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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6구간 제2부
황소고개-원당지-수당리사무소-잔등벌-
역천쉼터-대방들-성당초등학교
20260402
1.서산과 당진의 아름다운 들녘
잔등벌과 대방들을 지나 성당마을로
국토순례 동서트레일 6구간 탐방을 떠났다. 도보여행팀 안내버스는 양재역 국립외교원 앞에서 7시 10분에 출발하여 행담도휴게소에 8시 24분 도착하여 휴식한 뒤 8시 40분에 출발하여 6구간 출발지인 충남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느티나무당산에 9시 10분에 도착하였다. 트레킹 준비를 마친 뒤 느티나무당산 맞은편 지방도 제649호선 서령로의 율목1리 버스정류소에서 9시 13분 동서트레일 6구간 탐방을 출발한다. 2주 전인 3월 19일 율목리 서낭제가 열리던 날 이곳에서 5구간을 서진하였다. 이번에는 같은 곳에서 출발하여 6구간 탐방을 동진하여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삼웅2리 마을회관에서 마치게 된다. 동서트레일 6구간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동서트레일 6구간은 율목리 느티나무 당산에서 출발한다.
제2부(황소고개-성당초등학교) : 황소고개는 은봉산과 구은봉산(큰산)의 안부(鞍部)이다. 황소고개는 두 산을 산행할 때 거쳐가는 고갯마루이다. 고갯마루 황소고개는 전망이 막혀 있어 조망지 역할은 못한다. 황소고개에서 잠시 쉰 뒤 구은봉산 등산로 출입구 북쪽의 황소고개-원당지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이 임도는 벚나무를 가로수로 조성하여 벚나무 가로수길이다. 봄날 벚꽃이 흐드러질 때 이 길은 환상적 길이 될 것 같다. 당진에서는 대대적인 은봉산 벚꽃 축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임도 북쪽 자락에 있는 안국지와 그 아래 원당지 두 개의 저수지는 벚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데, 남쪽 바로 위에 있는 구은봉산은 보이지 않는다. 황소고개-원당지 임도는 삼길포항이 있는 삼길산 임도를 떠오르게 한다. 거리는 이곳이 비교가 되지 않게 짧고, 바다가 보이지 않지만 벚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된 벚나무 가로수길 분위기와 느낌은 서산시 대산읍 삼길산 임도와 닮아 있다. 임도 길가에 정미초등학교 4학년 연송이 학생이 쓴 시 '은봉산'이 적힌 게시판이 서 있다. "은봉산은/ 눈부신 햇살 아래서/ 피어나는 벚꽃나무들을 돌보고/ 슬프거나 외로운 날은/ 산새들의 짹짹 노랫소리로/ 속마음을 달래고// 밤이 되면 반짝반짝 별빛 아래서/ 산새와 나무들을/ 포근히 잠재우는 은봉산// 주룩주룩/ 쏴아아/ 비바람과/ 눈보라가 쳐도/ 희망을 품고/ 우뚝 버티며 서있는 은봉산" 이 시를 언제 어떻게 하여 게시하게 되었는지 적혀 있지 않다. 은봉산의 아름다운 모습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희망을 노래한 연송이 학생은 지금 몇 살이 되었을까?
임도를 내려가며 원당지 건너편의 안국사지를 내려보았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안국사지를 들를 수 있겠지만 느린 걸음 때문에 안국사지를 들르지 못할 것은 뻔하다. 예전에 탐방한 기억으로 안국사지를 내려보니 보아야 할 세 가지 것이 보인다. 석탑과 석조여래삼존입상, 배바위 매향비(매향암각)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오랜만에 이렇게라도 안국사지를 살핀 것을 행복으로 여겨야 할까?
원당지 제방으로 내려갔다. 원당지 제방 남단에 배수문과 배수로가 설치되어 배출된 물은 수당천으로 흘러 동쪽의 역천(驛川)에 합수되고, 역천은 북쪽으로 흘러 석문호에 갇혔다가 서해 바다로 유입된다. 제방길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북쪽에 봉화산, 남쪽에 은봉산이 확인된다. 처음에는 은봉산과 구은봉산인 줄 알았는데, 위치를 살피니 해발 206.9m 봉화산과 해발 301m 은봉산으로 확인되었다. 안국산이라고도 불리는 봉화산은 은봉산에 비하여 높이는 낮지만 전체 조망이 활짝 열려 있어 이곳에 봉화대를 설치하여 남쪽 서산의 주산 봉화와 북쪽 당진의 고산 봉수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원당지 북단에서 원당골1길을 따라 내려간다. 원당지 위쪽은 안국골이고, 그 아래쪽은 원당골이라 이르는 것 같다. 원당골1길은 수당천과 동행하여 수당리사무소를 지나고 국도 제32호선 서해로의 수당교 아래를 통과하여 수당2교까지 이어진다. 원당골이라고 하니 깊은 산골짜기에 들판은 없을 것처럼 상상된다. 그러나 원당골은 남쪽을 향하여 넓은 들을 형성하고 수당천이 그 들녘을 적시며 흘러간다. 서쪽에는 봉화산과 은봉산이 솟아 있고, 동쪽에는 갈바기산과 칼바위산이 형제처럼 다정하고, 그 왼쪽 뒤에는 이배산이 성큼 솟아 있다. 이 풍경은 역천(대방들천)까지 이어지는데 이번 탐방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슴을 열게 한다. 현재 원당골1길은 수당천과 더불어 재해복구 공사가 한창이어서 단정하지 않다. 공사 안내문을 읽어보면 위치나 지명이 헷갈리는데 좌세천 지명은 수당천을 이르는 것 같다.
