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18-25
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오늘 2장 18절부터 25절은 노예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해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18절은 사환은 그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부당하게 받는 고난’으로 연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예제도는 사람을 소유물로 여기는 창조질서에 반하는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노예가 그 주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는데, 그 이유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18)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8a)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당시에 노예제도는 보편적인 제도 였습니다. 1세기에 로마 제국에는 6천만 명의 노예가 있었던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노예는 집안의 종이나 육체노동자뿐 아니라 의사, 교사와 같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노예는 세습되거나 돈으로 거래되며 주인의 물건 중 하나로 취급됩니다. 초기의 로마 법에 “노예는 아무런 권리가 없고 소지품일 뿐이며, 사실상 주인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노예는 물건 중 하나처럼 취급되었는데, 당시에 가난과 빈곤을 대처하는 거의 유일한 제도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과 가족을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지경에 처했을 때, 마지막 경제적 파산으로 자기를 노예로 팔았습니다. 고대에 노예제도는 이렇게 사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지금 또한 창조질서와 맞지 않지만 사회의 일부를 이루는 제도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노예제도처럼 사람을 돈으로 사고팔지는 않지만,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돈으로 사고팔며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씁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회 병리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돈으로 사고파는 것은 사람을 물질에 속박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18절에서 사환은 집에서 함께 지내는 ‘가속’ 혹은 ‘하인’을 가리킵니다. 일반 노예보다는 가족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종입니다. 주인은 소유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종들은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주인은 노예를 통제하는 권한이 있었고, 그 권한으로 종을 학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종은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18절 후반부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18b)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그 이유는 노예제도를 지지하거나 사회적 안정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나 순종을 말씀하실 때, 사랑과 순종을 받는 사람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인이 종을 학대하고 악하게 대하더라도 주인을 미워하거나 보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해를 비추고 비를 내리듯이 세상에서 의인이나 악인을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선을 베푸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마5:44). 또한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시며,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셨습니다(마5:44-47). 17절에서 ‘모든 이들을 존경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말씀과, 18절의 ‘사환들아 주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이 가르침의 연장선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추상적인 감상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실천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는 부당하고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하는 것으로 적용됩니다. 맹목적적이고 기계적인 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극악한 범죄자라도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입니다. 부조리한 노예제도 속에서 부당하고 포학한 주인도,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다른 사람의 인격을 훼손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있어도,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는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십계명의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순히 육체적 생명을 넘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명령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인격을 함부러 말하고 해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악한 사람이라도 순종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19-21) 부당한 고난
(19~20)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을 참고 순종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며, 그것을 눈여겨 보십니다. 19절에서 ‘부당하게 고난을 받는 것’은 사환들이 까다로운 주인에게 부당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먼저, 부당하게 받는 고난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잊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작동하지 않고 하나님도 없어지는 자신만의 임계치가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그의 살아계심과 그의 다스림을 인식하고 그 앞에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노예제도라는 창조질서에 반하는 제도 속에서, 까다로운 주인으로부터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다스림을 잊지 않고, 참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답다’고 번역된 원어는 ‘카리스’인데, 은혜를 뜻하는 단어로, 문맥에 따라 ‘은혜를 입다’, 인정 혹은 칭찬을 받을 만하다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20절에서도 동일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부당한 고난을 참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이 주어지는 것으로 연결합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은 단순한 삶에서의 곤란과 어려움이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당하는 곤란과 어려움이 다 칭찬을 받는 고난은 아닙니다. ‘죄가 있어서 매를 맞는 것’은 칭찬을 받는 고난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인한 고난은 칭찬을 받는다고 합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앞의 문맥에서 볼 때, 원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하며 참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사랑할만한지, 용서할만한지, 순종할만한지, 참아줄 만한지에 따라 행동합니다. 세상에서는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을 용서하거나 순종할만하지 않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겠느냐‘.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노예제도처럼 사람을 사고팔며 소유하지는 않지만, 사람 자체보다 사람의 쓸모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세상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부르신 목적 중 하나는, 어떤 사람이든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서로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목적 중 하나는, 부당한 고난을 참음으로 세상 속에서 참 자유를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어야 하지만, 참 자유는 노예제도 속에서도 사람을 인격으로 대하며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종을 인격으로 대하는 것을 넘어, 악한 주인 또한 인격으로 존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본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불순종하고 거역한 우리로 인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불순종했고, 아담의 후손인 우리도 같이 하나님께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주인이 부당하더라도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부당한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모함했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은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고난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우리를 위해 그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믿는 사람을 일컬어, 신자 성도 또 제자라고 합니다. 제자라고 하는 것은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쫓아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 또한 제자로 부르심 받았기에, 부당한 고난을 참을 수 있습니다.
(22-25)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오게 하시다
(22-23)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우리의 본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죄가 없으십니다. 이사야 53장 9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그는 그 부당한 사람들에게 맞대어 보복하거나 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바다와 폭풍도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께서 자기를 모함해 죽이려는 자들에게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졌거나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가 고난을 받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고난으로도 구원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은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먼저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부당한 고난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당한 고난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9)”
(24~2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해 죽으심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했습니다. 즉, 우리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에게 보복하거나 죄에 대해 응징하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용서와 사랑으로 참을 수 있게 됐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다”는 말은 세상의 불의과 부조리에 낙심하고 때로는 정의감으로 정죄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에 당황해하며 왜 이런 고난이 세상 가운데 있는지, 불의와 부조리함에 실망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그 불의와 부조리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참을 이유와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셔서, 갈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면, 사람을 비인격화하는 세상의 부조리한 제도의 존재 기반이 약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많은 것들이 어그러지고 빗나갔지만, 여전히 저희를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여겨주심에 감사합니다.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로부터 치욕과 모함을 당하셨어도, 참으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임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세상 가운데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악에게 악으로 대하지 않고 선으로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사환은 주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묵상해 봅시다.
2. 세상에는 창조질서와 맞지 않는 부조리한 제도가 사회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우리는 이 부조리한 사회의 제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3. 우리가 세상에서 선을 행함으로 당하는 부당한 고난을 참을 수 있는 이유와 근원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4.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함으로 인해 받는 고난에서 자유하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작성: 조광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