한을 갚아줄 틈이 없었다. 저 인간은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고 있었다. 단 한 번뿐인 생명의 시간 중에 왜 이런 쓸데없는 일로 찬란한 시간을 이따위로 낭비하는 건지. 생명이 없는 심판자는 어이가 너무 없었다.(부럽다는 감정은 그들에게는 없는 마음이다. 그들에게 죽음이 없듯이)
지금의 인간들이 빅뱅이라는 시점을 정한 이전부터 의식을 가지고 존재해 온 심판자는 지켜보는 인간마다 ‘정말 인간이란 어리석기 짝이 없군!’이라는 생각을 반복하지만, 이번 인간처럼 스스로의 시간을 쓸데없는 일로 허비하는 멍청한 인간은 처음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무얼 저리 용서를 빌어 대는 것이람. 어리석다, 어리석어.
심판자는 기다린다. 우울증약과 신경안정제를 먹어가며 평안을 바라는 이 어리석은 인간에게, 평안이 드디어 찾아오면 그가 죽인 햄스터의 복수를 해 줄 것이다. 어차피 심판자는 시간이 많다. 소나기에 휩쓸린 햄스터 또한 자기 자신을 벌하고 심판하는 이 인간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고소하다며 비웃을것이다. 그래봤자 햄스터는 살아 돌아오지 않겠지만.
오늘도 저 인간은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자신을 심판하고 유죄를 내려 과분한 벌로 고통받고 있다. 어리석다, 어리석어.
첫댓글 제가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라 읽는 내내 찔리는 글이었네요ㅠㅠ... 진짜 세상 끝날 일도 아니고 법의 심판을 받을 일도 아닌데 왜이렇게 저는 스스로를 재판하고 벌을 주며 괴롭히는지... 정말이지 저를 괴롭히는 가장 나쁜 사람은 제 자신인 것 같아요. 항상 나를 사랑하자 나를 아끼자 내 인생은 아름답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기는 어찌나 어려운지... 현재의 행복을 온전히 누리는 것 만으로도 저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일 같은데 그게 뭑가 이리 어려울까요~ 조조조님의 글을 읽고 오늘 만큼은 저도 저를 탓하지 않고 토닥이며 기쁨에 충만한 하루를 보내보려 합니다! 우리는 탄생 자체가 기적이고 인생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10.26 11:04
모순적이네요. 자신을 물어서 유기한 햄스터에 대한 행위로 끝없는 속죄의 지옥 속에 자신을 집어 넣은 것이요. 인간은 입체적이기도 하지만 참 간사해요. 죽을 때가 되면, 죽어서 사소한 잘못까지 떠올라 자신의 죄를 사하여 달라 부르짖죠. 처음에는 저도 외부에서 말하는 어떤 존재처럼 고작 햄스터하나 때문에 무한의 굴레를 도나? 라고 생각했지만, 소동물을 이렇게 쉽게 유기했다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자잘한 잘못들이 모여 눈덩이처럼 불어났을지 모르겠어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