수당리사무소 입구에 정재학(鄭在學, 1888~1949) 선생 추모비가 서 있다. 정재학 선생이 누구지? 정재학 선생은 화서학파의 존재(存齋) 유진하(兪鎭河, 1846~1906)의 제자로, 충남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에 서당을 세우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고 한다. 화서학파(華西學派)는 경기도 양평의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 선생이 형성한 학파(學派)로 한말 위정척사론과 의병항쟁이 사상적 기초이다. 이항로 선생은 호남의 기정진(奇正鎭), 영남의 이진상(李震相)과 더불어 19세기 주리철학(主理哲學)의 3대가(三大家) 가운데 한 분으로 존화양이(尊華攘夷)의 대의(大義)를 의리정신의 맥락으로 삼아, 주자와 송시열을 존숭했다고 한다. (다음백과 참조) 정재학 선생은 구한말 이항로 선생의 화서학파의 사상을 따르는 주자성리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도 제32호선 서해로의 수당교 아래를 통과해 수당리 일도교회 아래 수당2교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원당골1길과 작별한다. 그런데 수당리는 서산시에도 있으며, 한자도 壽堂里로 동일하다. 대방들천(역천) 동쪽 갈바기산과 칼바위산 남쪽 지역이 서산시 운산면 수당리 지역으로 서쪽의 운산면 안호리와 접해 있다. 수당2교 언저리는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와 대운산리,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지역이 서로 경계를 이루며 얽혀 있으며, 안호리 지역은 수당2교 아래쪽 남쪽과 북쪽에 걸쳐 있다.
수당2교에서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잔등벌천길을 따라 동쪽 갈바기산과 칼바위산을 향하여 내려간다. 잔등벌천길은 '잔등벌+천+길'이니 잔등벌 들판이 있고, 잔등벌을 흐르는 하천이 잔등벌천일 것이고, 잔등벌천 도로명이 잔등벌천길일 것이다. 그렇다면 수당천이 잔등벌천일 것이고, 수당천 남북의 들녘이 잔등벌일 것이다. 잔등벌천길을 따라 정면의 갈바기산과 칼바위산을 바라보면 역천(대방들천) 둑방으로 올라갔다. 대방들천도 '대방들+천'이니 대방들이 어디일까? 대방들은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역천과 검암천 사이에 펼쳐진 드넓은 들녘을 이른다. 그 대방들 옆을 흐르는 하천이 대방들천이며 역천을 이른다.
대방들천(역천) 둑방길을 따라 북진한다. 동쪽 갈바기산과 칼바위산 아래로 서해안고속도로 대방들천교가 대방들천(역천) 위를 지나고, 대방들천 동쪽, 칼바위산 남쪽은 서산시 운산면 수당리 지역, 대방들천 서쪽에는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와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에 걸쳐 잔등벌이 드넓게 펼쳐진다. 마치 당진시 정미면과 서산시 운산면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국사를 논하는 모습이다. 이 모습에 호응하여 서쪽의 봉화산과 은봉산, 구은봉산이 미소하며 응원을 보낸다.
대방들천 둑방길을 따라 서쪽의 정미면 대운산리 구울미 마을을 살피며, 역천(대방들천)의 대운산교 옛 다리를 건너 역천쉼터로 올라갔다. 걸어온 남쪽이 역천 물빛에 눈부시게 반짝인다. 역천(驛川역내) 하천명은 이 하천이 당진시 용연동 흥세역(興世驛) 옆으로 흐르기에 역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역천쉼터에는 쉼터정자와 체력단련장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앞쪽에 바윗돌들이 서 있다. 그 중의 빗돌을 가까이 다가가 살피니 자연석 앞면에 '還淳反本(환순반본)'이 흐릿하게 보인다. 이 사자성어는 '순박한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인데 뒷면에 경암이 풀이하여 적은 석판이 붙어 있다. "純朴하고 溫厚한 人心으로 돌아가 祖先과 父母兄弟 이웃과 자연의 思恵에 報答한다 - 景菴" 아, 얼마나 마음에 드는가? 순박하고 온후한 인심, 조상과 부모형제 그리고 이웃과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삶, 가슴을 콕 찔러 아프다.
