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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15) 2024. 9. 25
성전 내부 집기 제작 과정
왕상7:13-51
솔로몬이 7년에 걸쳐 성전을 완공하고, 13년에 걸쳐 왕궁을 완공하였습니다. 총 20년이 걸리는 대공사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동안 성전 내부 집기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재능을 구비한 사람 히람>
솔로몬 왕은 사람을 보내어서, 두로에서 놋쇠 기술자 ‘히람’을 불러 왔습니다.
13~14절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14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히람’['후람'으로도 표기되기도 함. 대하 2:13, 4:11, 두로 왕 히람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은 납달리 지파에 속한 과부의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으로서, 놋쇠 대장장이입니다. 그는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히람은 모세 시대의 성막 제조 기술자인 브살렐과 오홀리압(출 31:2-6)과 비견될 수 있는 인물로, 놋 뿐만 아니라 금은동철 및 돌과 나무, 천을 다루는 일에도 탁월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던 희대의 장인(匠人)이었습니다(대하2:14).
솔로몬은 그의 재능을 알고, 두로 왕에게 사람을 보내 그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히람이 성전의 모든 장식과 내부 집기를 만드는 일을 도맡아 하였습니다.
<야긴과 보아스>
‘히람’이 와서 만든 첫 작품이 놋기둥 둘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5~22절 “그가 놋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 각각 십이 규빗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 16 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 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한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요 다른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며/ 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18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 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19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20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21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22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
히람은 놋기둥 둘을 만들어 성전의 현관 앞 양쪽에 세웠습니다. 기둥의 높이는 18규빗(8m 20cm), 기둥의 둘레는 12규빗(5m 20cm), 양쪽 기둥 위에는 다시 5규빗(2m 20cm) 되는 머리 부분을 만들고, 그 기둥머리를 위해 각종 모양과 장식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기둥을 ‘야긴’이라고 하였고, 왼쪽 기둥을 ‘보아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 기둥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야긴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뜻이며 보아스는 ‘여호와께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합치면 성전과 다윗의 왕국은 하나님이 세우셨으며,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지키신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 두 기둥에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을 담은 것입니다.
본래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목축하는 자로 정착지 없이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을 가리켜 ‘유리하는 아람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신26:5). 그런데 그들이 애굽 땅에서 객이 되어 400년 동안을 노예로 살게 되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학대와 고역에 시달려야 했고 이를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신26:6~7). 이에 하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은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40년의 광야 생활 끝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셨습니다(신26:7~8). 사사 시대를 거쳐 이제 통일 왕국을 세우고, 드디어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 만에 성전 기초석을 놓고 7년 만에 완공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살아있는 것이 기적입니다(광야 생활 –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지키심, 만나와 메추라기, 수많은 이민족이 침입 속에 살아 존재하는 것이 기적).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는 ‘여호와께서 세우셨고’, 또 오직 ‘여호와의 능력으로 지켜 주셨다’는 의미에서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을 세운 것입니다.
기둥 위에는 그물 모양에 석류 이백 개로 장식했고, 기둥 꼭대기는 백합화 모양으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석류는 풍요의 상징입니다. 백합화는 순결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놋 기둥의 견고함 속에 하나님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은혜가 임하기를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놋바다>
그다음에 히람은 놋쇠를 부어서 바다 모양 물통을 만들었습니다.
23~26절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24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열 개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25 그 바다를 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셋은 북쪽을 향하였고 셋은 서쪽을 향하였고 셋은 남쪽을 향하였고 셋은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26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것의 가는 백합화의 양식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
바다와 같이 많은 물을 담아 두었다는 의미에서 바다란 이름을 지었습니다. 놋 바다는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 물을 담는 용기였습니다. 제사장은 이곳에서 손발을 씻어 정결하게 하였습니다(왕상 7:30, 왕하 16:17, 대하 4:6).
그 바다 모양 물통은, 직경(지름)이 10 규빗, 높이가 5 규빗, 둘레가 30 규빗이고, 둥근 모양을 한 물통이었습니다.
그 가장자리 아래로는, 돌아가면서, 놋쇠로 만든 호리병 모양의 박을 문양으로 넣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열두 마리의 놋쇠 황소가 바다 모양 물통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순종적인 열두 지파를 의미합니다. 세 마리씩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바깥쪽으로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민2:2 – 회막을 중심으로 세 지파씩 사방으로 진을 침). 바다 모양 물통의 두께는 손 너비만 하였습니다. 그 테두리는 백합화 문양을 넣었습니다.
그 용량은 물을 ‘이천 밧’ 정도 담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밧’은 여인이 물을 길어 머리에 이는 항아리 용량, 1밧은 약22,71리터). ‘이천 밧’은 약 45,420리터에 해당합니다.
