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 걷기를 마치며....
서울 한강 걷기 - 다음지도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는 모습에서 삼국시대에는 허리때를 두른 것 같다 하여 帶水라 했다
고구려 광개토왕비에 표기 되어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의 수돗물인 아리수 등으로 불리어 왔는데
한반도 중앙을 흐르는 한강(큰 물)에 대한 삼국시대부터 열망이 큰 만큼 역사적으로 누구도 주인을 가리지 못하다.
조선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서울을 수도로 하면서 큰 물이라는 '한물'의 뜻을 가진 漢江의 시대가 열렸다.
광나루(광진)에서부터의 한강을 따로 불렀다는 서울 한강 경강京江은 어떤 역사들을 남겼는지 답사를 떠나본다..
현재의 눈으로 바라보며 걸었던 서울 한강은 잘 짜여진 각본처럼 적재적소에 시민의 눈에 맞춰 시설을 갖추다 보니
힐링으로 건강도 챙기고 눈요기까지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서울시민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였다.
나룻배가 바쁘게 오가며 사람들과 각종 짐이 넘쳐났을 나루에는 대교라는 이름으로 튼튼한 다리가 대신하고
물가에 앉아 그물코를 깁던 어부의 소리대신 제한적으로 허용된 낚시꾼들의 일상이 대신하고
소달구지로 나룻터까지 물짐을 나르던 한강변에는 복잡하게 얽힌 도로따라 쉴세없이 자동차가 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각조각 남아있는 곳에 설치한 표지석을 따라 걷다보니 보이지 않던 서울 한강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번 답사에서 가장 큰 수학은 아무래도 각 동마다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전례대로 이어지고 있는 부군당의 발견이다.
답사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한강변에 남아 있는 정자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느끼고자 시작했던 나를 부끄럽게 해준
답사를 준비하면서 하나씩 나타나는 부군당의 존재는 답사의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해 준 결과물이다.
한강걷기 시작점... 어디를 기준으로 할까 고민하다 단종의 역사적 사실을 담고자 살곶이 다리부터 시작한다
서울에서 여주, 원주, 영월까지 이어지는 단종이 남긴 흔적들을 찾아가는 답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흔적은 몇 번 답사했으므로 거기에 이어지는 흔적들도 함께 답사할 겸 해서..
단종이 영도교에서 생이별을 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나기 위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나루까지의 흔적을 먼저 걷는다..
- 처음 서울 한강 걷기를 하면서 쓴 머릿글에서 -
지금은 모든 역사의 영욕을 뒤로한채 느티나무만이 지키고 있는 화양정華陽亭 터..
백성들은 단종의 회행정回行亭의 꿈을 담아 그렇게 불렀지만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긴 강을 건넜으니..
그럼에도 역사는 참으로 기구한 것.. 명성왕후에게는 회행정回行亭의 기쁨을 선사했으니..
화양정터 옛 모습.. 이제 곧 만나게될 말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 조금만 내려가면 건국대 일감호一鑑湖이다.
리버힐 오피스텔앞에 있는 광나루에서 서울 한강걷기 첫번째 출발을 알리고..
조선시대 말산업의 전초기지였던 도성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에 말을 기르기 좋은 조건을 갖춘 중량천이 만나는 한강을 주변으로
전관원箭串院(살곶이)과 다리, 마조단馬祖壇, 일감호一鑑湖(건국대내 호수), 모진동毛陳洞, 자양로紫陽洞등 말지명들이 남아 있고..
응봉산에서 본 중랑천과 한강의 합수점과 서울 숲.. 현재의 서울숲이 중랑천 주변 옛모습이였을 것이다.
임금까지 나와서 사냥도 즐기고 훈련하는 모습도 참관하고.. 놀았던 살곶이 다리
모진동毛陳洞 (現 화양동) 모진여인(동네)의 유래... 근처의 수렁이 바로 여기 일감호였다고 한다..
여기 빠져죽은 말들을 여인들이 어떻게든 건져내 그 고기를 나눠먹었다는.. 그래서 사람들은 모진여인이라 불렀다.
중랑천을 넘어 달맞이 공원과 매봉산이 만들어낸 절경 동호東湖에 자리잡아 그래서 이름도 옥수동에 있었다는
인제 등용문 동호 독서당을 중심으로 이이李珥가 지었다는 '동호문답東湖問答'이란 걸작의 탄생 배경이 되었고
국가의 중요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하여 건립한 전문 독서연구기구인 독서당 중 동호 독서당 표지석
응봉산 정상의 안내문에서 독서당 옛 사진.. 이 현위치가 맞다면 현재의 매봉아래 동호 독서당이 있었고
바로 아래 한강이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위치 아래까지 한강이였다는 얘기인데..
