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산동 일대를 중심으로 천하의 영웅호걸과 당대의 인재를 모아 천하를 꿈꾼다. 또한 부보형제를 모시고자 하나 도겸의 호위군들에게 살해되어 원수를 갚고자 발병한다. 도겸은 북해와 청주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한편, 유비에게도 사산을 보낸다.
이각.곽사의 서량의 마등과 한수를 꺾자, 제후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그와 맞서려는 자가 없었다. 모사 가후도 이각과 곽사에게 민심을 얻기위해 백성글을 보살펴야 한다고 권했으므로 조정에서는 차츰 생기가 돌아 한동안은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무렵, 청주에서는 황건적이 또다시 일어났다. 중앙이 흔들리면 그 흔들림에 대답하듯이 이렇다 할 두목도 없는 초적들이 떼지어 다니며 백성들을 괴롭혔다. 그러다 그 수가 수십만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약탈과 살생을 일삼았다. 이각과 곽사는 황건적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자 백관을 물러모아 위견을 물었다. 태복 주전이 먼저 말했다. "산동에서 일어난 황건적을 토멀하려면 그곳 가까이에 있는 조조를 등용하여아 할 것입니다." 이각과 곽사는 즉시 산동 동군태수로 있는 조조를 천자에게 천거하였다. 그리하여 조조에게 제북상 포신과 힘을 합해 '황건적을 토벌하라'는 천자의 영이 내려졌다.
조조가 동군으로 오게 된 것은 그 당시 황건적 나릉ㄹ 틈타 일어난 각처의 도적 떼들 때문이었다. 그들 도적 떼들은 전국 각처에서 일어나 서로 연대를 맺고 있었는데 이들을 흑산적이라 불렀다. 괴수는 장연이란 자였는데, 흩어져 있는 도적의 수가 무려 1백만에 가까웠다. 하북의 여러 고을들이 이들의 근거지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들을 진압랄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괴수 장연이 표문을 올려 조정에 투항하자, 그로 하여금 도적의 잔당들을 진압케 했다. 흑산적은 이렇게 하여 진정되었으나 그 이후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할 무렵, 어지러운 세상을 틈타 다시 무리를 지어 일어났던 것이다. 그들 무리 중 우독과 백요 등이 수심반을 이끌고 위군과 동군에 출몰했다. 이에 동구태수 왕굉이 구원을 요청한 장수가 바로 조조였다. 관도의 여러 제후들이 불화와 반목으로 제각기 근거지로 돌아간 후의 일이었다. 조조가 형양에서 참담한 패전을 겼은 후 위병을 이끌며 떠돌고 있었던 때였으므로 조조는 태수 왕굉의 청을 받아들여 위병들을 이끌고 복양에서 백요의 군사들과 맞닥뜨려 이겼다. 이후부터 도적 떼들은 감히 동군을 넘보지 못하니 동구능ㄴ 니저처럼 평온해졌다. 이로 인해 조조는 동군에 있어 실질적인 태수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때 원소는 조정에 표를 올려 도적 떼들을 물리친 조조의 공을 들어 그를 동군태수로 천거했다. 그때 원소는 기주태수 한복의 원병 요청을 기화로 기주를 뺏어 힘을 기르고 있었다. 이럴 때 조조를 도와주면 그와 다시 맷어질 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그의 힘을 빌 수 있다는 생각에서 표를 올린 것이었다. 조정에서 조조를 동군태수로 봉하자 조조는 확고히 동군을 근거지로 발판을 다지기 시작했다. 세금으로 군자를 마련할 수 있게 되자 착실히 군사를 늘리며 조련시키는 한편 각지에서 많은 인걸들을 모았다. 특히 각 처의 현재들을 초빙하고 유능한 선비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했다. 그런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는 어진 선비와 무사들이 많았다. 한편으로 세작(첩자)을 장안에 보내어 동태를 파악케 했다. "왕윤이 초선이란 가기를 내세워 연환계를 써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 하였다고 하옵니다." "왕윤이 여포와 이숙을 끌어들여 동탁을 모살하였다는 소식이 옵니다." "동탁의 잔당, 이각과 곽사의 무리들이 병권과 정권을 좌지우지 하고 있답니다." 이런 소식들이 쉴새없이 조조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이럴 즈음 조정에서 조조에게 황건적을 토벌하라는 영이 내려온 것이었다. 