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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부님은 탐정》
제14화 ― 박물관에서 바뀐 초상화
은솔향토박물관 개관 30주년을 하루 앞둔 밤.
마지막 점검을 마친 관장 최은주 세실리아는 전시실의 불을 하나씩 껐다.
내일부터 시작될 특별전의 제목은 **《은솔시를 만든 사람들》**이었다.
전시실 중앙에는 은솔시 초대 시장 한경수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초상화 속 한경수는 짙은 감색 양복을 입고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른손에는 오래된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그의 뒤에 있는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최은주는 액자가 기울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이제 준비가 끝났네요.”
학예사 박소연이 말했다.
“내일 아침 조명만 다시 확인하면 됩니다.”
두 사람은 경비 장치를 작동시킨 뒤 박물관을 나섰다.
전시실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초상화 속 한경수의 손에서 지팡이가 사라져 있었다.
그의 손에는 처음 보는 은색 열쇠가 들려 있었다.
“누가 그림을 바꿨어요!”
최은주 관장의 목소리가 전시실에 울려 퍼졌다.
박물관 직원들이 초상화 앞으로 모였다.
초대 시장의 얼굴과 옷, 배경은 전날과 똑같았다. 하지만 오른손에 들린 물건만 분명히 달랐다.
“어제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어요.”
박소연 학예사가 말했다.
“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전날 촬영한 점검 사진에는 초대 시장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걸려 있는 초상화에서 그는 은색 열쇠를 들고 있었다.
액자와 유리에는 손상된 흔적이 없었다.
출입문도 밤새 잠겨 있었다.
최은주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그날 오전, 김맑음 프란치스코 신부는 박물관 개관 기념행사에 초대받아 현장을 찾았다.
은솔성당은 오래전부터 박물관에 본당 역사자료를 제공해왔다. 특별전에도 옛 성당 사진과 초대 주임 신부의 기록 일부가 전시될 예정이었다.
박물관 입구에서 기다리던 오미자 안나 사목회장이 신부님에게 다가왔다.
“신부님, 큰일 났어요.”
“무슨 일입니까?”
“초대 시장님이 밤사이에 지팡이를 버리고 열쇠를 들었대요.”
“그림 속 인물이 직접 물건을 바꿨다는 말씀입니까?”
“직원들 말로는 아무도 그림을 건드리지 않았대요.”
최병철 베드로 사무장이 말했다.
“그림이 스스로 변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오미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박물관에는 오래된 물건이 많잖아요. 그중에 조금 이상한 것이 있을 수도 있지요.”
“회장님께서는 박물관을 유령의 집으로 생각하십니까?”
“저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겁니다.”
그때 박복례 마리아가 김맑음 신부의 손에 작은 도시락 가방을 들려주었다.
“신부님, 점심입니다.”
“행사가 끝나면 성당으로 돌아가서 먹겠습니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사진관에서 저녁까지 계셨잖아요.”
“오늘은 사건을 해결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복례는 바뀐 초상화를 가리켰다.
“벌써 그림을 보고 계시잖아요.”
김맑음 신부는 자신도 모르게 초상화 앞으로 다가가 있었다.
이도현 형사는 직원들에게 전시실 출입을 제한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는 김맑음 신부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신부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이 형사님.”
이도현은 바뀐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신부님, 그림이 밤마다 변한다는 말씀을 정말 믿으십니까?”
“이 형사님, 그림이 변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그림으로 바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초상화가 여러 점 있다는 뜻입니까?”
“두 그림의 붓 자국이 다릅니다.”
김맑음 신부는 전날 촬영한 사진과 현재 그림을 비교했다.
지팡이가 그려진 초상화에는 양복 단추가 네 개였다. 은색 열쇠를 든 초상화에는 단추가 세 개였다.
창틀의 그림자도 조금 달랐다.
“같은 그림을 고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따로 그린 그림입니다.”
그때 카메라를 든 한서윤 세실리아 기자가 나타났다.
“초대 시장의 초상화가 밤사이에 변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도현이 물었다.
“이번에는 누가 제보했습니까?”
한서윤의 시선이 오미자에게 향했다.
오미자는 전시 안내문을 읽는 척했다.
“제가 박물관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만 말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그림이 밤마다 변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까?”
“첫날이니까 아직 밤마다는 아니라고 했어요.”
