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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일터가 한 곳에 얽혀있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나는, 아내에게 늘 여름휴가도 없이 고생만 시킨다. 그러다 추석연휴를 이용해서 모처럼 떠나는 여행이다 보니 기대가 만발~
~제주도로 출발-김포에서 제주공항까지
수서에서 지하철로 고속버스터미널에 가면 새로 개통된 9호선 급행을 갈아탈 수 있는데, 김포공항까지 여섯 정거장쯤이었던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김포공항까지 28분~ 게다가 요금도 1400원~우와, 신나는 가격! 앞으로는 비싼 리무진버스 탈 필요없겠다...
비행기표도 마일리지로 끊어서인지 이코노미는 없고, 프레스티지로나 겨우 두 장을 얻는 바람에 마일리지 공제는 더 많이 됬겠지만, 대신 호강 좀 했고.... 이번 여행은 어째 시작부터 큰 비용 안들이고 꽤 짭짤할 것 같으네~
서울서 점심으로 우동 한그릇 후다닥 먹고 출발한터라~제주공항에 도착해서 렌트카 (아반테신형 72시간 \162,000)를 받자마자 제주시 노형사거리에 아는 집(7천원에 한 상)으로 먼저 달려갔는데... 아~ 글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추석연휴라네. .아이고 배 고파라~ 차를 몰고 문 열린 식당부터 부지런히 찾는다.
--[-황가네 뚝배기] 아무데서나 밥만 먹자했는데...이 집 ‘오분재기 뚝배기’가 결과적으로는 더 흡족~
식사를 마치고, 서귀포 대림모텔로 향하는데, 절기가 추분이 벌써 지났으니 7시면 이미 깜깜......
네비게이션이 516도로를 안내하는대로 따라가는데, 너무 구불구불해서 캄캄한 밤길에 신경을 엄청 쓰면서 조심운전 한 시간여를 해서 어렵게 숙소에 도착 !
거래처 부장네 집에서 한다는 [대림모텔]은 천지동 [뉴경남호텔] 주변이라 교통편도 좋고 먹을거리 찾기도 좋고 가까이는 천지연 윗쪽 담팔수나무 자생지가 있고, 올레길 6코스에도 해당되는 곳이라서 경관도 좋고, 무엇보다 요금이 편안하다. 3박에 7만5천원...신나지 않는가...시설? 호텔과 비교할 건 아니지만 웬만하다.....고마워요, 강 부장..!
방에 짐을 올려놓고나니 9시 경, 첫날이라 벌써 잠만 자기에는 주변 거리풍경이 궁금하다.
내일이 추석이니 안 쉬고 영업하는 음식점도 좀 찾아 놓아야겠고, 피로회복용 막걸리 한 병, 맥주 두 캔이랑 아침으로 먹을 식사대용도 산다. 돌아오는 길에 앗! 벽이 스페인 풍으로 하얗고 아담한 2층짜리 호텔(?)정원에 야외 생맥주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야경이 너무 예뻐서 결국 이 곳에서 우리도 가벼운 파티에 동참한다~ 그 동안 딸아이 둘이나 시집보내느라 참 수고가 많았던 우리 고마운 마누라, 입이 이만큼이나 열려서는 다물어지지를 않았었군.
사진으로 보니까 더 잘 알겠네. 와 ,...오~랜만에 서귀포의 맑고 달콤한 저녁공기 실컷 마셔본다...!.
둘쨋날은 물영아리오름에 가는 날이지만 천지연아침산책으로 시작한다. 담팔수나무 자생지,무태장어서식지...등 특별히 신경써서 보존해야 하는 자연유산이 여기저기 널렸다.
슬슬 걸어서 서귀포 성당을 조금 더 지나니 이중섭미술관이다.
이중섭화백이 무명시절에 함흥에서 배를 타고 이곳으로 내려와 아내 이남덕과 두 아들, 네 식구가 약 일년간 기거했던 방을 보았는데....방이 1.4평. 혼자서도 아니고 어찌 네 명이 누었을지....?
손바닥보다 좁은 부엌에서 끼니를 끓여먹었을 가족을 생각하며....차라리 보지 말껄....생각했었다. 그리고 울컥했다. 왠지 모를 설움이 솟구쳐 오르는데...