조조는 애당초 이각 등 조정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새로은 조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천자의 영으로 내려온 명령이니 복종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오랜 조련을 거친 자기의 병마를 움직일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조조는 수양에서 제북까지 쳐들어가며,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투항해 오는 황건적들을 다시 선봉으로 내세우고 몰아치니 도처에서 항복해 오는 적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조조가 출진한 지 불과 1백여 일 만에 30만에 이르는 포로를 잡고 황건적을 완전히 소탕하였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훈을 높이 여겨 진동장군에 명했다. 이로 인해 그의 위명은 날이 갈수록 천하에 퍼져 가니 실리는 조정에서 내린 그런 관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조조는 항복한 30만의 군사에다 백성들 가운데 힘센 장정들을 뽑아 모두 백만에 가까운 군대를 양성했다. 제북, 제남의 땅은 미옥하여 이들 군사를 기를 군량이나 재화도 넘칠 정도로 많았다. 때는 초평 3년 11월이었다. 조조는 휘하의 1백만 대군 중에서 정예병을 뽑아 '청주병'이라 칭한 뒤 다른 군사들은 모두 돌아가 농사를 짓도록 했다. 농민의 장정을 중핵으로 하여 특별히 훈련을 시킨 이 청주병을 조조는 휘하의 주력군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조조는 연주에 머물러 있으면서 천하의 명사들을 초청하는 한편,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드는 인재와 영웅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모여든 사람 가운데 영주 영음 사람 순욱과 그의 조카 순유가 있었다. 순욱의 자는 문약으로 그의 조부 순숙은 순 환제때에 이름을 천하에 떨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순가팔용'으로 불리워지는 아들 중 둘째 곤과 여섯째 상이 뛰어났다. 순욱은 제남상을 지낸 곤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사람들은 그를 '왕좌지재'로 일컬었으며, 그가 성년이 되자 조정에서는 수궁령의 벼슬을 내렸다. 이후 동탁이 그를 향부령으로 삼았으나, 그는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 영주에 돌아온 순욱은 어느 날 부모에게 기주로 거처를 옮기도록 권했다. "뒷날 천하에 난이 일어나면 군사들이 이곳에서 맞닥뜨리게 되니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권하였으나 대부분 순욱의 말을 듣지 않았다. 기주엔 이미 원소가 태수로 부임해 있었다. 원소는 극진한 예를 베풀며 그를 맞았다. 그러나 순욱은 원소가 그릇이 크지 않음을 알고 조조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아롭이었다. 조조는 그가 찾아오자 기뻐했다. "그대는 나에게 한 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를 얻게 한 장자방과 같은 분이오." 조조는 그에게 행군사마의 벼슬을 주며 짐심으로 자기를 도와 달라고 청했다. 또 그의 조카이며 황문시랑의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순유에게는 행군교수의 직책을 주었다. 순유는 자가 공달인데 그 역시 출중한 인물이었다. 그런 어느 날 순욱이 조조에게 한 사람을 천거하며 말했다. "연주에 한 인물이 있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가 누구요?" "동군 동아사람으로 자는 중덕, 이름은 정욱이라 합니다." "나도 그 이름은 들은 바 있소." 조조는 즉시 사람을 풀어 그를 찾도록 하니 정욱은 신 속에서 글만 읽으며 은거하고 있었다. 조조는 정중히 그를 청해 맞아들였다. "나는 보고 들은 바가 좁고 재주 또한 얕습니다. 공과 동향인 곽가야말로 당대의 현사인데 어찌 그를 부르지 않습니까?" 정욱의 말에 조조도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내가 어찌 그를 잊고 있었던가?" 그리하여 정욱이 천거햐여 준 연주 사람 곽가를 초빙하고, 곽가의 천거로 광무 황제의 직손 회남 성덕사람 유엽을 맞았다. 유엽의 자는 자양이었다. 유엽은 또 두 사람의 현사를 천거했다. 