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와 <비너스 의 탄생>
피렌체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화가는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이다. 우피치에 갈 때마다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그림 또한 <비너스의 탄생>(1484년 경)이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비너스의 탄생>은 피렌체 여행을 시작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일는지도 모른다. 보티첼리와 비너스와 피렌체는 그렇게 한 다발의 꽃으로 묶여진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보티첼리는 대부분의 세월을 고향에서 보냈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획득한 거장들은 피렌체를 벗어나 교황청이 있는 로마나 대도시 밀라노 혹은 프랑스 궁정으로 초빙되어 가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피렌체는 무역과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발전을 이룬 도시였다. 하지만 다른 대도시들의 발전 역시 급속도로 이루어졌고, 교황청이나 여러 공국들의 예술 우호 정책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부추겼다. 보티첼리도 잠시 로마에 머무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피렌체를 모태로 삼고 활동한 화가였다. 신플라콘주의 사상을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과 이를 받아들인 보티첼리의 작품세계를 생각해보면 다른 도시들의 예술 취향으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절정기를 맞이하면서) 많은 작품들을 메디치와 베스푸치 같은 유력 가문, 혹은 피렌체 시를 위해 제작하였다.
'위대한 로렌초'(Lorenzo il Magnifico, 1449~1492) 시절에 명성이 장점에 다다른 메디치 집안을 위해 봉사했던 그는 만년에 가치관에 혼란을 겪으면서 사보나롤라(이탈리아의 종교개혁자, 1452~1498)의 신정(신정) 정치를 추종하게 된다. 사보나롤라는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육체의 아름다움으르 찬양하는 것까지도 비난했던 인물이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예술적 가치관마저 바뀌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상황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보나롤라는 짧은 집권을 끝내고 몰락하고 만다. 그러나 피렌체의 시계는 1400년대에서 1500년대를 향해 흘러갔고, 보티첼리도 어느덧 쉰 살이 넘는 나이가 되었다.
비너스의 수수께끼
<비너스의 탄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잡다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순수한 아름다움 자체를 통해 시간이 과거로 서서히 거슬러 올라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로 붐비는 미술관 안이지만 그림과 대면하고 있으면 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비너스의 탄생>은 르네상스 시대를 넘어서 저 멀리 고대와 신화의 세계로까지 나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키워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은 확실치 않은 꾸며낸 이야기로 여겨지지만, 오랫동안 비너스의 모델은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모네타라는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시모네타가 '위대한 로렌초'의 동생 줄리아노의 애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런 전설은 설득력을 가졌다. 하지만 청순함이 담겨 있는 비너스의 모델이 누구였던가 하는 것만이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비너스의 아련한 눈빛, 그 안에 담긴 잔잔한 우수, 고전미와 현대미를 동시에 지닌 비너스를 보고 있으면 현재라는 시간에 대해 잊게 되기 때문이다.