<소와 사자를 새긴 받침 수레>
히람은 또 놋으로 받침 수레 열 개 만들었습니다.
27~37절“또 놋으로 받침 수레 열을 만들었으니 매 받침 수레의 길이가 네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요 높이가 세 규빗이라/ 28 그 받침 수레의 구조는 이러하니 사면 옆 가장자리 가운데에는 판이 있고/ 29 가장자리 가운데 판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있고 또 가장자리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고 사자와 소 아래에는 화환 모양이 있으며/ 30 그 받침 수레에 각각 네 놋바퀴와 놋축이 있고 받침 수레 네 발 밑에는 어깨 같은 것이 있으며 그 어깨 같은 것은 물두멍 아래쪽에 부어 만들었고 화환은 각각 그 옆에 있으며/ 31 그 받침 수레 위로 들이켜 높이가 한 규빗 되게 내민 것이 있고 그 면은 직경 한 규빗 반 되게 반원형으로 우묵하며 그 나머지 면에는 아로새긴 것이 있으며 그 내민 판들은 네모지고 둥글지 아니하며/ 32 네 바퀴는 옆판 밑에 있고 바퀴 축은 받침 수레에 연결되었는데 바퀴의 높이는 각각 한 규빗 반이며/ 33 그 바퀴의 구조는 병거 바퀴의 구조 같은데 그 축과 테와 살과 통이 다 부어 만든 것이며/ 34 받침 수레 네 모퉁이에 어깨 같은 것 넷이 있는데 그 어깨는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35 받침 수레 위에 둥근 테두리가 있는데 높이가 반 규빗이요 또 받침 수레 위의 버팀대와 옆판들이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36 버팀대 판과 옆판에는 각각 빈 곳을 따라 그룹들과 사자와 종려나무를 아로새겼고 또 그 둘레에 화환 모양이 있더라/ 37 이와 같이 받침 수레 열 개를 만들었는데 그 부어 만든 법과 크기와 양식을 다 동일하게 만들었더라.”
이 수레는 놋 바다에서 물두멍으로 물을 실어 나르거나 짐승의 피를 담아 버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받침대마다 길이가 4 규빗, 너비가 4 규빗, 높이가 3 규빗입니다. 받침대는 판자 테두리를 둘렀고, 사자와 소와 그룹을 그려 넣었습니다(29절). 사자와 소의 위아래로는 화환 무늬를 새겨 넣었습니다. 사자는 용맹함을 소는 헌신과 순종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그리고 각 받침대에는, 네 개의 놋쇠 바퀴를 달았습니다.
<물두멍 열 개>
또 그는 놋쇠로 물두멍 열 개를 만들었습니다.
38~39절 “또 물두멍 열 개를 놋으로 만들었는데 물두멍마다 각각 사십 밧을 담게 하였으며 매 물두멍의 직경은 네 규빗이라 열 받침 수레 위에 각각 물두멍이 하나씩이더라/ 39 그 받침 수레 다섯은 성전 오른쪽에 두었고 다섯은 성전 왼쪽에 두었고 성전 오른쪽 동남쪽에는 그 바다를 두었더라.”
'두멍'이란 물을 길어 붓고 쓰는 통을 말합니다. 직경은 대략 4 규빗(1.8m)이며 40밧의 양(920ℓ 정도)을 담을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이 열 개의 물두멍은 희생제물을 씻는 데 사용되었으며, 성전의 좌우 양편으로 다섯 개씩 갈라져 위치하였습니다(대하4:6).
<기타 부속물들>
히람은 각종 성전 기구들을 만들었습니다.
40~50절 “히람이 또 물두멍과 부삽과 대접들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의 모든 일을 마쳤으니/ 41 곧 기둥 둘과 그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 둘과 또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를 가리는 그물 둘과/ 42 또 그 그물들을 위하여 만든 바 매 그물에 두 줄씩으로 기둥 위의 공 같은 두 머리를 가리게 한 석류 사백 개와/ 43 또 열 개의 받침 수레와 받침 수레 위의 열 개의 물두멍과/ 44 한 바다와 그 바다 아래의 소 열두 마리와/ 45 솥과 부삽과 대접들이라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이 모든 그릇을 빛난 놋으로 만드니라/ 46 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사르단 사이의 차진 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47 기구가 심히 많으므로 솔로몬이 다 달아보지 아니하고 두었으니 그 놋 무게를 능히 측량할 수 없었더라/ 48 솔로몬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니 곧 금 단과 진설병의 금 상과/ 49 내소 앞에 좌우로 다섯씩 둘 정금 등잔대며 또 금 꽃과 등잔과 불집게며/ 50 또 정금 대접과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과 불을 옮기는 그릇이며 또 내소 곧 지성소 문의 금 돌쩌귀와 성전 곧 외소 문의 금 돌쩌귀더라.”