산양 창읍에 사는 만총으로 자는 백령이라 했으며, 또 한 사람은 무성의 여건으로 자를 자각이라 했다. 이미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라 조조는 그들을 군중종사로 삼았다. 또한 그들 두 사람이 천거한 진류 평구사람이며 자가 효선인 모개를 맞으니 조조의 주위는 인재가 기라성처럼 모여들었다. 이들 몾지않게 태산 거평 사람으로 자를 문칙이라고 하는 우근과 진류 사람 전위를 얻은 것은 조조의 군사를 강화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우금은 활쏘기, 말 달리기 등 무예가 출중한 장수로 그의 군사 수백 명을 이끌고 찾아왔다. 또한 전위는 체격이 장대한 장수로 무게80근이나 되는 양지철극을 비껴들고도, 말 위에 올라 창을 쓸때는 마치 하능을 나는 듯하다는 천하장사였다. 원래는 장막의 휘하에 있었으나, 장막의 다른 부하와 다툼이 생기자 전위는 한 주먹으로 때려 죽이고 몸을 피해 산 속에 숨어 지내던 중 하후돈이 그를 조조에게 소개한 것이다. "제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이 사람이 호랑이를 쫓아 냇물을 한 달음에 건너뛰는 것을 보고 데려다가 군중에 두었는데 공께 특별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조조는 그에게 무예시범을 청했다. 전위는 80근의 양지철극을 들고 가볍게 맘 위레 올라 쏜살같이 달리더니, 허공을 가로지르며 양지철극을 나무막대기 휘두르듯 놀리며 춤을 추었다. 과연 천하장사의 기막힌 창솜씨였다. 때마침 거센 바람이 불어 홀연 영정의 장대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대장기가 바람에 휩쓸리며 넘어지려 했다. 부근에 있던 군사들이 몇십 명이 달려가 기를 붙들었으나 강풍을 이기지 못해 기가 한쪽으로 기을고 있었다. 전위가 이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모두 물러서라!" 한소리 지르더니 한 손에 번쩍 기를 일으켜 세웠다. 한참 동안 세찬 바람이 깃발을 찢을 듯이 불어 왔으나 그는 결코 두 손을 쓰지 않았다. 조조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음-. 옛 악래보다 월등한 역사로다!" 조조는 그에게 백금란의 전포에 명마를 주고 장전도위에 명했다. 조조가 전위의 힘에 감탄하여 비유한 아래는 예날 은나라 주와의 신하로, 천하무적의 장사였다. 조조가 전위에게 그보다 월등하다 했다 해서 이후부터는 그의 별호가 악래가 되었다. 그 뒤로도 조조를 찾아오는 사람이 끊이질 않으니, 조조의 위세는 산동일대를 떨쳐 울렸다. 조조는 휘하에 수십만의 군사와 수백을 헤아리는 모사와 장수를 거느리게 되자 시선을 천하로 돌렸다. 그러나 이때 순욱이 나서며 조조를 일깨웠다. 주공깨서는 아직도 움직여선 아니 됩니다. 지금 이각과 곽사가 조정에 들어섰다고는 하나 그들은 조정에 뿌리박을 만한 무리가 되지 못합니다. 가벼이 군사를 움직이면 그들과 같은 무리로 오인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아직은 대국을 주재할 만한 인물이 나설 때가 아닙니다. 병마를 쉬게 하면서 형세를 살피시는 게 좋겠습니다. 문약의 말이 옳소. 나 또한 그 같은 생각이었으나 조정이 워낙 어지러워잠시 울분이 치솟았을 뿐이오. 조조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만총과 여건의 천거로 맏아들인 항장과 모개가 조조에게 진언했다. 주공, 천하를 잡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필요합니다. 즉 첫째가 천자를 받들여 대의명분을 세움이요, 둘째가 농민 출신자를 군사로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백성들의 대부분이 농민이며, 농민이야말로강병의 근원입니다. 셋째가 영내의 농업을 진흥시켜야 할 것입니다. 농업을 진흥시킴으로서 경제력을 높이고 군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 세가지 윈칙을 지키신다면, 주공처럼 영명한 자질과 강대한 역량을 가지고 계신 분은 천하의 패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조조는 즉시 이 진언을 받아들였다. 원대한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어긋남이 없는 원칙이요, 정책이라 여겼기때문이었다. 이후 조조가 일생에 걸쳐 실시한 존왕봉제, 농엄진흥, 둔전병제도, 경제력 중시, 부국강병 인재등용 등의여려 가지 정책은 이때부터 그 기초가 다져진 것이었다. 그런 조조는 어느 날 태산태수 응소를 불렀다. "내 가친을 모셔 오라." 