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맛 포항 과메기
내가 어릴 때 대동배에 배를 가진 친척이 살았다. 어머니는 해산물도 사고 일가붙이도 만날 겸 가끔 그곳에 들렀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소달구지에 햅쌀이며 김장거리를 싣고 가곤 했다. 하루해가 꼬박 걸리는 먼 길을 소와 함께 걷다 보면 어스름녘 바닷가에 조개깍지 같은 작은 집이 나타났다. 모래밭과 맞닿은 마당에 하얗게 앉았던 갈매기들이 후다닥 날아오르고, 그 날갯짓 뒤로 아주머니가 달려 나왔다.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아주머니에게서 비린내가 확 풍겼다. 내게는 싫지 않은 냄새, 생선을 만지던 중이라며 토담 너머를 가리켰다. 기다란 대나무 시렁에 짚으로 엮은 생선들이 매달렸다. 생선 휘장을 쳐놓은 것 같았다. 거기 바람이 가득했다. 산바람이 머물고 바닷바람이 넘나들었다. 은비늘이 반짝이는 생선들은 하나같이 바다를 향해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 진격 명령만 떨어지면 앞으로 돌격할 병정같이, 풍덩 바다에 뛰어들면 금방이라도 다시 헤엄쳐 나갈 태세였다. 그게 과메기였다.
과메기는 청어와 꽁치로 만든다. 생선이 바닷바람에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속까지 꾸둑꾸둑해진다. 겉과 속이 말라도 모양은 그대로이다. 마를수록 기름기가 배어나 윤기가 나고 푸르스름한 빛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 맛이 일품이다. 껍질을 벗기고 뼈를 바른 다음, 손으로 쭉쭉 찢어 입에 넣으면 녹진한 살점이 혀끝에 느껴지고 씹을수록 쫄깃쫄깃하다. 찬바람에 마르면서 숙성되어 비린내는 사라지고 구수함이 더해져 감칠맛이 난다.
과메기란 명칭은 청어의 눈을 꼬챙이에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했다. ‘목’은 구룡포 방언으로 ‘메기’라 하고 관메기에서 과메기로 굳어졌다. 얼고 말리는 숙성 과정에서 어린이 성장과 피부미용에 좋은 DHA와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져, 노화나 체력저하 뇌 쇠퇴 방지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청어나 꽁치로 그냥 먹는 것보다 훨씬 영양가도 좋고 흡수가 잘 되어 겨울철 보양식으로 자리를 굳혔다. 요즘은 진공 포장이 되어 일 년 내내 맛볼 수 있다.
눈 내리는 날 과메기 덕장을 찾으면 그 풍경 또한 장관이다. 구룡포 읍내를 조금 벗어나 야산에 오르면 여기저기 덕장이 눈에 들어온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지붕 아래, 반으로 가른 꽁치가 가지런히 걸렸다. 살짝 살만 도려낸 반쪽 과메기다. 요즘과는 달리 옛날에는 생선을 통째로 말렸다. 과메기를 손질하는 사람들을 보니 어릴 적 마을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다. 과메기를 만드느라 애쓰던 어머니, 새참으로 과메기 봇짐을 지게에 걸고 흥겹게 노래하며 나무하러 가던 아재, 등에 업힌 젖먹이가 과메기를 뭉개지도록 빨면 ‘이제 어미 떨어져도 살겠네’ 하던 할머니…. 외지로 떠난 친구들도 이 맛을 잊지 못하고 해마다 과메기 철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온다.
바람끝이 차가워지는 겨울 초입 과메기를 앞에 두고 형제들이 둘러앉았다. 우리 형제는 이렇게 과메기를 먹으면서 겨울을 맞이한다. 보통은 서너 조각으로 잘라 초장에 찍어 김이나 배춧잎에 싸서 먹는데 물미역, 실파, 고추, 마늘을 곁들인다. 잘게 썬 과메기를 채소와 버무려 먹기도 한다. 우리 형제는 과메기를 자르지 않는다. 그냥 길게 찢어 휙 돌려 감아 초장에 푹 찍어 먹는다. 혹시 초장을 흘릴까 봐 고개를 젖혀 천장을 쳐다보며 입을 한껏 벌린다. 그러다 보면 초장이 코나 턱에 묻기도 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평균 연령이 육십이 넘은 지금도 과메기 먹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내가 어릴 적 이곳 영일만은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물고기가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대낮에 흰 물살이 성글게 일며 바다 밑이 컴컴해지면 고기 떼가 몰려오는 징조였다. 흡사 그물에 걸린 고기떼가 끌려오듯 맷방석처럼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며 물고기가 스스로 밀려오는 모습은 놀랍고도 신기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요즘은 가끔 멸치 떼가 밀려올 뿐 청어나 꽁치는 먼바다에 가야 만날 수 있다.
오늘도 혹시 물고기가 뛰어오르지 않을까, 바다에 눈길을 주며 한 가닥 과메기를 집어 든다. 포항의 겨울 바다가 한입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