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 부리야트 민족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먼저 몽골 민족의 뿌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몽골계 민족의 기원은 동호족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기원전 209년 동호족이 흉노에게 패배하면서 흩어지게 되었고 그 일부가 북쪽으로 이동하여 선비족이 되었습니다. 이후 선비족을 비롯한 여러 집단이 이어지면서 몽골어를 사용하는 민족 형성의 기반이 만들어졌습니다. 유연과 실위 같은 집단도 이 흐름 속에 포함되며, 결국 이러한 여러 계통이 합쳐져 오늘날의 몽골 민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초기에는 ‘몽골’이라는 이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나라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메누 실위’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고, 그 이전에는 ‘망구’와 같은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명칭들이 점차 변화하면서 13세기에 이르러 오늘날의 ‘몽골’이라는 이름이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몽골이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점차 만들어진 것입니다.
몽골 민족 형성에서 중요한 장소로 언급되는 곳이 에르구네-쿤입니다. 이 지역은 몽골인의 조상들이 피신하여 살았던 곳으로, 높은 지형과 산악 지역으로 이루어져 외부와 격리된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몽골인의 초기 기반이 형성되었고, 이후 오논강 상류로 이동하는 과정은 몽골 민족 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로 여겨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몽골 지역에는 여러 부족이 형성되었습니다. 다를료 킨족과 니룬족과 같은 집단이 등장하였고, 보르지긴 가문이 형성되면서 훗날 칭기즈칸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시기의 몽골은 하나의 국가라기보다 여러 부족이 loosely 연결된 형태였으며, 통일된 정치 체계라기보다는 지도자 중심의 연합 구조에 가까웠습니다.
1206년에 칭기즈칸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부족들이 하나로 통합되고 ‘대몽골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몽골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로 묶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정치적 힘뿐 아니라 공통된 문화와 정신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샤머니즘과 같은 신앙, 그리고 ‘야사’라고 불리는 규범은 몽골 사회를 하나로 묶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한편 ‘부리야트’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하나의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기에는 몽골 북서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리적 또는 집단적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점차 민족 명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부리야트 민족은 단일한 혈통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여러 부족이 결합하면서 형성된 집단입니다.
부리야트 민족 형성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15세기부터 17세기 중반까지로, 바이칼 호수 서쪽 지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불라가트, 에히리트, 혼고도르와 같은 여러 부족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집단이 형성되었고, 특히 러시아의 침입과 이에 대한 저항이 이러한 통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17세기 이후로, 이러한 통합이 동부 바이칼 지역까지 확장되면서 코리족과 몽골계 부족들이 추가로 합류하게 되었고, 점차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이 형성되었습니다.
1645년은 부리야트 민족 형성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여겨지며, 이후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부레트’라는 명칭이 ‘부랴트’로 변화하며 공식적인 민족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 명칭은 ‘숲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이러한 명칭과 함께 민족 의식도 형성되었고, 서부와 동부 바이칼에 살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하나의 부리야트 민족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민족 형성 과정이 완성되었습니다.
결국 부리야트는 처음부터 존재하던 단일 민족이 아니라, 몽골계 여러 부족들이 역사적 상황 속에서 결합하여 형성된 비교적 후대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