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권력의 작동]
명제 11ㅡ권력을 사용해야 일을 이룬다. 그리고 일을 이루려면 권력을 갖춰야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먹이를 발견한 늑대 무리에서 알파가 신호를 보낸다. 이 순간 알파가 망설이면 먹이는 사라진다. 다른 포식자가 가져간다. 알파의 권력은 이 순간 사용되어야 한다. 결정이 늦어지면 권력이 있어도 일을 이룰 수 없다. 늑대 무리에서 우유부단한 알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구성원들은 안다. 결정하지 않는 권력자는 우리를 굶기는 권력자라는 것을.
문어는 완전히 혼자다. 무리도 없고 협력도 없다.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린다. 먹이를 발견하면 즉각 행동한다. 위협이 오면 즉각 반응한다. 생각만 하는 문어는 굶어 죽거나 잡아먹힌다. 권력은 사용될 때만 의미가 있다. 사용되지 않는 권력은 있으나 마나다. 그러나 문어가 다룰 수 있는 일의 크기는 자신의 몸집과 힘을 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를 아는 것, 그것이 문어의 생존 전략이다.
1. 뜻풀이
명제 10은 말했다. 권력은 획득보다 사용이 어렵다. 명제 11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루려는 일에 걸맞은 크기의 권력을 갖추어야 한다.
권력의 실패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결정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 이것은 가진 힘조차 쓰지 않는 실패다. 둘째는 더 근본적이다. 가진 힘보다 큰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방향이 옳아도, 결단이 빨라도, 그 일을 감당할 권력의 크기가 부족하면 일은 무너진다. 오히려 그 실패가 더 나쁜 권력을 불러들이는 빌미가 된다.
그러므로 권력자가 물어야 할 질문은 두 가지다. 나는 지금 결단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이 일에 걸맞은 권력을 갖추고 있는가. 전자가 빠지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후자가 빠지면 시도 자체가 재앙이 된다.
권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세 가지를 동시에 의미한다. 결단한다. 모든 정보가 갖춰지지 않아도 최선의 판단으로 결정한다. 일의 크기를 가늠한다. 이루려는 일이 지금 가진 위임과 결합의 크기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먼저 묻는다. 그리고 실행하고 책임진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은 환공에게 말했다. 군주가 결단하지 않으면 신하들이 결단한다. 신하들이 결단하면 권력이 군주의 손을 떠난다. 결단하지 않는 군주는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권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관중은 동시에 일의 크기를 가늠하는 데 더 신중했다. 환공이 무리한 전쟁을 원할 때 관중은 막았다. 지금 제나라의 군사력과 동맹의 결합도로는 그 전쟁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관중은 환공이 가진 힘의 크기를 항상 먼저 계산했다. 그 계산 위에서만 결단을 권했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ù)로 이것을 설명했다. 포르투나는 강물처럼 흐른다. 기회가 왔을 때 행동하지 않으면 기회는 지나간다. 비르투는 기회를 포착하여 실제로 행동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동시에 경고했다. 자신의 군대로 감당할 수 없는 정복은 화근이 된다. 용병이나 원군에 의존한 정복은 겉으로는 힘을 얻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위태롭다. 가진 힘의 진짜 크기를 모르는 군주가 가장 위험하다.
한비자는 군주의 두 가지 실패를 말했다. 하나는 신하에게 속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비자는 세(勢)를 강조하면서 한 가지를 더 경고했다. 세에 걸맞지 않은 일을 도모하는 것은 스스로 화를 부르는 것이다. 자리가 작은데 큰일을 벌이면 그 자리마저 잃는다.
3. 역사적 사례
항우 — 대장(大壯)괘의 경고
주역의 대장괘(大壯卦)는 경고한다. 힘이 넘칠 때 오히려 조심하라. 강한 힘이 절제 없이 사용되면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항우는 권력 사용에서 한 가지를 몰랐다. 힘이 있다고 모든 상황에서 힘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홍문의 연에서 유방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함양에서는 불을 지르고 학살했다. 힘을 써야 할 때 쓰지 않고 쓰지 말아야 할 때 썼다. 타이밍과 방법의 실패였다.