역천의 대운산교 동단에서 정미로를 따라간다. 동서트레일 정상 코스는 역천 둑방길로 나가 대방(大防)들을 돌아 검암천을 건너서 검암천 둑방길을 따라 검암천의 대운산교 동단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정미로를 따라 서해안고속도로 검암천교 아래를 통과하여 검암천의 대운산교를 건너 동단 북쪽 출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이정목의 방향 표시 날개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검암천의 대운산교 동단에서 정미로를 따라 정면의 이배산을 바라보며 성당삼거리에 이르렀다. 성당이라고 하여 천주교회와 관련된 지명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성당사(聖堂寺)라는 절이 이곳에 있었기에 성당(聖堂)마을이라 불렸는데, 후에 한자가 聖堂에서 盛堂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성당초등학교는 예전처럼 성당(聖堂)초등학교라 쓰고 있다. 성당삼거리에서 이배산은 동쪽에 가까이 있으며, 그 서쪽 당진시 사기소동에 성당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역천로는 사기소동을 남북으로 가르며 지난다. 역천로 보도를 따라 성당초등학교 앞쪽으로 가니 정문 옆에 송림공원이 있다. 소나무들이 그윽하게 솟은 아름다운 소나무숲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사계절의 푸르름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소나무숲을 가진 성당마을은 행복해 보였다.
황소고개에서 성당초등학교까지 걸어온 지역을 되뇌인다.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당진시 사기소동, 약 7km를 걸었고, 1시간 50분이 걸렸다.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출발지에서부터는 13km, 3시간 40분이 걸렸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8.9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13분
황소고개-원당지 2.3km 거리의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오른쪽 구은봉산 등산로는 구은봉산 800m, 원당지 2.3km 거리라고 한다.
당진시 정미면 덕삼리 덕석골에서 장사꾼들이 황소에게 덕석을 입혀 이 고개를 넘어 수당리로 왔기에 황소고개라 불린다고 한다.
은봉산은 황소고개에서 500m 거리에 있으며, 그 뒤 북쪽에 해발 206.9m 봉화산이 있다.
구은봉산 능선 북쪽의 벚나무 가로수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위쪽에 안국지(安國池)와 그 아래쪽에 원당지(元堂池)가 보이며, 안국지 왼쪽에 안국사지(安國寺址)가 있다.
황소고개-원당지 임도가 오른쪽으로 굽이돌고 앞에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정미초등학교 4학년 연송이 학생이 쓴 시 '은봉산'을 적은 게시판이 서 있다. 이 학생은 지금 몇 살이 되었을까?
중앙 뒤의 황소고개에서 벚나무를 가로수로 조성한 황소고개-원당지 임도를 따라 시 게시판을 지나왔다.
오른쪽 구은봉산 능선 북쪽 자락의 황소고개-원당지 임도가 오른쪽으로 굽이돌아 내려간다.
안국지 왼쪽 위에 있는 안국사지의 석탑과 석조여래삼존입상, 배바위 매향비(매향암각), 그 뒤에 새로 생겨난 안국사가 보인다.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의 안국사 터는 고려 왕조를 수호하던 사찰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몇 점의 유물들과 축대, 장대석, 주춧돌, 기와 조각, 절터만 남아 있을 뿐, 옛날의 번성했던 영화를 찾아볼 길 없다. 보물인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본존 높이가 4.91m이며, 머리 위에 직사각형의 갓을 썼고, 몸체는 사각기둥형이다. 보물인 당진 안국사지 석탑은 높이 3m로 안국사 창건 당시 조성한 고려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충청남도 기념물인 당진안국사지매향암각(唐津安國寺地埋香岩刻)에는 높이 2.93m, 길이 13.35m, 너비 2.5m의 커다란 자연석에 새겨진 암각문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구은봉산 능선의 산비탈에 과수(果樹)밭 농장을 조성하였다.
산비탈 과수(果樹) 농장이 대단히 드넓게 펼쳐져 있다.
구은봉 능선 산비탈에 조성된 과수농장 아래의 황소고개-원당지 임도를 따라 안국골 입구로 내려간다.
황소고개-원당지 임도는 안국골 입구를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중앙에 봉화대가 복원되어 있는 해발 206.9m 봉화산이 솟아 있고, 그 아래 안국골, 그 오른쪽 뒤에 안국사지가 있다.
충남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인 안국산 봉수지(安國山烽燧址)는 조선시대 충청도 해미현의 봉수가 있던 곳이다. 안국산 봉수는 당진현의 고산 봉수(高山烽燧)로 이어지고, 면천군의 창택 봉수(倉澤烽燧)를 거쳐 경기도 양성으로 넘어갔다. 조선시대 통신의 중요한 요충지가 현재 당진시 정미면의 안국산 봉수였다. 충남 당진시에서는 터만 남아 있던 곳에 1999년 12월 18일 봉화대를 만들었다. 안국산 봉수는 서쪽으로 서산군 북산에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당진현 고산 봉수에 연결된다. 고산 봉수는 당진시 고대면 장항리 고산봉에 있었다. 고산 봉수는 다시 북쪽으로 창택산 봉수에 연결된다. 창택산 봉수는 면천군의 봉수인데, 현재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에 있다. 이와 같이 당진시에는 안국산 봉수, 고산 봉수, 창택산 봉수 등 세 곳에 봉수 터가 있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안국골 입구에서 황소고개-원당지 임도의 나즈막한 언덕길을 올라간다.