한서윤은 액자 뒤쪽을 촬영하다 희미한 글씨를 발견했다.
그림을 액자에서 조심스럽게 분리하자 캔버스 뒷면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66년 7월 24일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두 번째 기록―열쇠
최은주 관장은 박물관 소장품 기록을 확인했다.
“이상합니다. 초대 시장의 공식 초상화는 한 점뿐입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문재호라는 지역 화가입니다. 하지만 서명 외에는 남은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한서윤은 박물관 자료실에서 문재호에 관한 옛 신문기사를 찾았다.
문재호는 은솔시 출신의 무명 화가였다. 시장과 학교, 성당의 풍경을 주로 그렸지만 작품 대부분이 개인에게 흩어졌다.
그는 1966년 여름 초대 시장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그런데 당시 신문에 실린 초상화 사진은 현재 그림과 조금 달랐다.
신문 속 초대 시장은 지팡이도 열쇠도 들고 있지 않았다.
빈손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상화가 최소한 세 점입니다.”
한서윤이 말했다.
“그런데 박물관은 한 점만 있다고 기록했어요.”
경찰은 전시실과 보관실을 조사했다.
박물관 출입구의 경보장치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CCTV는 밤 두 시부터 약 3분 동안 끊겨 있었다.
시설 담당자가 설명했다.
“전시실의 온도와 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장치가 재시작될 때 화면이 잠시 꺼집니다.”
“매일 같은 시간입니까?”
“네. 새벽 두 시입니다.”
이도현이 말했다.
“그 시간을 아는 사람이 그림을 바꾼 것 같습니다.”
“직원 가운데 시스템 시간을 아는 분은 누구입니까?”
“관장님과 학예사, 시설 담당자, 야간 경비원입니다.”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낮에는 전시실과 자료실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중에는 70대 여성 윤미옥 마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매주 세 번씩 전시품을 닦고 관람객을 안내했다.
오미자가 말했다.
“미옥 자매님은 우리 성당 교우예요.”
“박물관 사정을 잘 아십니까?”
“어릴 때부터 은솔시에 사셨으니 옛날 일은 누구보다 잘 아실 거예요.”
그러나 윤미옥은 그날 박물관에 나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직원들은 전시실을 다시 정리한 뒤 은색 열쇠가 그려진 두 번째 초상화를 그대로 걸어두었다.
경찰은 밤새 전시실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초상화가 다시 바뀌어 있었다.
이번 그림에서 초대 시장은 은색 열쇠를 들고 있지 않았다.
그의 뒤에 있던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창문 밖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캔버스 뒤에는 또 다른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 번째 기록―열린 창문
최은주 관장이 말했다.
“경찰이 지키고 있었는데 어떻게 바꾼 거지요?”
전시실 안에는 경찰관이 있었지만, 새벽 두 시에 전등과 CCTV가 동시에 꺼졌다. 비상등이 들어오기까지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그림이 바뀐 것이었다.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도현이 말했다.
“미리 다른 그림을 가까운 곳에 숨겨두었을 겁니다.”
김맑음 신부는 초상화가 걸린 벽을 두드려보았다.
그림 뒤쪽에서 다른 부분과 조금 다른 소리가 났다.
장태식 요셉 관리장이 벽의 구조를 확인했다.
“가벽입니다. 뒤에 관리 통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설 담당자가 말했다.
“전시실 조명선을 점검하는 좁은 통로가 있습니다. 보관실에서 들어갈 수 있어요.”
경찰이 관리 통로를 확인했다.
안에서는 빈 액자 두 개와 천으로 감싼 그림 한 점이 발견되었다.
누군가 전날 낮에 그림들을 관리 통로에 숨겨놓고, 정전 시간에 벽 뒤쪽의 점검문을 열어 교체한 것이었다.
천으로 감싼 마지막 그림을 펼치자 모두가 놀랐다.
초대 시장이 앉아 있어야 할 의자가 텅 비어 있었다.
열린 창문과 빈 의자만 그려져 있었다.
바닥에는 지팡이가 쓰러져 있었고, 창가에는 은색 열쇠가 놓여 있었다.
캔버스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네 번째 기록―빈 의자
“얼굴도 없는 그림을 왜 초상화라고 한 걸까요?”
김하늘 안젤라가 물었다.
