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옥한흠·하용조, 이동원 목사와 함께 '복음주의 4인방'… 홍정길 목사 인터뷰
"성경이 말한대로 살아보자" 교단 달랐지만 생각 비슷, 모두들 열정적으로 선교… 교단 정치에는 체질 안맞아
평신도와 토론하며 가르쳐 생활 속 '제자훈련' 강조, 목회자가 교인에 설교할 땐 자신을 향해서도 설교해야
"우리는 쉽게 살았어요. 손해 보는 일, 고생해야 하는 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했으니까. 가질 게 없으니 다툴 일도 없었고, 서로 도울 일밖에 없었지."20대에 만나 40년 넘게 계속된 네 사람의 인연이 한국교회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69) 목사와 지구촌교회 이동원(66) 원로목사, 작년 9월에 별세한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와 2일 별세한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이 네 사람을 세상은 한국 개신교의 '복음주의 4인방'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소수의 목회자 중심이던 한국 교회에 평신도 제자훈련의 바람을 일으켰고, 열정적으로 선교했으며, 낮은 곳을 향한 구제사역의 비전을 공유했다. 많은 후배 목회자들이 이들을 따랐지만, 평생 교계 정치나 교단장 같은 직책은 멀리했다. 미국 일정을 접고 3일 오후 4시쯤 급거 귀국한 홍정길 목사를 하용조 목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온누리교회 서빙고 본당에서 만났다. 홍 목사는 하용조 목사에 대해 "내 가족보다 더 소중했던 사람이었다. 처음 소천(召天)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 ▲ 한국 개신교계의‘복음주의 4인방’으로 불리는 4인의 목사들. (왼쪽부터)고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 고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 이 중 옥한흠 목사는 작년 9월에, 하용조 목사는 지난 2일 별세했다. 이들은 평생 열정적 선교, 성경 말씀대로의 삶, 낮은 곳을 향한 구제사역의 비전을 공유했으며 교계 정치나 교단장 등의 교회 밖 직책은 멀리해 많은 한국 목회자들의 모범이 됐다.
―네 분 목사의 인연이 아주 깊다.
"1965년쯤, 대학생 선교단체 CCC 모임에 재수생 둘이 따라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하용조 목사였다. 나는 간사였다. 다음해에 두 사람이 대학에 들어오며 CCC에서 함께 활동했다. 68년에는 총신대에서 나보다 1년 늦게 들어온 옥한흠 목사를 만났고, 69년에는 수원 집회에서 이동원 목사를 만났다. 내가 1975년에 처음 목회개척을 한 뒤 다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놀랍도록 생각이 비슷했다."
―어떻게 비슷했나.
"당시에는 한국 교회 어른들로부터 '뭐 저런 놈들이 다 있나' 하는 소리 많이 들었다. 어른들이 보기에 거슬리는 게 많았을 거다. '식자우환'이라는데, 평신도 성경공부 가르쳐봐야 목사만 힘들다는데, 우리는 굳이 평신도를 일깨워 초대교회에서처럼 교회의 주체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제자훈련을 강조했다. 목사가 절대권위를 갖지 않는 대신 신자들과 토론하는 것도 못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책을 목사만이 아닌 모든 교인의 손에 쥐게 하고 신자가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이 같았다."
―한국적 복음주의 운동(성경에 쓰인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운동)의 태동처럼 들린다.
"사실 옥 목사와 나는 예장 합동 교단, 이동원 목사는 침례교, 하용조 목사는 예장 통합 교단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한 대로 살아보자는 데는 뜻이 같았다. 다들 열정적으로 선교했다. 내가 개척한 남서울교회도 교회 재정의 63%까지 구제와 선교 등 교회 밖 일에 썼다."