왼쪽에 원당지(元堂池)가 보인다. 임도를 따라 원당지 제방으로 내려간다.
원당지 제방 남단에 설치된 배수문을 통과한 물은 수당천으로 흘러간다. 아래에 은봉산주차장과 공중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왼쪽에 원당지가 있고 원당지 제방길을 따라 원당지 제방 북단으로 나간다.
원당지가 아담하게 예쁘다. 왼쪽 뒤의 해발 301m 은봉산과 오른쪽 뒤의 해발 206.9m 봉화산이 이어져 있다.
안국산 봉수지에서는 1919년 4월 8일, 독립 만세의 봉화 시위가 있었다. 정미면 수당리에 거주하던 정원환(鄭元煥)이 300여 명의 주민을 이끌고 안국산에 올라가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한 것이다. 이에 일본 경관 4명과 보병 2명이 출동하여 주민 한 명을 사살했다고 한다. 시위대를 이끌었던 정원환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인사불성으로 석방되었다가 후유증으로 결국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봉수는 조선 시대의 통신망으로 이용되었지만, 국난 극복을 위한 항쟁지로도 활용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원당지 제방 북단의 길가에 이정목들과 은봉산 등산로 안내도 등이 설치되어 있다.
왼쪽에 봉화산솔바람길 이정목, 그 오른쪽에 내포불교순례길 7&8코스와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황소고개 2.3km, 안국사지 0.6km, 수당리마을회관 1.45km, 삼웅2리마을회관 10.7km 지점이다.
봉화산 솔바람길은 은봉산에 오르지 않고 현위치-안국사지-봉화산-사관정-수당리마을회관-현위치로 원점회귀 둘레길이다.
원당지-구은봉산-황소고개-은봉산-봉화산-원당지 5.1km의 이 코스는, "안국사지를 감싸고 있는 은봉산 봉우리를 한 바퀴 돌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천수만과 아산만, 내포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봉화대에서 볼 수 있는 해넘이는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안내판)
은봉산 등산로(5.2km, 2시간 40분)는 내포불교순례길 7-1코스와 동일해 보인다. 구은봉산은 큰산이라고 불리는 듯.
원당지 제방 남단에 배수문과 배수로가 보이며, 오른쪽 뒤에 은봉산이 솟아 있다.
원당지 제방 북단의 모습을 뒤돌아보았다. 안국사지는 원당골1길을 따라 600m 거리에 있다.
원당골1길에서 원당지 제방 남단의 배수문과 배수로를 다시 바라보았다. 물은 수당천으로 흘러가 역천(驛川)에 합류한다.
원당골1길을 따라 은봉산주차장 출입구를 지난다. 은봉산주차장에 공중화장실과 전기차충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원당골1길을 따라 은봉산주차장 출입구를 지나왔다. 중앙에 원당지 제방, 그 뒤쪽 중앙에 봉화산이 솟아 있다.
수당천 남쪽 밭에서 나무 한 그루가 초록빛 새 잎싹을 무성하게 튀우고 있다. 수종이 무엇일까?
당진시 정미면(貞美面) 수당리(壽堂里) 원당골 들녘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 원당골1길을 따라 수당천과 동행한다.
당진시 면천면 농어촌로 203호선(사죽선) 지선에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여 농어촌도로를 복구하는 공사라고 한다. 면천면 죽동리-사기소리를 연결하는 사죽선의 지선은 원당골1길인 듯, 정미면 수당리 321-1번지 일원이라고 한다.
전신주 오른쪽 뒤에 은봉산이 살짝 머리를 보이고, 이보다 94m가 낮은 봉화산이 오른쪽 뒤에 보인다. 봉수대를 세울 만하다.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원당골은 이 지역 일대를 이르는 것 같다. 전원주택인 듯한 단정한 민가가 두 채 형제처럼 자리한다.
역천 2.5km, 안국사지 1.56km 지점에 원효깨달음길 이정목이 서 있다. 내포문화숲길은 내포불교순례길, 내포천주교순례길, 백제부흥군길, 내포역사인물길, 내포동학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내포불교순례길 7코스 원효깨달음길은 영탑사입구-안국사지 구간이다.
영탑사입구에서 시작한 길은 영탑사 경내를 지나가는데 천년고찰 영탑사의 불교 문화유적인 “금동삼존불(보물409)”과 “7층석탑 (충남문화재자료216)”을 만날 수 있다. 원효깨달음길 7코스는 승전목, 역천과 검안천변, 수당리 마을길을 거쳐 코스 종점인 안국사지에 도착하게 된다. 안국사지는 당진지역 대부분의 사찰들이 수덕사 말사인 것과는 달리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656년 신라시대에 창건된 안국사지는 고려시대 불상인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100호)”이 있고, “안국사지석탑 (보물101호)”이 있으며, “ 안국사지 매향암각”이 불상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여행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안식처와도 같은 곳이라 하겠다. - 내포문화숲길
원당골 들녘 남쪽에 수당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원당골 뒤쪽 안국골 오른쪽 뒤에 봉화산, 왼쪽 뒤에 은봉산이 머리를 보인다.
