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스포츠
기상정보가 기록 ·돈·승패 좌우
스포츠 과학의 발달로 일부 스포츠에서는 정확한 기상정보를 활용해 최고 기록과 명승부를 연출시킨다. 스포츠 마케팅에서는 보다 많은 관중을 유치하기 위해 기상정보를 최대한 활용한다. 레저스포츠의 경우는 기록과 경기장 수입이 날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각종 스포츠에서 활용되는 날씨 마케팅.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박세리가 최연소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을 세운 뒤 후원사인 삼성이 얻은 홍보효과는 무려 2천1백억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방송중계료는 8억5천만달러에 달했고 내년에 열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12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중계료와 광고효과, 입장수입, 스폰서십, 라이선싱 등을 따져보면 프로·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스포츠 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스포츠가 일반인들의 생활과 가까워지면서 스포츠 마케팅의 중요성도 더욱 강조되고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스포츠와 날씨의 관계다. 날씨는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참가선수·관객 모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천시 관중수입 20∼30% 격감
베드민턴 셔틀콕은 날씨가 흐리고 안개 낀 날에 비해 맑고 건조한 날 높이 올라간다. 야구·테니스·크리켓 등 옥외 구기종목은 바람을 등진 선수가 훨씬 유리하다. 경마도 기수가 날씨에 따라 노면상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결정된다. 경기장 수입과 관계되는 관중수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체육관계자들은 배구·농구·골프경기가 있을 때 비가 오면 통상 관중의 20∼30%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뉴질랜드에서는 갑작스런 악천우로 6만 관중을 수용하는 경기장의 절반이 텅 비어 1만개 가량의 미트파이가 재고로 남게 된 일이 있다. 영국에서는 장마비 때문에 46일 동안이나 크리켓 챔피언십이 중단돼 나중에 게임이 속개된 뒤로도 팬들의 외면을 받아 입장 수익에 큰 타격을 받았던 일도 있다.
이처럼 시즌중 날씨는 어느 스포츠에서나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횟수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영국 에버딘대 케인스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1만 관중을 수용하는 경기장에 비가 1mm 추가로 올 때마다 관중 수가 2백∼3백명 감소한다고 한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축구의 경우는 비가 오는 시점이나 강우량, 지속시간에 따라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기력은 물론 관중 수입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경기 시작 4시간 전에 기상예보를 입수해 당일 경기운영에 참고한다”고 말했다.
육상과 같은 기록경기는 날씨에 특히 민감한 편이다. 풍속·풍향에 따라 기록에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단거리∼장거리 경주뿐 아니라 장대높이뛰기, 3단점프경기에서도 바람은 손꼽히는 변수다. 아마추어경기연맹에서는 이런 이유로 1백20cm 고도에서 풍속이 2m/s 이상일 때는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의 경우는 날씨가 선수들의 컨디션과 기록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선수들의 체온조절 능력은 일반적으로 기온·습도·바람 등에 가장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고온다습한 대기상태에서는 체내열 상승에 따라 선수들의 부담이 커져 통상 여름철에는 마라톤 대회가 열리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95년 4월 런던마라톤은 때 아닌 고온현상 때문에 참가선수들이 상당히 고전했던 대회로 손꼽힌다. 이 대회에서 한 선수는 열사병으로 목숨마저 잃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특정 스포츠에서는 날씨가 선수들의 신체조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경기내용을 좌우한다. 자동차 레이싱이나 사이클 경기가 대표적인 케이스. 자동차 경주는 날씨에 따라 타이어의 제동력에 큰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젖은 트랙에서는 미끄럼이 심하고 건조한 트랙에서는 타이어 마모율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75년 영국 그랑프리에서는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로 건기용 타이어를 단 경주차들이 트랙에서 미끄러지면서 다중충돌 사고가 발생, 경기가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이클 경주 세계기록 보유자인 스페인 출신 마이겔 인두레인은 “경기 참가 때마다 온갖 과학적 데이터를 활용해 전략을 짠다”고 말한다. 당일의 기상조건이나 노면상태는 특히 경기가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큰 변수 역할을 한다는 것. 자전거 타이어와 선수가 입는 셔츠도 경기 당일 날씨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경기장 운영에서도 날씨는 중요한 변수다. 프로스포츠에서 관객은 절대적이다. 스포츠 관중수는 주로 경기의 수준과 흥미, 날씨에 따라 좌우되게 마련이다. 특히 옥외경기의 경우 비가 오는 등 악천후일 때는 텔리비전 시청자가 늘어나지만, 실내경기라도 악천후에 따른 교통혼잡 등으로 관중수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경기장의 관중들은 흔히 같은 기상조건이라도 직접 뛰는 선수들보다 기온이 조금만 떨어져도 추위를 쉽게 느낀다. 특히 복싱경기의 경우는 관중의 편의를 고려해 경기장 기온을 높게 하는 것이 상례다.