맏형 옥 목사와 막내 하 목사는 8살 차이였다. 하지만 네 사람은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형님" "동생" 하며 함께 복음주의의 가시밭길을 개척해갔다. 누군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앞다퉈 내 일인 듯 도왔다. 700여 선교사 가정을 해외로 파송한 사단법인 한국해외선교회(GMF)나 매년 2만5000여명의 한인 기독유학생이 모이는 대규모 해외 집회 '코스타' 등에도 이들의 힘이 컸다. 옥한흠 목사가 교회 일치운동을 벌이며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를 만들면 함께 뛰었고, 홍정길 목사가 밀알학교와 장애인 고용 재활용가게 굿윌스토어를 세우면 또 모두가 힘을 보탰다. 오직 성경말씀만 전하는 '강해 설교'만으로 신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명설교가'였던 것도 닮은꼴이다.
―왜 교단정치에 뜻이 없었나.
"우리는 모두 체질적으로 복잡한 교단 정치가 안 맞는다."
―한국 교회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도 끝도 없는 얘기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복음 안에 온전한 사람을 만들면 온전한 행동도 할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좋은 생각을 했으면 좋은 행동까지 나와야 좋은 사람인데, 좋은 생각을 하면서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 한국복음주의 운동의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은퇴 1년을 앞두고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는 게 가슴 아프다."
―금권선거와 타락, 물신숭배 등 한국교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도 계속 터져 나오고 있는데.
"목회자는 설교할 때, 교인뿐 아니라 목회자 자신을 향해서도 설교해야 한다.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심 전에, 후배 목회자들이 나를 보며 무엇을 배울까 고민해야 한다. 우리 넷은 사실 쉽게 살았다. 손해 보는 일, 투자해야 하는 일,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했으니까. 성경대로 했으니 그게 외려 쉬웠다. 그러나 한국 복음주의에는 아직 좋은 후배 목회자가 많다. 이제 새롭게 또 시작할 것이다."
☞홍정길 목사는
한국 개신교계의 대표적 복음주의 운동 지도자 중 한 명.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나와 1975년 남서울교회를 개척해 20여년간 목회했다. 사임 후에는 장애인 사역으로 널리 알려진 남서울은혜교회를 1995년 새로 개척했다. 1990년 자폐 장애인 교육시설인 밀알학교를 설립했다.
☞제자훈련
평신도를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교회의 주체로 보고 그들을 일깨워 직분에 합당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가르치는 과정.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옥한흠 목사가 선구자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하목사님께
저는 목사님께 사랑의 빚을 많이 진 사람입니다. 그런 까닭에 목사님이 이 땅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저를 무척 힘들게 합니다. 저는 목사님을 직접 대면하기 전부터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저는 80년대 초 말씀묵상에 대해 배우고 싶었지만 가르쳐 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때 미주두란노서원에서 이재학목사님이 전해준, 목사님의 큐티세미나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면서 말씀 묵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면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영혼 관리에 대해 배웠고, 영적 훈련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님과 사모님을 처음 만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 제게 주신 말씀은 제 평생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습니다. “일군이 되기 전에 예배자가 되십시오. 일은 길에 돌처럼 많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큐티하십시오. 영적 전쟁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짧은 조언들이었지만 그 조언들이 제 가슴에 늘 남아 있습니다. 목사님은 피 묻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메시지 속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통해 사역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생애는 성령님이 함께 하신 기적의 생애셨습니다.
