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의 일정을 앞 둔 아침. 눈을 뜨니 2가지 생각이 문득 솟았다. 병원에 갈 것과 카센터에 갈 것. 조심조심 잘 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모친의 독감기운이 내게로 옮아왔는지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고, 약간의 미열과 근육통이 느껴졌다. 카센터는 가야겠다는 생각이 '그냥' 들었다. 얼마전 엔진룸에 경고등이 들어와 정비를 받았지만 문득 드는 강력한 생각은 일단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지난 경험들을 통해 알고 있다. 빠듯한 일과에 모든 일을 욱여넣자니 벌써 마음이 버겁다.
천식 때문에 처음 만난 이후로 벌써 십수년 째 내왕하고 있는 동네 J내과 원장은, 어느새 희끗한 머리칼이 꽤나 늘어난 채 내게 안부를 묻고는, "세월이 수상하니 일단 독감검사를 합시다"고 한다. 결과는 유행성독감 A형. 공부모임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부터 걱정이 되었다. 어울려 공부하는 자리의 청신한 기운이면 이 정도는 거뜬히 감당할 듯 한데, 문제는 전염성이다. 적진(!)에 깊이 침투시키는 마음으로 항바이러스제를 삼키고 주사도 맞았다. 불참할 수 없는 세미나라고 걱정을 하니 마스크만 잘 하고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한다. 신뢰할 만한 의사이니 믿기로 했다. 부작용이 심한 타미플루라는데.....오직 나를 둘러싼 기운들이 잘 돌보아 주시기만 기원하며, 역시 10년 넘게 거래하고 있는 인근 카센터로 갔더니, 이번엔, "냉각수 통이 다 망가졌네요! 보세요! 냉각수가 다 흘러버리고 하나도 없는데요? 카센터 잘 오셨네요"란다. 독감에 차량수리까지. 둘 다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길을 떠나는 첫 조짐이 나쁘지 않았다.
잘 찾아 갈 수 있을지 두려웠던 표충사 인근 펜션에 도착하니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몇 년 째 만나며 우여곡절이 있는 인연도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도 두 엇 있었지만, k선생의 공부는 그 지향하는 바가 점점 뚜렷해지는 듯 하였고, 선생이 부리는 어휘들도 사람을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만들므로, 별다른 염려나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년에 출가할 생각을 하고 있는 내게는, 그 모든 공부자리들이 천재일우(天載一遇)처럼 귀하고 또 귀한 터라, 행여라도 놓칠세라 온몸으로 듣고 응하고 필기하였다. 선생의 강연보다는 주제별 토론과 종합이 목적인 2박 3일의 공부.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쉴 새 없이 공부하였다.
잠자리를 심하게 가리기에 이틀을 거의 맨 정신으로 보냈지만, 점심, 저녁 1시간 씩만 빼고는 종일토록 오고 가는 대화적 긴장 속에서, 희미하게 알던 것은 확연하게, 때로는 절로 솟구치기도 하면서 '어떤 앎'들이 내게로 왔다. 참으로 선하고 귀한 기운이었다. 독감조차 그 선하고 맑은 기운 앞에 항복했는지, 마지막 일정이었던 토요일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느새 귀찮아진 마스크를 쓰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거의 1년 동안 뵙지 못했던 J선배는, "올해는 선생님께 공부모임 좀 자주 열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여경씨 한(恨) 남지 않게!"라며 변함없이 또랑하고 맑은 음성과 환한 미소로 마지막 인사와 격려를 해 주신다. 2박 3일 동안 들은 수많은 말들 중, 가장 나를 뒤흔든 한 말씀이었다. 교당 일정 때문에 먼저 경주로 향하는 차 속에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언제 보아도 보살 같고 닮고 싶은 선배님이다. 그렇게 나이들어 갈수만 있다면. 독감 기운도 물리치는 어울림과 공부의 기운에 감사하며 한 손은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론 감사의 눈물을 바쁘게 닦으며 경주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보문단지 속에 있는 교원드림센터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쾌적하고 깔끔한 소규모 호텔이었다. 보송하고 바삭거리는 하얀 호텔침구와 조식을 얼마만에 접하는지. 안대에 귀마개까지 동원해도 오지 않는 잠님(!)을 포기하고 40명 남짓한 교당식구들과 함께 불국사로, 언양으로 열심히 이동하였다. 올 한 해 종교공부와 교화활동에 대한 계획세우기가 목표였던 1박 2일의 행사는, 밀양에서 진행된 이론 공부의 실제와도 같았다. 여성과 남성, 계급과 차별, 사회와 개인.....추상화된 관념과 이론들이 세속의 구체적 장면 속에서 검증되고 보완되는 그 통쾌함이란! 회의의 서기를 맡았던 터라, 또다시 온 신경을 들리는 말에 집중하며 챙겨간 소형 노트북에 타자를 쳤다. 모든 훌륭한 과업 수행이 그렇듯이, 발언을 기록하는 서기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해야 하는 법. 손가락은 자판 위를 날아다니고, 시간은 삽시간에 흘러갔다. 독감에, 심각할 정도로 어두운 길눈에, 사흘에 걸친 수면부족까지 얹혔는데도 멀쩡히 모든 과업을 수행해내는 내가 사람인지 귀신인지 나 스스로도 의아하였다. 1초의 졸음 운전도 없이, 그 어떤 헤매임도 없이, 조금의 짜증이나 불안함도 없이, 가야할 곳에 갔고, 와야할 곳으로 돌아왔다. (네비게이션도 곧잘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내 공간지각을 떠올리면 기적같은 사건이다) 그 때문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면 거의 언제나 이유를 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나서도 한 참을 차 안에 멍하니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밖에서 왔는지, 안에서 오는지 분명치 않지만, 결코 내 의지로 부릴 수 없는, 내게 와서 잠시 깃들었다 떠나는 듯한 이 선하고 밝고 맑은 기운을 요즘엔 자주 느끼게 된다. 작년 10월 k선생의 책마치 행사 이후로는 공부모임 마다 거의 매번 지성과 영성이 어우러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 일정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었으니. 내 상태를 알고 있던 몇 몇 교당선배님들은, '위력이 대단하다!/그 위력에 눌리지않고 다 감당하는 것도 정말 놀랍다!'며, 원불교식 격려(!)를 해주셨다. 내 것이 아닌 이 알 수 없는 에너지. 당장은, 그저 '감사합니다' 한 말씀만 올릴 수 있을 뿐이고 반드시 세상에 갚아야 할 은혜라 새겨두었다.
* 공부모임이 있었던 밀양에서는 큰 화재사건이 났었다. 스마트폰을 꺼두었던 터라,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서야 식당의 TV를 보게 되었다. 경주로 갔던 날은, 대구에서 또 화재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곳 저곳에서 사상자가 끊이질 않는다. 마음 속으로 천도법문을 기억나는 대목만이라도 읊고, 급작스레 죽음을 맞은 영가들의 명복을 빌어드렸다. 사고로 인한 사망소식은, 언제 들어도 마음이 같은 강도로 저려온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다. 언제쯤이면 시스템 불안정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그치게 될까. 이래저래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멎을 새가 없는 3박 4일이었다.