링컨 — 힘과 때가 만난 결단
링컨은 대통령이 된 뒤 가장 어려운 결정들과 마주했다. 노예해방선언은 단순한 도덕적 선언이 아니었다. 전쟁의 향방을 바꾸는 군사적·정치적 결단이었다. 링컨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너무 이르다. 남부의 반발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링컨은 북부의 군사적 우위가 쌓이고 여론이 무르익은 시점을 정확히 가늠했다.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선언을 공포했다. 결단이 빨라도 일렀다면 실패했을 것이고, 늦었다면 전쟁의 명분을 잃었을 것이다. 링컨의 탁월함은 결단의 의지와 그것을 뒷받침할 힘의 크기를 동시에 가늠한 데 있었다.
그라쿠스 형제 — 옳은 방향, 부족했던 권력
기원전 133년 로마에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호민관으로 선출됐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로마 공화정의 핵심 모순이었다. 귀족들이 공유지를 불법으로 점유하면서 자영농이 몰락하고 군대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결단했다. 토지개혁법을 추진했다. 방향은 옳았다.
▷ 그라쿠스 형제 Gracchi. 기원전 2세기 로마의 개혁가 형제. 형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기원전 163~133)와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기원전 154~121)는 토지개혁과 평민 보호를 위해 권력을 사용했으나 귀족들의 반발로 모두 살해됐다. 옳은 방향의 개혁이 그것을 감당할 권력 없이 추진되어 실패한 대표적 사례.
그러나 티베리우스에게는 그 개혁을 감당할 권력이 없었다. 호민관이라는 자리 하나, 평민들의 지지 하나가 그가 가진 힘의 전부였다. 원로원이라는 로마 공화정 최대의 기득권을 정면으로 건드리면서도, 그 기득권을 압도할 군사적·정치적 결합을 갖추지 못했다. 원로원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려 민회에서 직접 표결을 강행하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적이 생겼다. 티베리우스는 민회에서 귀족들의 폭력에 살해됐다. 10년 뒤 동생 가이우스도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
그라쿠스 형제의 비극은 결단이 부족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결단은 충분했다. 부족했던 것은 그 결단을 끝까지 지켜낼 권력의 크기였다. 로마 공화정의 뼈대를 건드리는 작업에는 그만한 무게의 힘이 필요했다. 공적으로 유익한 일을 이루고자 할 때 저항은 반드시 더 커진다. 기득권의 저항을 이겨낼 힘을 갖추지 못한 개혁은 개혁가 자신을 삼킨다. 비행기는 바람의 저항이 있어야 날 수 있지만, 그 저항을 이겨낼 만한 엔진과 날개가 먼저 있어야 한다.
국회 처리율 0% — 의석의 크기와 권력의 크기는 다르다
두 번의 촛불혁명은 권력 획득에 성공했다. 국민의 위임이 기존 권력자를 몰아냈다. 그러나 이후의 과제가 더 어려웠다.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이 과제들은 기득권 구조 전체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과, 그 구조 전체의 저항을 감당할 만큼 결합되고 신뢰받는 권력을 갖추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국민청원의 국회 처리율 0%라는 숫자는 의석의 크기와 실제 행사되는 권력의 크기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라 해도 일에 걸맞은 결합과 신뢰를 갖추지 못하면 그 의석수는 숫자에 머문다.
4. 종합정리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이루려는 일에 걸맞은 권력을 갖추어야 한다.
항우는 힘을 써야 할 때 쓰지 않고 쓰지 말아야 할 때 썼다. 그라쿠스 형제는 방향은 옳았지만 그 방향을 끝까지 지켜낼 힘을 갖추지 못했다. 그 부족함이 오히려 더 나쁜 권력을 불러들이는 빌미가 됐다. 링컨은 결단의 의지와 그것을 뒷받침할 힘의 크기를 동시에 가늠했다. 그래서 역사를 바꿨다.
큰일을 이루려는 자는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감당할 만큼 결합되어 있는가. 나는 이 일을 감당할 만큼 신뢰받고 있는가.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한 채 시작된 결단은, 아무리 방향이 옳아도 무너진다.
명제 11 — 권력을 사용해야 일을 이룬다. 그리고 일을 이루려면 권력을 갖춰야 한다. 결단하지 않는 알파는 무리를 굶기지만, 체급을 넘어서는 싸움에 나선 알파는 무리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 그라쿠스는 방향은 옳았으나 그 방향을 지켜낼 힘을 갖추지 못했다. 링컨은 결단과 힘의 크기를 함께 가늠했다. 사용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갖춤 없이는 사용이 재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