목사님은 사람을 아끼셨습니다. 젊은 목회자들을 키워주셨습니다. 후배 목회자들 속에 있는 잠재력을 보시고, 그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제게는 글쓰는 잠재력을 보시고, 글을 쓰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IMF 때 많은 출판사들이 문을 닫고, 출판하려던 책들을 중단할 때 목사님은 무명의 작가인 제 책을 출판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때 출판해 주신 책이 “뿌리 깊은 영성”입니다. 그 격려에 힘입어 저는 목회자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격려가 아니었다면 결코 글쓰는 일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좋은 만남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좋은 책과의 만남, 좋은 목회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좋은 사역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저의 스승이셨습니다. 영적 안내자이셨습니다. 큰 형님 같은 분이셨습니다. 때로는 아버지처럼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 바로 잡아주셨고, 때로는 어머니처럼 연약해진 저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소박함을 좋아하셨습니다. 가식없는 순수함을 좋아하셨습니다. 맑고 밝은 영성을 좋아하셨습니다. 제가 성장하는 중에 변질되지 않기를 소원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작은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길 소원하셨습니다.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세워지길 소원하셨습니다. 제가 로고스교회를 개척하고, 작지만 건강한 교회의 비전을 가지고 세워 나갈 때 기뻐하셨습니다. 로고스교회 개척과정을 담은 “뿌리 깊은 영성으로 세워지는 교회”를 썼을 때 제게 주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아주 잘 쓴 책은 아니지만 젊은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철학을 따라 사역하는 내용을 책에 담은 것은 훌륭한 일이다.” 목사님은 작은 교회였지만 로고스교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시고, 장로님들과 함께 식사 하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조국교회뿐만 아니라 이민교회들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가 승리할 때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힘들어 할 때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얼마 전 마지막 뵈었을 때 제 손을 붙잡고, “힘들 때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요.”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너무 송구했습니다.
목사님은 목회의 어려움을 품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통을 친구로, 고난을 스승으로 삼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암마저도 친구로 삼고, 암을 당황하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찌 저만 목사님께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이 전한 복음과 목사님의 겸손하고 소박한 사랑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목사님은 천국에 가셨지만 목사님이 남긴 사랑과 영향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슬픈 일입니다. 조국교회와 이민교회 그리고 세계 교회에 큰 손실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를 잃은 아픔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이 염려하며 기도해 오신 조국교회와 이민 교회를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목사님, 이제 천국에서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안식하십시오.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사모님과 두 자녀 그리고 목사님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강준민(새생명비전교회담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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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고 하용조 목사가 가장 좋아했다는 찬송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부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본 후 참석자들은 그 찬송을 함께 불렀다. 하 목사는 마지막까지 찬송의 능력을 간증한 것이다.
김종인 장로는 대표기도를 통해 “교회와 선교 외에는 떠는 것이 없었던 분이셨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선교 열정을 갖고 사셨다.”고 추모하고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열방들을 기억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김 장로는 “온누리교회 장로들에게 연합과 일치의 영을 부어주시고, ACTS 29의 열정이 계속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온누리교회 성가대가 고인이 가장 즐겨 불렀던“내 영혼이 은총 입어” 찬송을 한 다음에 하용조 목사의 사역을 담은 추모영상이 소개됐다. 추모영상에서 하용조 목사는“우리의 열정과 에너지는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땅 끝까지 갈 거예요. 선교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마지막 나팔수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제물로 받아주시옵소서.”라고 당부했다.
고인의 추모영상에서 흘러나오는 고인의 메시지는 참석자들의 마음을 복음과 선교의 열정을 더욱 뜨겁게 했다. 온누리교회는 국내 7개 교회와 해외 27개 지교회, 132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소프라노 김영미 권사의 ‘거룩한 성’ 찬양에 이어 하용조 목사의 오랜 동역자로 하용조 목사의 임종을 지켰고,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목사)가 창세기 49장 22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 목사는 “하용조 목사는 장로교 목사였습니다. 저는 침례교 목사였습니다. 하 목사님은 불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물을 강조했습니다.”며 유머로 설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란노서원 설립 후 건강악화로 두란노서원 강의를 부탁해 맡았다. 2년 전 러브소나타는 홍정길 목사님과 제가 섬겼다.”며 든든한 동역 관계를 소개하면서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정말 그리울 것 같다”며 울먹였다.
이 목사는 “하 목사님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며 “그를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꿈이었다. 하 목사님은 꿈을 꾸고, 꿈을 심고, 꿈을 나누고, 꿈을 남기고 떠났다.”고 추모했다.