김맑음 신부는 네 장의 그림을 순서대로 세웠다.
첫 번째 그림.
초대 시장이 지팡이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번째 그림.
지팡이 대신 은색 열쇠를 들고 있었다.
세 번째 그림.
창문이 열리고 밖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
네 번째 그림.
초대 시장은 사라지고 의자만 남았다.
“화가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그날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한서윤은 초상화 속 시계를 확대했다.
첫 번째 그림의 벽시계는 오후 한 시를 가리켰다.
두 번째는 한 시 십오 분.
세 번째는 한 시 삼십 분.
네 번째는 두 시였다.
네 작품은 같은 날 시간 순서대로 그린 장면이었다.
날짜는 모두 1966년 7월 24일이었다.
“1966년 7월 24일 은솔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김하늘이 인터넷으로 옛 신문자료를 검색했다.
당시 은솔시는 아직 시로 승격되기 전이었다. 여름 장마로 강물이 불어나 시장 일부가 물에 잠겼고, 외곽 마을에서 작은 화재까지 발생했다.
큰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여러 가정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공식 기록에는 초대 시장 한경수가 시청 상황실에서 복구 작업을 지휘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초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경수는 열쇠를 들고 창문을 열어 밖의 상황을 확인했다. 그 뒤 지팡이를 버려둔 채 의자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걸까요?”
오미자가 물었다.
김맑음 신부는 그림 속 은색 열쇠를 바라보았다.
“그 열쇠가 열어주는 장소로 갔을 겁니다.”
박물관 소장품 목록에는 한경수가 사용했다는 은색 열쇠도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물 보관함을 열어보니 열쇠는 사라지고 없었다.
열쇠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 메모 한 장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기다리던 방으로.
박물관 지하에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 전시실이 하나 있었다.
몇 년 전 누수 흔적이 발견된 뒤 폐쇄한 공간이었다.
지하로 내려간 이도현과 김맑음 신부는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에는 오래된 은색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최은주 관장이 말했다.
“이 방의 열쇠는 박물관에 없습니다. 건물을 인수할 때부터 잠겨 있었어요.”
오미자가 속삭였다.
“초상화에 그려진 은색 열쇠가 이 문을 여는 것 아닐까요?”
“그 열쇠는 사라졌습니다.”
최병철이 대답했다.
바닥에는 최근 누군가 다녀간 듯 희미한 먼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발자국은 철문 앞에서 끝났다.
김맑음 신부는 문 아래쪽에서 붉은 실 한 가닥을 발견했다.
윤미옥이 자원봉사를 할 때 입는 조끼에는 붉은색 끈이 달려 있었다.
“미옥 자매님께서 이곳에 다녀가신 것 같습니다.”
경찰은 윤미옥의 집을 찾아갔다.
그녀는 집에 없었다.
대신 책상 위에서 문재호 화가의 사진과 편지들이 발견되었다.
문재호는 윤미옥의 외할아버지였다.
편지에는 초대 시장의 초상화 네 점을 그리게 된 사연이 적혀 있었다.
1966년 7월 24일.
수해와 화재로 갈 곳을 잃은 주민들이 관공서 앞에 모였다.
당시 지하 창고에는 특별 행사를 위해 준비한 쌀과 담요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담당 기관의 허가가 없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초대 시장 한경수는 오랫동안 고민하다 창고의 은색 열쇠를 들었다.
그는 창문을 열어 밖에서 기다리는 주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한경수는 창고 문을 열어 쌀과 담요를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은솔성당 교우들과 시장 상인들도 음식을 가져와 함께 도왔다.
지하 창고는 며칠 동안 임시 피난처와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다.
화가 문재호는 그날의 일을 네 장의 그림으로 남겼다.
그러나 초대 시장은 자신의 행동을 개인의 공적으로 기록하지 말라고 했다.
“그날 문을 연 것은 나 혼자가 아니오. 음식을 나눈 사람도, 아이들을 돌본 사람도 모두 이 도시의 주인이오.”
그래서 공식 초상화에는 첫 번째 그림만 남았다.
나머지 세 점은 지하방에 보관되었다.
박물관 지하에서 작은 금속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철문 앞으로 돌아가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이도현이 물었다.
잠시 뒤 윤미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미옥 자매님!”
오미자가 문 가까이 다가갔다.
