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야의 끝자락에서
본문 : 민 26:1-4, 51, 64-65
광야의 끝자락에서.....
오늘은 2024년 5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5개월동안 성도님들은 !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오셨습니까?
성도님들의 믿음은 얼마나 자랐고,...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광야의 끝자락에서
아마 우리 중에 대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줄기가 굵지 않은 대나무가 강한 것은,.... 다른 나무와는 달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듭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대나무는 어느 정도 자라면 스스로 자라는 것을 잠시 멈추고 마디를 만들어....
그동안 자랐던 것을 매듭 짓게 됩니다.
계속 자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나무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습니다. 잠시 쉬면서 마디를 형성하고 매듭을 만듭니다.
자라고 매듭짓고, 자라고 매듭짓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대나무는 곱게 높이 자랄 수 있습니다. 만약 매듭이 없는 대나무가 있다면,.. 그것은 조금 크고 굵은 갈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나무가 강한 것은 높이가 아니라.... 매듭에서 비롯됩니다.
믿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나무가 자라나면서 마디를 만들고 매듭짓는 것처럼....
우리 믿음도 그래야 합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 중에 진리의 매듭을 잘 만드는 사람입니다.
병에 걸리거나, 슬픈 일을 만났을 때, 또 사업이 부도나거나 경제적인 문제로 고통을 당할 때, 그 고난과 아픔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진리의 매듭 잘 만들어야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저 내 갈 길 바쁘다고 매듭을 제대로 매지 않고 가게 되면,.....
처음에는 잘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금세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2024년 5월달에서 지난 반년 가까이를 잘 매듭지어야 합니다.
지난 5개월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반응하며 살아야 할지,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26장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마무리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의 끝자락,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다시 계수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광야 생활을 매듭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알다시피,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계수한 첫 번째 이야기는 민수기 1장에 나옵니다.
이 때 계수된 사람들은 애굽에서 나온, 출애굽 세대들이었습니다. 혹시 몇 명이었는지 기억나십니까? 20세 이상 남자들의 숫자를 세었는데,..... 총계가 60만 3,550명이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후....,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자손의 수,.....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의 수를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2절을 읽겠습니다>
“염병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
여기에 보면....
염병 후에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총수를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 첫 번째 계수가 애굽에서 나온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이었다면...
- 이 두 번째 계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사람의 수를 센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각 지파별로 계수하였더니, 그 숫자는 60만 1,730명이었습니다.(51절)
그런데 이 두 번째 계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왜 인구가 줄었을까요?
첫째, 우리는 두 번째 계수한 수가 첫 번째 계수 때보다 1,820명이 감소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보다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의 수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왜 감소했을까요? 보통은 숫자가 늘어나야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숫자가 감소한 이유는 ....
애굽에서 나온 1세대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민 14:35)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부터, 민수기에는 계속 죽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이가 들어 자연적으로 죽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사건으로 땅이 갈라져서 죽었고....
- 또 길로 인해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었고, 바알 브올의 사건으로 염병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한 제1세대의 죽음이.... 죄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사실 세상이 모르고 있는 영적인 사실입니다.
세상은 사람이 질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무능해서 죽고,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추어보려고 온갖 노력을 합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보약도 먹습니다. 현대의학의 발전도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데 그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수명을 늘려 백세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인간은 결국 죽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요 실존입니다.
성경은 너무나 분명하게 죽음은 죄로부터 왔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맨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죄를 범했고...
그 결과 인간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 6:23)고 선언했고.....
야고보서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그리고 히브리서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모세는 광야 40년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시 90:9-10)
여기서 모세는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갔다’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라고 말합니다. 광야를 지날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한마디로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는 치명적인 독과 같고, 인생의 올무와 같아서 우리 인생을 죽음으로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 죄를 지으면 받드시 죽습니다. 같이 해 볼까요?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는다!”
오늘 우리 마음에 단단히 새겨야 믿음의 매듭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중요한 사실 한가지가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민 26: 9-11절에 보면>
르우벤 지파의 수를 세다가 고라와 함께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여호와를 반역한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면, 전혀 뜻밖의 말씀이 나옵니다. 자 11절을 읽겠습니다.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
아니, 고라와 함께 반역한 무리들, 르우벤 지파에 속한 다단과 아비람과 그 가족들은 다 죽었는데, 주동자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고라의 아들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지만, 죄를 멀리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버지 고라는 범죄하여 심판을 받았지만, 그 심판이 그의 아들들에게 미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아버지의 죄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 고라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무엘’도 그 후손중의 하나입니다(대상 6:28)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하는 일을 맡았고, 시편도 썼습니다.
시편 84편, 85편이 바로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특히 시편 85편 8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조상은 반역하다가 심판받았지만,....
우리는 다시 그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악인의 장막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고 노래했습니다.
보세요. 그들의 아버지는 실패했지만...
그 아들들은 죄악에 가담하지 않고 믿음의 매듭짓기를 잘한 것입니다.
이 두 번째 계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왜 인구가 줄었을까요?
첫째, 우리는 두 번째 계수한 수가 첫 번째 계수 때보다 1,820명이 감소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줄어드는 인생, 늘어나는 인생......
둘째, 우리는 이스라엘의 지파들 중에 그 숫자가 줄어든 지파가 있는가 하면 ...
늘어난 지파가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느 지파의 수가 줄었을까요? 반면에 어느 지파는 늘어났을까요?
1차 계수 때와 비교하여 감소한 지파는 르우벤, 시므온, 갓, 에브라임, 납달리 지파들입니다.