먹물 익어가는 소리를 뒤로하고 이름도 햇갈리는 분명 한강북쪽에 있는데 왜 한남동이지? 물음에 답을 주던 한남동 답사..
한강에서 바라본 남산.. 한강과 남산 사이의 동네 한남동..
제3한강교 한남대교 건설로 발전의 수혜자였던 UN빌리지등 외국적 냄새가 나는 동내에
농업을 관장하던 신인 별님에게 제사를 지내던 영성단靈星壇터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유엔빌리지와는 분위기가 다른 또 다른 언덕을 벗삼은 한남동의 모습..
유난히 절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보광동普光洞의 동명 유래가 된 보광당 부군당을 조금 멀어도 만났던 이유이며
보광국사가 세운 보광사에서 유래를 찾는 보광동普光洞.. 보광사 답사 가는 길.. 다음지도
다시 되돌아 나오는데.. 내 나이 때 되시는 분들 추억의 이름.. 의식적으로 이렇게 설계를 한 듯.. 은하철도에서 보는 한강 풍경..
현재의 눈으로 보면 신기했던 얼음 산업의 중심지였던 동빙고, 서빙고를 지나면서 보안사 서빙고 분실이 오버랩되고
서빙고 나루터를 지나면서
장마가 지면 홍수를 피해 강변으로 옮아 살았던 이촌동(移村洞)에는 국사범등 중죄인을 처형하기 좋은 곳이다보니
한 때 사육신의 처형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아픈 역사에 다시 천주교 신자들이 받아들여야 했던 새남터 성지가 있고..
조선 총독부가 있던 용산역을 중심으로의 철도산업의 발달은 신용산시대를 열어 주었는데..
철도 산업의 발달로 신용산 탄생과 함께 헀던 근대양식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건물인 용산 철도병원이 증명해주고
새남터성지
철도 산업이 신용산 시대를 열었다면 성심여고를 중심으로 구용산 지역은 용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 위해 찾았는데..
강변의 일출과 낙조가 아름다워 추흥정秋興亭, 심원정心遠亭, 삼호정三湖亭, 함벽정涵碧亭 등 정자를 남겼다.
성심여고 정문 앞 안내문의 사진 한장이 여기가 함벽정이였다는 사실.. 1900년대 용산신학교 모습과 성당까지 보여주고
후문에는 삼호정이 있고 조금 내려오면 용산 문화원에 심원정이 있었다.
청암동의 강안으로 돌출한 벼랑창(용머리, 부루배기)에 있었던 별영창, 담담정淡淡亭, 풍월정(風月亭)등을 지나면
마포 주물럭의 탄생 배경이 된 마포종점을 중심으로 토정 이지함 선생이 남긴 흔적들이 실학을 실천하셨다는게
토정비결보다 더 가슴한켠을 뭉클하게 했던 집터와 삼개나루에 남겨진 흔적들이 지금까지 잔상으로 남아있고
토정비결만이 아니라.. 토정의 또 다른 일화를 알 수 있는 작품들과 함께 도로변에 설치해 놓았다.
마포나루를 지나면
마포에서 토정을 만났다면 현석동에서는 동명 유래가 된 현석 박세채를 만날 수 있다.. 밤섬 현대 아파트 정문 앞
박세채 집터가 남아 있는 밤섬 전망대인 밤섬공원에 세워진 현대적 정자인 율형정(栗馨亭)
율형정에서 본 밤섬과 마포대교.. 율형정을 주위로 수많은 정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현재도 진행형..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진을 치고 있어서 유래를 찾는 당인동唐人洞엔 군대대신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있고
절두산성지로 불리는 잠두봉 천주교 성지에는 답사하는 날에도 많은 분들이 참배를 하시고 있었다.
조개우물이 있었다는 합정동蛤井洞에 왠 포은 정몽주?의 뒷모습(양화대교 북단)..
경리단길로 유명한 망원동의 도로가 포은로로 되어 있어 세운 것일까? 금방이라도 포은로로 걸어가실 듯..
미리 답사했던 망원동의 유래가 된 망원정(희우정)과 홍제천 그리고 하늘공원을 지나면 서울 한강 북쪽의 답사는 끝이나고..
홍제천과 한강의 합수점.. 한강 좌측은 서울 한강 마지막인 강서구이고 우측은 난지도로 이어지고..
월드컵 공원에서 본 하늘공원
난지한강공원
자료 : 개화산 전망대 안내판에서.. 난지도의 옛모습.. 한강에 쓰레기 산이 생길줄이야.. 그림 해석은?
노을공원에서 본 고양시 한강의 산군들.. 이제 한강 답사는 서울이 아니고 고양시 한강 답사라고 해야 하나?
앞 대덕산에서 멀리 행주산성을 지나 답사 예정..
한강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