남의 상가에 가서 상주보다도 더 서럽게 우는 문상객이 꼭 몇 명씩은 있다던가..? 아마추어처럼....ㅎㅎㅎ
아마도 나의 설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말고도 여길 보고서야 그 누군들 울컥 설움이 복바쳐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슬픈 가을/이영춘
쨍그렁 깨질 듯한 이 가을 하늘
눈물겹다
무거움의 존재로 땅끝에 발붙인 짐승
부끄럽다
멀리 유유히 구름은 흘러가고
가을 잠자리들 원 그리며 무리짓는다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이 가을 햇살아래
아,아프구나! 가볍지 못한 존재의 무게가
바스락대는 잎새의 온갖 새들
깃 털고 일어서는 이 가을날
밤새 무명의 화가로 벽화 그리던
거미들도
하루살이도,쓰르라미도,풀벌레도,오소리도
제 무게 이기지 못하여 모두 털고 일어서는
이 가을날에
나는 무엇이 이토록 무겁게 허리를 잡아 당기고 있는가.
....에휴..!
자, 일정대로 이번 여행의 핵심! 물영아리오름습지로 가자!
물영아리오름(해발 508m)습지는 화산기생화구의 원형과 전형적인 온대산지 습지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생물.지형.지질.경관 등의 가치가 우수한 습지보호지역이다.
람사르(Ramsar)협약에 가입하면서 우리나라가 전국 최초로 지정한 대표적인 습지인 이 곳은 나무계단을 780개나 올라가야 분화구에 도달할 수 있는데, 분화구의 토양층이 물을 가두어둘 수 있는 이탄층이 잘 발달했고... 다양한 생물종이 독특한 서식환경을 잘 보존하고 있는 등....특이한 경관이 연출된다..........
되돌아 내려가는길에도 다리가 여전히 후들후들....그러니까 마누라 평소에 다리운동을 좀~하시오... 집안일 만으로도 너무너무 힘들다 하지 말고, 월수금 필라테스라도 제발 좀 빠지지 말고 다니시고요~
후들거리는 다리로 조심조심 되내려온 후에는 곧장 성읍민속마을로 향한다.
민속마을 입구,[사또야]라는 곳에서 깔끔한 돌솥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하는데, 모텔에서의 아침은 삶은 계란, 빵, 요구르트였으니 사실 밥이 많이 궁금했었다.
우리 빼고는 일본사람들이 꽤 보였다. 중국사람들도.....
만속마을 안에서 자유로이 이곳저곳을 구경하려는 참인데, 우연히(?) 성읍민속마을 제 5반 해설사 김수진이라는 이와 만났다(아니, 잡혔다!).....1목 2현(제주목,대정현,정의현)등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며...설명을 너무 신명나게 해 주니 미안해서 설명의 끝 무렵에 어쩔 수 없이 오미자원액인지 엑기스인지를 좀 비싸다 싶으면서도 사 줄 수 밖에....더 값비싼 제품은 말뼈를 푸우욱 고아낸 말꽝(뼈의 제주도 말) 엑기스였던가...?. 골다공증에 아주 좋다는 설명이었지만 너무 비싸서 못샀다.
설명 중에는 정의현 현감어르신만 마시는 물통! --장금이가 귀양왔다가 모르고 마셨다가 관아에 끌려가서 곤장을 맞았다던가~
똥돼지 구경하는 외국여인들에게 택시기사가 영어로 설명을 하고 있던데...제대로 전달이 잘 되고 있는건지 어째 좀....
서귀포 숙소로 돌아와 오름에 오르느라 고생한 다리에게 휴식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십리포구로 가서 서귀포 십리포해안 에서 새섬까지... 새섬과 연결되는 기막히게 예쁜 돛대모양의 교량을 보는데, 그냥 먼 발치로만 보려다 여기까지 와서는....해서 다리를 좀 더 고생시켰다.
아래에서 올려다 찍은.... 이게 바로 돛대 모양의 다리 기둥인데.....밤에 보면 조명까지 더해져서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깔리는 십리포해안
돛배가 떠나가는 밤 풍경.....은하수하고나 어울릴 것 같은 몽환적 분위기 아닌가...?
[거부]라는 식당에서 오늘도 오분작 뚝배기를 찾으니 다 떨어졌다며 권하는 것이 전복뚝배기! 제주도는 전복이 오분작 보다 더 싸다. 전복은 양식인데, 오분작은 아직도 천연으로 해녀들의 채취에만 의존하는 탓이란다......
내일은 마라도 성당에서 주일미사가 가능하런지...?....
아침9시 40분에 송악산에서 출발하는 마라도행 여객선을 타려면 서귀포에서 40분 전에는 출발을 해야 됬었다.
마라도 성당은...참, 앙증맞고 예쁜 조형물인데, 내부는 제법 넓어서 한 이,삼십 명 동시에 앉을 수 있겠더라..하지만 공소여서 주일인데도 미사같은 건 없었다. 오직 기도만....