우피치에는 보티첼리의 명성을 능가하는 수많은 거장들의 걸작이 걸려 있지만 미술관 전체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보티첼리의 작품들이다. 공식 도록에도 보티첼리의 그림이 가장 많이 실린다. 분명 (르네상스의 주류 회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보티첼리라는 아이콘은 피렌체 르네상스의 상징 중 하나다. 높은 지붕으로 피렌체를 대표하지만 르네상스 양식이라고 할 수 없는 두오모가 피렌체의 상징적인 건물이듯이 말이다. 피렌체는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과 하늘을 찌를 듯한 건축물 두오모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티첼리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두 작품은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이다. 메디치 가문과의 돈독한 관계 속에서 그림의 의뢰를 받았지만 두 작품 모두 그 기원과 의뢰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보티첼리의 행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그의 그림들 역시 비밀스러운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비너스의 탄생>은 <프리마베라>와 함께 메디치 가문의 소유였던 카스텔로 빌라에서 발견되었다. 이 빌라의 주인은 1503년 사망한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였다. 소유주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데 메디치)와 이름이 같았던 탓에 오랫동안 이 작품은 그의 의뢰로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며 유명세를 더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의 의뢰라는 것이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그림은 보티첼리의 화풍을 고려해볼 때 <프리마베라>를 완성하고 몇 년이 지난 후인 1485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단단한 받침대를 근거로 추측하면 아마도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았던 탓인지 1550년 이전에는 세상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림이기도 했다. 그래서 막연한 추측이 뒤따른다. 그림 자체가 신비롭고 유래가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로렌초의 스승이자 신플라톤주의의 제창자인 마르실리노 피치노(Marsili Ficino, 이탈리아의 철학자, 신학자)는 그에게 비너스의 미덕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서한을 보내곤 했다. 로렌초는 메디치가의 남자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초상화를 남기지 않은 인물이다. 동생이 먼저 죽자 동생의 영지인 카스텔로 빌라를 가로챘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생활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더군다나 메디치 가문이 도시에서 추방당하자 재빨리 자신의 성을 민중의 친구라는 뜻인 '포롤라노'로 바꾸기도 했다. 메디치 가문의 사람이면서 메디치라는 이름을 스스로 거부하기도 했던 의뢰인과 더불어 <비너스의 탄생>도 어떤 경로를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는 수수께끼 같기만 하다.
<비너스의 탄생>은 메디치 가문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그려졌다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보티첼리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비너스를 통해 표출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는 사랑의 의미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사랑을 의미하는 그림을 그려 신랑 신부의 결혼생활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혼 축하용 그림은 사이즈가 작았다. 그에 비하면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는 상당한 대작이다. 보티첼리는 사랑의 기원과 신화 그리고 염원을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담아낼 만한 사이즈의 화폭을 원했던 것일까. 우피치에 걸려 있는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멀리 펼쳐진 망망대해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비너스와 바다, 그 자체로 끝이 없는 사랑과 무한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비너스의 탄생
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의도적으로 연결된 작품이라도 되는 듯이 무척이나 유사하다. 그림 왼쪽부터 보면 <비너스의 탄생>에는 제피로스, 클로리스, 비너스, 호라이가 있고, <프리마베라>에는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 삼미신, 큐피트(에로스), 비너스, 플로라, 클로리스, 그리고 제피로스가 있다. 특히 제피로스는 누구나 첫눈에 봐도 알 수 있듯이 같은 모델에, 유사한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많은 등장 인물이 정체가 모호하거나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다. 이러한 점이 작품에 여러 이야깃거리를 남긴다. 어쨌거나 두 작품의 주인공은 비너스이다. 당시에도 집안의 가장 큰 행사였을 결혼식을 잘 치루고, 여신의 보호하에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은 여신의 존재만으로도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도로 인해 비너스는 두 그림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사랑을 상징하고, 그 의미를 완곡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에서 나타난 여신
작품에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그림 속 장면은 비너스의 탄생 순간이 아니다. 헤시오도스(기원전 700년경 활동한 그리스의 시인)의 신화에 따르면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역설적이게도 부자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천공의 신 우라노스의 아들 크로노스는 아버지와의 싸움 중에 어머니 가이아의 음부에 숨어 있다가 우라노스의 성기를 낫으로 잘라 바다에 버린다. 바다 위를 떠다니던 성기 주위에 거품이 생기고 거기서 아름다운 처녀 비너스가 탄생하게 된다. 비너스의 그리스 이름인 아프로디테는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아프로스 (Aphros)'는 거품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다는 형태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한 무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라노스의 잘려나간 남근이 아름다운 비너스로 환생할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다. 그 후 비너스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불어주는 바람의 도움을 받아 육지로 떠밀려가게 된다. 그녀가 닿은 곳은 (신화에 따르면) 키프로스 아니면 키테라(키티라, 이오니아 제도 최남단과 최동단의 섬)였을 것이다. 이곳에서 비너스는 자신을 맞이하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와 만나 신들의 세계로 나아간다. 비너스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신화의 세계에 등장한 것이다. 우라노스를 거세하지 않았다면 비너스의 탄생 또한 없었을 것이다. 우라노스의 신화적 죽음은 비너스의 탄생으로 이어지면서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신화의 세계는 이처럼 윤회적이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가치를 지니곤 한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즉 로마 신화의 비너스는 보티첼리의 세심한 터치를 통해 15세기의 피렌체에 그 아름다운 자태를 남기게 된다.
