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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섭법四攝法에서 「보시報施」는 육바라밀의 보시와 다르다. 육바라밀을 사람에 대해, 일에 대해, 물건에 대해 실현하면 그 마음상태가 곧 사섭四攝이다. 그래서 사섭의 보시는 범위가 매우 좁다. 요즘 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가 오고감을 숭상함(禮尙往來)이다. 명절을 맞이하여 부부 사이 · 형제 사이 · 친구 사이 · 친척 사이에 응당 작은 예물을 주고받고, 언제나 한 곳에서 회식하여야 비로소 감정이 좋을 수 있고, 오해를 없앨 수 있다. 「애어愛語」는 진정으로 사랑하고 보살피는 말에서 질책 · 권유 · 훈계가 나와야 한다. 「이행利行」에서 이利는 이익이다. 모든 일체 행위가 사회에 대해 중생에게 긍정적인 이익이 있고, 결코 부정적인 면이 없다. 「동사同事」는 중생을 접인하는 수단 · 방법으로 곧 수연 隨緣이다. 우리가 다른 민족, 다른 종교, 다른 문화와 접할 때 모두 사이좋게 지내며 집착하지 않음이 곧 동사이다. 예컨대 일본에 가면 생활 · 기거를 완전히 일본의 도량에 수순하는 것이다.
「원願」. 보현보살은 대원을 대표한다. 보현보살이 일반 대승보살과 다른 점은 곧 그의 심량이 허공법계와 같다는 것이다. “마음은 태허를 감싸고 도량은 항하사 세계에 두루 하느니라(心包太虛 量周沙界).” 경전에서는 보살이 보현행을 닦지 않으면 불도를 원만히 이룰 수 없다 말씀하신다. ≪무량수경≫에 이르시길, “모두 같이 보현대사의 덕을 쫓아 수학하고(咸共遵修普賢大士之德)”라 하셨다. 정토법문은 보현행을 닦는 것이다. 극락세계는 보현보살의 법계이다. 그래서 정토법문과 보현보살의 관계는 너무나 밀접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성불을 시현하시고 첫 번째로 ≪화엄경≫을 강설하셨다. 보현보살은 화엄회상에서 십대원왕十大願王으로써 극락으로 인도하여 돌아간다. 그래서 보현보살은 사바세계 정종(정토종)의 초조이다.
그래서 정토를 닦으면서 보현행을 닦지 않으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없다. 위묵심魏黙深 거사가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정토삼부경에 참구한 후 정토 사경을 이룬 이치가 여기에 있다! 보현행은 곧 ≪화엄경≫ 전체의 행문行文으로 ≪화엄경≫ 말후에 행문을 귀납하여 열 가지 총강으로 삼고서 「십대원왕十大願王」이라 하였다.
첫째 「예경제불禮敬諸佛」. 제불은 과거불 · 현재불 · 미래불이다. 우리는 특별히 미래불에 중점을 둔다. 미래불은 일체 중생이다. 바꾸어 말하면 중생 한 명에게 죄를 지으면 곧 부처님 한 분께 죄를 지음이다. 어떤 사람이 보현행을 닦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말하면 법신보살이 일품 무명을 깨뜨려 일분 법신을 증득하여 보현행을 닦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범부도 착실히 노력하며 학습하여 예경禮敬의 마음 · 예경의 행에 다가갈 수 있길 희망한다. 예경은 평등한 것으로 절대 선과 악, 삿됨과 올바름을 구분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일체 유정중생 · 무정중생은 모두 미래불이기 때문이다.
둘째 「칭찬여래稱讚如來」. 칭찬과 예경은 다르다. 칭찬의 경우 심행心行이 법성과 상응하여야 칭찬하고, 법성과 상응하지 못하면 칭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의 언행이 불법의 경교와 상응하여야 우리는 찬탄한다. 경교와 상응하지 않으면 찬탄하지 못한다.
셋째 「광수공양廣修供養」. 공양은 가장 존경하는 마음으로써 일체 중생을 부모님과 같이, 일체제불과 같이, 부처님과 부모님과 일체 중생을 모두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승보살은 보시이고, 보현보살은 공양이다. 모든 공양 중에서 법공양이 최상이니, 이는 복덕과 지혜를 함께 닦는 것(福慧雙修)이다. 여래과지如來果地 상에서 무량무변한 대복이 있는데 어디에서 오는가? 공양을 널리 닦음, 특히 법공양에서 대복이 생긴다.
넷째 「참회업장懺悔業障」. 업장이 우리 자성이 갖추고 있는 반야지혜 · 덕능 · 상호를 장애한다. 업장은 참회하지 않으면 명심견성明心見性할 수 없고, 지혜는 영원히 드러날 수 없다.
다섯째 「수희공덕隨喜功德」. 일체 중생에게는 모두 질투의 장애가 있다. 수희공덕은 이러한 질투의 장애를 대치對治할 수 있다. 중생은 어리석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는 걸 보면 마음속으로 지내기 어려워 방법을 강구하여 장애하고 파괴한다. 이러한 죄업은 매우 무겁다. 만약 이러한 좋은 일이 사회에 대해, 중생에 대해 매우 큰 영향이 있으면 영향이 클수록 그 죄는 더욱 무겁다. 세상 사람의 어리석음이 절정에 이르면 죄업을 짓는 크기를 알 수 없다.