이 목사는 “하 목사님을 닮은 성경의 인물이 요셉”이라며 “하 목사님은 요셉처럼 무성한 열매 인생이었다. 온누리교회, 온누리공동체, 두란노사역을 통한 한국 교회의 열매는 하 목사님의 고난의 열매였다. 병치료를 위해 일본에 가서도 비전교회가 설립되고, 러브소나타 사역를 통해 일본을 축복하셨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하용조 목사를 말씀과 성령의 사역의 균형을 갖춘 분이라고 평가하고 특히 “하 목사님은 한국 교회에 말씀묵상을 보편화시켰다“고 평가하는 한편 ”교회의 경계를 넘어, 민족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영향력을 남겼다.”고 말했다.
성도들은 라준석 목사의 선창으로"목사님 사랑합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목사님 잘 할게요"라고 고백했다.
송영운 씨의 연주에 이어 고인과 가까이 지냈던 분들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할렐루야교회 김상복 원로목사는 "20년 전에 제가 한국에 오도록 추천하신 분"이라고 회고하고 "목사님은 교단과 신학을 뛰어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사역을 했고, 진실과 정직으로 멋진 생을 사셨다."고 추모했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목사님의 지난 수십년간 불굴의 용기와 불굴의 사역정신을 보여주셨다."며 "목사님의 소천이 사역의 방향타 잃어버린 것 같다."고 애도했다. 오 목사는 특히 하 목사의 사역에 대해 "하 목사님은 한결 같은 복음주의자의 삶을 보여주셨고, 복음의 통전성을 사역을 통해 보여주셨다." 고 추모했다.
김인중 목사는 CCC 활동할 때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38년 전 하 목사가 살고 있던 정릉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하고, 하 목사의 복음 열정과 선교사역을 잘 이어받자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온누리교회를 위해, 한국 교회를 위해, 역라마단을 위해, ACTS29 사역을 위해, 하용조 목사의 가문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하용조 목사의 아들 성석 씨는 "온누리교회가 ACTS 29의 비전을 이루가도록 한 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겠다."고 말하고 "아버지의 스타일대로 기쁨과 축복과 웃음으로 저희 아버지를 보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장례를 위해 봉사해 준 분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공동장례위원장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는 인사말을 통해 "해외와 이명박 대통령님 이하 각계에서 애도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온누리교회와 유족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예장통합 부총회장 박위근 목사(염천교회)의 축도로 발인예배를 마친 후 고 하용조 목사의 운구차는 강원도 원주 문막 온누리동산으로 향했다. 하관예배는 12시에 드린다.
옥한흠 제자훈련
Ⅰ. 제자훈련의 터다지기
Chapter 2. 하나님과 매일 만나는 생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과 '하나님을 만나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종종 보면 분명히 그 집안의 자식인데, 부모와 담을 쌓고 사는 아들이나 딸들이 있다. 이것은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부모와 좋은 교제를 나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잘못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가 그렇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건강하고 기쁘게 유지하려면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영적 교제를 잘해야 한다.
하나님과 매일 만나는 교제의 생활을 일컬어 경건의 시간을 가진다고 말한다. 매일 시간을 정해서 찬양과 말씀과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면 마치 가지가 나무에서 진액을 공급받아 그 잎이 푸르고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된다. 제자훈련을 시작하는 초반부터 이런 값진 습관을 생활화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매일 신령한 교제가 없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없다.
인격적인 교제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그 맛이 달고 즐거운 법니다.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의 사이에도 이런 단맛이 있어야 한다. 이제 어떻게 매일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가를 공부하도록 하자.
1.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히브리서 저자는 참 멋진 말고 표현하고 있다. 히브리서 4장 16절을 가지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 언제 교제가 필요한가? 때를 따라(주님이 필요할 때, 주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절박할 때) * 하나님은 가장 절박한 때에 찾아오신다. (창세기 28장 1절 ~ 15절)
2) 교제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3) 교제하는 자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여호와의 임재의 자리(성전)
2.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동안 하나님과 너무나 아름다운 교제를 지속하셨다. 그분이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셨던 때와 장소 그리고 내용에 대해 말하라. 마가복음 1장 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예수님은 새벽기도로 시작하였다. 새벽은 말씀이 있는 시간이고 은혜의 시간이다. 한적한 곳을 택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셨다.