그림 속의 상황은 바다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물에 닿으면서 호라이와 만나는 순간이다. 화폭에 담겨진 이 장면은 비너스의 탄생 순간이 아니라 여신이 태어난 이후의 이야기, 즉 형태가 수시로 변하는 바다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형태가 고정된 단단한 대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화를 잘못 해석해서 붙여진 제목이 오히려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바다에서 나타난 비너스'라는 상황은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거장 아펠레스(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화가)의 현존하지 않는 작품을 주제로 삼고 있다고 추정된다.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과의 친분을 통해서 인문학적 엘리트들을 친구로 두고 있었으므로 아펠레스의 그림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전과 신화를 연구하는 일은 당시 피렌체 지식층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그림으로 표현된 비너스 신화는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 등의 고전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친구였던 안젤로 폴리치아노(이탈리아의 시인, 인문주의자, 1454~1494)의 시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리치아노는 메디치가의 이상을 시로써 표현했다. 폴리치아노가 메디치가를 위해 지은 <마상시합을 위한 시> (Le Stanze per la Giostra)에서는 조개껍질 위를 스치는 비너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폴리치아노느느 풍부한 시적 상상력으로 이렇게 묘사했다.
하얀 거품 속에서 태어났다.
흔치 않은 기쁨의 몸짓으로
천상 종족의 처녀가
장난기 어린 제피로스에 의해 해변으로 몰려온다.
그녀는 조개껍질을 타고 여행한다. 그리고
하늘도 기뻐하는 듯 보인다.
당신은 맹세할 수 있을 것이다.
물결 속에서 나온 여신은
그녀의 오른손에 머리카락을 쥐었고
다른 손으로는 달콤한 과일을 덮고 있다.
하늘마저 기뻐한 비너스의 탄생은 폴리치아노의 상상을 통해 시가 되고, 보티첼리에 의해 그림으로 시각화된다. 여신의 전설에 대한 해석은 이제 우아한 그림이 되어 현실세계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보티첼리는 인문주의자들과 교유했지만 그들의 사상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다. 보티첼리는 신화를 변형하고 재창조했다. 이로 인해 보티첼리의 알레고리는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그리스 신화에 대한 보티첼리의 깊은 관심과 뛰어난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주제와 그리스 신화의 미묘한 결합은 그에 의해서 성모 혹은 비너스로 발현되어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인간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천상
의 사랑은 형식이 다르다 할지라도 기독교에서도, 그리스 신화에서도 똑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모의 이름 '마리아'는 바다라는 뜻의 '마레'(mare, mari)와 동일시되어 비너스와의 공통분모를 더한다. 이렇게 해서 성모와 비너스가 지닌 자애로운 사랑은 보티첼리의 붓끝에서 동일한 의미로 드러나게 된다.
신성과 인간성 사이
<비너스의 탄생>은 르네상스 회화뿐 아니라 우피치 미술관 자체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모든 관람객들이 그림 앞에 서서 넋을 잃은 듯 아름다운 자태의 여신을 올려다보고 있다. 조개 위에 서서 바람에 밀려 뭍에 닿기 직전의 비너스는 전설처럼 신비롭다. 개인적으로는 앵그르(Jean-Auguste Domi-nique Ingres, 프랑스 화가)의 <샘>(La Source, 1856)에 그려진 누드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앵그르의 그림으로 관람을 시작하거나 우피치에서 보티첼리를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개인적 취향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앵그르나 보티체리나, 인체의 모든 어색함들마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너스의 모습은 약간 어색하다. 10등신에 가까울 정도로 긴 몸, 얇고 긴 목이 기울어진 걸 보면 부자연스럽다. 부유하던 바다로부터 땅에 닿기 직전의 여신은 무언가 모르게 애조 띤 표정을 짓고 있다. 가늘고 날씬한 육체는 현실의 모습이 아닌 듯 보인다.