히람은 놋으로 만드는 일에는 못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부삽과 대접과 금 단과 진설병과 금 상과 등잔대, 주발, 불집게, 숟가락까지 만들었습니다. 만들되 매우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성전 밖의 기구들은 대부분 놋으로 만든 데 비해 성전 안에 있는 기명들은 모두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전기구 만드는 일을 마침>
이렇게 해서, 솔로몬 왕은 주의 성전을 짓는 모든 일을 완성하였습니다.
51절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친지라 이에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이 드린 물건 곧 은과 금과 기구들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두었더라.”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거룩하게 구별해서 바친 성물, 곧 은과 금과 기구들을 가져다가, 주의 성전 창고에 넣었습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집에는 많은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이 쓰임 받습니다.
14절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히람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며 어머니는 납달리 지파 출신의 과부였습니다(7:14). 그는 혼혈인이요 아버지 없이 자랐습니다. 대접받기 힘든 출신 배경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대 최고의 장인이었습니다.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성전 건축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런데 은사나 재능을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준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택하여 쓰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 지도력을 가르치면서 먼저 마음이 깨끗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아무리 좋고 비싼 그릇이라 할지라도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살려 전문가적 역량을 키우고 준비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은 준비되어 있기만 하면, 차별 없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쓰시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히람의 준비된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그 어떤 차별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사 시대에 무수한 사사 중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그를 ‘왼손잡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원문의 뜻은 ‘오른손이 닫힌 사람’이란 뜻입니다. 즉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의 장애조차도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지 못했으며 도리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눈에는 크게 쓰임 받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들어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데 기꺼이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들어 쓰실 때, 유명하거나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을 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전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만민을 위한’, ‘만민에 의한 성전’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신앙공동체인 교회도 그 어떤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만인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거룩한 모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집은 말씀과 성령의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히람은 성전 현관 양옆에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를 세웠습니다. “그가 세우신다”,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그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드나들며 그 두 기둥을 항상 보게 하였습니다. 기둥은 광야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상징입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보호했습니다. 그것을 항상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신앙에도 두 기둥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기둥’입니다. 이 두 기둥이 우리 신앙의 대들보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의 두 기둥 사이에 설 때 담대할 수 있고, 또 균형잡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 사도행전의 베드로의 담대한 설교 –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이 그 근거
넷째, 하나님의 집은 조화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놋 기둥(야긴과 보아스)은 견고함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석류와 백합화의 문양을 넣음으로써 ‘견고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모색하였습니다.
물두멍을 받치는 수레에는 ‘사자와 소’, 그리고 '그룹과 화환'의 문양을 새겨 넣었습니다(29).
이는 각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담대함, 충성심, 거룩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하나의 문장처럼 해석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그룹), 사자와 소가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화환)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사자와 소’는 서로 상반되는 성격의 동물입니다. ‘용맹함’과 ‘순종’의 대명사입니다. 성격뿐 아니라 식성 면에서도 전혀 다릅니다. 사자는 육식동물이고 소는 초식동물입니다. 그런데 그 밑에 사자와 소의 아래로는 화환 무늬를 새겨 넣었습니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야 합니다. 사자는 능력이 있지만, 자기중심적입니다. 소는 다른 소와 잘 어울리지만 고집이 있습니다. 소와 사자는 서로 보완해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자와 소를 새긴 받침 수레’의 용도는 제물을 제물되게 하는 것입니다. 물두멍의 물로 깨끗이 닦아 하나님 앞에 드릴만한 제물로 만드는 도구입니다. 이 과정이 없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우리 자신이 제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롬12:1b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러면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성결과 더불어 ‘신앙 공동체’ 안에서 갖추어야 할 자격도 있습니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야 합니다. 사자는 능력이 있지만, 자기중심적입니다. 소는 다른 소와 잘 어울리지만 고집이 있습니다. 소와 사자는 서로 보완해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능력을 존중하고 서로의 연약한 점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성전의 참모습입니다.
이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고전12:25~27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롬12:3~8)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약에서는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쓰실만한 그릇으로 준비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쓰시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신앙에 두 기둥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말씀의 기둥’과 ‘성령의 기둥’).
그러나 교회 안에서 독단적이고 외고집으로 분쟁의 씨앗을 만들지 말고, 이웃(약자)을 배려하여 조화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 각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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