조조는 천하를 다투기 전에 일가권속을 자기의 근거지로 불러들일 작정이었다. 이제는 산동일대에 기반을 굳히고 일신의 안정도 이루어지자 늙은 부친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언제 어니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대 세력으로부터 가솔들을 불러들여 후환을 없앤다는 뜻도 있었다. 조조의 부친 조숭은 진류에서 난을 피하여 낭야라는 벽촌에 은거하고 있었다. 조조는 서신을 응소에게 주어 낭야로 보내 부친을 모셔 오도록 했다. 조조가 보낸 사신을 맞은 부친 조숭의 기쁨은 컷다. 조숭은 주위 사람들에게 아들 자랑을 하며 말했다. "그 애의 숙부인 귀도, 친척들도 조조가 소년 시절에는 장래가 염려스러은 부랑배라는 등 무던히 험담을 했었지. 그러나 나는 그 애의 장래를 믿고 있었다네. 역시 내 눈은 어긋남이 없지 않았는가." 조숭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었다 하나 일가족 40여 명에, 하인도 1백여 병이나 되었다. 이들 가솔들과 가재도구를 1백여 대의 수레에 싣고 연주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이때 서주태수 도겸은 이전부터 조조와 친분을 맺고 싶었으나 기허ㅣ를 얻지 봇하고 있었다. 마침 조조의 부친이 그곳을 지난다는 말을 듣고 성 밖까지 나와 영접하며 이틀 동안 잔치를 열어 떠나는 길을 축하했다. '한 고을의 태수가 하잘것없는 늙은 나를 이렇게 대할 아유가 있겠는가. 다만 아들 조조 때문일 것이다.' 조숭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즐거은 여행길에 올랐다. 도겸은 친히 성 밖까지 전송하며, 휘하의 도위 장개에게 5백의 군사를 주어 호송토록 했다. '참 좋은 위인이다.' 조조의 부친 조숭은 도겸의 사람됨에 감복했다. 도겸은 온후한 군자라는 것은 그 일대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조숭은 환대에 고마움을 표하고 길을 떠났다. 계절은 때마침 중추가절 이었다. 그런데 일행이 화비라는 산중에 당도하자, 변덕이 심한 가을 날씨가 갑자기 흐리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굵은 빗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산봉우리도, 계곡도 안개 속에 휘감긴 사나운 나씨로 변했다. "소나기다, 어디 비를 피할 만한 곳이 없을까?" "저기 절이 있는가 보군. 산사의 문이 보이는데..." 일행은 비에 흠뻑 젖은 채 하룻밤을 절에서 묵어 가기로 했다. 중들은 조숭 일행만 안으로 불러 편히 쉬게 하고 장개와 군사들은 바깥 회랑에 머물도록 했다. 차가운 가을비는 주룩주룩 한밤중까지 내라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에서 비에 젖은 채 잠을 청하는 군사들의 불평이 심했다. 그러자 장개가 부하 두목 몇을 부르더니 인적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 소곤거렸다. "여보게, 저녁 무렵 군시들이 모두 불만이 가득 찬 얼굴들을 하고 있지 않던가?" "요즈음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다, 이런 쓰데없는 임무까지 떠맡아 비에 젖은 채 잠을 자야 하니... 연주까지 상전도 아닌 저런 늙은이를 호송해 간들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이게ㄸ습니까? 군사들을 탓할 수 도 없는 일입니다." 부하 두목니 장개의 꾸짖음을 각오하고 거리낌없이 말했다. 그러나 장개는 꾸짖기는커녕, "그럴 테지. 무리도 아니지."하도니 말을 이었다. "여모게, 우리가 본시 황건 여당으로서 마음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지낸 사람들이 아닌가. 지금은 하는 수 없이 도겸의 수하 노릇을 하고 있으나 아렇다할 좋은 대접도 받지 못하네. 지금은 우리가 호위하는 조숭 일행의 짐이 1백여 대의 수레나 되니 아마도 금은 재화도 많이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네. 이것들을 가로챈다면 부귀도 누릴 수 있을 것 같네. 어떤가, 오늘 밤 이것들을 가로채서 산채에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렇잖아도 불만에 차 있던 수하들이 장개의 말을 마다할 리 없었다. 이런 흉계가 꾸며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조숭은 방 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밤 삼경이 가까이 올 무렵이었다. 