영화감독 테리 길리엄은 <문하우젠 남작의 모험>(1989년, 국내 개봉명은 '바론의 대모험')을 찍을 때 깡마른 우마 서먼을 비너스로 기용한 적이 있는데, 이유는 그녀가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가장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줍게 몸을 가리고 있는 비너스의 포즈가 보티첼리의 독창적인 창조물은 아니다. 메디치가에서 소장하고 있던 기원전 1세기경에 제작된 비너스 상은 이미 그림 속의 비너스와 유사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보티첼리는 미묘하게 몸을 가리는 듯한 그 모습에서 상기된 비너스를 발견했고, 자신의 그림에 차용한 것 같다. 고대 조각의 양식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어느 작품보다도 유명한 비너스의 나신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림에서 비너스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만약 그림 속의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연 사랑의 여신이 맞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환희와 쾌락의 사랑을 느끼는 비너스가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우울과 슬픔을 간직하고 잇기 때문이다. 보티첼리의 다른 성모화들과 비교해 보면 비너스는 더더욱 성모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당시의 종교가 예술을 통해 인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들 또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곤 한다. 기독교와 그리스 신화를 하나의 화폭 안에 어우러지게 하면서 보티첼리는 타락한 비너스에 신성한 성모의 이미지를 부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보티첼리뿐 아니라 당시의 지적 엘리트들이 고대 신화와 철학을 통해서 기독교 사상을 수용하고자 했던 기조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다. 보티첼리는 이렇게 고대 신화를 자신의 의도대로 해석함으로써 이교 재생의 대변자로 알려지게 된다.
단순하게 묘사한 바다를 배경으로 비너스는 황금빛 조개껍질 위에 몸을 싣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개껍질 위에 몸을 싣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개껍질은 성화에 그려지면 성모의 위쪽에 놓이면서 처녀성을 상징하곤 한다. 비너스가 올라탄 조개껍질은 태어나는 비너스가 아직 순결한 여신의 상태임을 강조해준다. 세밀하게 묘사된 다른 부분과는 달리 배경이 되는 바다는 약간은 엉성하게 묘사되엇다. 잔잔한 바다의 전경은 단지 바다라는 암시만 줄 뿐이다. 바다는 단순하지만 신화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담아내기에 도리어 어울리기도 한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현대적인 모더니티를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바다는 눈으로 보는 실재가 아니라 마치 촬영을 위한 무대장치처럼 평면적인 바탕에 'V'자 선으로 파도와 물결의 움직임이 표현되고 있으며, 조개껍질이 대지와 맞닿으려 하는 부분만 복잡하게 일렁이고 있을 뿐이다.
비너스의 매혹적인 금발머리는 무릎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오른팔로는 가슴을 살짝 가리고, 왼손으로는 긴 머리카락을 지그시 누르며 음부를 가린다.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연인 클로리스를 안고 바다 위를 나는 중이다. 그 속도감으로 인해 제피로스의 옷은 그림 왼쪽을 향해 날리고, 제피로스가 입으로 불어대는 바람 탓에 비너스의 머리카락은 오른쪽으로 거볍게 흩날릭 있다. 물결이 비너스를 해안으로 밀어주며, 제피로스가 일으키는 바람은 그 여정을 돕는다. 제피로스 옆에 있는 여인은 바람을 불고 있는 듯한 모습 때문에 부드러운 미풍의 여신 아우라로 해석되기도 하다.
이처럼 비너스와 제피로스만이 확실하고 다른 두 여인에 대해서는 해석이 구구하다. 수줍은 듯이 자기의 나신을 감추려는 비너스를 대지에 있던 호라이가 옷을 들고 마중하고 있다. 초록 대지에는 아네모네가 심어져 있다. 아네모네는 고대에 바람의 꽃으로 회자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봄날 바람이 불 때 꽃봉오리가 열린다고 한다. 호라이는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비단옷을 입고 잇다. 폴리치아노의 시에는 하얀 옷을 입은 세 명의 여신이 비너스를 환영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보티첼리는 화려한 옷을 입은 호라이 한 명으로 압축시켰다. 호라이의 옷처럼 아름답게, 하늘에는 장미꽃이 흩날리고 있다. 비너스를 둘러싼 모든 세계는 꽃향기로 그윽해진다.
