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창세 12,1-4ㄱ / 시편 33,4-5. 18-19. 20과 22 / 2티모 1,8ㄴ-10 / 마태 17,1-9
나해: 창세 22,1-2. 9ㄱ. 10-13. 15-18 / 시편 116,10. 15-19 / 로마 8,31ㄴ-34 / 마르 9,2-10
다해: 창세 15,5-12. 17-18 / 시편 27,1.7-8. 9. 13-14 / 필리 3,17-4,1 / 루카 9,28ㄴ-36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루카 9,32)
나이 듦, 고통, 질병, 관계가 깨어짐, 죽음, 모든 인간은 어느 때고 이런 것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어떻게 해서든 그런 것들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불합리하게 현실을 부정하고, 예상되는 것들에서 우리는 예외라고 고집합니다.
불행하게도 어떤 나쁜 일이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나면,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것으로 인해 고통이 더 심해집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달아나려 합니다. 어쩌면 슬픔의 탄식을 기쁨의 탄성으로 억누르면서 쾌락주의자의 길을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또는 우리가 자제심이 강하고 고통에 면역성을 가진 척하면서 회피하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고통을 피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자신의 미래를 통제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모든 선택지가 우리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우리의 감정을 무디게 하고 걱정으로 가득 차게 하며 장기적으로 보면 고통을 심하게 할 뿐입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은 현실을 회피하면서 삶에 대응하도록 일시적으로 깊은 잠에 빠뜨리는 마취와 같습니다.
우리는 쾌락으로 고통을 압도하거나 고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면서 평생 잠을 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우리는 고통스러움과 경이로움 모두를 잃게 됩니다.
제자들은 겟세마니 동산의 두려움 앞에서도, 거룩한 변모의 경이로움 앞에서도 잠을 잤습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은 삶의 아름다움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의 일부를 피하려 하면 삶 전체를 피하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자연적인 죽음보다 먼저 죽음을 껴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원하시기만 하면 고통을 피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분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상의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고통을 초월하는 방법은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을 다라가는 것이지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깊이 체험하는 것을 선택하셨고, 그렇게 하심으로써 고통을 변모시키셨습니다.
이점을 알면서도, 어떤 사람등은 여전히 우리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거나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으면 인간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과 약함을 극복하려 애쓰기보다는 그것을 늘 기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메멘토 모리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고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약하다는 것과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에 일으키시고자 하는 변모에 협력하고 그것을 목격할 수 있도록 깨어있게 해줍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를 깨어있게 하고 집중하게 하며, 몹시 고통스러운 어려운 일들과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일들 중 무엇이 일어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루의 성찰과 중재기도
1단계: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십시오.
눈을 감고, 셀를 통해 내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나 자신을, 모든것을 아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바라보고 계시는 어린아이로 상상하십시오.
사랑이신 하느님의 눈길을 통해 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자기중심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삶에 대한 하느님의 관점만이 중요하기에, 이 단계는 성찰을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단계입니다.
2단계: 성령의 인도를 청하십시오.
하느님 은총의 빛 안에서 하루를 돌아볼 수 있도록, 성령께 도움을 청하는 짧은 기도를 바칩니다.
3단계: 하루를 되돌아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오늘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리고 "나는 하느님과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했는가?"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루의 어떤 두드러진 순간이 떠오르면 거기에 잠시 머무십시오.
그러나 이 단게는 고해성사를 준비할 때의 양심 성찰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에 주목하며
그것들을 감사하는 마음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내어드리십시오.
4단계: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삶의 마지막 순간의 관점에서 하루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임종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영원한 삶과 관련하여 이전 단계에서 떠올랐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이 단계에서는, 그날 하늘나라를 위해 나에게 준비된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더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필요한 은총을 청하십시오.
"내가 내일 죽는다면, 하느님께 어떤 은총을 청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5단계: 내일을 예비하십시오.
다음 날을 미리 바라보고 예비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이 단계에서는, 또 다른 하루의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선물은 하느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다음 날 일어날 일들, 특히 특별한 은총이 필요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일 맞닥뜨릴 시련이나 기쁨의 순간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믿고 그 은총 안에서 행동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단계를 충실히 하면, 삶 안에서 구체적인 행동과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이들 가운데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된 이들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모든 중독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성모송을 바치십시오
플라톤은 현명한 사람의 전 생애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철학자들은 그 생각을 칭찬하며 하늘 높이 칭송합니다.
그러나 훨씬 더 강력한 것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1코린15,31) 어떤 이상을 갖는 것과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죽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죽는 것은 다릅니다. 현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모두 죽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죽음으로 그의 영광이 끝나며, 후자는 죽어서 영광스럽게 됩니다.
아, 아주 높은 망루에 올라가서 발아래 펼쳐진 온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러면 저는 여러분에게 민족이 민족에 맞서 전쟁을 하고 왕국과 왕국이 충돌하는 세상의 파멸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고문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파도에 휩쓸리고 노예로 팔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결혼식을 올리고 한쪽에서는 장례식을 치룹니다. 한쪽에서는 태어나고 한쪽에서는 죽습니다.
어떤 이는 풍요롭게 살고 어떤 이는 빵을 구걸합니다.
지금 살아있는 이 새상의 모든 주민은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이토록 광대한 주제에 언어는 부적절합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진실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눈을 돌려봅시다.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더 밀접하게 관련된 것들을 잠시 보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자신이 성장한 단계들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자신이 언제 아기가 되고, 어린이가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었는지 그 시점을 특정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변하고 날마다 죽어가고 있지만 우리 자신이 영원할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제가 구술하고, 쓰고, 쓴 것을 다시 읽고 수정하는 매 순간이 제 삶에서 떨어져 나간 순간들입니다.
제 비서가 찍는 점 하나하나가 제게 주어진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순간입니다.
우리는 편지를 쓰고 답장을 하고, 우리의 서신은 바다를 건넙니다.
그리고 배가 파도 사이를 허쳐 나가듯 우리가 살아갈 순간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집니다.
우리의 유일한 이득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함께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 예로니모
묵상과 기도 기록하기
* 살아가면서 잠을 자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지나친 전자기기 사용?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계속 보는 것? 쇼핑?
재산 관리에 몰두하는 것?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걱정?
그 목록을 작성해서 조용히 하느님 앞으로 가져오십시오.
* 고통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고통을 겪어내며 성장하는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적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