갑자기 절간 주위에 소란스런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조조의 친동생 조덕이 놀라 칼을 차고 밖으로 나오며 물었다. "누구냐, 무슨 일이냐?" 조덕이 속옷 바람에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자 장개가 기다렸다는 듯이 단칼에 그를 베었다. 이어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물려 퍼져 조용하던 절간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장개 일다은 흉악한 비적으로 변해 닥치는 대로 살육을 자행했다. 조조의 부친 조숭은 황망히 첩과 함께 소란을 피해 뒷간에 숨어 있었으나 끝내 발각외어 난도질을 당하게 말았다. 그 밖에 가족과 하인 등 1백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도 모조리 도륙당했다. 사신 응소는 이 흉변에 혼비백산하여 겨우 몇 명의 부하만을 데리고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조조늬 부친 조숭이 참변을 당한 터라 후환이 두려워 조조에게는 돌아가지 못하고 원소에게 몸을 의탁 하였다. 피비린내를 풍기던 밤이 밝았다. 아직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가을비 속에 산사는 불타고 있었다. 장개일당은 재물과 가재도구를 실은 수레를 이끌고 사라졌다. 뒷날 사람들은 그때의 참혹한 광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천하가 다 아는 영웅 조조 지난날 여백사의 전가족을 몰살하더니 이제 살해당함을 어찌 막지 못하는가 하늘의 이치, 인과응보는 잘못됨이 없구나. 응소의 졸개 중 살아 남은 자가 이 소식을 조조에게 전했다. 조조는 이 흉변을 전해 듣자 땅을 치며 통곡하다가 혼절했다. 조조는 어디까지나 노부의 죽음이 도겸의 탓이라 여겼다. 젊었을 시절, 자기의 판단 잘못으로 여백사의 가족을 모조리 죽였던 조조였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흉변이 자기에게 일어나자 조조는 그 잔악함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도겸이란 놈이 부하를 시켜 내 아버님을 죽이다니, 아들로서 불구대천의 원수를 갚지 않고 어찌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당장 군사를 이끌고 서주에 풀 힌 포기 나지 못하게 하리라." 조조는 그날로 대군 동원령을 내렸다. 순욱과 정욱에게 군사 3만을 주어 견성, 범현, 동아의 세 현을 방비케 하고, 조조는 스스로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서주를 향해 말을 몰았다. 선봉은 하후돈, 우금, 정위가 맡도록 했다. 조조는 '보수설한'이라고 쓴 깃발을 펄럭이고 말을 달리며 외쳤다. 원수를 갚고 한을 풀겠다는 뜻이었다. "성을 빼앗거든 성 안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 불태워 나의 아버지 원수를 갚도록 하라!"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조조가 대군을 일으켜 소주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은 존국 방방곡곡에 퍼졌다. 이때 도겸과 교분이 두터운 구강태수 변냥이 군사 5천을 거느리고 도겸을 돕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말을 들은 조조가 격노하여 하후돈에게 영을 내렸다. "구강태수 변양이 도겸을 구하러 온다 하니 너는 서주로 향하는 변양의 길을 끊어 그들을 쳐라!" 하후돈은 군사를 몰아 구강으로 내달렸다. 마침 구강의 동군종사로 진궁이란 사람이 있었다. 진궁은 이전에 조조가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한 후, 도중에 붙잡히는 몸이 되었으나 그를 살려 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뜻을 함께 하기로 맹세한 사이였으나 여백사 일가족을 죽이는 잔인함에 조조에게 크게 실망하여 행방을 감춘 사람이었다. 진궁 역시 도겸과 교분이 두터운 사이여서 조조를 만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와 조조 만나기를 청했다. 조조는 진궁을 보자 대뜸 그가 무엇 때문에 자기를 만나러 온 것인지를 짐작했다. "공은 지금 무얼하며 지내고 있소?" 