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결론:
취미는 마치 미가 객관적인 성질인양 그의 대상을 판단하지만 그러나 문제의 대상이 우리의 마음속에 미적 즐거움이라는 심리적 반응을 환기시킬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대상의 성질인 것처럼 그리고 그 판단은 그것이 다만 감성적인 판다이요, 단순히 대상의표상과 주관과의 관계만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마치 논리적 판단(객체의 개념을 통해서 객체의 인식을 구성하는 판단)인 것 처럼 말하고 있다.”
칸트의 입장:
취미를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로 환원시키고자 하고 있는 극단적인 미적 주관주의와, 미란 즐거움을 야기한 대상의 형식적 성질이라고 선언하는 고전적인 객관주의적 입장을 선험적 감성론이란 그의 인식론적 설명을 통해 화해시키려는 것
칸트에게서 미는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닌 특수한 유형의 대상에 대한 특수한 유형의 주관적 반응으로서 특수한 심적 과정의 산물이다.
미는 18세기 영국의사상가들이 말하는 즐거움의 감정을 지시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즐거움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로크의 소박한 실재론에 기초한 객관적 성질에 의해 환기되고 있는 것이다.
칸트의 기여:
1. 취미를 단순하 개인적인 선호로 환원시키지 않은 채 취미의 특성을 설명함
“이것이 아름답다”와 “이것은 나에게 유쾌하다”는 두 판단에서 전자가 인식적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 경우에만 후자와 구별된다.
인식적 타당성에 대한 요구는 대상의 형식이 미의 감정을 환기시키는 성질을 소유하고 있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는 가정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취미는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양측에 걸려 있다. 취미는 미가 전적으로 객관적인 성질이 되고있는 한에서만 그렇게 규정될 수 있다.
2. 미에 대한 위의 객관주의적 해석은 주관과 객관이란 각기 인식과정의 기능들로서 상호관P의 입장에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순수 이성비판에서 취급된 인식유형(감관지각)은 대상이 개념적으로 정의될 수있도록 하는 범주와 규칙의 사용을 포함하고 있든데 비해, 취미판단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러한 지시체와 정의가 가능할 수 없다.
미의 경우에 있어서는 순수한 객관적 성질이 명백한 개념에 입각하지 않고서 또한 규칙과 원칙들을 적용하지 않고서 또한 규칙과 원칙들을 적용하지 않고서도 순수하게 인식될 수 있다는 논의가 가능.
개념이 사고와 전달의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4.3. 감성적 이념
예술적 천재의 창조적 행위-상상력의 생산적 능력 인정
생기를 고취시키는(belebend)예술 對 단순히 규칙에 입각한 예술의 구분
생기가 고취된 예술: 정신(Geist)을 지닌 것
미적 의미로서 정신: “마음의 능력들을 합목적적으로 진동시킴으로서 마음(Gemuet)에 생기를 고취시켜주는 원리”
“이제 나는 이 원리가 감성적 이념을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감성적 이념이란 상상력의 표상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많은 사유를 유발하지만 어떠한 특정된 사상, 즉 어떠한 개념도 그것에는 적합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어떠한 언어로도 이 표상에 완전히 도달하여 그것을 이해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순수이성의 이념들(자유, 영혼, 신)과 감성적 이념들의 비교:순수이성의 이념들은 이성이 완전한 명료성을 가지고 그 스스로에게 말해 주는 이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경험적인 세계 속에서 상상력은 그들을 재구성할 수도 없고, 그 예증들을 발견할 수 도 없다.
“이러한 감성적 이념이 이성이념의 대칭물임은 우리가 용이하게 알 수 있는 일이거니와, 이 이성이념들은 어떠한 직관(상상력의 표상)도 적합할 수가 없는 개념들이다. 이제 우리는 감성적 이념들은 [개념들에 의하여] 설명할 수 없는 상상력의 표상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성이념들은 [직관으로] 증명해 보일 수 없는 이성개념이라 부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지(Attribut)에 관한 칸트의 생각:
시적인 은유의사용, 즉 예술적인 유기적 전체속으로 융해된 개념과 이미지들의 풍요로운 상호 교류를 설명
성공적인 모든 이미지에 있어서는 개념에 생동감이 주어지고, 이미지에는 보다 보편적ㅇ니 의의가 부여되는 식으로 상호를 풍요롭게 한다.
“한마디로, 감성적인 이념이란 주어진 어떤 개념에 수반된 상상력의 표상이다. 이 표상은 상상력이 자유롭게 사용될 때에는 매우 다양한 부분 표상들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명백한 개념을 표시하는 말로는 표현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러한 상상력의표상은 말로 할 수 없는(unnennbar) 많은 것을 하나의 개념에 덧붙여 사고하게 하며, 이처럼 말로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감정이 인식능력들(상상력과 오성)에 활기를 넣어 주고, 한갓된 문자로서의 언어에 정신을 결부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 은유의 사용과 보다 일반적으로 여러 예술들이 냉냉한 개념적 산문으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들 각각의 매체를 사용하고 있는 방식에 대한 칸트의 포괄적 이해
과학적 혹은 철학적 언어로 번역 불가능한 이념들을 예술은 그 특유한 방식대로 표현할 수 있다
성공적인 예술작품이란 이념들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비개념적 수단이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미적 반응은 두가지 방식에서 인식적인 것이다.