수해피해를 입은 원당골1길 복구 공사가 진행 중이며, 오른쪽 뒤에 갈바기산과 칼바위산, 중앙 맨 뒤에 이배산이 가늠된다.
원당골1길은 사거리에서 끝나고 수당리사무소 앞에서 수당천로가 곧바로 동쪽으로 이어가며, 서산시 운산면과 당진시 정미면을 잇는 운정로가 남북으로 이어진다.
운정로가 수당리사무소 앞을 지나 왼쪽 정미면 수당리 아랫마을로 이어간다.
운정로가 수당리사무소 앞에서 수당천의 수당교를 건너 정미면 수당리 뒷절의골로 이어간다.
수당리사무소 출입구 오른쪽 수당리(壽堂里) 표석, 왼쪽에 방재(方齋) 정재학(鄭在學) 선생 추모비가 서 있다.
정재학(鄭在學, 1888~1949)은 화서학파 존재(存齋) 유진하(兪鎭河, 1846~1906)의 제자로, 출신지인 충남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에 서당을 세우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정재학의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도명(道明), 호는 방재(方齋)이다. 아버지는 정문환(鄭文煥), 어머니는 무안 박씨(務安朴氏)이다. 정재학은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의 안국산 아래 원당 마을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 때인 1902년에 맏형 정재화(鄭在華, 1882~1913)와 함께 유진하를 찾아가 수학하였다. 그 후 1906년에는 춘천으로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을 찾아가 만났다. 1907년 유인석이 만주로 건너가는 길을 동행하다가 해서(海西)에서 돌아가라는 유인석의 권유에 따라 되돌아왔다. 귀향 이후 직암(直菴) 이철승(李喆承, 1879~1951) 등과 교유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문하생이 70여 명에 달했고, 문집으로는『방재집(方齋集)』이 있다. 묘소는 충남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원당동 봉화산 남쪽 기슭에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산자수명 (山紫水明)한 수당리(壽堂里)' 표석이 수당리사무소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
충남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는 참나무가 많아 숯을 굽는 마을이라 하여 숯골[炭洞]의 '숯' 음을 수(壽) 자로 대치하고, 자연 마을 이름 원당골(員堂-)의 당(堂) 자를 따서 수당리(壽堂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一道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동(壽洞)과 안국동(安國洞)의 일부를 병합해 수동과 안국동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수국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정미면이 서산군에서 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1971년 원당골에서 다시 한 글자를 따서 수당리라 고쳤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에서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로 개편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산시 정미면 수당리사무소 건물에 수당리마을회관과 수당리경로당 등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은 원래 해미군 지역으로서 염솔부곡의 이름을 따서 염솔면이라 하여 22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일도면의 17개 동리와 서면의 경치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미현의 옛 명칭인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에서 정미(貞美) 두글자를 따서 정미면(貞美面)이라 하여 서산군에 편입되어, 천의리, 매방리, 우산리, 하성리, 봉성리, 도산리, 대조리, 산성리, 덕삼리, 승산리, 수국리, 여미리, 사관리, 덕마리, 신시리, 모평리, 봉생리, 대운산리의 18개 리로 개편하여 관할하였다. 그후 1957년 11월 6일 당진군에 편입되었고, 1973년 여미리를 다시 서산시 운산면에 떼어주어 17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 정미면행정복지센터
수당리사무소 앞에서 수당천로를 따라 수당리버스정류소를 지나간다.
수당교 북단 동쪽의 수당리공공알림막설치대에 '제13회 정미면민의 날 행사'와 '논·밭두렁 태우기 금지' 알림막이 걸려 있다.
수당천로 북쪽 넓은 수당리 들녘에서 농군들이 그늘막 안에서 점심을 나누고 있다.
수당천의 수당교 맞은편 수당리사무소 앞에서 수당천로를 따라왔다. 왼쪽 뒤에 은봉산, 중앙 오른쪽 뒤에 봉화산이 솟아 있다.
국도 제32호선 서해로가 당진시 정미면 수당교를 지난다. 동서트레일은 수당천로를 따라 서해로의 수당교 아래를 통과한다. 뒤쪽에 해발 107.6m 칼바위산과 그 오른쪽에 갈바기산, 그 왼쪽 맨 뒤에 이배산이 보인다.
서해로의 수당교 아래를 통과하여 수당천로를 따라간다. 앞쪽에 칼바위산와 갈바기산, 왼쪽 맨 뒤에 이배산이 가늠된다.
공사 안내문에 재해 복구사업 위치를 '당진시 정미면, 운산면 좌세천 일원'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운산면과 좌세천은 서산시에 있다. 이 안내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진시 정미면과 서산시 운산면 좌세천(수당천) 일원의 재해 복구사업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수당천로를 따라 국도 제32호선 서해로의 수당교 아래를 통과하여 공사 안내판을 지나왔다.