일부 레저스포츠는 기상정보전 방불
자연의 힘을 이용한 레저스포츠의 경우 날씨의 영향은 더 직접적일 것이다.
행글라이딩·요트·풍선타기 등은 주로 자연발생적인 바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풍선타기가 중규모 대기운동으로 생긴 탁월풍을 이용한다면, 행글라이딩은 지면의 굴곡이나 열적 차이에서 생기는 국지풍(Thermal)을 활용한다. 높은 언덕에서 활강하는 행글라이딩의 경우는 보통 맞바람이 부는 언덕을 찾는 것이 포인트다.
그러나 풍속이 초속 45m 이상이거나 소나기성 비구름이 잦은 돌풍지역은 특히 피해야 한다. 이밖에도 레저스포츠는 적지를 찾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경우 특히 많은 시간과 경비가 들기 때문에 사전에 국지적인 바람예보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2만7천마일 대장정의 94∼95 BOC 챌린지 요트 항해 세계일주에서 개인전 2위를 차지한 스티브 프탕길은 당시 체험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경기에 유리한 날씨가 전개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27일 03시30분에 찍은 기상위성 NOAA-14의 구름사진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랭전선이 내 배쪽으로 처져 내려왔다. 그러자 이내 동풍이 불고 선미에서도 남동풍이 불어왔다. 그러나 후미에서 부는 바람은 배의 속력을 떨어뜨린다. 좀더 북쪽으로 항해할 수 있다면 배의 측면에서 불어오는 바람 성분이 커지고, 바람과 배 사이의 각도가 속력을 내는 데 유리하게 벌어져 찰스턴까지 더 빨리 갈 수 있다. …12시간 동안 전력을 다해 돛을 다루는 솜씨를 보인 결과 경쟁자들보다 10마일 이상 뒤쳐졌던 내 배는 오히려 50마일이나 앞서 나갔다.”
93년 뉴멕시코에서 열린 ‘고든 베넷 가스’(Gordon Bennett Gas) 풍선타기대회는 정해진 시간에 가장 멀리 난 팀이 우승하는 경기였는데, 지원팀의 일원인 허버트 펌펠 박사는 항로상 기상조건을 잘 활용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들은 자연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진행중인 한랭전선의 전방에 풍선이 위치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98년 12월 풍선을 타고 세계일주에 나선 브란손과 포셋이라는 사람은 시속 3백20km의 바람을 이용해 태평양을 횡단했으나 북미대륙에 접근하던 중 저기압을 만나 항로를 탈선하고 말았다.
항해·카누·등산과 같이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레저스포츠는 특히 바람·추위·홍수·시정 악화 등에 따라 큰 위험을 내포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수 스포츠들은 특히 대도시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상예보와는 다른 국지 기상현상에 유념해야 한다. 결국 이들을 위해 정확한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특수 서비스가 필요하다. 예컨대 영국 기상청은 산악인을 위해 ‘마운틴 콜’(Mauntain Call)이라는 특수 기상 서비스를 매시간 유료제공한다.
이우진 기상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