1. 문제의 이념들이 감성적인 것이므로 객관적 미를 직관하고 판단하는 방식으로서 인식적
2. 예술가가 아름다운 형식 혹은 예술적 형식을 통해 자기 예술 속에 표현하는데 성공한 예술적 내용을 직관하고 판단하는 방식으로서 인식적
4.4. 미와 숭고
칸트 미와 숭고의 구분
미를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
예술미와 자연미를 구분하고 있으면서 이들 양자의 공통적인 성격을 규명
예술은 항상 그것이 예술이라는 점 때문에, 자연처럼 보여야 한다.
“예술의 소산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이 기술(Kunst)이요, 결코 자연(Natur)이 아니라고 함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예술의 산물의 형식에 있어서의 합목적성은 임의의 규칙들의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있어서, 마치 예술의 산물은 순전한 자연의 산물인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예술의 산물에 있어서의 합목적성은 비록 의도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의도적인 것으로 보여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예술은 비록 우리가 그것을 기술로서 의식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연으로 간주될 수 있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예술은 비록 우리가 그것을 기술로서 의식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연으로 간주될 수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예술의 산물이 자연으로 보이는 까닭은 예술의 산물은 규칙들에 의거함으로서만 의도된 산물이 될 수 있는 만큼 물로 이러한 규칙들과는 아주 정확하게 합치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고심의 흔적이 없고 격식에 구애되는 형식이 엿보이는 일이 없으며, 다시 말해 규칙이 예술가의 눈앞에 아른거려서 그의 마음의 힘들을 속박했다는 자취를 보이는 일이 없다고 하는데 있다.”
역으로 자연은 그것이 예술처럼 보일 때 아름답다
자연미는 예술미에 비해 보다 자유롭고 보다 순수하다
문학을 포함한 재현 예술들은 보다 덜 자유롭고, 덜 순수하기는 하지만 자연적으로 추한 대상을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자연미란 하나의 아름다운 사물(schoenes Ding)이며, 예술이란 하나의 사물에 관한 아름다운 표상(schoene Vorstellung von einem Dinge)이다. ... 예술은 자연에 있어서는 추하거나 혹은 불쾌한 사물들을 아름답게 묘사하는데 그 장점이 있다”
미와 숭고의 구분:
미가 즐거움의 감정을 야기시켜 주는 대상에 합법적으로 귀속되고 있는데 반해, 자연물이건 인공물이건 숭고의 감정을 고취시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숭고한 것이 나니다.
“우리들이 자연의 많은 대상들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만, 자연의 그 어떤 대상을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 왜냐하면 본래 숭고란 감성적 형식에 보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이념들에만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폭풍우 때문에 파도가 높이 치는 넓은 대양은 결코 숭고하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로부터 또한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참된 숭고는 오직 판단자의 마음속에서만 찾아져야 하는 것이요, 자연물의 판정이 마음의 그러한 상태를 유발한다고 해서 자연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가 특수한 종류의 객관적 성질(형식)을 기술하는 말
숭고는 주관의 심리적 상태를 기술해 주는 말
숭고는 자연 사물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상태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숭고를 이렇게 서술할 수 있겠다. 즉 숭고란 [자연의] 어떤 대상의 표상이 자연의 불가도달성을 이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도록 [우리의]마음을 규정해 주는 그러한 대상을 말한다.”
숭고를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 숭고한 예술에 대해서:
칸트에 있어서 숭고의 감정이란 본질적으로 도덕적 의식의 산물이다.
종속미에 관한 설명속에서 미가 도덕적 이념들과 결부될 수 있는 가능성 제시
“인간미, 말의 미, 건축물의 미는 그 사물이 무엇이어야만 하는가를 규정하는 목적의 개념, 따라서 그 사물의 완전성의 개념을 전제하는 것이요, 그 때문에 그것은 종속미가 되고 있다. 그러나 유쾌한 것(감각)이 본래는 형식에만 관계하는 미와 결합되면 취미판단의 순수성이 손상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사물의 다양이 그 목적으로 보아 그 사물 자체에 좋다고 하는 것)이 미와 결합되어도 취미판단의 순수성은 파괴되고 만다.
또한 숭고한 것의 표현(Darstellung)역시 그것이 예술에 속하고 있는 한, 운문으로 된 비극과 교훈시 및 성악극에 있어서는 미와 합치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결합에 있어서 예술은 한층 더 기교적(kunstlich)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보다 아름답게 되는 것이진(왜냐하면, 다양한 여러 종류의 만족이 서로 교차하기 때문에)하는 문제는 이러한 경우의 몇몇 사례들에 있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칸트의 입장에서 순수한 미적인 즐거움을 벗어나는 사례로 모두가 문학으로부터 혹은 언어가 응용되고 있는 혼합 예술로부터 선택되고 있다.
“모든 예술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관찰과 판정에 대해 합목적적인 형식에 있는 것이지(이 경우 즐거움은 동시에 도야이며, 정신을 이념에 공명케하여, 따라서 정신으로 하여금 그러한 쾌와 즐거움을 더욱 많이 느끼게 한다), 감각의 질료인 자극이나 또는 정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경우 향락만이 목표가 되고 있으며, 이 향락은 이념에 아무 것도 남기는 것이 없으며, 정신을 둔감하게 만든다). 만약 예술이 유독 독자적인 만족을 수반하는 도덕적 이념과 가깝게든 멀게든 결부되지 않는다면 위에서 말한 예술의 최종적인 운명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 경우에 있어서 예술은 오락(Zerstreung)을 위해서만 이바지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