조조의 물음에 진궁은 다소 계면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동군의 종사라는 말직을 맡고 있습니다." 조조는 그 말에 냉소를 머금었다. "그렇다면 서주의 도겸과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겠구려. 짐작건대 공은 그 자를 위한 세객같은데, 아마 공의 간청도 이 조조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오. 이왕 먼길을 왔으니 쉬었다가나 가시오." "말씀하신 대로 그런 목적으로 찾아뵈었습니다. 소생이 아는 도겸은 세상에 어진 군자입니다. 춘부장께서 참혹한 변을 당한 것은 도겸과는 전혀 무관한, 장개의 소행입니다. 소생은 죄 없는 군자가 고통 받으며, 장군의 성망에 흠이 생길까 하여 근심스럽습니다." "그런 헛소리 마시오. 공께서 전에 나를 버리고 떠나시더니 이제 무슨 면목으로 나를 다시 찾으셨소!" 조조는 진궁의 간언에 지금까지의 미소가 호통으로 변했다. "우리 일가족을 몰살시킨 원한을 씻는 일이 어째서 내 성망에 흠이 된다는 말이오?" 조조가 격앙돈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잇자 진궁은 더 말을 붙이지도 못하고 물러갔다. 그러나 조조를 설득시키지 멋한 것을 도겸에게 알릴 목도 없었다. 그리하여 진류태수 장막에게로 갔다. '보수설한'이라는 커다란 깃발은 조조의 분노를 싣고 일사천리로 소주성을 향해 진격해 갔다. 조조의 군사는 가는 곳마다 무고한 백성을 죽였다. 적과 내통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심지어 백성들의 무덤까지 파헤치니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서주의 늙은 태수 도겸은 조조가 죄 없는 백성까지 씨를 말린다 하니 땅을 치고 하늘을 우러러 피는믈 지으며 한탄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두어 하늘을 거스렸기에 내가 다스리는 뱃성들이 무고하게 재앙을 당하는구나!" 도겸은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았다. "조조의 군사를 꺾을 수는 없다. 그의 원한을 산 것은 모두 내가 부덕한 소치이다... 나는 그의 결박을 받은 후 기꺼이 이 목을 바치려 한다. 그 대신 백성들이나 우리 군사들의 생명만은 보전토록 청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은 도겸의 말에 일제히 부복하며 말했다. "그럴 스는 없습니다. 어찌 태수님을 희생시키고 저희들만 살겠다고 하겠습니까!" 장수 중의 조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모자람이 많으나 태수님을 도와 조조를 물리칠까 하옵니다." 조표의 말에 도겸은 부득이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맞으러 나갔다. 조조의 군사들은 눈사태가 난 것처럼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본진이 세워진 깃발에 '보수설한'이란 글귀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펄럭이고 있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군마는 그 위풍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조조는 흰 상복을 입고 진두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이에 도겸이 말을 달려 문기앞으로 나와 조조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나 도겸은 이전부터 공과 교우를 맺고자 햇던 사람이오. 그래서 장개로 하여금 공의 부친을 호위하라고 했었소. 그러나 장개란 놈이 도둑의 심보를 버리지 못해 그런 흉변이일어났소. 걸코 니의 본의가 아니니 공은 이 점을 밝게 헤아려 주기 바라오." 그러나 눈에 핏발이 선 조조의 귀에 그 말이 들어올 리 맘무였다. "이 늙은 놈아, 네놈이 우리 가친을 멸하고 이제와서 무슨 망발을 하는거냐. 누가 저 늙은 도적을 사로잡을 텐가!" 조조가 소라 지르자 하후돈이 말을 달려나갔다. 도겸은 급히 말을 무려 성 안으로 들어갔다. 하후돈이 그 뒤를 질풍처럼 달려오자, 조표가 나섰다. 두 사람이 부딪쳐 싸울 때였다. 때아닌 광풍이 불어닦쳐 모래가 흩날리고 돌이 굴러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양편은 싸울 수가 없어 각기 군사들을 물렸다. 도겸은 긴함숨을 돌리며 성 안의 장수들과 대책을 협의했다. "조조의 대군을 막을 방책이 없으니 이제 내 발로 조조의 진영에 들어가 죄 없는 서즈의 백성들을 구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소. 