“왜 안에 들어가 계세요?”
“문이 닫혔어요. 열쇠가 안쪽 자물쇠에 걸려 빠지지 않아요.”
장태식이 공구를 이용해 자물쇠를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철문이 열렸다.
윤미옥은 먼지가 묻은 자원봉사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사라진 은색 열쇠가 들려 있었다.
“죄송합니다.”
윤미옥은 고개를 숙였다.
“그림을 바꾼 사람이 저예요.”
윤미옥은 개관 30주년 전시를 준비하다 외할아버지 문재호의 편지를 발견했다.
그녀는 박물관 지하에 숨겨진 방과 세 점의 그림을 찾아냈다.
그러나 박물관 측에 이야기했을 때 확실한 기록이 없다며 개관 기념전 이후에 조사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이번 전시에도 초대 시장 한 사람의 업적만 크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윤미옥은 그날 함께 주민들을 돌본 시장 상인과 성당 교우들, 이름 없이 음식을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전시 전날부터 초상화를 한 점씩 바꿔 걸었다.
“그림을 바꾸면 사람들이 이유를 찾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도현이 말했다.
“뜻은 이해하지만, 허락 없이 전시품을 옮기고 보관 열쇠를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작품이 손상되거나 분실될 수도 있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김맑음 신부도 조용히 말했다.
“미옥 자매님께서 할아버님의 뜻을 알리고 싶으셨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리는 과정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협의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신부님.”
“그리고 혼자 지하방에 들어오신 것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안에 기록이 더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다음부터는 반드시 다른 분과 함께 움직이십시오.”
윤미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전시실 안에는 보물이나 값비싼 유물이 없었다.
낡은 책상과 의자.
아이들이 사용했던 작은 칠판.
쌀을 담았던 나무상자.
성당 교우들이 가져온 그릇과 오래된 묵주.
그리고 당시 피난처에서 지냈던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공책이 있었다.
공책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66년 7월 24일
우리는 누구의 허락을 기다리기보다 서로의 이웃이 되기로 했다.
박복례가 공책에 적힌 이름들을 살폈다.
“제가 아는 분도 계시네요.”
“누구입니까?”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예전에 은솔성당 식복사를 하셨던 최 안나 할머니요. 이곳에서 며칠 동안 밥을 지으셨나 봐요.”
최병철은 공책의 물품 목록을 확인했다.
“은솔성당에서 쌀 다섯 가마와 담요 열 장을 보냈다고 적혀 있습니다.”
오미자가 말했다.
“그때도 성당에서 도시락을 만들었네요.”
“도시락이 아니라 주먹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비슷한 거잖아요.”
“기록은 정확해야 합니다.”
한서윤은 공책과 초상화 네 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특별전의 제목을 바꿔야겠어요.”
최은주 관장이 물었다.
“어떻게요?”
“《은솔시를 만든 사람들》이라는 제목은 그대로 두되, 초대 시장뿐 아니라 그날 함께 문을 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시하는 거예요.”
관장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방을 안전하게 정비한 뒤 새로운 전시실로 공개하겠습니다.”
박물관 개관 30주년 행사는 하루 연기되었다.
직원들은 네 점의 초상화와 지하방 기록을 새롭게 정리했다.
첫 번째 초상화 아래에는 이렇게 적혔다.
오후 1시―기다림
두 번째 초상화.
오후 1시 15분―결심
세 번째 초상화.
오후 1시 30분―열린 창문
마지막 빈 의자 그림.
오후 2시―함께 행동한 사람들
빈 의자는 초대 시장이 책임을 버리고 도망친 장면이 아니었다.
공식적인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곁으로 내려간 순간을 담은 그림이었다.
그리고 초상화 옆에는 당시 피난처에서 일했던 주민들의 이름이 함께 전시되었다.
개관 기념행사가 열린 날, 김맑음 신부는 은솔성당의 옛 기록을 박물관에 전달했다.
행사 전에는 짧은 감사기도도 바쳤다.
“주님, 어려움 속에서 서로의 이웃이 되어준 이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저희도 누군가 문밖에서 기다릴 때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하소서.”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윤미옥은 외할아버지 문재호의 편지와 초상화 앞에 섰다.
“이제 할아버지의 그림이 제대로 설명됐네요.”