비너스는 주변의 정황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하지만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그녀의 표정에서 복잡한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다. 그녀는 수줍은 혹은 아쉬운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비너스가 올라선 조개껍질은 서풍의 영향으로 인해 막 뭍에 닿을 찰나이다. 멈추어진 아름다움, 이렇게 정지된 화면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움직이던 모든 사물들이 한 순간에 멈추어져 있을 때 상상력이 발동한다.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었으며,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결혼을 축하한다는 전제에서 보면 그림의 의미는 꽤 명쾌해진다. 조개 위에 서 있는 비너스는 순결의 상징이다. 예비 신부의 상징이다. 태어난 후 아직 어느 누구와도 조우하지 않았다. 세상과의 만남이 이제 시작되려는 순간일 것이ㅏ.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이란 결혼한 후의 세상이다. 그녀가 대지에 다다르기 전, 즉 문지방을 넘기 전까지 비너스는 순결한 상태다. 비너스가 대지에 올라선다는 건 순결한 처녀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곧 다가올 결혼과 이후의 가정생활이다. 이제 부모님의 따뜻한 품에서 보호받던 소녀로서의 삶에는 작별을 고하게 된 것이다. 변화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마음속에 교차하는데, 표정에 담긴 모호한 애잔함 역시 이런 감정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의뢰하는 그림들은 앞으로 영원히 사랑하고, 자식들을 출산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래서 실질적인 섹스와 출산에 대한 상징이 드러난다. 호라이가 손에 쥐고 있는 망코와 비너스가 음부를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 끝 타래를 보면 둘다 여성의 성기를 비유적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망토 끝의 고리 모양 속에는 나뭇잎이 들어 있다. 이는 새로운 성장을 암시한다.
이 상황에서 비너스는 생각에 잠겨있다. 아마도 그 사념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소녀 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다른 남자와 함께 살아가게 될 새로운 결혼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현실이 펼쳐질지는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상징성은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성장 소설을 읽는 것과도 같다. 말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어떤 한 순간을 통해서, 어떤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어린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성인식과도 같은 느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와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독은 결혼을 앞두고서도 결코 떨쳐낼 수 없는 무엇이다.
그림 그 자체만 보면 <비너스의 탄생>은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순수함과 관능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 그려진 의도는 철학적이고 숭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나 표면적으로는 에로틱하고 관능적이다. 그림은 한눈에 들어오면서 더 많은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차분히 보고 있으면 눈앞에 드러나는 감각적인 사랑의 여신과 그 뒤에 숨겨진 순결한 사랑의 의미를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비너스의 미묘한 자태는 복합적인 사랑의 의미가 풍부하게 담겨져 있다. 정숙하면서도 감각적인 욕망을 지닌 비너스는 영원성을 띠고 있다. 부끄러움과 야함을 동시에 지닌 여인의 모습은 다른 많은 예술 작품에서 그려내고자 했던 이상적인 여주인공의 상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보티첼리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우아하다. 또한 고요하고 평온하고 잔잔한 작품이다.
마르실리노 피치노는 인문주의의 상징적인 가치는 비너스를 통해 신성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천상에 살아야 할 여신이 인간의 대지에 닿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지에 닿음으로써 인간들과 분리되어 있던 신성이 인간화되는 것일까. 당시의 예술은 신화와 과거와 고전의 많은 것들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려고 했다. 이를 통해 한 차원 높아질 수 있는 인간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고대는 재해석되고 신화는 현실의 비전이 된다.