조조의 대군을 막을 방책이 없겠나들 말씀들 좀 해 보십시오." "아니 되옵니다. 오랫동안 선정을 베푸시어 서주의 백성들은 모두 태수님의 음혜에 감사하고 았습니다. 조조의 군사가 아무리 대군이라 하나, 성은 쉽사리 함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계책을 써 저저로 하여금 죽어도 묻힐 자리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보니 별가종사 미축으로, 자를 자중이라 했다. 미츅의 계책이란 한꺼번에 두 군데에 응원군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북해의 공융에게 원병을 청하고, 또 하나는 청주의 전해에게 구원을 청하는 것이었다. 도겸은 그의 말에 따라 두 통의 서한을 써 진등으로 하여금 청주로 보내고 미축은 북해로 떠나게 했다. 도겨음 성문을 귿게 닫고 구원군이 올 때를 기다리며 조조군의 공겻에 대베하기로 했다. 한편 미축의 친구이며 자를 문거라고 하는 공융은, 원래 노나라 곡부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라 이미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열 살 때의 일이었다. 하남윤 이응이란 사람을 만나러 갔는데 문지기가 멋 들어가게 하자 공융은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짐안과 이씨 집안은 옛부터 잘 아는 사이이니 문을 여시오." 문지기는 그 말에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이응이 공융을 맞으며 물었다. "어찌하여 너의 집안과 우리 집안이 아는 사이냐?" "옛날에 우리 조상 공자님께서 이씨이신 노자님께 예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셨지요." 이응은 공융의 대답을 듣고 감탄했다. 때마침 태중태부 진위가 이응을 방문했다. 이응이 공융을 가리키며 영특한 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진위가 말했다. "어려서 영리하다거 자라서도 반드시 크게 되는 법은 아니지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공융이 물었다. "그럼 어르신네께서는 분명히 영리하셨던 모양이죠?" 그 말에 진위는 크게 웃으며 칭찬했다. "이 아이는 자라서 큰그릇이 되겠구먼..." 소년 공융이 자라서 중랑장이 되더니, 점점 벼슬이 올라 북해군의 태수가 된 것이었다. 그는 항상 그를 찾는 사람을 반겨 맞았다. "집에는 손님이 가득하고, 술통에는 술이 가득, 이것이 내가 가장 바라는 바이오." 그는 곧잘 이렇게 말했다. 북해에 부임한 지 6년, 그 동안 이곳 백성들로부터 민심도 크게 얻고 있었다. 그런 공융에게 미축이 찾아오자 공융은 그를 반기며 온 까닭을 물었다. 미축은 전후 사정을 애기하고 도겸의 서한을 꺼내 보였다. 공융이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말했다. "나와 도겸과는 우의가 두터운 사이이며 또한 미축 공께서 친히 오셨으니 어찌 아니 가겠소. 그러나 조조와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먼저 서한을 보내 화해를 청해 보겠소. 만일 그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때 군사를 일으키도록 합시다." "조조의 군사는 방대합니다. 그 군사를 믿고 결코 화해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미축이 다급한 목소리로 공융을 일깨웠다. 이에 공융운 진병을 준비하는 한편, 조조에게 서한을 보내 화평을 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공윤에게 뜻하지 않았던 사태가 벌어졌다. 돌연 황건적 관해가 수만의 무리를 이끄고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공융은 우선 급히 군사를 수습하여 성 밖으로 나아가 황건적을 맞아야 했다. 황건적의 괴수가 말을 달려나오며 외쳤다. "북해 땅은 넓고 기름져 양곡이 넘쳐 흐를 지경이라는 말을 듣고 왔다. 우리에게 양곡 1만 석만 달라. 그러면 즉시 물러나겠다. 만일 거절한다면 우리는 성을 짓밟고 백성들을 모조리 죽이겠다." 이 말에 공융은 크게 노하며 소리쳤다. "나는 한나라의 신하로 한나라의 땅을 지키고 있다. 곡식이 있다 한들 어찌 너희 도적 떼에게 양곡을 주겠느냐?" 이에 관해는 칼을 높이 쳐들고 이를 갈며 쳐들어왔다. 공융의 휘하 장수 종보가 창을 치켜들고 맞섰다. 