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은 악마가 없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천국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해 연말 향년 68세로 타계한 호주의 언론 재벌 케리 패커란 사람, 그는 90년 폴로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뒤 6분간 ‘사망’선고를 받았다가 전기 충격요법으로 다시 살아나 사후세계에 대해 한말이란다.
천국이 있다는 걸 믿어보려고 애써봤지만 아직 믿지 못하니 나에겐 그리 나쁜 소식은 아닌지도 모른다.
언젠가 밤차를 타고 혼자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몇 번 있었다.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몸이 원해서였을까? 아니면 마음이 원해서였을까? 몸도 마음도 아니면 그저 방황이었을까? 아마 마음이 원해서였을 것 같다. 그 마음 때문에 내 몸은 어지간히 혹사를 감내해야만 했던 것 같고.
‘여기는 태국의 수도 방콕 국립경기장입니다.’ 킹스컵 축구로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 불교의 나라, 아시아 국가들 중 드물게 강대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 연초에 그 태국에 다녀왔다. 걸리는 것도 있고 몸도 마음도 원하지 않는 여행이었지만 얼마간 내 몸에 역마살이 끼었는지 얼마간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에 호기심도 있었다.
지구 온난화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번 겨울은 차가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고 삼한 사온이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 가는데 그곳은 현재 가을이고 우리나라 초여름과 같은 날씨라니 솔직히 “피서” 서울을 피해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 다시 나오지만 태국에 가면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은 꼭 보고 와야 할 것이 있었다.
서울에서 방콕까지는 5시간 정도 소요되고 그곳 시간은 여기보다 두 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오후 다섯 시 반경 출발했는데 방콕에 도착하니 열한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공항에서 나오니 더운 열기가 한여름날씨였다. 공항을 빠져나와 호텔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고 거리구경도 할 겸 호텔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개들이 입구계단에 우리네 ‘오뉴월 개 팔자’모습으로 널 부러져 잠을 자고 있었고 사람이 지나가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지극히 편안한 모습이었다. 후에 알았지만 사계절 날씨가 덥고 국민들 대부분이 불교도이다보니 그렇게 인간들과 편안하게 공존하며 살아간단다. 늦은 시간이라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들고 들어왔고 이국에서의 첫날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튼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가이드 없이 혼자만의 거리투어를 하기 위해서였다. 거리는 아직 한산한 편이었고 시장을 찾아 나섰다. 거리를 지나다보니 특이한 것이 또 하나 보였다. 주황색 천으로 몸을 감은 승려들이 우리네 탁발 비슷하게 가정집에서 음식을 받아가고 있었다. 대부분 맨발이었고 소쿠리 비슷한 곳에 아주머니들이 나와 공손하게 음식을 담아주고 합장을 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후에 설명을 들으니 이곳 사원의 스님들은 대부분의 식사를 우리네 탁발과 같은 형태로 식사를 해결한단다. 집집마다 다르게 승려들을 모시고 공양을 받은 승려들은 신도들의 소원을 듣고 그 원들을 빌어준단다. 그리고 태국의 불교는 대승불교로서 우리와 다르게 여자승려 즉 비구니가 없단다. 그 이유는 남자보다 계율이 더 엄격하기 때문에 감내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란다. 이야기 나온 김에 잠깐 군대 이야기를 해야겠다. 태국도 징병제이긴 한데 징집대상자들이 소요보다 더 많기 때문에 징집장정들을 대상으로 심지를 뽑는단다. 그래서 그 결과에 따라 군대도 가고 다시 집으로 가기도 하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제도에 순응하며 살아간단다. 그 근저에는 마치 국교와도 같은 불교가 국민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큰 말썽 없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입헌군주제라는 정치제도도 마찬가지란다.
새벽시장을 한바퀴 둘러 과일을 조금 사고 돌아 나왔다.
이튼 날 일정은 태국의 남부휴양지 파타야행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중간 호랑이 공원에 들러 돼지와 같은 우리에 사는 호랑이도 보고 그 호랑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사진도 한방 박았다. 그리고 악어농장과 악어 쇼, 무식하게 생긴 악어들이 얼마나 훈련을 받았는지 조련사들의 머리를 악어 입에 집어넣는 장면까지 연출해내고 있었지만 원하는 만큼 긴장감은 없었다. 방콕을 벗어나 두 시간 넘게 달렸지만 평원처럼 넓은 들판이 이어졌지만 경작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농사는 북부지방에서 이뤄지니 그렇단다. 이어서 미니시암(Mini Siam)세계유명건축물들을 축소해놓은 곳을 둘러보고 해변에 위치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야자수아래 수영장,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거기에다 러시아에서 온 듯한 팔등신의 미녀들이 아실아실한 수영복을 입은 것이 아닌 걸치고 다니는 모습이라니.
안내하는 가이드가 야간의 선택 관광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었다. 거기엔 이곳에 오면 꼭 보고 가야 할 것이 있었다. 간혹 태국에 다녀 온 사람들이 ‘바나나를 자르고 금붕어를 꺼낸다던데’ 사실 같지 않은 이야기에 나의 지극히 속물 같은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다. 다소 부담스런 비용이었지만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가이드는 ‘봐도 후회하고 안 봐도 후회한다.’사족(蛇足)을 달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안보고 갈 수는 없었다.
호텔을 나서 야간의 첫 번째 코스는 ‘티파니 쇼’였다. 아직 선택 관광코스는 아니었다. 전혀 남자 같은 않은, 여자 중에서도 그야말로 ‘쭉쭉 빵빵’이란 천박스런 표현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게이들이 펼치는 무대였다. 후에 들으니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렌스젠더들은 무대에 설 수 없다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태국에서 게이들이 그나마 양지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래전부터 부모네 들이 전쟁터에 내보내지 않기 위하여 여장을 방조한 이유도 한 몫 한단다. 쇼를 관람하고 나오니 무희들이 관광객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얼마간의 모델료를 받고 있었다.
이어서 ‘라이브 쇼’ 일명 ‘뒷골목 쇼’ 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어두컴컴한 뒷골목이었다. 일행 중에는 우리처럼 부부도 있었고 고령의 모친을 동반한 모녀들도 있었고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들도 있었다. 객석은 대부분 비어있었고 무대 또한 초라하였다. 쇼는 40여분 간 계속되고 있었다. 꼭 보고 싶은 것이었기에 무대 가까운 곳에 앉아 한 눈도 팔지 않고 보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쇼였다.
들은 것과는 다른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나나는 잘라내는 것이 아닌 토스였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중간 중간 밀걸레를 들고 무대의 물을 닦아내던 토종 원주민 같은 인상의 남자가 남자로는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 사내는 무대 앞에 서 있다가 중간 중간 객석을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곤 했는데 맨 몸으로 나온 사내를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엷은 미소는 객석에 앉은 몇 안 되는 남자 관객들에 대한 빈정거림?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가 맨 앞자리에 앉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일어나서 뒤로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다. 내가 봐야 할 것은 그 쇼가 아니었다. 안 봐도 후회했겠지만 그 쇼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봐서야 할 것은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비록 뒷모습일지라도 다들 어떤 모습들이었을까?
쇼가 끝나고 나오면서 손사래를 치며 ‘이이고 남새스러라’하시며 고개를 가로 젓던 그 할머니의 모습,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글거리며 나오던 20대 초반의 처자들.
쇼가 끝나기도 전에 그 객석에 앉았던 자신을 후회했지만 혹시? 한 번 더 거기에 가게 된다면 다시 한 번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후회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