수당천 건너편 정미면 수당리 지역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일도교회가 자리한다.
수당2교가 수당천 위를 가로지르며 수당2교를 경계하여 그 아래쪽과 오른쪽 지역은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지역이다.
수당천이 정미면 수당리 지역을 관통하여 지방도 제32호선 서해로의 수당교 아래를 흘러내린다. 중앙 뒤에 봉화산이 보인다.
수당천의 수당2교 건너편 남쪽은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지역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는 기러기 떼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하여 안호리(雁好里)라 하였다가 안호리(安好里)가 되었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을 앞에 큰 방죽이 있어 이로 인하여 안수리(安藪里)라고 불리던 적도 있었고, 겨울이 되면 기러기 떼들이 방죽에 날아와 겨울을 지내다가 돌아가는 철새 도래지여서 안호리(雁好里)라고 했다는 주장이 있다. 안호리는 조선시대 해미현 이도면의 지역으로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수리(藪里)가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안호리와 수리가 다시 통합되어 서산군 운산면 안호리로 개편되었다. 1989년 서산읍이 시로 승격할 때 서산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서산군이 서산시와 통합되어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가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수당2교 북단 입구 동쪽의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이정목에, 동서트레일 방향 날개(삼웅2리마을회관 8.9km, 원당지 1.8km), 내포불교순례길 7코스 방향 날개(영탑사 11.14km, 안국사지 2.46km), 8코스 방향 날개(영랑사 12.45km, 7코스와 공통)들이 걸려 있다.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잔등벌천길을 따라간다. 수당천은 좌세천, 또는 잔등벌천이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잔등벌천길을 따라 서해랑길 표지가 붙어 있는 전신주를 지난다. 이제 동서트레일과 서해랑길, 내포문화숲길이 동행한다.
잔등벌천길 건너편 남쪽은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잔등벌일 것이며, 그래서 이 소하천을 잔등벌천이라 부르는 것이라 판단한다.
지아배미라고도 부르는 비교적 넓은 안호리들이 존재하며, 동쪽으로 대방들천이 흐른다. 안호리는 서산시 운산면의 북단에 위치하며 충남 당진군 정미면과 인접한다. 자연 마을로는 골말[谷村]·뒷겸말[독경말, 독경촌]·벌말[坪村]·잔등벌 등이 있다. 골말은 안호리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며, 뒷겸말은 안호리 북쪽 평야에 있는 마을이다. 과거 독을 만드는 점이 있었기 때문에 독경촌이라고도 불린다. 운산면의 다른 동리와는 달리 안호리는 경지 정리가 완비된 평야에 입지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수당천(좌세천, 잔등벌천)의 수당2교 북단에서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지역으로 넘어와 잔등벌천길을 따라왔다. 중앙 뒤에 봉화산, 왼쪽 뒤에 은봉산과 구은봉산이 보인다. 오른쪽은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잔등벌, 그 뒤쪽 마을은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가지맥이마을인 듯.
가지맥이는 수당리 봉화산으로부터 흘러내린 지산부리 벌판에 띠풀이 무성하며 토질이 척박하여 개척 입주를 꺼려 하던 곳이었으나 점차 개간 입주하여 이룬 촌락이라 하여 '가지맥이'라 부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잔등벌천길을 따라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들녘을 지난다. 중앙에 107.6m 칼바위산, 그 왼쪽에 갈바기산이 있다.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잔등벌이 펼쳐지고, 왼쪽에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가지맥이마을, 중앙 뒤에 대운산리 구울미마을이 보인다.
왼쪽 이정목에 동서트레일 방향 날개 원당지 2.6km, 내포문화숲길 방향 날개 안국사지 3.18km가 붙어 있다.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지역의 잔등벌천길이 잔등벌천을 따라 이어지며, 맨 뒤 중앙의 봉화산, 왼쪽 뒤의 은봉산과 구은봉산(왼쪽)이 보인다. 오른쪽 들녘은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잔등벌, 그 뒤쪽의 마을은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가지맥이 마을일 것이다.
대방들천이라고도 불리는 역천(驛川)이 북쪽으로 흘러가고, 오른쪽 갈바기산 아래 서해안고속도로 대방들천교가 지난다.
대방들천(역천)의 서쪽 둑방길인 잔등벌천길을 따라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에서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로 넘어간다.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 잔등벌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 뒤쪽에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가지맥이 마을이 자리한다. 중앙 뒤의 봉화산, 왼쪽 뒤의 은봉산과 구은봉산(왼쪽)이 이어져 있다. 맨 왼쪽의 잔등벌천(수당천)이 동쪽으로 흘러 대방들천으로 흘러내린다.
대방들천(역천)이 서해안고속도로의 대방들천교 아래를 지나 흘러오고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12:12~12:32
잔등벌천길을 따라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에서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로 넘어간다. 왼쪽 뒤에 정미로의 대운산교가 보인다.
정미로의 대운산교가 역천(驛川, 대방들천)을 가로지르고, 오른쪽 뒤에 해발 247.2m 이배산이 보인다.
