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넥 카라는 뜨거운 감자와 같다.
넥 카라를 채워야 할 때마다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고집이 센 땅꼬는 저항하고 그 저항의 강도가 잦아들지 않는다. 덕분에 땅꼬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면 내 삶의 질도 덩달아 떨어진다. 잠들지 못하는 땅꼬는 밤 새 침대로 오르내리면서 내게 이마를 부비고 싶어하지만 땅꼬의 이마는 내게 닿지 않는다. 그 5센티 정도의 거리가 내게도 견디기 쉽지 않다. 넥 카라는 땅꼬에게만 고통이 아니라 내게도 고통이다. 밥도 물도 배변도 그루밍도 접촉도 활동도 편안한 잠도 제약을 당해야 하는 고문과 같은 상황. 그걸 지켜봐야 하는 나 역시 심한 갈등에 휩싸인다.
나 같으면 넥 카라를 채우는 상대에 대해서 어머어마한 적개심이 일고 공격 본능이 발동할텐데 땅꼬는 발톱을 세우지 않는다. 그저 나 힘들어요... 다정하게 다정하게 항변할 뿐이다. 그 부드럽고 품위있는 설득의 방식은 내가 땅꼬에게 경탄하는 몇 가지 매너 중 하나다. 매번 깨닫게 되는 의외의 진실. 사람보다, 아니 나보다 고양이들이, 아니 땅꼬가 훨씬 더 관대하고 침착하고 예의바르고 매너가 아름답다.
내가 인간의 방식으로 땅꼬를 고문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 스트레스와 그루밍 중에서 과연 무엇이 더 치유에 해로울까? 넥카라를 하지 않는 길고양이들의 상처는 그럼 어떻게 치유되는 거지? 자연 치유... 스스로를 치유할 힘이 야생의 동물들에게는 있다고 들었다. 자연치유를 포기한 인간의 방식을 땅꼬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땅꼬는 산책냥이다. 아침, 저녁 1시간 반 정도 씩 산책을 나간다. 나갈 때는 아파트 공동 현관까지 엘리베이터에 동승해 배웅하고 돌아올 때는 공동 현관 앞 은밀한 곳에서 기다리는 땅꼬를 데리고 올라온다. 오래된 루틴이다. 번거롭지만 땅꼬와의 동거를 선택한 이상 치뤄야 할 수고다. 땅꼬는 이젠 우리 아파트의 셀럽이 되었다.
모험심이 강한 땅꼬는 종종 주변의 길냥이들과 영역 싸움을 벌이다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아물었다. 고양이 산책을 비난하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잘 알고 있다. 고양이 전문가라는 이들도 한결같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고양이들도 저마다의 성격과 생애의 특수한 맥락들이 있다. 땅꼬는 우리 아파트 정원에 기거하던 길냥이었다. 대략 6개월 정도 되는 시기, 추위가 매서워지던 날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 동네는 땅꼬에게 익숙한 영역이고 우리 아파트는 바로 뒷산에 면해 있는 한적한 주거지... 산책냥이로 살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이런 사건이 생기면 매번 고민하는 나와 달리 땅꼬는 두려움을 툭 털고 다시 산책을 조른다. 굴하지 않는다. 그저 고양이 습성이라고? 바깥 바람.... 공적 영역에서의 자신의 입지... 우리와 다를 게 무엇인가? 그렇게 살다보면 세파를 겪는다. 자유를 위해 치뤄야 할 대가가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고양이들에게도...
5년 반 동안 이번의 경우까지 포함해 세 번 넥카라를 채웠다.
중성화 수술을 하고 난 뒤, 그 후 등에서 발견된 고름이 차있는 깊은 상처때문에, 그리고 길냥이 영역에 들어갔다가 당한 이번 경우.
중성화 후 아랫배에 감은 붕대를 지독하게 못견뎌해서 번번이 상처가 노출되어 넥 카라를 채웠는데 그 후 우연히 등을 쓰다듬다 발견하게 된 등쪽의 상처. 그 상처의 통증 때문에 붕대를 못견뎌한 것이었다. 그 상처는 발정기 때 서툰 수컷이 잘못 올라타서 생긴 상처였다. 동물 병원에서는 상처 부위 위에 설탕을 두텁게 발랐다. 핥아도 영향을 덜 받게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넥카라를 채웠다. 이번엔 열이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갔고 또 진료를 못견뎌하고 심하게 저항해서 분명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 또 다른 상처가 있을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다 뒷다리 안쪽 허벅지에도 상처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항생제와 함께 포비든을 바르고 넥카라를 채웠다.
...
넥카라가 옳을까 자연치유가 옳을까?
상처의 경과를 관찰한다. 뒷다리 허벅지 안쪽 상처는 넥카라에 쓸려 더 악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넥카라를 하기 전 왼쪽 앞다리 허벅지 쪽 상처는 진작 아물어 있었다. 그래서 깊은 한숨을 쉬고 넥 카라를 풀고 땅꼬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땅꼬는 즉각 그루밍을 개시한다. 오래 그루밍을 하지 못해 진물과 포비든으로 범벅이 된 상처 부근의 털을 핥기 시작한다. 상처에 혀가 닿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렇다고 포비든을 바를 수는 없다. 그걸 바르면 상처까지 핥을 수도 있고 그 약이 몸에 좋을리 없다.
항생제는 먹이고 있으니... 지켜보기로 한다. 다음날 상처를 관찰한다. 상처 바깥쪽부터 새 살이 차오르고 있다. 아마도 땅꼬는 상처의 부위만 핥을 뿐 상처를 직접 핥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상처 부근의 오염을 침으로 핥아 청결하게 하는 게 소독도 되고 상처에 이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날이 상처가 좁아지고 있다.
그래... 이번에도 또 네가 나보다 낫다.
나는 오래 앓고 있는 만성의 피부 염증이 있다. 번번이 손을 타고 아물지를 않는다. 그럼 내 두 팔에 수갑을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만성의 염증을 택할지언정 수갑을 택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내가 네게 넥카라를 채울 자격이 있겠는가?
덕분에 나도 배운다. 너는 상처를 돌볼 뿐 악화시키지는 않는 분별력이 있구나.
나도 그래야겠다.
그래... 언젠가 우리가 더 나이가 들어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면...
자연에서는 그렇겠지. 순리대로, 순서대로, 오고 가겠지.
하지만 살면서 넥카라든, 수갑이든... 그렇게는 말자.
얼른 낫자. 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