3. 예수님의 하루 생활은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매우 바쁘셨다. 그분이 24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안식일부터 그 다음날까지의 일과를 마가복음 1장을 가지고 살펴보자.
1) 안식일 오전(21절 ~ 28절) :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고, 귀신을 내어 쫒으셨다.
21절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절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절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절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 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절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절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절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 수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쉴 사이도 없이 자신의 기력을 다 쏟아가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안식일 오후 (29절 ~ 31절) : 회당에서 나와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가서 열병으로 누운 시몬의 장모의 병을 고치셨다.
29절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절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안식일 저녁(32절 ~ 34절) : 각종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 쫒으시었다.
32절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절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다음날 아침(35절) :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4. 예수님께서 그토록 분주한 나날을 보내시면서도 아침 일찍 하나님과 만나는 경건의 시간을 빠뜨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바쁘다는 핑계로 새벽에 하나님과의 경건의 시간을 빠뜨리고 사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바빠도 예수님보다 바쁘지 않으니까요.
5. 당신은 '바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앞세워 경건의 시간을 빼먹는 버릇이 없는가? 있다면 언제부터 그랬으며, 그 일로 언제 신앙생활에서 입은 피해가 무엇인지 말하라.
결혼 후 직장을 다니며 새벽 5시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 시동생, 시누이의 식사를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몸이 피곤하고 늘 시간에 쫓기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에 해야 할 일이 많아 한두 번 예배를 빼먹다 보니, 믿지 않는 가정에서 혼자 신앙을 지켜내기가 힘들어지고, 영적전쟁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0여 년간 병마로 인하여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6.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하나님과 만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든 일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하는 마음가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7. 경건의 시간을 잘 지키기 위해 몸에 익혀야 할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경건의 시간을 지킬 수 있는 자기 생활의 계획과 이를 지키기 위한 절제된 생활 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나누기 원하면 반드시 기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당신은 매일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는가?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주어진 하루를 주님 영광위해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출근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사무실에 나와서 말씀을 읽고 기도를 올리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매 순간 함께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께 크고 작은 것을 다 아뢰며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9.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과 만날 때마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이다. 시편 119편 97-102절을 펴놓고 대답하라.
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98절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절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100절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101절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절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 성경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97절)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주의 말슴을 사랑하여, 종일..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이 내 입술에서 나와야 한다.
2) 성경을 읽고 배우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102절)
주의 규례(말씀) 안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이 꿀 송이보다 더 달아야 한다.
3) 배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97,99절)
배운 말씀을 사랑하고 삶속에서 나타나는 주님의 증거들에 대하여 늘 주님께 감사드리며, 삶 속에서 증거 한다. 방관자가 되지 말고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4) 배운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101절)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로 가지 않고 구별된 자녀로서의 선한 삶을 산다. 악한 길에 발을 금해야 한다. 악한 습관은 모두 버려야 한다.
10. 위의 네 가지 사실 중에서 당신에게 가장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내 삶 속에서 하루하루 기적을 보여주시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날마다 그 사실을 증거하고 산다고 하지만 악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본의 아니게 악한 길에 들어설 때도 있고,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말씀대로 지키고 살기가 힘든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11. 이 시간 배운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각자가 집에 돌아가 당장 실천해야겠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 인지 말하라.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경건의 시간을 빠뜨리지 말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더 많이 갖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나는 날마다 (10:00)부터 (11:00)까지 (사무실 또는 집)에서 주님과 만날 것을 약속합니다.
그렇습니다!
오! 하나님
나로 하여금 오늘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올바른 방법과 자세로 임하게 하옵소서.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하게 하시고
맡은 바 사명을 충실히 행하게 하옵소서.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친절하게 하시고
필요하다면 어리석은 자들도 기꺼이 용납하게 하옵소서.
나로 실망케 하고 좌절시키며 비난하고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분노하지 말고 참게 하옵소서.