비너스를 맞이하는 여인은 호라이 외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흰 옷에 장식된 장미꽃과 도금양나무로 보아서 미의 여신 중 한 명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장미와 도금양은 비너스와 미의 여신을 상징한다. 여인은 비너스에게 외투를 내밀고 있는데 이 외투가 미의 여신이 만든다는 '카드모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호라이든 미의 여신이든, 그녀가 입고 있는 꽃무늬 옷은 피렌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여인이 호라이가 아니라 플로라로 해석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이 그림을 통해 피렌체 시와 메디치 가문은 사랑의 여신을 맞이한 것이다. 신의 현현(현현)을 맞이하는 피렌체와 그 시대의 사람들이야말로 예술의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이 예술을 통해 열망했던 고전 세계의 새로운 구현이었을 것이다.
보티첼리의 매혹
보티첼리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과의 유사성은 거의 없다. 당대에 <미술가 열전>을 쓴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이탈리아의 건축가, 화가, 작가)는 보티첼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비너스의 탄생>은 바사리가 건축한 우피치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가 높고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비너스의 탄생>에서 르네상스 회화의 대표적인 특징인 원근법은 거의 무시되어 있다.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자연을 자세히 관찰해서 그린다는 특징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양식적이고, 일부러 연출한 광고 사진을 보는 듯한 인상이 들 정도다. 보티첼리의 우아한 선을 보고 있노라면 시를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그림은 낭만적이면서 서정적인 매력을 지닌다. 이런 감정이 관람객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가녀린 선으로 묘사된 그림을 보면 보티첼리는 가장 아름다운 선묘의 화가가 아닌가 싶다. 인물들의 머리카락, 바람에 날리는 장미꽃, 대지에 심어진 나무와 나뭇잎, 호라이가 입고 있는 옷의 주름 등은 섬세한 터치가 돋보인다. 이런 부분들은 마치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서 사물을 선명하게 포착한 접사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비너스든 성모든 보티첼리으 붓질이 끝나면 특별한 존재가 된다.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라는 생각보다는 창백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곤 한다. 창백한 비너스는 역설적으로 그의 매력을 이끌어 낸다. 비너스가 탄생하는 순간은, 아니 대지에 닿는 순간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무렵이다. 햇살을 받아 일렁거리는 물결도, 화려한 배경도 없다. 단순한 배경은 새벽 바다으 고요함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때가 신과 인간이 조우하는 순간이다. 사람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신의 세계가, 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너스는 곧 다가올 수많은 사람을 운명적으로 겪어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사랑은 아직 처녀인 사랑의 여신의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여신은 보티첼리를 통해 우울함을 드러낸다. 비너스의 아름다움은 일상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순서상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잇는 보티첼리의 세 번째 그림이다. 하지만 항상 이 그림을 먼저 보고 다른 그림들을 찾게 된다. 다른 어느 그림보다도 <비너스의 탄생>에 대한 기억이 확연한 나에게, 그녀를 혼자 마주할 수 잇다는 것은 기쁨 그 자체였다. 그 한순간만이라도 피렌체에 거서 느끼는 어떤 만족보다도 더 큰 감동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미인은 잠에서 갓 깨어나도 아름답다고 하듯이 새벽 미명 속에서 비너스의 표정은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막 탄생한 그녀는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세상을 찬란히 빛낼 터이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수줍게 서 있다. 멀고 막연하고 경건시되던 여신의 모습은 이렇게 해서 우리 곁에 가까이 온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미묘한 백치미로 인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너스의 탄생> 앞에 서면 환상에 빠져든다. 관람객들의 소란스러움마저 뇌리에서 지워버리면 동트기 직전의 바닷가가 펼쳐지낟. 봄날의 바닷가, 새벽녘 바다에서 미의 여신이 출현하는 모습을 응시하는 듯한 느낌을 버릴 수 없다. 몰래 숨어서 아름다운 대상을 바라본다는 감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미풍이 불어오고 자신의 나신이 수줍어 부끄러워하는 여인의 모습을 바라볼 때 가슴은 방망이질 친다. 바다는 고요하다. 아직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아련하게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자연과 신과 마주한다.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한 편의 시를 읽듯, 보티첼리의 여신과 대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숨이 막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