그러나 몇 합 싸우지도 못하고 관해의 칼에 쓰러졌다. 종보가 쓰러지자 공융의 군사는 성 안으로 몰려들기에 바빴다. 군사들이 성 안으로 물러가니 관해는 성을 에워싸고 있었다. 공융은 우울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성루에 올라 황건적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갈 길이 바쁜 미축 또한 근심에 빠져 있었다. 이때 성 밖으로부터 힌 장수가 나타나더니 화건적의 진을 헤집고 성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달려드는 도적의 무리를 향해 번개같이 창으로 후려치는가 하면, 찌르고 베며 무인지경을 달리듯이 다가왔다. 그는 곧장 성벽 아래로 와서 큰 소리로 외쳤다. "문을 열라, 성문을 열어라!" 공윤은 선뚯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사이 적근 수십 명이 해자 가까이 그 무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무사는 훌쩍 말머리를 돌리더니 순식간에 10여 명을 찔러 넘어뜨렸다. 도둑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공융은 급히 성문을 열어 그를 맞아들였다. 그 젊은 무사는 말에서 내려 공융에게 예를 올렸다. 공융은 그제서야 누구냐고 물었다. "성은 태사이며, 이름은 자입니다. 동래의 황현 사람으로 태사자, 자는 자의라고 합니다. 저의 노모께서 공의 은덕을 많이 입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어저께 요동에서 돌아와 이 난리를 당한신 것을 알았습니다. 노모께서 '빨리 가서 태수님을 도와 드리라'고 하시기에 말을 달려왔습니다." 공융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비록 그를 처음 대하나 이미 그의 용맹을 잔해 듣고 있던 터였다. 성문 밖 20여 리쯤에 태사자의 노모가 살고 있었다. 태사자는 항상 집을 떠나 있는 터라 늙은 노모의 생활이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이를 공융이 알고 식량과 의복을 보내 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노모는 그때의 도움을 받은 태수를 잊지 않고 아들을 보내 돕게 했던 것이다. 공윤은 갑옷과 주마, 안장을 태사자에게 내리며 후히 대접했다. 태사자가 고마움의 예를 표하며 공융에게 말했다. "저에게 정예 군사 1천만 주시면 성 밖으로 나가 도적을 물리치겠습니다." 그러자 공융이 태사자를 만류했다. "그대가 아무리 용맹스럽다 하더라도 지금은 도족들의 수가 너무 많으니, 섣불리 나서서는 안 되네." "만일 제가 이들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노모를 다시 뵈올 수 있겠습니까. 설령 싸우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좋으니 내보내 주십시오." 그러자 공융은 잠시 고개를 숙여 깊이 생각에 잠기다, 무겁게 입을 열어 태사자에게 청했다. "나는 유현덕이란 분이 당대의 영웅이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네. 만약 그가 와 준다면 이 도적은 능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 여겨지네. 그러나 도적들에게 둘러싸인 판국이라 마땅히 보낼 사람이 없네."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태사자는 주저하지 않고 선뜻 나섰다. 공융은 기뻐하며 유비에게 보내는 글을 써 주었다. 태사자는 갑옷을 입고 말 위에 올랐다. 에깨에는 활을 메고 손에는 쇠창을 들었다. 성문이 열리고 태사자가 달려나오자 성 밖 언못 둑에 있던 황건적 한 무리가 달려들었다. 태사자는 가까이 다가오는 도적들 몇 명을 창을 휘둘러 찔렀자. 순식간에 태사자의 창에 대여섯 명이 나뒹굴자 도적들은 잠시 주춤했다. 그 틈을 이용하여 태사자는 말을 달렸다. 적장 관해는 태사자가 혼자 말을 달리자 필시 구원병을 청하러 가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관해는 수백 기의 병마를 이끌고 뒤쫓았다. 그러나 태사자는 창을 활로 바꿔잡고 화살을 쏘니, 하나도 빗나가는 화살이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수십 명이 그 화살에 쓰러지자 도적들도 더 이상 뒤쫓지 못했다. 태사자는 포위를 뚫고 그날 밤 안으로 말을 달려 평원현에 당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