그 중에서 르우벤 지파는, 고라가 모세에게 대적할 때, 다단과 아비람이 그 죄에 가담했고...
고라와 함께 그들과 그 가족들이 다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그 숫자가 감소했을 것입니다.
특히 시므온 지파의 수가 눈에 띄게 감소했는데, 1차 계수때와 비교하면 3만 7,100명이나 감소했습니다. 6만 명에 가깝던 인구가 2만 2,200명으로 뚝 떨어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많이 줄었을까요? 아마 바알브올의 사건 때, 눈치없이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자기 막사로 들어갔다가 비느하스의 창에 죽었던 사람 시므리가 바로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였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시므리 뿐만 아니라 시므온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바알브올에 가담했고...
염병으로 많이 죽었던 것 같습니다. 보세요. 죄가 이 시므온 지파에게 화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2013년 12월 11일자 국민일보 겨자씨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성생활이 문란했던 한 청년이 매독에 걸렸습니다. 몰래 치료를 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첫아기를 출산할 때 잠복해 있던 매독균 때문에 아내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기는 병균 탓으로 한쪽 눈이 짓눌려 태어났고,....
그것을 본 젊은 아버지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비극 속에 태어난 아기는 한쪽 눈으로 세상을 비뚤게 보며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저주하며 살다가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Jr)를 암살하였습니다. 한 청년의 순간적 쾌락으로 시작된 작은 죄가 한 여인과 아기의 인생을 망치고....
한 나라 대통령의 목숨까지 빼앗은 것입니다. 인생의 비극의 씨앗은 죄입니다.
반면에 늘어난 지파들도 있습니다. 유다, 잇사갈, 스불론, 므낫세, 베냐민, 아셀, 단지파는 늘어났습니다. 사실 늘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인구는 늘어나야 합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이 지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 수가 줄어들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작던 므낫세 지파의 수가 늘어난 것이 눈에 띕니다. 무려 2만 5백 명이나 늘어났습니다. 1차 계수 때는 3만 2천 2백명이었는데...., 2차 계수 때는 5만 2천 7백명이 되었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수가 왜 이렇게 많이 늘어났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지만,....
제 생각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므낫세는 요셉의 큰아들이었지만, 동생 에브라임 지파가 더 큰 지파가 되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므낫세 지파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난한 자, 약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약한 자를 들어 얼마든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여기서 레위지파의 수가 늘어난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레위지파는 1차 계수 때보다 727명이 더 늘어났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시므온과 레위는 자기 누이 디나를 욕보인 세겜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복수하였다가 아버지 야곱이 죽을 때, 저주에 가까운 유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유언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그들을...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5-7)
이 야곱의 유언대로 시므온 지파는 점점 수도 줄었고...., 세력도 약해져서,.....
나중에는 다른 지파 중에 흩어져버렸지만....., 레위지파는 달랐습니다.
저주에 가까운 야곱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지파가 되었습니다.
언제, 레위지파에게 주어진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었까 ?....
그들이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 편에 섰을 때였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보고, 분노하여 ‘누가 나와 함께 하나님 편에서 서겠느냐?’라고 외쳤을 때, 레위 지파가 나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편에 서서, 모세의 명령에 따라 칼로 우상숭배자를 죽였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레위 지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 3:1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편에 선 레위 지파를 하나님은 그 수가 불어나게 하셨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가까이 한 시므온 지파는 그 수가 줄었다면....
하나님 편에 선 레위지파는 그 수가 늘어나고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저는 묻고 싶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지난 5개월동안 ....
성도님들의 인생은 줄어들었습니까? 아니면 늘어났습니까?
성경은 사울과 다윗을 비교할 때도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 3:1)라고 했습니다.
저는 성도님들의 인생, 성도님들의 집이 다윗처럼 점점 강하여지고, 그 수가 늘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두 번째 계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왜 인구가 줄었을까 ?
첫째, 우리는 두 번째 계수한 수가 첫 번째 계수 때보다 1,820명이 감소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이스라엘의 지파들 중에 그 숫자가 줄어든 지파가 있는가 하면 ...
늘어난 지파가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가나안은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셋째, 우리는 출애굽 세대에서 유일하게 2차 계수에 들어간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누구였습니까? 갈렙과 여호수아입니다.
<민수기 26장 64-6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에 보면, 1차 계수에 든 사람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었습니다.
심지어 모세도 죽었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만은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민수기 14장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오직 한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6-18)라고 했습니다.
보세요 ...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이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구원받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
또 하늘의 만나와 반석에서 솟아난 생수를 맛보았지만,.....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망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 다니고, 봉사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더라도 참된 믿음(a true faith)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1-2) .....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믿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김장환 목사님의 ‘큐티365’(2019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번은 노먼 루이스(Norman Lewis) 목사님이 ....
중국에서 믿지 않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간단한 질의시간을 가졌을 때,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이미 중국에는 유교 사상이 퍼져 있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굳이 서양 종교인 기독교를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꼭 믿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때 루이스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세계 어떤 곳에 가든 이미 그곳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있고 세계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셋째, 죽음 뒤에 우리 만날 심판자가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만이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분명히 매듭지어야 할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님들 !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 끝자락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다시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이 누구인지 세어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 세대는 다 죽었지만 참된 믿음을 가졌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수에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죄를 가까이하던 시므온 지파의 수가 줄었지만, 하나님 편에 선 레위지파는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2024년 5월달에 마지막 주일에...,..
저와 성도님들 분명하게 매듭지어야 할 진리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는다’....., ‘믿음이 있어야 그 땅에 들어간다.’.....
‘예수만이 인생의 길이요 해답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의 매듭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 모두가 다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