등대는 어디서나 운치가 나름의 운치가 있다....
정현종詩人의 무지 짧은 詩..."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
나는 그 곳에 가고 싶다" 가 떠올려진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줄기를 잔뜩 세운 사이로 자그마한 쑥부쟁이들이 한데 옹기종기 몰려있는 것이 애처러우면서도 정다워 보이기에.....
"...그러므로 소리죽여 흐느끼는 여울이여
억새 가슴에 저며 서걱이는 빈 들판에 서서
이제 우리가 새삼 불러야 할 노래는 무엇인가......................"(김명인의 ‘가을의 끝’ 중에서)
마라도...억새와 쑥부쟁이.... 그리고 동화나라 과자집같은 작은 성당, 초콜릿박물관..작은 절,불상...게다가 화장실까지도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분위기 나는 곳.... 마라도는 걸어서도 한 바퀴 도는데 40분이면 충분하다지만, 우리 착한 마누라, 다리 너무 아파해서 한 시간에 2만원짜리 전기자동차 빌려 타고 천천히 돌면서 여유있는 관광을 즐긴다.
가이없는 푸른 바다 위에 외로이 선 아담한 섬 위에서.... 한없이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억새의 물결과 쑥부쟁이들의 애틋한 어깨동무를 보고 보고..또 보고 맑고 청량한 바람소리와 억새들의 가슴저며 서걱이는 소리, 듣고 듣고 또 들으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사진 많이 담고, 추억 많이 쌓아본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 그리워하자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처럼, 또 송창식의 노랫말처럼.. 그렇게 그리워하며 사랑하며 남은 시간 살면 좋지 않으리...?
제주본섬, 송악으로 돌아와서 시간이 넉넉한 김에 추사적거지에도 가보기로 한다. 추사선생 귀양살이하시던 곳인데, 이 곳 역시 대대적인 조경공사를 하고 있어서 아쉽지만 바로 옆의 찻집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이 뒤로는 카메라 메모리가 넘쳐서 더 이상 찍을 수가 없었는데... 길 떠나기 전에 메모리를 비우던지 여분의 메모리를 준비하던지 했어야 하는 건데....이만큼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아마추어냄새가 폴폴 난다, 나는.....
저녁미사 때 방문한 서귀포성당의 야경이 참 좋았는데..... 그거 하나 못 담은 건 정말 아쉬웠다...저녁 서귀포성당미사는 7시 반.
이곳 신부님의 오늘 강론은 이랬다.
“---우리가 말로는 한 마음, 한 몸이 되기를 바란다면서.....어째서...... 함께 기도하지 않고, 함께 대화하지 않고, 함께 밥 먹지 않느냐? 그러고도 한 마음, 한 몸이 되길 바라는가...”
돌아오는 날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제주공항까지 달리는 바람에 하루종일 졸려서 카메라를 찍으려했어도 더 이상은 못 찍었을거다.
휴일 끝난 월요일 오전을 막내딸아이 혼자 집 지키며, 사무실 지키며....그렇게 해 준 바람에 할 수 있었던 아내와 단 둘만의 모처럼 나들이였고....너무 좋았었지만, 추석명절에 혼자 계실 여의도어머니 생각에 마음은 그다지 편칠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한참 혼날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도 매년 추석연휴 하나만은 나로서는 유일한 휴가타임이라서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아버님, 그리고 조상님들 죄송해요...!..추석에 식구들 모여서 차례지내던 것을 언젠가부터 생략하게 된 어느 날 이후....저로서도 長考장고 끝에 내린 惡手악수라고나 할까요...?
부디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 수 밖에....추석에 못 뵌 어른들은 따로 시간내서 찾아뵙는 수 밖에..... 한 분 남은 숙부는 11월에 증조부 성묘갈 때 사촌들이랑 다 함께 뵙기로 하고, 형님과는 간혹 전화안부로 대신 해야지요, 뭐..... 아우들도 전화로나마 안부를 서로 자주 물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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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석 연휴를 두분이 멋지게 보내셨군여?
모처럼 두분이서 지내시며 행복을 서로 나누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떠나기 힘든 시간에 떠나시는 용기가 참 부럽습니다.. 언제나 행복한 가정 이어가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떠나기 힘든 시간에 떠나는 거~ 용기도 되고, 괴로움도 되고 그래요... 좋은 본보기 아닌 줄 알지만 달리 시간 낼 여력이 아니되는 딱한 형편이니 어이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