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21 김천 문화원에서 권숙월시인의 지도 아래 조직된 다움.텃밭,여울등 3개문학반의 문학기행이 있었다. 행선지는 전라도 강진의 영랑문학관과 다산초당.가우도출렁다리를 목표로 아침07:30분에 김천문화원을 출발하여 대덕을 경유하여 대진고속도로를 지나 전라도 강진 병여면의 병영성 축성 600주년기념축제가 열리고 있는 있눈곳이 점심식사 장소인데 여기서 푸짐하게 남도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축제 관람을 뒤로하고 바로 영랑문학관으로 달려 갔다. 김영랑(金永郞 1903-1950)시인은 본명이 윤식(允植)이며 전남 강진에서 출생하여1930년에 정지용.박용철등과 "시문학"을 간행하였으며 시집으로는 영랑시집.영랑시선이 있고 대표작으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등이 있다.
영랑문학관 전경
정지용.박용철.김영랑시인의 동상인듯
기념촬영
시문학에 대한 설명
문학관앞에서 회원들의 동정
영랑시의 시비
영랑시인의 생가 행랑채
영랑생가의 안채
영랑시인의 사랑채
사랑채 옆의 은행나무 파란 나무잎이 운치가 있다
문학관 내부 전경
다음 일정으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01)선생이 유적지인 다산초당의 견학이다, 다산선생은 정조대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형제들의 천주교신자였기때문에 박해를 받아 다산도 유배를 갈수밖에 없었다. 유배지 강진에서 18년간 있으면서 실학서적을 발행하였는데 약 60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늦은봄 기온이 제법 올라 얼굴에 땀이돋아 난다. 주차장에서 초당으로 오르는길은 이정표에 0.6 km 표시되어 있으나 1,2km는 되는것으로 짐작된다.
단산ㅈ초당 가는길의 전경
안내판
다산초당 올라가는길
다산선생은 18제자를 두었는데 윤종진(尹鐘軫 1803-1879)선생이 있는데 자는 금계(琴季) 호는 순암(淳菴)이며 다산선생은 순암이 몸이 약하고 체구가 작은 숨암선생을 위해 순암호기(淳菴號記)직접 써 주면서 호연지기를 키우게 하였다. 또한 다산선생이 유배에서 풀려 남양주로 돌아가자 18인의 제자들과 함께 다신계(茶信契)를 조직하여 평생동안 스승을 위하여 차를 보냈다고 하며 이 차 이름을 "금를다산향(金陵茶山香)"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다산 초당 올라가는길의 제자 윤종진의 묘소
윤종진의 묘소 문인상(해학적면이 보인다.얼굴이 몸전체보다 크게보이고 홀의 크기가 몸전체의 반이나 된다)
다산 초당에 오르는 길은 소나무 뿌리가 서로 뒤 엉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데 정호승 시인은 이 길을 "뿌리의 길"이라고 노래하였으며 다산초당은 다산선생의 유배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마루에 걸쳐 앉아 사색에 한번 잠겨 보는것도 멋있는 흥취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산초당
다산초당의 다조(차를 끊일때 사용하는 반석)
다산선생의 영정
다산초당의 연못
다산초당의 우측방을 관어재라고 명명했다
다산초당의 마루에 앉라 있는 부부는 다산선생에 대하여 애기할까 아니면 부부의 일상을 애기할끼?
보정산방의 전경
보정산방 현판
다산동다 현판
우측 측면에서 바라본 보정산방 전경
천일각의 전경
천일각
천일각안에서
천일각 현판
다산선생이 흑산도로 유배를 간 형 정약전을 생각하며 얼마나 오르내렸을까?
다산초당위의 정석
가우도 출렁다리(길이 715.9 m. 교량목 2.6 m)
가우도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