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선
음악이 언제 어떻게 인간세계에 스며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음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누구나 공감하듯이 크다 못해 매우 파격적이다. 일상의 파티에서는 물론이고 전쟁 중 돌격 앞으로를 명할 때도 음악이 사용되고, 군사들의 사기를 복돋울 때도 음악이 사용된다. 기쁠 때는 음악이 기쁨을 배가 시키고 슬플 때는 슬플 때대로 슬픔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음악의 특징을 이용하여 정신과적 치료에도 음악치료(music therapy)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음악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다. 따라서 음악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청년시절 클래식에 잠시 심취하여 음악을 조금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얻은 지식에 의하면 음악이 어떻게 발생되었는가 하는 학설에는 신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신수설(神授說)과 자연스럽게 발생하였다는 자연발생설(自然發生說)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학설이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미개한 민족(우리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하지만 어쩌면 그들을 우리보다 더 높은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이라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의 음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음악은 인간 본능의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음악이 인간 본능의 표현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음악이 양상을 달리하면서 변화했다는 것으로 미루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금욕주의와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강조 되었던 시기에는 음악 또한 장엄하고 거룩함이 강조되었으나 중세 이후에는 신으로부터 탈피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음악들이 유행했다. 즉, 인간 본능의 변화에 따라 유행하는 음악의 유형도 달라졌다.
인간이 소리로 존재하는 음악을 글을 통하여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하면서 기록으로 남겨진 음악들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몇 단계로 분류되고 있다. 기원전 5000년부터 3세기까지의 고대 음악, 4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중세기 음악, 16세기에 꽃 핀 르네상스기 음악,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바로크기음악, 흔히 클레식이라고 알려진 18세기 후반에 발달된 고전음악,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19세기에 발달된 낭만파음악, 20세기에 들어와 발달된 현대음악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분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음악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여러 작곡가들 중에서 가곡의 왕이라고 불리는 슈베르트를 특히 좋아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슈베르트의 음악은 선율이 아름답고 낭만적이며 서정성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작품 중에서도 1823년에 발표된 <아름다운 물방앗간집 딸>이라는 작품을 좋아했다. 이 작품은 시인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물방아간 처녀와 처녀의 아버지가 고용한 청년, 그리고 이 청년의 연적 사냥꾼과 처녀의 사랑을 테마로 한 것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방랑의 길을 떠난 청년이 어느 봄날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따라서 헤매다가 시냇물 끝자락에 위치한 방앗간에 이르게 되고, 여기에 고용되면서 시작된다. 그는 주인집의 아름다운 딸을 보고 사랑의 불길을 태우면서 처녀와 처녀의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래서 처녀와 처녀 아버지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냥꾼이 나타나 처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사랑은 깨어지게 되고 급기야 번뇌하던 젊은이는 마음의 벗이었던 시냇물에 몸을 던져 영원한 잠속으로 빠져 든다는 내용이다. 나는 가사를 잘 알아듣지는 못하였지만 작품의 줄거리가 너무 아름답고 슬퍼 이 가곡을 젊은 시절엔 참 좋아 했다. 특히 마지막 시냇물의 자장가 편에서 “쉬라, 편히 쉬라. 눈을 감으라 피곤한 나그네여, 그대는 집에 돌아왔도다. 진실은 이곳에 있다. 내 곁에서 잠들라. 머지않아 바다로 흘러갈 때까지...” 이 부분에서는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지금까지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 음악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제자의 결혼식장에서 들었다.
학창시절에 가르쳤던 제자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여 주례를 하게 되었다. 여느 결혼식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인서약을 받고, 결혼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성혼선언문 낭독이 있었고, 그리고 주례사 차례가 되어 주례사를 하였다. 주례사가 끝나고 나니 사회가 다음은 두 사람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축가가 있겠다고 하였다. 축가하면 보통 성악을 전공했거나 아니면 노래를 꽤 잘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나오나 하고 궁금해 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초등학교 아이들로 구성된 7-8명 정도의 아이들이 나왔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중 두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사회가 말하였다. 신랑이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요한의 집에 살고 있는 장애아들인데 오늘 선생님의 결혼식을 맞이하여 결혼을 축하하는 축가를 부르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스스로 자원하여 나왔다는 것이었다. 식장의 분위기가 숙연해 졌다. 아이들의 축가가 시작되었다. 장애로 인하여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랑하는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그들의 노래가 식장에 울려 퍼졌다. 박자도 음정도 제멋대로인 음악이었지만 그 노래는 천사들의 합창처럼 식장에 울려 퍼졌다.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 아름답다고 여겼던 슈베르트의 음악도, 내가 음악회에서 들었던 그 어떤 유명한 성악가들의 음악보다도, 내가 태어나서 들어본 음악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2006년 4월 2일, 제자 결혼식장에서)
사랑학 개론 9강을 마치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육신의 장애가 있지만 영혼이 투명한 아이들이 평소 사랑하는 선생님을 위하여 부르는 축가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부르는 영혼의 노래를 그리고 시냇물 같이 맑고 투명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 오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맑고 투명한 영혼의 노래를 불러 보십시오(다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