나의 마음을 애태우며 기다리게 할 때도 인내하게 하시고,
누가 내게 부당한 것을 요구해 올 때에도
자제함으로 성내지 않게 하옵소서.
칭찬에 대해서는 겸손으로,
그리고 질책에 대해서는 자중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수용하게 하옵소서.
나로 하여금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윌리암 바클레이 -
사람들 한국 복음주의교회의 큰나무 -옥한음 목사님
http://www.youtube.com/watch?v=GdWTmN9JFGU
http://www.youtube.com/watch?v=-YhrtKC3x0k&feature=related
“저의 목회철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평신도를 깨워서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목회철학이지요. 제자훈련 목회철학은 첫째 평신도를 훈련시켜 그 인격을 예수님을 닮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 평신도를 훈련시켜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소명자로 만드는 것입니다.”(옥한흠 목사 공식홈페이지 중에서)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어른으로 존경받은 고(故) 옥한흠 목사가 가장 강조한 것이 제자훈련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작은 그리스도’라는 별명을 들었던 것처럼 평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하며, 따라서 제자훈련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바뀌어놓는 작업이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옥 목사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라는 신념 아래 나온 것으로, 옥 목사는 종교개혁의 중심사상인 만인 제사장의 개념과 상통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옥 목사가 1978년 사랑의 교회를 개척한 후 본격적으로 펼친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당시 부흥회나 전도집회에 집중하던 교계에서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받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화제가 되면서 교파를 초월한 많은 목회자들이 사랑의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배웠고, 옥 목사가 이끌던 국제제자훈련원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그 결과 사랑의 교회는 목사들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수천명의 평신도가 함께 이끄는 새로운 교회모델이 됐다.
옥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교단의 어른이면서도 한번도 교단 총회장을 맡지 않았다. 아울러 대외적인 직함을 맡은 활동도 적었던 편이다.
이에 대해 옥 목사는 “목회자는 성도를 향해 어미의 마음을 가진 자이다. 교회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교회 사이즈를 가지고 떠벌리며 교회 밖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목회자는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양떼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가 1996년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1998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설립을 주도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그는 “한국교회가 건강함을 되찾고 세상과 소통하고 회개해야한다”고 역설해왔다.
옥 목사가 65세 때인 2003년, 정년을 5년이나 앞두고 “교회와 목사가 함께 늙으면 안된다”며 후임 오정현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준 것도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일부 교회에서 교회를 개척한 목사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줘 사회적으로까지 논란을 낳은 것과는 달리 옥 목사는 남가주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를 전격적으로 초빙해 담임목사직을 맡겼다.
원로목사들은 보통 한달에 한 번은 설교를 하지만 옥 목사는 국제제자훈련원 원장직만 계속 수행하면서 1년에 2-3차례 설교를 했을 뿐 철저히 2선으로 물러났다.
옥 목사 시절 지성적이고 차분했던 사랑의교회가 오정현 목사 체제 이후 역동적이고 젊은 교회로 탈바꿈했다는 평가 속에서도 여전히 옥 목사를 그리워하는 교인들이 많았지만, 옥 목사는 자신이 아끼던 목사들이나 장로, 권사들, 평신도들과 개인적인 통화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 목사의 이런 모습은 한국교회 개척자들이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세습관행에 자연스럽게 제동을 거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랑의교회가 예배당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서초동 법원청사 인근에 2천여억원을 들인 대형 예배당을 짓기로 지난해 결정하면서 이른바 ’메가처치’ 논쟁의 중심에 서는 것을 목격했다.
2009년 사랑의교회가 예배당 신축을 결정하자 교계 일각에서는 초대형 교회가 무차별적으로 교세를 늘리면서 이웃 개척교회나 중소교회 교인들까지 흡수하고 권력화하는 것에 우려하면서 “사랑의 교회, 너마저!”라는 문구를 내세워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옥 목사는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9월 한 교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퇴 후 나는 내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하는 우려를 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이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 ▲ 4일 장례예배 치른 하용조 목사 생전 모습 /온누리교회
“하 목사님은 아마 천국에서도 다시 일을 시작하셨을 거예요. 예수님 앞에서도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를 쏟아내시겠죠. 그러면 예수님이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게, 자네는 좀 쉬어’ 그러시지 않을까요.”