한서윤은 새로운 특별전에 관한 기사를 썼다.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빈 의자에 담긴 사람들―60년 만에 열린 은솔시의 나눔방》
기사에는 윤미옥이 그림을 몰래 바꿨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고 기록했다. 다만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와 잘못을 인정하고 전시 정리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함께 담았다.
행사가 끝난 뒤 박복례는 박물관 휴게실에 김밥과 따뜻한 차를 펼쳐놓았다.
김맑음 신부가 김밥 한 줄을 집으려 하자 복례가 손을 막았다.
“신부님, 한 개씩 드세요.”
“한 줄을 혼자 먹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접시째 가져가시잖아요.”
“이 형사님과 함께 먹으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에 이도현은 정중하게 말했다.
“신부님께서 먼저 드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복례가 이도현에게도 김밥 접시를 내밀었다.
“이 형사님도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드셨지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신부님 친구분들은 사건만 생기면 밥을 안 드시더라고요.”
한서윤도 옆에 앉았다.
“저도 취재하느라 점심을 못 먹었습니다.”
“기자님도 드세요.”
오미자가 김밥을 먹으며 말했다.
“저는 처음부터 그림 속 열쇠가 진짜 문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했어요.”
최병철이 물었다.
“언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말씀하지 않은 생각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사무장님은 마음의 기록까지 장부에 적으실 거예요?”
“필요하다면 양식을 만들겠습니다.”
휴게실에 웃음이 퍼졌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 김맑음 신부와 이도현은 빈 의자 그림 앞에 남았다.
둘만 남자 이도현이 편안한 말투로 물었다.
“맑음아, 누가 같은 얼굴을 네 번이나 그린 건지 이제 알겠구나.”
“그렇다, 도현아.”
“그런데 초상화라면 얼굴을 잘 그린 한 점만 남겨도 됐을 텐데.”
“화가는 얼굴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김맑음 신부는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은 의자에 앉아 있을 때보다 그 자리에서 일어날 때 더 잘 보일 수도 있으니까.”
“너도 사건만 생기면 밥상에서 잘 일어나지.”
“그 일과는 조금 다르다.”
“복례 어머니께서는 비슷하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김맑음 신부는 웃으며 도시락 가방을 들어 보였다.
“그래도 오늘은 김밥을 챙겨주셨다.”
“남은 것이 있니?”
“두 줄 정도 있다.”
“그럼 성당에 돌아가기 전에 조금 먹고 가자.”
두 사람은 박물관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잠시 뒤 창문을 통해 그들을 발견한 박복례가 말했다.
“신부님, 두 줄을 한꺼번에 드시면 안 됩니다!”
김맑음 신부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도현이 웃었다.
“맑음아, 박물관 밖으로 나가도 다 보이는 모양이다.”
“도현아, 지금은 조용히 먹는 편이 좋겠다.”
오랫동안 숨겨졌던 지하 전시실의 문은 마침내 열렸다.
그리고 초상화 속 텅 빈 의자는 이름 없이 이웃을 도왔던 수많은 사람의 자리로 남았다.
다음 회 예고
제15화 ― 「폐역에서 울리는 마지막 안내방송」
20년 전에 문을 닫은 은솔역.
매일 밤 열두 시가 되면 전기가 끊긴 승강장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은솔행 마지막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
하지만 철로는 오래전에 철거되었다.
한서윤 기자가 폐역을 취재하던 중 대합실에서 낡은 여행가방 하나를 발견한다.
가방 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기차표 열두 장과 은솔성당 주보가 들어 있다.
주보 날짜는 역이 폐쇄된 바로 그날이다.
사람들 앞에서 이도현 형사가 정중하게 말한다.
“신부님, 폐역에 들어가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 형사님, 환자 봉성체를 다녀오다 방송을 들었습니다.”
“이곳에는 환자분이 살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승강장 시계는 11시 57분에 멈춰 있다.
대합실에는 젖은 신발 자국이 남아 있다.
그리고 매표소 벽에서 발견된 이름 하나.
김맑음.
둘만 남자 이도현이 묻는다.
“맑음아, 네 이름이 왜 20년 전에 폐쇄된 역에 적혀 있는 거냐?”
김맑음 신부가 낡은 주보를 펼친다.
“도현아, 이 주보를 만든 사람은 내가 은솔성당에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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