정미로의 대운산교 옆에 놓여 있는 옛 대운산교를 통해 역천(驛川, 대방들천)을 건넌다.
대방들천(역천)이 흘러오고, 대방들천 둑방길을 따라왔다. 중앙 뒤에 대운산리 가지맥이 마을, 맨 오른쪽에 구울미마을이 자리한다. 구울미는 본래 구운미였는데 소리가 변화되어 표기가 바뀐 것 같다. 오른쪽 뒤에 은봉산과 구은봉산이 보인다.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구운미는 지형이 운중반월형(雲中半月形)이라 하여 산세나 지형이 비길 데 없이 좋은 곳이라 하여 '구운미'라 칭하였다. 옛날에는 300여 호의 육씨 집단촌으로 이웃집에 갈 때 우산 없이도 비를 맞지 않을 만큼 밀집촌이었으나 지금은 30호의 소박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중앙에 역천쉼터와 체력단련장이 조성되어 있고, 왼쪽에 역천 안내판, 오른쪽에 이정목이 서 있다.
역천(驛川, 역내) : 역천은 유로연장 29.13km, 유역면적 176.06㎢의 지방하천으로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소재의 가야산 석문봉(653m)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흘러 운산면의 중심부를 지나고, 당진시 당진읍과 2개 면(고대면, 정미면) 평야지대를 거쳐 퇴적평야를 만들고, 서해에 유입되는 하천이다. 석문방조제에 막혀 하류는 석문호수가 되었다. 조선시대 시흥도 산하 7개 속역 중 하나인 당진시 용연동에 있던 흥세역(興世驛) 옆으로 하천이 흐르기에 역천이라 불렀다. (역천은 역내라고도 불린다.)
삼웅2리마을회관 7.2km, 원당지 3.5km 지점, 오른쪽 뒤에 갈바기산과 칼바위산이 자리하고, 중앙에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난다.
오른쪽에 체력단련장, 앞에 표석, 뒤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대운산교 옆 역천쉼터에 還淳反本(환순반본)碑가 서 있다. 이 사자성어는 '순박한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환순반본비 뒷면에 '순박한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경암이 이렇게 풀이해 놓았다. "純朴하고 溫厚한 人心으로 돌아가 祖先과 父母兄弟 이웃과 자연의 思恵에 報答한다 - 景菴"
대운산교가 역천을 가로지르고 정미로가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지역을 관통하며, 건너편에 구울미마을이 자리한다.
정미로가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대운산교를 건너 구울미마을을 통과하여 정미면 사관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충남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는 대방(大防)들의 대(大) 자, 구운미(九雲美)의 운(雲) 자, 가지맥(枝山脈)의 산(山) 자를 따서 대운산리(大雲山里)라 하였다. 조선 시대 덕수 이씨(德水李氏) 육송공판서 이선부가 구운미가 운중 반월형(雲中半月形)으로 좋은 지대라 하여 정착하려 했다. 그러나 기존 세력인 육씨 300여 호가 그 세력을 구축하고 있어 정면으로 도전하지 못하고, 밀입하여 명당에 매장하는 데 성공하고 초당터란 곳에 입주하여 그 세력을 펴기 시작했다. 육씨는 이씨의 권력 행사에 비위가 맞지 않는다 하여 점차 이전하면서 이씨의 세력권이 되어 구운미, 대방, 가지맥이라 이름하였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일도면 운산리, 대평리, 하탄리를 병합해 대운산리라고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정미면이 서산군에서 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군 정미면 대운산리에서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로 개편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대방들이 북쪽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동서트레일 정코스는 왼쪽 둑방길을 따라 올라가 검암천을 건너 대방들을 돌아 오른쪽으로 올라오는 것 같다.
정미로를 따라 앞에 보이는 서해안고속도로 검안천교 아래를 통과한다. 중앙 뒤에 해발 247.2m 이배산이 솟아 있다.
정미면 대운산리 대방들이 드넓다. 중앙 송전탑 뒤에 정미면 덕마리에 소재한 신성대학교가 보인다.
충남 당진시 정미면 덕마리는 덕실(德實)에서 덕(德) 자와 말목에 해당되는 부락이란 뜻의 ‘마항(馬項)’에서 마(馬) 자를 따서 덕마리(德馬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덕곡리와 마항리 일부를 병합해 덕마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정미면이 서산군에서 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군 정미면에서 당진시 정미면 덕마리로 개편되었다. 신성대학교는 1995년 개교하여, 미용예술 계열, 치위생과, 제철산업과, 간호학과 등 10개 주요 학과를 선정하여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평가,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신성 대학교로 인해 정미면은 농업 소득 외에 숙박, 원룸, 상가 소득을 얻고 있으며, 토지 지가도 상승하는 영향을 받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검암천을 가로지르는 정미로의 대운산교를 건너 당진시 사기소동으로 넘어간다. 중앙 뒤에 이배산이 우뚝하다.