≪발기보살수승지락경發起菩薩殊勝志樂經≫에서 말씀하시길, 비구 두 사람이 경전을 강설하고 설법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질투의 장애로 헛소문을 퍼뜨려 사건을 일으켰고 도량을 파괴하였으며, 최후에는 죄업을 지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이는 강경講經법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능엄경≫에서 말씀하시길, “마음을 내어 일체 중생의 무량한 공덕을 원만히 이루고자 하였다(發意圓成一切衆生無量功德).” 하셨다. 그가 발심하여 이 경전을 강설하면 비록 중도에 사람이 파괴할지라도 강경법사의 공덕은 원만하다. 도량을 파괴하면 중생이 법문을 듣는 기연機緣을 장애하고, 중생이 제도 받음을 장애한다. 이러한 죄업은 중생으로부터, 도량으로부터 맺은 것으로 강경법사와 조금도 관계가 없다.
이에 반해, 따라 기뻐하는 공덕은 강경법사가 홍법하는 공덕과 같다. 그래서 따라 기뻐하는 사람은 가장 총명하다. 한 법사가 경전을 강설하면서 고생을 하여야 비로소 공덕이 원만하다 말하였는데, 그가 수희심隨喜心을 내면 그 공덕은 경전을 강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크다. 이는 마치 등으로 등불을 켜는 것과 같다. 법사는 하나의 등이고, 우리 자신도 하나의 등이다. 나의 이런 등을 그의 발광체를 빌려 밝히면 나는 조금도 힘을 들일 필요가 없고, 빛이 그와 마찬가지로 크다. 이는 곧 깨달음과 미혹도 마찬가지이다. 일념을 깨달으면 무량공덕을 닦고, 일념을 미혹하면 무량무변한 죄업을 짓는다. 그래서 한 사람이 좋은 일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역량이 있다면 그를 도와야 하고, 역량이 없으면 환희심을 내어야 한다. 법사가 경전을 강설할 때 내가 강설하지 못하지만 모든 아는 사람에게 와서 들어보라 권유하면 이렇게 경전 강설을 듣는 이익은 모두 연분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공덕을 성취함은 일념의 순간에 달려있다.
여섯째 「청정법륜請轉法輪」. 법사대덕을 초청하여 경전강설을 청하여 망자인 무형의 중생과 세상사람 모두 이익을 얻게 된다(冥陽兩利). 경전 강설의 도량에서 무형의 중생은 유형의 중생보다 매우 많다. 그래서 도량을 성취하고 도량을 찬탄하면 그 공덕이 말로 다할 수 없다. 이를 알아야 진정으로 수희공덕 · 청정법륜을 닦게 된다.
일곱째 「제불주세諸佛住世」. 이는 정법을 호지護持하여 세상에 오래 머물게 함이다. 앞쪽의 일곱 가지는 원願이어서, 염념마다 버리지 않는다. 뒤쪽 세 가지는 회향이다.
여덟째 「항순불학常隨佛學」 은 보리에 회향함이고,
아홉째 「항순중생恒順衆生」 은 중생에 회향함이다.
열째 「보개회향普皆迴向」 은 법성法性에 회향하고 실제實際에 회향함이다.
실제는 곧 자성이다. 최후에 자성으로 회귀하면 성덕性德이 충실하다. 자성은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으며 오지도 가지도 않으니, 어찌 무엇이 충실할 수 있겠는가? 실제에 회향함은 곧 우리의 성덕, 즉 자성이 본래 가주고 있는 지혜 · 덕능 · 상호가 원만하게 드러내 보이길 희망한다. 마치 제불여래처럼 광명이 허공법계에 두루 비춤이 곧 실제에 회향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실제에 회향함은 곧 자신이 구경원만한 불과를 증득함이다.
대과大果 : 무상보리無上菩提
「무상보리無上菩提」는 대과이다. 「無上무상」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이는 여래과지如來果地 상의 명호로 우리가 학불하는 종극적인 목표이다.
대도大道를 닦고 · 대덕大德을 기르고 · 대행大行을 밟고 · 대과大果를 증득해야 불조佛祖가 스스로 행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대사大事를 통달할 수 있다! 불佛은 제불여래이고, 조祖는 조사 · 대덕이다. 자행自行은 진실한 지혜이고, 자행화타自行化他의 대사는 원만하다. 이 네 마디 열여섯 글자는 불법의 대총지법문 大總持法門이고, 그 가운데 전체 불법을 원만하게 포괄한다.
-《삼덕육도십대원왕三福六度十大願王》에서 발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온 우주 법계에 회향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첫댓글 일념을 깨달으면 무량공덕을 닦고, 일념을 미혹하면 무량무변한 죄업을 짓는다. 그래서 한 사람이 좋은 일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역량이 있다면 그를 도와야 하고, 역량이 없으면 환희심을 내어야 한다. 법사가 경전을 강설할 때 내가 강설하지 못하지만 모든 아는 사람에게 와서 들어보라 권유하면 이렇게 경전 강설을 듣는 이익은 모두 연분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공덕을 성취함은 일념의 순간에 달려있다.ㅡㅡㅡㅡ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공양은 가장 존경하는 마음으로써 일체 중생을 부모님과 같이, 일체제불과 같이, 부처님과 부모님과 일체 중생을 모두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승보살은 보시이고, 보현보살은 공양이다. 모든 공양 중에서 법공양이 최상이니, 이는 복덕과 지혜를 함께 닦는 것(福慧雙修)이다. 여래과지如來果地 상에서 무량무변한 대복이 있는데 어디에서 오는가? 공양을 널리 닦음, 특히 법공양에서 대복이 생긴다...한결같은 마음으로 법공양 올리시는 불자님들의 수희공덕을 찬탄합니다 이 인연공덕으로 금생에 꼭 반드시 윤회를 벗어나서 정토에서 모든 인연들과 함께 최상의 복락을 누리시기를 축원 올립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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