2일 별세한 고(故) 하용조 목사의 발인날인 2011.8. 4일 오전 9시, 서울 온누리교회 서빙고본당에서 열린 ‘천국환송예배’. 금방이라도 울듯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1만여 성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구촌교회 이동원(66) 원로 목사가 “하 목사님은 장로교이고 나는 침례교, 하 목사님은 성령의 불을 강조하시고 저는 물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을 함께 했다”며 설교를 이어갔다.
“2년여 전에는 하 목사님이 한류스타와 함께 하는 일본 문화선교집회 ‘러브 소나타’를 시작해놓고 암 수술하러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결국 저와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님이 대타로 투입됐죠. 아마도 오늘이 하 목사님 뒤치다꺼리 사역의 마지막 날 아닐까요.” 다시 성도들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천국환송예배’라는 예배 제목대로 검은 옷을 입은 성도들은 마음의 지주였던 하 목사를 잃었음에도 평정과 유머를 잃지 않고 있었다. 이동원 목사는 고(故)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 하용조 목사, 홍정길 목사와 함께 한국 개신교계의 ‘복음주의 4인방’으로 불렸다.
“수년 전 하 목사님과 옥한흠 목사님, 저와 홍정길 목사님이 북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비자를 받으려고 1주일쯤 무작정 중국에 머물렀던 때가 있어요. 나는 같이 외국에 가면 항상 홍 목사님과 같이 방을 씁니다. 하 목사님과 방을 쓰면 밤새도록 교회 걱정, 새로운 비전 얘기에 시달리거든요.(폭소) 근데 홍 목사님은 들어가자마자 주무시니까.(폭소)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내내 옥 목사님과 하 목사님은 아침마다 눈이 뻘게요. 두 분이 밤새도록 주님의 일 얘기하신 거예요. 그때 교훈을 얻었죠. ‘아, 교회 일에 너무 신경 쓰니까 빨리 가는구나’.(폭소) 그래서 제가 일찍 은퇴했습니다.”
이동원 목사는 작년말 65세의 나이에 후임 목사에게 지구촌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주고 선교 사역에 집중키로 하면서, 세습 문제로 몸살을 앓는 한국 대형교회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많은 신문 방송에서 하 목사님이 어떤 분이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답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꿈을 먹고 심고 나누고 살았으며 남기고 떠난 사람입니다.”
이동원 목사는 “우리는 담을 넘지 못하고 자기 자신, 가족, 교회 챙기다 인생을 끝내지만 하 목사님 인생은 교회의 담을 넘어, 민족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남겼다”며 기도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꿈을 만들었고 나누었고, 한국 교회에 꿈을 줬던 사람. 이제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토록 아름다운 쉼을 누리시니 그 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 목사님을 통해 너무나 많은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 목사의 아들 성석씨와, 하 목사가 형처럼 따랐던 홍정길 목사가 감사 인사를 했다. 예배당 단상 앞에 놓여 있던 관을 운구할 때는 참석자 1만여명이 함께 복음성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불렀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하 목사의 시신을 담은 관이 교회 밖으로 나와 운구 차에 실렸다. 장지인 강원도 원주 문막 온누리동산으로 출발할 때까지 수천 명의 성도들이 뒤를 따르며 낮은 허밍으로 계속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불렀다. 여기저기서 ‘목사님, 목사님’ 하고 부르며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날 하 목사 유가족과 장례위원들, 성도들을 실은 버스 숫자는 총 17대였다.
문막 온누리동산에서 열린 하관예배는 서빙고와 양재 본당에 생중계됐다. 온누리교회는 아직 하 목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 사흘 더 서빙고 본당 두란노홀에서 추모 헌화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