삼웅2리마을회관 6.0km, 원당지 4.7km 지점, 검암천의 대운산교 동단 북쪽 출입구에 내포불교순례길&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이정목 날개 방향을 보면 동서트레일은 내포불교순례길과 동행하여 대방들-검암천-대운산교를 통과하게 되어 있다.
정미로를 따라 서해안고속도로의 검안천교 아래를 통과하여 정미로의 검암천 대운산교를 건넜다. 이것은 단축 코스이고, 정상 코스는 대방들을 돌아 검암천을 건너 오른쪽 둑방길로 나오는 길이다.
당진시 사기소동 지역의 정미로를 따라 성당(盛堂)삼거리로 이어간다. 중앙 뒤에 이배산이 듬직하다.
정미로는 성당(盛堂)삼거리에서 끝나고 역천로가 사기소동 성당삼거리를 남북으로 지난다.
성당슈퍼 옆에 성당삼거리 이정목이 서 있다. 성담이 아니라 성당(盛堂)이다. 원당지 4.9km, 삼웅2리마을회관 5.8km 지점이다.
당진시 사기소동 성당(盛堂)삼거리는 오른쪽 정미로가 위쪽 역천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당진시 사기소동 성당(盛堂)삼거리에서 역천로 보도를 따라 성당(聖堂)초등학교 방향으로 이어간다.
충남 당진시 사기소동(沙器所洞)은 당진 중심지에서 남서쪽으로 6㎞ 지점의 역천 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쪽으로 이배산에 맞닿아 있다. 운산~서산 방향으로 통하던 옛 국도 32호선이 지나고 당진~영덕 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기소동은 예전에 사기(沙器)를 굽던 사기소(沙器所)가 있어서 사구실, 사기소리(沙器所里)라고 하였다. 사기소동은 원래 당진군 남면(南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면 동산리(東山里), 죽활리(竹活里), 성당리(盛堂里)와 도동(道洞) 및 해미군 일도면 대운산리(大雲山里)의 각 일부를 병합해 그대로 사기소리라 하여 당진군 이배면에 편입되었다. 이배면은 1928년 당진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63년 당진읍으로 승격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사기소동으로 개편되었다. 당진시로 승격되면서 사기소리가 법정동명인 사기소동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행정동인 당진 2동에 속하게 되었다. 사기소동은 동쪽에는 당진의 명산인 이배산을 중심으로 산 능선이 남북으로 뻗어 있고, 서쪽에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역천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성당슈퍼 옆에 사기소2동 버스정류소와 이정목이 서 있고 정미로가 동쪽의 역천로와 만난다. 성당(盛堂)은 옛 당진군 남면 성당리 지역으로, 전에 성당사(聖堂寺)가 있었던 마을 이름인데, 그 뒤에 한자가 바뀐 것이라고 한다.
역천로 보도를 따라가며 그동안 멀리서 보아왔던 이배산을 가까이서 바로본다. 오른쪽에 성당(聖堂)초등학교가 있다.
이배산(螭背山)은 당진시 당진 2동[옛 당진읍 사기소리, 구룡리]과 면천면 사기소리 경계에 있는 해발 228m의 당진동의 진산으로 이배산(利背山), 용지봉, 이무기산, 삐비산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에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치게 되면 고을 현감이 이배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를 지낼 때 이배산에서 돼지머리를 놓고 기우제를 지낸 후 그 돼지머리를 굴려서 밑에 있는 용못으로 떨어지게 하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용못은 용연(龍淵)을 말하는데 당진동 용연 마을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메워져서 볼 수 없다. ‘이배(螭背)’의 명칭에서 이(螭) 자는 뿔이 없는 용, 즉 규용인 이무기를 의미한다. 이배산은, 산등어리가 터져 이무기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 주민들은 ‘이무기산, 용지봉’이라 부른다. 동네 사람들은 이배산을 또 ‘삐비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억새풀이 유난히 많아서 유래했다. 옛 당진군청의 소재지인 당진동의 진산으로 유명하다. 잡목이 우거지고 소나무가 우점종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성당(聖堂)초등학교가 이배산 서쪽에 자리한다.
충남 당진시 사기소동에 있는 성당(聖堂)초등학교는 1941년 2월 1일 일제 강점기 시대에 당진현내 국교 부설 성당 간이 학교로 시작하였다. 1943년 3월 31일 당진현내 국교 부설 성당 분교장으로 개칭 인가, 1949년 9월 30일 성당국민학교로 승격 인가되어 본격적인 학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1996년에 성당초등학교로 개칭되었다. 교화 : 철쭉, 교목: 소나무, 교조 : 까치, 교가 : 김진화 작사·작곡/ 하늘 높이 솟아오른 이배산 기슭/ 우리들의 배움터 평화의 요람/ 우뚝 솟은 이 강산의 정기를 받아/ 굳세고 아름다움 배우며 산다/ 억만년 살아나갈 우리 고장을/ 길이길이 빛내자 성당 어린이.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성당(聖堂)초등학교 정문 옆에 그윽한 소나무숲 송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소나무숲은 당진에서 유일한 마을 비보숲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